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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뭉친 서갑숙 노의정·의현 모녀 핑크빛 인생을 꿈꾼다

“장학금 받으며 대학 다닌 큰딸·사려 깊은 둘째…, 셋이 함께 영화 작업하는 게 꿈이에요”

글 | 강은아 자유기고가 사진 | 지호영 기자

입력 2011.11.16 11:46:00

배우 서갑숙이 큰딸 노의정과 함께 영화를 찍어 화제다.
2000년 ‘봉자’ 이후 11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은 전수일 감독의 신작 ‘핑크’.
서갑숙은 주인공으로, 큰딸은 연출부 소품 담당으로 참여했다.
둘째 딸 의현도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있어서 “함께 영화를 하는 것”이
꿈이라는 세 모녀를 만났다.
영화로 뭉친 서갑숙 노의정·의현 모녀 핑크빛 인생을 꿈꾼다


“바닷가 근처 선술집 여주인의 고단한 삶 속에서 힘들게 버티어오며 늘어진 뱃살, 푸석푸석한 피부, 담배와 술에 메마르고 탁해진 목소리,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눈 그늘을 만들어내려고 한 달 내내 밤마다 맥주를 마시고 잤어요.”
배우 서갑숙(50)은 영화와 배역에 대한 애정 어린 한마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바닷가 선술집 핑크의 주인 옥련 역을 맡아 사실적이고 진지한 내면 연기를 바탕으로 전라 노출 및 파격적인 베드신 등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핑크’는 아버지의 성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에 파괴된 삶을 살던 여자가 도망치듯 집을 나와 선술집에 머물면서 자기 방식대로 버텨내고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 ‘검은 땅의 소녀와’ 등으로 베니스 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17개 영화제에서 수상 기록을 세워 연출력을 인정받은 전수일 감독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오랜만의 영화 출연인데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전수일 감독의 작가주의 예술 영화를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배우는 어떤 장르의 작품이라도 다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 취향으로 말하자면 드라마틱하고 시적이며 영상이 아름다운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핑크’는 상처 받고 소외되고 가난하지만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게다가 사랑하는 딸과 함께했던 작업이어서 더없이 행복했어요.”
‘핑크’ 촬영이 끝나고도 서갑숙은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했다. 10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 부문에 초청돼 개막식 레드 카펫 행사에 참석한 것을 비롯해, 시사회 등 각종 행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 영화 중 흥행했거나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을 초청하는 것이 파노라마 섹션인데 여기에 초대받은 서갑숙은 개막식 때 특이한 드레스와 동안 외모로 주목받기도 했다.

큰딸은 문예창작, 둘째 딸은 영화 전공

영화로 뭉친 서갑숙 노의정·의현 모녀 핑크빛 인생을 꿈꾼다


서갑숙의 영화 촬영 현장에 놀러갔다가 연출부에 특채된 큰딸 노의정(23)은 전북 군산에서 진행된 촬영 기간 동안 엄마와 숙소를 함께 쓰면서 일종의 동료 의식이 생겼다고 말한다.
“영화 촬영 기간 동안 엄마는 연기하느라, 저는 연출부 일로 바빠서 따로 오붓한 시간을 갖지는 못했지만 작품을 함께 한다는 진한 동료 의식이 생겼어요. 영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전에는 무심코 넘겼던 소품이나 미장센을 주의 깊게 보게 됐죠. 예를 들어 술집 배경 장면에서 안주와 술병의 위치가 그다음 장면으로 잘 연결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무척 손이 가고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작업이었어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의정양은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면 영화 작업에 참여하고 싶지만 궁극적으로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요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신춘문예를 겨냥한 습작을 쓰고 있는데 많이 힘들어요. 제 자신이 재미있고 쉽고 편하게 쓴 작품은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뭔가를 의식하면서 쓴 작품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그 작가처럼 쓰고 싶다는 것은 아니에요. 나만의 색깔을 가진 작품을 쓰고 싶어요.”



“엄마도 애인이 있으면 좋겠어요”

영화로 뭉친 서갑숙 노의정·의현 모녀 핑크빛 인생을 꿈꾼다


서갑숙은 두 딸 이야기만 나오면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그는 탤런트 노영국과의 사이에서 의정과 의현(19) 두 딸을 낳았고, 97년 이혼했다. 의정·의현 자매는 아빠와도 자주 만나고 중요한 일은 상의하기도 한다.
“의정이는 열정이 많아요.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에 다녔어요. 기질적으로 저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예의도 바르고 뭐든지 스스로 알아서 잘해내고…, 얼굴은 아빠 쪽에 가깝죠. 영화 연출을 전공하는 의현이는 외모는 저를 닮았지만 성격은 대단히 꼼꼼하고 저와는 다른 부분이 많죠. 생각이 깊고 감정을 곧바로 드러내기보다는 가슴에 깊이 담아두는 편이에요. 요리도 잘하고요(웃음).”
서갑숙 모녀는 때로는 애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마냥 다정한 모녀간으로 소문이 났다. 하지만 큰딸도 딱 한 번 엄마에게 반항한 적이 있다고.
“중·고교 시절, 특히 예민하다는 사춘기에도 엄마에게 불만을 갖거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딱 한 번 엄마께 ‘드릴 말씀이 있다’면서 제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었죠.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하며 집안 살림 돌보고,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가며 챙겨드리기도 하고, 제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그러다가 졸업 직전 학기에 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가 ‘너는 바쁘게 생활해야 에너지가 제대로 발현되는 스타일이다. 더 다양한 활동을 하라’고 하셔서 좀 서운했어요. 그동안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는데…, 다른 엄마들처럼 딸의 응석을 받아주고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면 좋을 텐데. 엄마는 그냥 ‘너는 강하다, 너는 할 수 있다, 그동안 잘해왔잖아’라고 하셨죠. 그때 ‘잠시 쉬었다가 세워놓은 계획대로 해나가겠다’라고 말씀드리고 말았어요. 저에 대한 엄마의 기대가 너무 크다고 느껴질 때 가끔 부담이 되기도 해요.”
고교 시절부터 영화를 공부해 청소년 영화제 수상 경력이 있는 둘째 딸 의현도 서갑숙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영화 촬영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시사회 등 영화 홍보를 위한 후속 작업 때 엄마의 매니저 노릇을 자청했다. 어느덧 두 딸이 그의 동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두 딸이 서갑숙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의정·의현은 약속이나 한 듯 “엄마가 연애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남자를 만나보라고 하면 ‘우리 딸들이 애인이다. 다른 사람은 필요 없다’고 하세요. 하지만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를 따뜻하게 챙겨줄 분이 있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늘 혼자서 결정하고 혼자서 헤쳐 나왔죠. 이제는 누군가 엄마 옆에서 의논도 해주고, 엄마가 재미있게 살면 좋겠어요.”(의현)
언제부터인가 서갑숙이란 이름 석 자는 연기자이기 전에 선정적인 화제를 몰고 다니는 사람의 대명사처럼 인식됐다. 1999년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라는 자전적 소설을 펴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검찰 내사를 받는 등 고달픈 삶이 계속됐다. 그는 ‘달을 가리키는 데 왜 손끝만 보는가’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시간이 10여 년이 흘렀다. 당시 출연 중이던 드라마에서 하차해야 했고, 그 뒤로도 실무자와는 드라마 출연이 약속됐다가도 결국은 ‘불가’로 번복되는 일이 반복됐다. 인터넷에는 악의적인 글들이 올라왔고 영문도 모르는 어린 두 딸과 가족, 지인들까지 그로 인해 많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자신이 했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충분히 앓았기에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믿는다.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 이후 고달팠던 삶, 그래도 배우라서 행복해

영화로 뭉친 서갑숙 노의정·의현 모녀 핑크빛 인생을 꿈꾼다


서갑숙은 얼마 전 한동안 운영했던 식당도 정리했다. ‘천생 배우다’라는 각오로 다시 연기에 몰입할 생각이다. 또 이번 가을 학기부터 청주대에서 ‘매체연기론’을 강의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내는 배우가 제 천직인 것 같아요. 지난 50년을 배우로 살아왔고 앞으로 50년은 더 살 텐데, 나머지 세월은 배우로서 받은 혜택을 후배들에게 돌려주면서 살고 싶어요. 대학교에서 강의도 더 많이 할 것 같고요. 곧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배우 양성 전문학교를 세울 생각이에요. 일반인들에게는 예술을 통한 치유의 장이 될 수 있는 ‘한국문화예술아카데미’(가칭) 같은 전문 교육기관 설립도 준비하고 있어요.”
숱한 화제와 비판을 몰고 다닌 굴곡 많은 세월 속에서 서갑숙은 엄마로서 배우로서 한 여성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을 찾은 것 같다. ‘핑크’에서 서갑숙이 연기한 옥련의 인상 깊은 대사 한마디가 이제 서갑숙 자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젠 내 인생이 핑크빛이기를….”

여성동아 2011년 11월 5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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