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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두 번째 | Oldies but Goodies

디지털 시대 손글씨 애호가 이지남

“아날로그적 삶이 좀 더 인간답지 않나요”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지호영 기자

2011. 12. 15

디지털 시대 손글씨 애호가 이지남


“지남아, 나 남자친구한테 선물하게 ‘러브장’ 좀 꾸며줘.”
2005년 어느 날 중학교 교실. 당시 중학생이던 이지남씨(23)의 책상에는 매번 노트가 수북하게 쌓였다. 정체는 남자친구에게 선물할 ‘러브장(좋은 글귀나 일기를 써서 꾸민 노트)’을 꾸며달라는 친구들의 의뢰 노트. 꾸미기에 소질이 있던 그가 그림과 글씨, 사진까지 덧붙여 꾸민 고퀄리티의 러브장은 다른 반 친구들도 제작을 요청할 만큼 인기가 많았다.
“어릴 적부터 글 쓰고 꾸미는 걸 좋아해서 책상에 붙이는 시간표, 필통, 사전 커버 같은 걸 직접 그려서 만들곤 했어요. 중학교 때는 다이어리 속지에 편지를 써서 친구들과 한 장씩 주고받곤 했죠. 에세이집에 나오는 좋은 문구를 메모하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썼다 지웠다 하는 건 컴퓨터가 빠르긴 한데, 글씨를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면서 생각할 수 있어서 종이에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종이에 글씨 쓰며 생각하는 시간이 좋아
이지남씨는 ‘하폴’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블로거. 네이버 ‘다이어리 꾸미기’ 카페에 직접 꾸민 아기자기한 다이어리 사진을 올려 유명세를 탔다. 그 덕에 ‘손글씨’와 ‘손그림’ 관련 책만 6권이나 낸 꾸미기계의 강자다. 매년 한 권씩 꾸미기 시작한 다이어리가 벌써 7권째. 그가 즐겨 쓰는 건 연필과 색연필. 귀여운 그림만큼이나 아기자기한 그의 글씨체는 노력의 산물이다. 중학교 때 ‘광수생각’을 그린 박광수씨의 글씨체를 A4 용지에 한 글자씩 인쇄해 몇 번이고 따라 썼다고. 캘리그래피에도 관심이 많아 전문가용 캘리그래피 펜을 갖춰두고 다이어리를 쓸 때 활용한다. 예쁜 무늬가 있는 제품만 발견하면 장르 안 가리고 모으는 수집광이기도 하다.
“로고 박힌 티슈, 상품 태그, 라벨, 포장지 등 예쁜 디자인이면 종류 상관없이 모으는 편이에요. 스티커도 구경하다가 예쁘면 그 자리에서 사오곤 해요. 부모님께서 처음에는 그런 걸 모으는 거나 밤을 새워서 다이어리를 꾸미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셨는데, 나중에는 그걸로 책도 내고 하니까 좋아하시더라고요. 언니는 제 영향 때문인지 일기를 손으로 쓰고, 캘리그래피 강좌도 수강하더니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죠. 남동생도 디자인학과에 진학했고요.”
그는 종이를 고를 때 빈티지 느낌이 나는 갱지나 크래프트지, 모눈이 들어간 것을 선호한다. 다이어리 예쁘게 꾸미는 비법도 알려줬다. 다이어리에 붙이는 사진과 글씨 쓰는 펜의 색감을 통일시키는 것. 낙엽 사진을 붙였으면 글씨 쓸 때 황갈색이나 밤색 펜을 이용하는 식이다. 커다란 사진이나 그림을 붙이면 사진 속 여백이나 아웃 포커싱된 부분에 글씨를 쓰는 것도 다이어리를 세련되게 꾸미는 팁.
지난해 휴대전화를 아이폰으로 바꾼 뒤 잠깐 디지털 라이프의 ‘유혹’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연필과 재생지의 느낌을 잊지 못해 다시 아날로그 라이프로 회귀했다.
“아이폰에도 스티커를 붙이는 등 다양하게 꾸밀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많아서 한번 제 삶의 디지털화를 시도해봤죠. 종이를 꺼내 쓰지 않으면 편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항상 휴대전화는 손에 쥐고 있는데도 어색한 거 있죠. 정도 없어 보이고 무엇보다 내 얘기를 했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글씨를 오래 쓰면 팔이 아픈 것만 빼면 손으로 적는 게 스트레스도 풀리고 생각 정리가 잘돼서 좋아요.”

‘예측 불가’한 아날로그식 삶의 매력
다이어리를 쓰고 인생을 기록하고 싶어하는 성향은 부모님의 기질을 물려받아서다.
“부모님께서 개인 자서전을 쓰시거든요. 나중에 저희들이 결혼하면 ‘엄마 아빠는 이렇게 살았다’라고 보여주고 싶으시대요. 아직 끝까지 읽지는 못했어요. 지금도 계속 쓰고 계시니까요. 나중에 저도 제 인생을 책 한 권에 담아서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의 워너비 스타는 ‘피플’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 중 하나인 에코 스타일리스트 대니 서. 환경운동가이자 디자이너인 그처럼 의미 있는 디자인으로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아날로그적인 삶의 매력을 묻자 “예측 불가능한 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디지털 방식은 편하지만 예측이 가능하죠. 이렇게 타이핑하면 이렇게 나오겠구나 하는. 사실 삶이라는 것 자체는 몇 초 뒤도 예상할 수 없는데 말이에요. 불편하더라도 우리 삶과 닮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는 게 조금 더 인간적일 것 같아요. 다이어리를 재미있게 쓰는 방법 중 하나는 매달 수식어를 붙이는 거래요. ‘행복한 8월’‘남에게 감사하는 9월’처럼요. 매일 그걸 펼쳐서 보면 결국엔 그 말처럼 살아가게 되거든요. 여러분도 한번 시작해보세요.”

디지털 시대 손글씨 애호가 이지남

중학교 때 ‘광수생각’을 그린 박광수씨의 글씨체를 A4 용지에 한 글자씩 인쇄해 몇 번이고 따라 썼다. 그는 종이를 고를 때 빈티지 느낌이 나는 갱지나 크래프트지, 모눈이 들어간 것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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