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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Life in Hokkaido

나는야 홋카이도의 무인역장

글·사진 | 황경성 나요로 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입력 2011.12.30 14:26:00

일본 홋카이도 나요로 시에는 ‘닛싱(日進)’이라는 이름의 작은 역이 있다. 플랫폼은 기차 한 칸 길이에도 못 미칠 만큼 짧고, 오가는 이도 드물어 역무원조차 없다. 이 오지의 작은 역을 지키는 한국인 황경성.
그가 ‘꽃의 역장’으로 불리며 닛싱 역의 명예역장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들려준다.
나는야 홋카이도의 무인역장

1 카페 동쪽 창가에서 바라본 닛싱 역. 2 닛싱 역의 고즈넉한 저녁 풍경.



2004년 가을, 우리 가족 다섯 명(우리 부부와 모친, 두 살과 초등 4학년인 남매)은 홋카이도(北海道)로 이주했다. 나요로(名寄) 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부임하면서 홋카이도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아름다운 해안으로 유명한 국립공원 후쿠이(福井) 현 에치젠(越前)의 작은 마을에서 매일 저녁 서해(한국의 동해)의 노을을 바라보며 살았다. 쓰루가(敦賀) 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하루를 항해해 홋카이도에 도착한 날은 추적추적 비까지 내렸다. 배에 실어온 자동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시야에 들어오는 홋카이도의 들녘은, 일본 본토나 한국과는 전혀 다른 나라에 온 듯 낯설기만 했다.
우리가 정착한 나요로 시는, 일본 사람들조차 한자만 보고는 정확한 지명을 읽지 못한다. 홋카이도 지명의 80% 이상이 원주민인 아이누족 말과 비슷한 발음이 나는 한자를 적당히 붙여서 만든 탓에, 이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의외로 많다. 사방이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3만 명이 약간 넘는 소도시로, 한때 이 지역이 탄광 개발 붐이 불었을 때 교통의 요충지로 번창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일본 최북단 공립대학과 종합병원이 있는 홋카이도의 거점도시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인이라고는 일본인과 결혼해 이곳에 정착한 두 사람이 전부이고, 순수한 한국인 가족은 우리밖에 없는 말 그대로 미지의 땅이었다. 그런 홋카이도가 이젠 며칠만 떠나 있어도 금세 눈에 아른거릴 만큼 강렬하고 정겨운 제2의 고향이 됐다.

양털처럼 부드러운 파우더 스노
이곳에는 일본 본토에서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시골 마을에서 강아지를 만나듯 여우를 보고, 도로 한가운데에서 어미 사슴과 아기 사슴을 발견하는 행운도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지난봄엔 동료 교수가 출장 중 사슴과 부딪쳐 폐차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특히 겨울이면 영화 ‘닥터 지바고’의 시베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눈 세상이 펼쳐진다. ‘파우더 스노’라 불리는 양털처럼 가볍고 부드럽고 눈부시리만큼 하얀 눈이 차곡차곡 쌓인다. 12월 초 이미 새벽녘 온도가 영하 15℃를 오르내려 한번 내린 눈은 좀처럼 녹지 않고 이듬해 봄까지 그대로다. 눈이 나무뿌리처럼 땅 위를 덮고 있는 것 같다 해서 이곳 눈을 네유키(根雪)라 부르기도 한다. 도로는 겨우내 흰 눈으로 포장돼 검은색 아스팔트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이것이 홋카이도가 스키, 스키점프, 컬링, 크로스컨트리 등 겨울 스포츠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요로의 여름 풍경도 놓칠 수 없다. 수십만 그루의 해바라기가 지평선까지 노란 세상을 연출한다. 우리 가족도 처음 그 광경을 보고 숨이 멎는 듯했다. 해바라기뿐만 아니라 감자밭도 메밀밭도 꽃만 피면 장관이다. 자세히 보면 아름다움의 비밀은 꽃이 아니라 언덕에 있다. 먼 산 노을과 어우러지는 광활하고도 완만한 구릉은 고흐의 그림을 보듯 평화롭고 정겹고 아름답다. 이곳에서는 흔한 옥수수밭조차 아름다운 풍경화가 된다.

한 칸짜리 기차가 서는 무인역을 발견하다
이 대학에 부임하기 전 나는 학교 측에 텃밭이 딸린 농가나 일반 주택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으나 학교 측은 강력히 맨션을 권했다. 한겨울에 영하 30℃까지 내려가는 추위도 그렇고, 하룻밤 새 50cm 전후의 눈이 내리곤 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싶어 우선 맨션에 들어갔다. 우리 가족은 홋카이도 북단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마치 들개처럼 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내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도 채 안 되는 곳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길을 멈췄다. 그곳은 시립공원, 홋카이도 도립공원, 홋카이도대학 천문대, 스키장, 컬링 경기장과 온천 등이 밀집해 있는 단지의 입구 같은 곳이었다. 마치 수줍어 고개 숙인 여인처럼 고즈넉하게 자리한 작은 기차역(닛싱 역)과 그 옆에 덩치만 큰 허름한 건물이 있을 뿐, 인적이라곤 없었다.

나는야 홋카이도의 무인역장




나는야 홋카이도의 무인역장

1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아들 호현이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왔을 때 찍은 가족사진. 앉은 이는 어머니, 뒷줄 왼쪽부터 아내 홍지령, 호현, 나(황경성)와 딸 서현. 2 닛싱 역의 명예역장이 된 뒤 일본 NHK 방송과 인터뷰를 하는 뒷모습. 3 카페 닛싱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콘서트.



한 칸짜리 기차가 아침저녁으로 몇 차례 오가는 이 역은 플랫폼이 기차 한 칸 길이보다 짧을 만큼 작다. 일본은 전국적으로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잘돼 있어 한적한 바닷가나 산속 오지까지도 기차가 다니는데 이런 외진 곳은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 대부분이다. 무인역과 낡은 집을 본 순간 마치 영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줄기처럼 강렬한 장면들이 내 뇌리에 꽂혔다. 나만의 카페를 가지고 싶다는 소망이 드디어 현실이 된다! 이 도시에서 내가 둥지를 틀 곳은 여기밖에 없다!
이후 지인들을 통해 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이곳에서 민박을 하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부모가 돌볼 수 없게 된 아이들을 18명이나 거둬 키운 훌륭한 분인데 여든이 넘어 건강이 악화되자 그 일을 그만두고 시내로 이사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할머니를 직접 만나 우리 가족이 얼마나 그곳을 열망하는지 설득한 끝에 한때 시에 기증하려 했다던 그 집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집은 50~60명이 한꺼번에 숙박할 만큼 덩치가 큰 데다 몇 년씩 비워둔 탓에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더욱이 집 맞은편 무인역 옆 창고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기울어져 있어 더욱 분위기를 삭막하게 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유령이라도 나올 듯한 이 집을 당장 부수고 카페를 만들었을 때 모습만 그려졌다. 무인역 옆 카페, 생각만 해도 완벽한 그림이었다.
설계를 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카페의 실내와 무인역 플랫폼의 조화. 카페 안에서 무인역을 바라볼 때 플랫폼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창을 배치했다. 그 덕분에 플랫폼에 한 칸짜리 기차가 서 있는 모습이 동쪽 창을 통해 마치 액자 속 그림처럼 보였다. 내 예상대로 카페가 문을 연 뒤 이 동쪽 창은 방문객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장소가 됐다.

무인역의 명예역장이 되다
카페 이름은 무인역과 같이 ‘카페 닛싱(NISSHIN)’으로 정했다. 애초 카페의 설립 목적이 문화의 발신지로 삼겠다는 것이었으므로 세 가지 운영 원칙을 세웠다. 첫째, 한국 문화를 알리는 거점이 될 것, 둘째 시민과 대학이 만나는 공간이 될 것, 셋째 문화 예술의 장이 될 것.
아내(홍지령)는 졸지에 카페 주인장이 됐다. 나는 학교 일을 마치고 틈만 나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곳은 나만의 연구소이자 음악감상실이기도 하다. 카페를 열고 한국 차와 비빔밥 등 메뉴를 내놓았더니 한국 마니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정기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그룹이 생겼고 몇몇은 한국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렇게 카페를 연 첫 번째 목적은 자연스럽게 실현됐다.
두 번째 목적인 대학과 시민의 만남을 위해 착안한 것이 포럼이었다. 대학 동료들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기관 및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는 전문가들이 기꺼이 강사로 참여해줬다. 소설 ‘빙점’으로 잘 알려진 미우라아야코기념문학관의 특별연구원이 직접 와서 미우라 아야코의 문학 세계에 관한 강연을 해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전공이나 직업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시민들이 포럼에 참여하는 것을 쑥스러워했지만 이제는 자발적인 참여 열기가 높다. 이 포럼은 지역 주민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향상시키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자부하며, 지금은 이 카페의 존재 이유가 됐다.
세 번째 목적도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카페에서는 매년 재즈를 중심으로 라틴 음악이나 외국의 민속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연주회가 열린다. 그것도 우리가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입소문을 듣고 연주자 스스로 찾아온다. 처음에는 홋카이도 지역 예술가들이 중심이 됐으나 요즘은 도쿄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카페의 동서남북으로 난 창을 통해 하루 종일 따가우리만큼 강렬하게 햇볕이 들어온다. 우리 가족은 그 볕을 쬐며 하루를 시작하고, 서쪽 하늘을 검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때로 깊은 밤 쏟아지는 듯한 별들과 검은 하늘에 하얀 선을 그리며 사라지는 유성을 보는 것은 대도시에서 누릴 수 없는 사치다. 카페 닛싱은 우리 가족의 터전을 넘어 나요로 시민의 소박한 아지트요 아크로폴리스가 됐다.
지난봄 나는 닛싱 역의 명예역장이 됐다. 이 무인역을 꽃으로 마음껏 장식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았는데, 작은 플랫폼에 제라늄을 가득 장식해서 일명 ‘꽃의 역장’으로 불리게 됐다. 역장이 된 뒤 두 달쯤 지나 철도회사(JR)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본 국영 텔레비전에서 무인역 닛싱을 소개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계속하기로 한다.

나는야 홋카이도의 무인역장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는 체육교육을 전공했으나 복지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나요로 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kyungsungh@daum.net

여성동아 2012년 1월 5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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