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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장희 울릉천국 시비 세우던 날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연못에 모노레일, 나의 보물 나의 천국 울릉도”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1.12.15 16:04:00

콧수염과 오토바이로 한 시대를 풍미한 남자를 사로잡은 섬 울릉도.
첫발을 디딘 순간 사랑에 빠진 남자는 자신이 죽으면 이곳에 묻어달란다.
사람들에게 울릉도가 자신의 천국임을 노래로 널리 알린, 가수 이장희를 바로 그 울릉도에서 만났다.
가수 이장희 울릉천국 시비 세우던 날


30년 만에 신곡 ‘울릉도는 나의 천국’을 발표한 가수 이장희(64). 자신의 노랫말이 적힌 비를 세우고 사람들을 초대한다는 소식에 울릉도로 달려갔다. 생각보다 훨씬 울릉도는 멀었다.
강원도 묵호항까지 서울에서 4시간. 묵호항에서 배를 타고 동해 한가운데의 섬 울릉도까지 2시간반. 울릉도 도동항에서 또 버스를 타고 1시간 걸려 도착한 곳은 울릉군 북면 평리. 울릉의 명동이라 불리는 어촌 마을 남면과 달리, 바다가 보이는 소박한 농촌 마을인 평리는 고요하기만 했다. 바람과 떠드는 바다를 뒤로한 채 언덕을 올라 하얗게 벽을 칠한 아담한 교회를 지나니 나무로 된 팻말이 눈에 띄었다.
‘울릉천국’
“‘울릉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집 안에서 나와 반갑게 일행을 맞이한 사람. 시원하게 밀어버린 머리, 동그란 안경. 작지만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 울릉천국의 주인 가수 이장희였다. 초록빛 널따란 평지. 형형색색 단풍 진 높은 산봉우리가 어우러진 이곳.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나뭇가지에 매달린 커다란 풍경과 작은 풍경이 노래를 만들어냈다.
집 뒤에는 모노레일이 있었다. 놀러 오는 사람들마다 울릉천국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그의 배려였다. 모노레일을 타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전경에 잠시 마음을 빼앗겼다. 저 멀리 작은 나루터처럼 꾸민 연못도 보였다.
미국에 살고 있던 그의 아들 이규형씨가 친구와 함께 제막식에 맞춰 처음으로 울릉도를 방문했다. 이장희는 자신이 썩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친구처럼 여겼다. 신나게 울릉도에서 사는 아버지의 모습에, 그는 아버지와 똑같은 시원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울릉도가 아버지 놀이터가 됐네요.”

대자연 속에 빠진 그의 마음에 나타난 섬

가수 이장희 울릉천국 시비 세우던 날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좋아했던 이장희는 가수 생활을 그만두고 떠난 1980년 미국 여행길에서 우연히 작가 최인호를 만났다. 둘은 함께 미 대륙을 여행하던 중 캘리포니아 주 ‘데스밸리’에서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빠져들었다. 그 후 데스밸리만도 1백 번 이상, 대자연을 쫓아 미국 북부의 얼음 도시 알래스카를 6~7번 방문하고, 브라질 아마존도 2번 다녀왔다. 대자연으로 손꼽히는 전 세계 어느 장소에 그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자연스럽게 은퇴하면 대자연과 함께 살려고 했어요. 울릉도를 찾기 전에는 여름에는 알래스카에서 살고, 가을이 오면 하와이에서 살자고 마음먹고 하와이엔 집도 사뒀죠.”
하지만 그의 꿈은 울릉도를 만나면서 180도 바뀌었다. 1997년 제주도에 내려가 살던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장희야, 너 울릉도 가봤니? 안 가봤으면 꼭 가봐라.”
울릉도라는 단어가 뇌리에 꽂혔다. 이장희는 곧장 제주도를 떠나 부산으로, 부산에서 다시 포항으로, 포항에서 다시 울릉도 가는 배를 갈아타고 섬에 첫발을 내디뎠다.
“울릉도에 내리자마자 반했어요. 일주일 동안 걸어 다니며 풍광을 보면서 마음을 굳혔습니다. 알래스카도 아니고 하와이도 아닌, 은퇴하고 내가 지낼 곳은 바로 울릉도다.”
얼마 후 다시 찾은 울릉도. 터전을 마련하려는데 복덕방이 없어 대신 농협을 찾았다. 은퇴해서 여기 살고 싶으니 농가가 딸린 농토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소개받은 곳이 바로 이 ‘울릉천국’ 자리였다. 아담한 크기의 집과 바로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바다가 있는 풍경. 산 귀퉁이에서는 맑은 샘물이 솟아나왔다.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했다. 1백여 년 된 농가를 손수 고치고, 땅을 갈아 농장을 만들었다.
그는 1998년 땅을 매입한 후 한 해에 몇 주만 머무르다 2003년 12월 자신이 운영하던 ‘라디오 코리아’ 대표직을 내놓고 아예 울릉도 사람이 됐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그가 일 년에 가장 많은 시간을 울릉도에서 지낸다. 무려 네 달이나. 나머지 여덟 달은 미국과 서울에서 잠시 보내고 주로 세계 여행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산과 물, 그러니까 바다, 강, 호수를 꼽지 않습니까.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호수가 있는 집에서 아내는 뜨개질하고 나는 파이프 담배를 무는, 러시아 문학에나 나올 법한 풍경. 그것이 바로 제가 은퇴 후 꿈꾸던 삶이었습니다. 이곳은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땅이에요. 샘이 풍부하게 솟아나와 한쪽에는 연못도 꾸몄어요.”
그가 꾸던 꿈을 실현해준 땅이기에 자연스럽게 ‘울릉천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7~8년 전쯤 조영남 형이 울릉도 저희 집에 처음 와서 그래요. ‘장희야, 네가 왜 울릉천국, 울릉천국 하는지 알겠다. 너 교회 위에 살잖냐’라고요. 듣고 보니 그렇더라고요. 저희 집 아래에 백 년 된 교회가 있거든요(웃음).”



가수 이장희 울릉천국 시비 세우던 날


잃어버린 음악 세계를 되찾다
1978년 가수 생활을 은퇴한 후 미국으로 이민 간 뒤 별다른 음악 활동을 하지 않던 그를 깨운 것은 바로 50년 지기이자 형, 조영남이었다. 2009년 6월 조영남은 이장희에게 자신이 DJ를 맡고 있던 프로그램 출연을 부탁했다. 조영남의 부탁에 그는 7월 귀국과 동시에 MBC 라디오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시대’로 향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에 이종환, 이문세, 배철수까지 다 와 있더라고요. 반갑긴 했는데 뭔가 이상해요. 알고 보니 영남이 형이 나를 미끼 삼았더라고. 내가 나온다고 하니 다들 안 나올 수가 없었던 거죠.”
그날 ‘라디오시대’에 특별방송 된 ‘세시봉 친구들’은 인기를 끌어 세 번이나 앙코르 방송을 했다. 그리고 이장희는 그 일을 계기로 TV에도 출연했다. 지난해 추석특집 MBC ‘놀러와’에서 다시 뭉친 ‘세시봉 친구들’은 중년 시청자들뿐 아니라 젊은 세대의 호응까지 얻었다. 그리고 12월에는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 그는 입담을 과시하며 은퇴 후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강호동의 질문에 이장희는 자신이 사랑하는 울릉도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말해 화제를 낳았다.
‘무릎팍도사’ 방영 이후 울릉도에 가니 만나는 주민들마다 그를 붙잡고 “노래는 언제 나와요?” 하고 묻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기대가 큰 만큼, 더는 지체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가사가 나오지 않았던 것. 가사를 고민하던 중 문득 자신이 키우던 개 ‘라코’가 생각났다.
20여 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민을 대상으로 한 한인방송 ‘라디오 코리아’를 시작하며 만난 유기견 한 마리. 이장희는 그 개에게 ‘라디오 코리아’의 ‘라’와 ‘코’를 따 ‘라코’라고 이름 붙였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던 그에게 라코는 항상 옆을 지켜준 친구. 그는 울릉도로 이사 올 때 함께 라코를 데려왔다.
“제가 여행을 좋아하니까 울릉도에만 있지 않아서 라코 혼자 있었어요. 혼자 있을 생각에 마음이 아파 일찍 돌아온 적도 많았죠. 2008년 눈이 많이 오던 1월이었어요. 여행을 마치고 울릉도로 돌아왔더니 그날따라 유난히 라코가 저를 몇 번이고 반기더라고요.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라코와 바닷가로 산책을 갔는데, 갑자기 라코가 보이질 않아요. 혼자 집으로 돌아갔더라고. 나이가 들어 힘들어서 그런가 했는데 그 다음 날에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요. 마침 아랫집 사는 후배가 올라와서 그러더라고. ‘형님, 놀라지 마세요. 라코가 죽었습니다’라고요.”
당시 라코 나이 열일곱. 사람으로 치면 1백 살 정도 되는 나이였다. 긴 세월 동안 함께한 친구는 천수를 누리며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어느 날 집 뒤에 만든 라코의 무덤을 보니 문득 ‘나도 죽으면 울릉도에 잠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랬더니 가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소절을 만들어내자 다른 소절은 순식간에 써졌다. 자신이 사랑하는 울릉도에 대한 마음을 노랫말에 듬뿍 담았다. 그리고 2011년 5월 울릉도를 향한 연가 ‘울릉도는 나의 천국’이 완성됐다.
“결국 ‘무릎팍도사’가 잃어버린 저의 30년 음악 세계를 다시 찾아준 겁니다.”
1978년 은퇴한 이후로 본업이 가수가 아닌 채 살아왔던 이장희. 그는 ‘무릎팍도사’에 나와 ‘울릉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다’라고 한 약속을 지킴과 동시에 잃어버린 음악 세계도 찾을 수 있었다.

가수 이장희 울릉천국 시비 세우던 날


가수 이장희 울릉천국 시비 세우던 날

울릉천국 시비를 둘러싼 석주에 이장희와 친구들의 사인이 새겨져 있다. 그들의 오랜 우정만큼이나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날마다 울릉천국 오르내리는 것이 최고의 보약
2011년 5월 ‘울릉도는 나의 천국’이 완성돼 음원이 공개되자 큰 호응을 얻었다. 울릉군에서는 이 노래를 기념하고자 기념비를 세우자고 제의했고, 이장희는 흔쾌히 울릉천국 한쪽에 자리를 마련했다. 2m가량 되는 시비에는 이장희가 직접 쓴 ‘울릉천국’이라는 비문이 새겨졌다. 아래엔 노래말이 새겨진 대리석 현판이, 시비 옆으로는 세시봉 출신 가수들(김민기, 김세환,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과 오랜 세월 친분을 쌓아온 방송인 이상벽, 이두식(화가, 전 홍익대학교 학장), 김중만(사진작가), 전유성(개그맨), 강근식(이장희의 첫 밴드 ‘동방의 빛’ 멤버) 등의 사인이 새겨진 석주가 둘러쌌다.
2011년 11월11일 오전 11시. 울릉군과 이장희가 함께 주최한 ‘울릉도는 나의 천국’ 시비 제막식을 구경하러 5백여 명이 울릉천국을 찾았다. 울릉도 주민뿐 아니라 이장희의 팬클럽 이추사(이장희를 추억하는 사람들) 멤버들, 울릉도를 찾은 관광객까지 온갖 곳에서 온 사람들이 울릉천국을 가득 메웠다. 이번 행사를 축하하러 이장희의 지인들이 특별히 시간을 냈다. 무대 위에 선 그가 고개 숙여 인사하며 청중에게 말했다.
“오늘은 제가 이 노래를 여러분께 직접 선보이는 날입니다.”
통기타를 어깨에 메고, 예의 그 큰 북 같은 당당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가수 이장희 울릉천국 시비 세우던 날


세상살이 지치고 힘들어도
걱정 없네 사랑하는 사람 있으니

비바람이 내 인생에 휘몰아쳐도
걱정 없네 울릉도가 내겐 있으니

봄이 오면 나물 캐고
여름이면 고길 잡네
가을이면 별을 헤고
겨울이면 눈을 맞네

성인봉에 올라서서 독도를 바라보네
고래들이 뛰어노는 울릉도는 나의 천국

나 죽으면 울릉도로 보내주오
나 죽으면 울릉도에 묻어주오

노래를 마치자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앙코르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화답하며 자신의 대표곡 ‘그건 너’를 열창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건 너, 때문이야’를 부르며 한마음이 됐다. 제막식 후, 2부가 시작되자 익숙한 얼굴이 무대에 불쑥 등장했다. 바로 이장희의 50년 지기 조영남이었다. 이제까지 신기할 만큼 사이가 멀어져본 적이 없는 절친. 그는 먼 바다 건너 울릉도까지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달려왔다.
“장희가 점심을 주면서 그래요. ‘형 밥값 낼래, 아니면 노래할래?’ 그래서 노래하러 왔는데, 가수 활동 하면서 이렇게 작은 무대는 또 처음이네.”
이장희가 주민들의 음악회를 위해 만든 작은 무대에 오른 조영남은 ‘화개장터’ ‘딜라일라’ 등을 열창하며 특유의 맛깔난 화법으로 무대를 사로잡았다. 이장희도 객석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웃음꽃을 피웠다. 한껏 무르익은 분위기 사이로 집 뒤의 장군봉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울릉천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이메일 마지막에 붙이는 말이 있어요. ‘울릉천국에서 이장희’ ‘울릉천국에서 장희가’라고. 그만큼 제게 이곳은 제 집이고, 또 소중한 곳이죠.”
틈만 나면 바닷가를 걷고, 아침마다 뒷산 장군봉을 오르는 것이 자신의 보약이라 말하는 가수 이장희. 그의 천국에서 이장희는 앞으로 자신의 인생과 새로운 음악 세계를 넓은 동해바다까지 가득 펼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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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 2011년 12월 5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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