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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생사용설명서 두 번째 | Oldies but Goodies

따뜻하고 속 깊은 친구 ‘라디오 스타’ 김혜영

“라디오에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끈한 정이 있어요”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1.12.15 16:52:00

어느덧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연말이면 거리엔 올드 랭 사인과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그럼 아이처럼 마음이 들뜨곤 했지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거리에 노래가 사라지면서부턴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달 여성동아 기획특집 주제는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입니다.
빛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옛 것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입니다.
낡고 더디지만 따뜻함이 깃들어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따뜻하고 속 깊은 친구 ‘라디오 스타’ 김혜영


1940년대 TV가 처음 등장했을 때 라디오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해 보였다. 그런데 웬걸, 컴퓨터·휴대전화·SNS 등 첨단 기술로 무장한 그 어떤 매체의 등장에도 라디오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건 아마 외로움을 달래는 데 라디오만큼 따뜻하고 속 깊고 한결같은 친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MBC 라디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 안주인 김혜영(49)은 1987년 이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마이크를 잡았다. 어느덧 25년째, 인생의 절반 이상을 라디오와 함께 보낸 셈이다. 원래 한 가지를 시작하면 우직하게 앞만 보고 달리는 스타일이라지만, 애정이 없었다면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라디오의 가장 큰 매력으로 꾸밈이 없는 것을 꼽았다.
“TV는 메이크업하고, 옷 챙겨 입고, 나가서도 예쁘게 앉아 있어야 하고, 언제 카메라가 내 쪽으로 넘어오는지 오만 가지 생각을 해야 하는데 라디오는 강석씨가 뭐라고만 하지 않으면 눈곱만 떼고 나가서 종알종알 얘기하면 되니까 늘 이웃집에 마실 오는 것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오게 돼요(웃음).”
그렇다고 대충대충 하는 것은 아니다. 라디오 진행자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성실성. 그가 결혼 당일 방송을 빼먹지 않기 위해 웨딩드레스를 입고 진행한 것은 지금도 방송계에선 신화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그는 또 자신이 청취자들이 보내오는 사연에 공감할 준비가 돼 있는지, 웃음에 무뎌지지 않았는지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점검한다.
“몇 해 전 충북 보은 대추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구할 방법이 없어 방송에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좋은 걸 아직 못 먹어봤느냐’며 많은 분들이 방송국으로 보은 대추를 보내주셨어요. 저희 방송이 그래요. 진행자와 청취자가 하나가 돼 만드는 방송이죠. 청취자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다가오니 늘 긴장되지만, 그런 긴장을 즐기면서 방송을 해요.”
그에게도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사구체 신우염을 앓았던 것. 제작진은 그를 위해 놓아주어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김혜영은 자신의 에너지원인 라디오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방송을 놓는 게 내 삶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처럼 끔찍하게 느껴졌어요. 몸이 아픈데 마음까지 아프면 더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라디오를 계속했죠.”
숱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20대 중반의 김혜영은 넉넉한 아줌마가 됐고, 작가가 급히 휘갈겨 써서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던 대본은 컴퓨터로 깔끔하게 정리돼 진행 데스크 위에 놓이게 됐다. 또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석과는 친남매나 부부 이상의 환상 호흡을 자랑하게 됐다. 그는 세상 풍경도 바뀌어 청취자들이 보내오는 사연을 보면 연애든 집안 살림이든 남성보다 여성이 더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라디오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끈한 테이프 노릇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연예인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TV는 가십으로 들춰내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쓱쓱 비비는 경우가 많은데, 라디오 청취자들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가족같이 보듬어줘요. ‘나는 너를 이해해. 나는 너에게 힘이 되고 싶어’라고 응원해 주죠. 라디오에서 종종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니까 아이들은 잘 크는지 안부를 묻기도 하시고요.”

라디오는 내게 에너지원, 어머니에게는 자랑의 근원
얼마 전 그는 라디오를 통해 또 한 번 큰 힘을 받았다. 지난 10월 중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많은 청취자들이 애도해준 덕분에 어머니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머니께는 제가 라디오를 진행하는 게 큰 자랑거리였어요. 택시를 타도, 사람들을 만나도 ‘우리 딸이 싱글벙글 하는 김혜영’이라고 얼마나 자랑을 하셨던지. 저는 늘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싫었는데, 지금 와서는 후회가 돼요. 제가 라디오를 하면서 에너지를 얻듯 어머니도 딸 자랑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으셨을 텐데, 그걸 왜 못하게 했을까 하고요.”
물론 그도 언젠가는 라디오를 그만두는 날이 올 것이다. 김혜영은 그동안 정말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내려놓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골든마우스(MBC에서 만 20년 이상 라디오를 진행한 사람에게 주는 상) 받던 날 배철수 오빠가 ‘혜영아, 너 그동안 진짜 열심히 했으니 이제부터는 즐기면서 해’라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어요. 제가 없어도 ‘싱글벙글쇼’는 굴러갈 것이고, 그러면 그만두는 순간 뭘 할까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따뜻하고 속 깊은 친구 ‘라디오 스타’ 김혜영

김혜영은 2007년 MBC가 20년 이상 라디오 진행을 한 사람에게 주는 ‘골든마우스’를 수상했다. 여성 진행자로는 그가 처음이다.



여성동아 2011년 12월 5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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