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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복귀 이정민 아나운서 워킹맘 애환 고백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1.11.16 17:34:00

냉철하고 차분한 이미지는 그대로지만,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푸근함 때문인지 한결 여유 있어 보였다. 얼마 전 워킹맘의 현명한 직장 생활 노하우를 담은 책 ‘핑크파워’를 번역한 이정민 아나운서는 일과 가정,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체득해나가는 중이다.
출산 후 복귀 이정민 아나운서 워킹맘 애환 고백


지난 4월 출산을 위해 MBC ‘뉴스데스크’에서 하차한 이정민 아나운서(34)가 7월 출산 후 3개월 만에 복직했다. 산후 후유증은 조금도 없는 듯, 날씬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컴백한 그는 얼굴에서 활기가 넘쳤다. 단기간에 살을 뺀 비법을 묻자 “복싱”이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1주일에 두세 번, 하루 50분 동안 복싱을 한 덕분에 금세 예전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임신해서 18kg 정도 살이 붙었는데, 1kg 정도 남겨놓고 거의 다 빠졌어요. 산육기라고 하는 출산 후 6주가 지나면서부터 가볍게 운동을 시작했고 출근하기 한 달 반 전부터 복싱을 했어요. 모유 수유 하느라 음식도 저염식으로 가려 먹다 보니 효과가 금세 나타나더라고요. 하지만 저야 직업상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고 독하게 살을 뺐는데, 너무 힘들어서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웃음).”
이정민 아나운서는 복직과 동시에 코이카 협력부로 배정받았다.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KOICA)와 함께 MBC 해외봉사단 활동을 주관하는 부서인 만큼 앞으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을 좋은 일에 동참시키는 데 가교 노릇을 할 예정이다. 몸이 다 회복된 뒤에는 봉사단과 함께 오지를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구호 활동에 동참할 생각이라고 한다. 비록 ‘뉴스데스크’ 앵커 때만큼 자주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사회적 책임을 인식해야 하는 아나운서로서 새로 맡게 된 일에 깊은 애정을 느낀다고. 더욱이 출산 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그는 “우리가 흔히 표어처럼 사용하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뭔가 구체적인 일을 하게 됐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내 아이 얻자 남의 아이도 눈에 들어와
“아이를 낳고 많은 생각의 변화가 생겼어요. 아이를 보면서 가슴 벅찰 정도의 행복이 들 때면 ‘신이 인간에게 준 사랑이란 감정이 바로 이건 것이구나’ 싶죠. 남편과 결혼할 때도 정말 좋아서 했지만, 막상 아이를 낳아보니까 남녀 간의 사랑과는 비교가 안 되는, 진짜 사랑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웃음). 그러면서 내 아이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새삼 인식하게 됐고, 더욱이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돕는 일에 동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더라고요. 그러던 찰나에 회사 측에서 코이카 협력부를 제안했고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웃음).”
출산을 통해 그는 워킹맘의 현실과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인식하게 됐다. 더욱이 임신 중 워킹맘의 비즈니스 성공전략을 담은 책 ‘핑크파워’(따뜻한 손)를 번역해 펴내면서 직장에서의 성공과 가정에서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핑크파워’는 미국의 성공한 두 여성 언론인 클레어 십먼과 케이티 케이가 공동 저술한 책으로 워킹맘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
“이 책의 번역을 맡은 건 2009년 가을, ‘뉴스데스크’ 앵커가 된 지 5개월쯤 지났을 때예요. 저자들과 같은 직업을 가진 제가 번역을 하면 좋겠다는 출판사의 요청이 있었고, 책을 읽어보니 워낙 내용이 좋아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죠. 하지만 막상 번역 작업에 들어가니까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어요. 번역 일이 처음인 데다 머릿속의 말을 글로 옮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결국 만삭까지 책을 붙들고 있다가 아이 낳기 며칠 전에 다 마쳤어요(웃음).”
무리한 탓인지 임신 6개월 무렵에는 3주간 병원 신세를 졌고 그러느라 ‘뉴스데스크’에서도 일찍 하차했다. 당시 그는 앵커라는 자리에 대한 아쉬움보다 많은 여성들에게 만삭까지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이정민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갖는 파급 효과가 적지 않은데, 끝까지 좋은 모습으로 저처럼 일하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데스크’에서 물러난 뒤에도 출산 직전까지 회사를 다니며 워킹맘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아이를 키워보니 이제야 그동안 뉴스를 진행하면서 출산·육아와 관련된 내용들을 얼마나 겉핥기식으로 다뤘는지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더불어 보육 정책에 대한 문제의식도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물론 과거에 비해 정부나 기업의 지원도 늘고 사회 전반적인 인식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고운맘카드나 출산장려금 제도를 봐도 경제적 약자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지 의문이에요. 저는 용산구 주민이라 아이 낳고 출산장려금으로 10만원을 받긴 했는데, 정작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미미한 수준이잖아요.”
이정민 아나운서는 출산과 육아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가정과 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할 책임과 의무라고 강조했다. 가정 안에서도 육아를 받아들이는 남성의 사고가 변해야만 행복이 유지된다는 것. 한편 그의 남편은 육아에 매우 적극적이고 아내를 도와주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이들 부부도 숱한 부부싸움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평소 남편은 생각이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육아 문제에 직면하니까 생각 차가 크더라고요. 다행인 건 남편이 오랜 대화 끝에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했고, 그 후로는 육아를 부부 공동의 책임으로 여긴다는 거예요. 평일에는 아이 봐주시는 분이 집으로 와주시지만, 주말에는 저희 부부가 아이를 보는데 제가 한 시간 아이를 보면 그다음에 남편이 한 시간 보는 식으로 교대하고 집안일도 공평하게 나눠서 해요(웃음).”

깍쟁이일 거란 편견 뒤집는 ‘내조의 여왕’
그보다 여섯 살 연상인 남편은 일리노이대 공대 출신으로 현재 IT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한 모임에서 알게 돼 5년간은 특별한 감정 없이 지내다 뒤늦은 남편의 고백으로 결혼에 이르렀다. 이정민 아나운서는 남편을 “눈빛만 봐도 위안이 되는 남자”라고 설명했다.
“알고 지낸 지 6년 정도 됐을 때 남편이 ‘그만 방황하고 내게 와라’ 하는 말로 정식 교제를 제안했어요. 그동안 저를 지켜보면서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친구도 안 되겠다 싶어서 지금까지 기다린 거라고 하더라고요(웃음). 1년 정도 만나면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남편의 새로운 면을 많이 알게 됐고, 나중에는 정말 이 사람 아니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을 결심했어요. 조금 쑥스러운 말이지만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하고 싶어요(웃음). 물론 남들처럼 싸우기도 하고 실망할 때도 있지만, 남편 근본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용서 못할 잘못은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둘 사이의 생각이 다를 때는 치열하게 토론해요. 그러다 보면 항상 절충점이 나오더라고요. 육아 문제 때문에도 많은 토론을 벌였는데, 결혼해서 2년 반 동안 했던 것보다 아이 낳고 지난 3개월 동안 한 토론이 훨씬 많아요(웃음).”
아이가 태어난 뒤 남편과의 언쟁이 잦아진 이유는 평소 ‘내조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살뜰하게 남편을 챙기던 그가 출산 후 돌변했기 때문이다. 갓난아기를 돌보느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알지만 남편은 아내가 아이에게 99%의 에너지를 쏟자 서운함을 표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가 내조의 여왕이란 사실이 믿기 힘들었는데, 이정민 아나운서는 “깍쟁이같이 저만 챙길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결혼을 한 이상 남편이든 아내든 서로 잘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챙겨주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했고, 남편 입고 나갈 옷은 물론이고, 거실 탁자 위에 신문까지 세팅해두고 그랬어요. 요리 실력이 출중한 건 아니지만 뭐든 ‘뚝딱’ 만들어내는 스타일이라 손님 치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죠. 신혼 때는 방송국 식구들을 한꺼번에 50명이나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는데, 그날 음식도 남편과 제가 다 만들었어요. 그랬던 제가, 아이가 태어나자 모든 에너지를 아이에게만 쏟으니 남편으로선 황당했겠죠. 결국 또 오랜 대화 끝에 ‘나에게 0순위는 언제나 당신이지만 갓 태어난 생명은 제대로 거둬야 하지 않겠나. 그러기에 내 에너지는 이만큼밖에 안 된다’고 설명을 했고, 남편도 충분히 이해하니 함께 육아를 책임지겠노라 약속하게 된 거죠(웃음).”
이제 갓 백일을 넘긴 아들은 아빠와 판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자신을 똑 닮은 아이 때문에 요즘 들어 부쩍 회사 가기 싫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아이 역시 엄마 품에서는 울음을 그치지 않다가도 아빠에게 안기면 언제 그래나는 듯 뚝 그친다고 한다. 이정민 아나운서는 “벌써부터 효자인 것 같다”며 웃었다. 아들 자랑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임신 중 태담을 자주 건네서인지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옹알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들바보인 엄마의 거짓말이 아니냐”고 농담을 하자 “기분 좋을 때는 5분 넘게 옹알이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겠지만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비롭다”며 환하게 웃었다.
직장에 복귀한 요즘 가장 안타까운 건 아이에게 직접 젖을 물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유 수유를 포기한 건 아니다. 젖이 도는 한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고 싶다는 그는 회사에서 유축을 한 뒤 아이스박스에 담아 집으로 나르고 있다. 다행히 회사에 유축실이 마련돼 있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유축의 불편함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의지다.



출산 후 복귀 이정민 아나운서 워킹맘 애환 고백


“1년 정도 모유를 먹일 생각이에요. 젖이 부족하면 모를까 얼마든지 먹일 수 있는데 일 때문에 억지로 끊기는 싫더라고요. 한번은 미처 유축실 예약을 못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유축을 했어요. 그때 복직하고 처음 눈물을 흘렸어요.”
그는 ‘핑크파워’에 나오는 것처럼 복직하면 회사에 유연 근무제를 제안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서가 생긴 지 얼마 안 돼 이제 모양새를 갖춰가는 단계이다 보니 개인의 욕심만 앞세울 형편이 아니어서 일단 보류. 하지만 그는 언제든 회사와 자신이 준비가 됐을 때, 여러 면에서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는 개인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상황을 겪게 될 후배들을 위한 마음이기도 하다.
“책에도 나오듯이 워킹맘들이 주체적으로 회사 생활을 해나가려면 먼저 일에서 프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사가 끝까지 나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일을 조절할 수 있거든요. 또한 여우처럼 일할 필요가 있어요. 여우는 태연스럽지만 약삭빠른 데다 다양한 작전을 구사하는 ‘스마트 워크’의 표본이에요. 물론 저 역시 그렇게 되기까지 바꿔야 할 태도가 많이 있고, 단기간에 실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유연 근무 등의 효율적 업무 방식이 수용될지는 미지수인데, 이정민 아나운서 역시 그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변화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만큼 빠른 글로벌 시대라는 점에 희망을 건다. 선진국이 주도하는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면, 머지않아 우리나라에도 ‘핑크파워’가 제시하는 변화들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그는 “미래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서는 워킹맘은 물론이고, 국가와 기업 차원에서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나이 들수록 신뢰감 주는 앵커 되고파
그 역시 직장 생활 10년 동안 많은 갈등의 순간들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2002년 MBC 방송 기자로 입사한 그는 2년 뒤 아나운서로 전향, ‘스포츠 뉴스’ ‘출발 비디오 여행’ ‘TV 특종, 놀라운 세상’ ‘스포츠 매거진’ 등을 통해 친근한 이미지를 쌓아갔다. 그러다 아침 종합 뉴스 ‘뉴스 투데이’와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며 6년 가까이 앵커 자리를 지켰다.
“아나운서가 되고 2~3년 동안이 가장 힘들었어요. 제게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아나운서로서의 당위성을 찾기 힘들었거든요. ‘그동안 제가 꿈꾸던 사회 정의, 선, 이런 것들을 지금의 제 직업과 결부시켜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아침 뉴스 앵커를 하게 됐는데, 처음 사회생활을 기자로 시작해서인지 기존에 교양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보다 편하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뉴스를 통해 창을 열어드리는 게 저의 소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겪은 실수담을 묻는 질문에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손거울 사건’을 꼽았다. 2년 전 ‘뉴스 투데이’를 진행하다가 ‘인제 민통선 화재’ 관련 뉴스가 나가던 중 갑자기 화면 송출이 끊기는 바람에 카메라가 스튜디오에서 손거울을 보던 이정민 아나운서를 잡았고, 그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으로 나간 것.
“보통 화면상에서 사고가 나면 담당 PD가 ‘앵커 컷’이라고 신호를 주고, 그러면 진행자가 어떻게든 방송을 수습하게 돼 있는데, 당시에는 그런 사인을 받지 못했어요. 거울을 보다가 뭔가 이상해 온에어 화면을 봤더니 제 모습이 나가고 있더라고요(웃음). 지금 같으면 ‘어느새 화면이 바뀌었네요. 다음 소식입니다’ 하고 좀 더 능수능란하게 넘어갔을 텐데, 그때는 얼마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는지, 마치 이 상황을 저만 모르는 것처럼 연기를 했더라고요(웃음).”
당분간 그는 개인적인 시간은 포기하고, 직장맘으로서 일과 가정에만 충실할 생각이다. “가끔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훌쩍 여행을 떠나 마음을 정돈하고 오면 되지 않겠냐”며 씩씩한 모습을 보인다. 아직 앵커 복귀는 미정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숙성된 멘트와 행동으로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안겨주는 방송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졌을 때 누구나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멘트를 하고 싶어요. 앵커야 말로 그런 연륜이 쌓인 사람에게 적합한 자리라고 생각해요.”

헤어·메이크업 | 한정아(까라디), 이윤아(3story)

여성동아 2011년 11월 5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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