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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종주국의 자존심 김순자 명인의 손맛

“눈이 즐겁고 아삭아삭 식감이 느껴져야 좋은 김치”

글 | 김현미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1.12.15 14:37:00

한국의 김치 문화를 발전시키고 김치의 세계화를 촉진하기 위한 ‘김치산업진흥법’이 제정돼 2012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를 위해 11월3일 한국김치협회, 세계김치협회, 한국김치·절임식품공업협동조합 등 여러 단체로 나뉘어 있던 김치산업계가 대한민국김치협회로 통합돼 새 출발을 했다.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대한민국 김치 명인 1호 김순자 한성식품 대표로부터 듣는 알싸한 김치 이야기.
김치 종주국의 자존심 김순자 명인의 손맛


김순자 대표(57)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입이 짧고 뭔가 먹기만 하면 탈이 나는 특이 체질이었다. 그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밥과 김치. 그마저도 “이번 김치는 너무 맵고” “이번 것은 짜고” “덜 익었네” “시어졌네” 하면서 조금만 맛이 떨어져도 입에 들어갔던 것을 도로 뱉어낼 만큼 까탈을 부렸다. 어린 김순자에게 맛있는 김치는 ‘기호’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1백 점짜리 김치가 아니면 먹으려 하지 않아서 대꼬챙이처럼 말라가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어머니와 할머니는 입맛에 맞는 김치를 담가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전국의 종가를 찾아다니며 유명하다는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와 밥상에 올려주고 아이가 끝까지 씹어 삼키면 “오, 맛있어? 올겨울에는 살았다” 하며 안도를 했다.
“저는 살아야 하니까 김치 맛에 집착했어요. 왜 이번 김치는 맛이 없냐고 따지면 어머니는 ‘지난번과 똑같다’고 대답하시고, 제가 ‘아냐, 같지 않아’라고 집요하게 물으면 그제야 어머니가 ‘뭘 좀 바꿔 넣었는데’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죠. 나중에는 이번 김치는 왜 맛이 예전과 다른지 이유를 기록해 뒀지요.”
김장 때 어머니가 5백 포기가 넘는 배추를 절이고 한밤중에 바가지에 더운물을 떠놓고 시린 손을 담가가며 절인 배추를 뒤집으면 그도 신이 나서 배추를 주물렀다. 어른들이 거치적거린다며 제발 좀 가서 자라고 해도 그는 김치 담그는 날 너무 행복해서 잠이 오질 않았다.
“결혼 후 처음 혼자서 김치를 담갔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어머니가 담가주신 것보다 더 맛있었죠. 마침 친구들이 집에 왔기에 맛을 보라고 했더니 너도나도 싸달라고 해서 금방 동이 났어요. 제가 만들면서 어머니 김치에서 덜 채워졌던 맛을 넣은 거죠. 그 뒤 한 호텔 식당에서 김치 맛 때문에 손님의 항의를 받고 직원들끼리 다투는 것을 보고 김치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들의 고민이 ‘왜 김치 맛이 한결같지 않고 그저께는 쓰고, 어제는 짜고, 오늘은 싱거우냐’였거든요. 어린 시절 제가 따지던 거랑 똑같잖아요.”
1986년 6월 한성식품을 설립했다. 회사라야 대표인 그와 경리직원 한 명이 전부. 결혼한 지 5년, 아직 새댁 티도 벗지 못한 그가 작업복 입고 공장에서 배추 절이고 소 넣다가 영업하러 뛰어나가니까 다들 뭐가 아쉬워서 그런 일을 하냐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해 9월 열린 서울 아시안게임 김치 공급업체로 선정된 이후,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등 굵직한 국제 스포츠 행사가 열릴 때마다 한성김치가 빠지지 않았다. 그사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문 닫은 단무지 공장에서 시작한 한성식품은 경기도 부천 본사에 이어 충북 서산과 진천에 공장을 세웠고, 1백여 개의 김치 관련 특허출원을 내고 김치 수출과 세계화를 선도했다. 장영실과학문화상 금상(2000), 철탑산업훈장(2002), 싱가포르 국제식품발명전 금상·동상(2003), 은탑산업훈장(2008), 한국관광평가연구원 혁신우수전통식품브랜드 대상(2010) 등 각종 수상 경력은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 김 대표 개인은 2007년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29호·김치 명인 1호가 되는 영광도 누렸다.

김치 선물에 냄새난다고 얼굴 찌푸리던 시절

김치 종주국의 자존심 김순자 명인의 손맛


“처음부터 일반 가정이 아니라 호텔 등 고급 식당을 겨냥해 김치를 납품한 것이 주효했어요. 가정에서 김치를 사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지금은 국내 김치 시장이 연간 2조2천억원에 이르고 전체 김치 생산량 중에 흔히 공장김치라고 하는 상품김치가 40%나 돼요. 이 추세라면 70%까지 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저희 회사 김치를 드리면 ‘아, 됐어요’ 하고 냄새나는 김치를 어떻게 가져가느냐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죠. 그런데 2000년대가 되니까 김치 선물을 좋아하더라고요. 요즘은 저희 김치를 한 번이라도 맛보신 분들은 ‘지난번 김치 덕분에 아내에게 칭찬받았다’며 ‘오늘 또 칭찬받는 날인가’ 하고 아예 김치 좀 받아갔으면 하는 눈치예요.”
김 대표는 한국의 김치야말로 ‘나눔의 문화’라고 말한다. 김장철이 되면 오늘은 영자네, 내일은 금자네 하는 식으로 미리 날짜를 맞춰서 품앗이를 했고, 설령 사정이 있어 김장을 하지 못한 집도 여기저기서 보내온 김치들로 겨우내 먹고도 남을 만큼 김치 인심은 넉넉했다. 어려서부터 그런 문화 속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사먹는 김치조차 맛이 있으면 친지들과 나눠 먹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김치 종주국의 자부심도 안팎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 한국인의 1인당 김치 소비량이 점점 줄고 있는 현실에다 값싼 중국산 수입 김치의 증가로 한때 김치 수입액이 수출액을 초과하는 역조 현상까지 벌어졌다. 11월3일 김치 제조 및 유통업체, 김치 연구자, 김치 관련 단체장들 1백60여 명이 모여 대한민국김치협회를 출범시키고 초대 회장으로 김순자 대표를 추대한 데는 이러한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달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김치 세계화를 말하지만 정작 우리의 김치 소비는 점점 줄고 있어요. 과거에는 한 사람이 1끼에 김치를 100g, 많게는 120g까지 먹었는데 요즘은 어른이 60~80g 정도, 어린이들은 40g밖에 안 돼요. 김치 외에도 다른 반찬이 많으니 김치에 손이 덜 가는 것도 이유지만, 짜게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해서 김치가 눈총을 받는 게 더 큰 문제예요.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데 저희가 만드는 김치는 결코 짜지 않아요. 염도를 조사해보면 상품김치가 가정에서 담가 먹는 김치보다 더 낮습니다. 한성김치의 경우 일찍이 저염화를 실천해서 염도가 0.9~1.2% 수준이에요. 김치 제조 기업인들의 목표는 짜거나 맵지 않으면서 김치 고유의 맛을 살리고 몸에도 좋은 발효 식품을 만드는 것이죠. 얼마 전 잘 익은 김치가 살을 빼거나 혈압을 내리는 데 효과가 있다는 임상시험 결과도 발표됐잖아요. 이처럼 숨겨진 김치 과학을 밝히고 널리 알려서 국민들, 나아가 세계인들이 안심하고 건강하게 김치를 즐겨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협회에서 해야 할 일이죠.”
김 대표가 말한 임상시험이란 최근 농촌진흥청과 아주대병원이 공동 진행한 연구로, 비만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뒤 3개월간 끼니마다 100g씩 생김치와 숙성김치를 먹인 결과, 숙성김치를 섭취한 그룹이 생김치를 섭취한 그룹보다 몸무게와 체지방이 더 줄고 혈압이 크게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이 연구는 영양학 분야 세계적인 학술 저널인 ‘뉴트리션 리서치’에도 실렸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론 달콤하고 기름진 맛에 길들여진 어린이들의 입맛을 김치로 돌리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김치 종주국의 자존심 김순자 명인의 손맛

김순자 명인의 김치는 색감이 좋고 한입에 딱 맞는 크기로 만들어졌다. 치자미역말이김치(왼쪽)와 미니롤보쌈 김치(오른쪽).



‘밥에 김치’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김치가 밥을 먹는 데 필요한 반찬이란 인식부터 바꿔야 해요. 햄버거나 콜라처럼 김치도 아무 데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고, 발효 식품으로서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제니까 더 챙겨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죠. 그동안 김치는 맵다는 것만 강조돼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어린이나 김치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은 겁부터 내요. 저는 김치를 만들 때 일단 눈으로 봐서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색감이 좋아야죠. 다음은 코에서 향기로워야 하는데 솔직히 김치통을 딱 열었을 때 풍기는 냄새가 좋진 않죠. 저는 이 냄새를 제거해 코를 찡그리지 않아도 되는 김치를 만들어요. 다음은 입. 입에 넣었을 때 아삭아삭 식감이 살아 있어서 그 상큼한 맛을 먼저 귀로 느끼고 뒤이어 미각이 작용하면 자꾸 손이 가는 거죠.”
마침 그의 예술 작품이라고 하는 특허 받은 김치 몇 종류가 시식용으로 나왔다. 그중에서도 치자미역말이김치의 노란 색감이 시선을 끈다.
“이른 봄 진천 공장에 가다가 산에 핀 개나리를 보며 그 색을 김치에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끝에 치자를 이용했죠. 김치를 ‘말이’로 만들어 한입 크기로 썰어서 내는 것은 롤케이크에서 착안했어요. 양념이 흐트러지지 않아서 먹기 좋고 맵지 않아서 밥 없이 집어먹을 수 있어요.”
이런 김치라면 코스 요리의 애피타이저로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그가 개발한 깻잎양배추말이김치, 미니롤보쌈김치, 인삼백김치 등이 이와 같은 콘셉트에서 나왔다. 최근 그는 ‘홍백보쌈’이라는 새로운 김치를 선보였다.
“부부나 형제가 같은 밥상에서 나는 매운 김치가 좋아, 나는 백김치가 좋아 하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잖아요. 이럴 때 한쪽은 하얗고 한쪽은 빨간 홍백보쌈을 내는 거죠. 백김치는 시원하고 고춧가루 김치는 알싸한 맛이 나는데 바깥을 싼 부분에서는 두 가지 맛이 어우러진 제3의 맛이 나요. 간이 세지 않아 샐러드처럼 그냥 먹어도 되고 국물에 국수를 말아 드셔도 돼요.”

새로운 김치를 개발하는 그의 상상력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만든 김치를 처음 시식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기대대로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는 걸 보는 재미에 빠져 그는 26년째 김치에서 손을 빼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예민한 미각’도 괴로울 때가 있다. 식당에서 이건 아니다 싶은 김치가 나올 때다.
“김치 제조하는 사람으로서 하기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비싼 식당에서 오히려 김치를 홀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고급 요리일수록 요리에 치중하지 김치는 신경을 덜 쓰게 되죠. 그러나 식당 분위기 좋고 음식도 맛있는데 김치 맛까지 끝내주더라 하고 소문이 나면 얼마나 사람이 몰려들겠어요. 김치가 맛이 없으면 식당에 대한 인상 자체도 나빠집니다. 저는 눈으로만 봐도 딱 알아요. 아, 이 식당 수입 김치 쓰는구나. 색이 이상하게 불그죽죽하고 고춧가루 범벅이면 중국산 김치죠. 씹어보면 아삭아삭하지 않고 뭉글뭉글해요. 그런 김치는 찌개를 해도 맛이 없잖아요. 글로벌 시대에 어디 김치는 먹지 말라고 말할 순 없지만, 내 나라 김치가 아닌 것이 나올 때면 속상해요.”

“반찬이 김치밖에 없어서”라는 말 사라져야

김치 종주국의 자존심 김순자 명인의 손맛

2010년 1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행사에서 세계 정상들에게 선보였던 ‘황제김치’. 고춧가루 양념 대신 다시마, 배, 잣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수 있느냐”다. 고춧가루를 비롯해 양념 비율이라든가 특별한 젓갈 선택과 같이 그만의 비법이 있는 줄 알았더니 대답은 의외였다.
“10월 열린 세계김치문화축제(광주)에서 김치 아카데미를 열었는데 참가한 분들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몰라서 왔느냐 아니면 나의 비법을 배우러 왔느냐고 물었어요. 97%가 제 비법을 배우러 왔다고 하더군요. 저는 세 가지를 강조해요. 첫째 짜지 않게 만들어라. 둘째 잘 보관해라. 셋째 너무 시게 먹지 마라. 이 세 가지가 김치의 키포인트예요. 그 다음은 원재료를 잘 골라야죠. 배추, 소금, 젓갈이 중요해요. 만드는 단계에서는 절임에 신경을 쓰라고 말합니다.”
사실 비법이라야 특별한 것도 없는데 막상 해보면 만만치 않은 게 김치 담그기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평생 김치를 먹었지만 집집마다 맛의 기준이 다르고 할머니,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워 정확한 레시피가 없다 보니 기억 속의 맛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타고난 손맛’이라는 김 대표도 김치 사업 초기에는 이 맛 때문에 고전을 했다.
“김치 판매량이 늘수록 그만큼 반품에 교환도 늘어나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울며 그만둘까 하다가 내가 김치 먹고 여태껏 살아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유를 분석했죠. 지역마다 선호하는 맛이 다른 거예요. 강한 맛을 찾는 사람, 순한 맛을 찾는 사람 이들을 다 만족시킬 방법을 모색했죠. 석 달 동안 매일 빈속에 김치만 먹어 위경련이 일어날 정도였어요. 드디어 딱 중간 맛을 찾아내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아주머니들을 쭉 세워놓고 시식을 해서 전부 ‘맛있다’는 말이 나오게 한 것이 오늘의 한성김치예요.”
이것이 김 대표가 시도한 한성김치의 ‘표준화’다. 시식해본 한성김치들은 대체로 ‘심심’ 아니 ‘삼삼’한 편이다. 심심하면 그냥 싱거운 거고, 삼삼하면 싱거운 듯한데 맛있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우리 회사 김치가 ‘최고’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집집마다 손맛이 다르듯이 상품김치도 제조회사마다 맛이 다르므로 여러 가지 김치를 사서 먹어보고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라고 권한다. 끝으로 그는 손님이 왔을 때 주부들이 습관적으로 “반찬이 김치밖에 없어서 죄송하다”라고 하는데 앞으로 이런 말을 하지 말자고 강조했다. “주부 자신이 김치를 존중하지 않으니까 ‘김치 꽁다리 하나 주고 밥 먹으라고 한다’는 투정이 나오죠. 우리 스스로 김치를 존중하고 가치를 올려야 세계에서도 김치가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배추를 가득 실은 트럭이 짐을 부리느라 한창이다. 한성식품이 자리한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일대가 알싸한 김치 냄새로 가득하다. 초겨울 김장철이면 온 동네를 감싸던 추억의 냄새에 어느새 입안에 침이 가득 고여 누가 밥 한 그릇 내오면 뚝딱 비울 것같이 식욕이 돈다.

여성동아 2011년 12월 5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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