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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성형 대가’ 심미안의원 정동학 원장 성공 스토리

글 | 조현경 사진 | 홍중식 기자

입력 2011.11.04 13:49:00

철강회사 노동자를 거쳐 의사가 된 사람이 있다.
그는 ‘성형’이 들어간 모든 진료는 성형외과에서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20년째 코 성형만
해오고 있다. 심미안의원 코성형클리닉 정동학 원장의
남다른 인생 항로와 성공 비결.
‘코 성형 대가’ 심미안의원 정동학 원장 성공 스토리


정동학 심미안의원 코성형클리닉 원장(55)은 어린 시절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 미술대회에 나가면 대상은 항상 그의 차지였다. 뛰어난 미술 실력 덕분에 특기생으로 성동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7대 1의 경쟁을 뚫고 포항제철에 입사했다. 정 원장은 “당시 성동공고 금속과 졸업생으로는 가장 좋은 회사에 들어간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높은 경쟁률을 뚫고 누구나 선망하는 회사에 취직했다는 자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된 일도 일이지만 무엇보다 참기 힘든 건 차별. 대학을 나온 기간직과 그렇지 않은 기능직 사이의 간격은 너무 컸다.
입사 5년차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했기 때문에 하루에 2~3시간만 자야 했다. 지치고 힘들수록 더 악착같이 공부했고, 그 결과 1984년 28세에 연세대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그러나 대학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동급생들에 비해 공부를 8년이나 늦게 시작했음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그 덕분에 5등으로 의대를 졸업했다. 문제는 레지던트(전공의) 때 발생했다. 흔히 말하는 인기 과목을 선택할 수 없었다. 나이가 걸림돌이 된 것. 생명을 다루는 일, 중노동에 버금가는 과중한 업무가 계속되는 의대에서 ‘엄격한 위계질서’는 필요악이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는 레지던트 과정에서 이비인후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펠로(전임의) 과정을 앞두고 또다시 나이가 그를 괴롭혔다.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축농증같이 환자가 몰리는 진료 과정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코 성형과 후두협착증, 두 가지뿐이었다.
당시만 해도 코 성형은 국내에서 생소한 분야였다. ‘성형’이 들어간 모든 진료는 성형외과에서 전담하는 것이 상식처럼 돼 있었다. 그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비인후과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코 성형 분야를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인기 있는 분야에 가서 자신의 노력도 인정받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비록 인기 없는 분야일지라도 그곳에서 최고가 되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후 최고가 되고자 노력한 결과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동학 원장은 전공의 4년차 만에 코 성형을 30회 이상 실시했다. 이는 집도의에게 수술 권한이 전적으로 위임된 국내 의료계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펠로우 때 매년 8편씩 코 성형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수 없이 많은 특강을 했다. 한마디로 성격대로 코 성형에 ‘미치기’ 시작했다.
“펠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턴(수련의)이나 레지던트와 똑같이 생활했습니다. 자정 이전에 집에 돌아간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죠.”

절망에 빠진 환자들의 마지막 보루
정동학 원장이 심미안의원 코성형클리닉을 개원한 것은 2002년의 일이다. 당시 그는 인하대 의과대학 부교수로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인 미래가 있었지만 6년간의 대학병원 생활을 끝냈다.
“저는 코 성형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릴 수 있는 기쁨, 이를테면 경제적인 안정과 보통 의사들이 누리는 생활의 즐거움을 포기했습니다.”
심미안의원은 환자들에게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다. 환자 대부분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코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로 이곳을 찾는다. 필러 부작용으로 코가 무너진 환자, 코 수술만 10번 받은 환자, 개에 물려 코가 없어진 환자까지.
“재건술이라 해도 코를 다시 만드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미적으로도 문제 없는 수술을 해야죠. 수술 후 회복된 환자들로부터 ‘기적을 믿게 됐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 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수술을 감행하진 않는다. 그는 “10이라는 완벽한 성형수술 대신 손해를 보더라도 부작용 없는 9를 선택한다”며 “무엇보다 안전하고 문제 없는 수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코 성형 대가’ 심미안의원 정동학 원장 성공 스토리

정동학 원장은 코 재건 수술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그를 찾아오는 환자가 많다고 한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외국 환자들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내원 환자 중 40%가 외국인. 일본, 중국 등 아시아뿐 아니라 북미, 유럽에서도 이곳을 찾는다. 환자 중에는 태국 공주, 일본의 유명 그룹 리드싱어, 중국의 유명 연예인 등도 있다. 이에 정 원장은 자신이 가진 노하우와 기술을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저 혼자 열 걸음 앞서가는 것보다 열 사람이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게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그래야 더 많은 환자들에게 의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는 올해로 15년째 ‘코 성형 워크숍’을 열고 있다. 서울대, 연세대, 부산대 등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는 수술 시연도 했다. 2004년 1월에는 대만 의대 교수 10명이 코 성형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해 노하우를 배우고 갔다. 이 프로그램에는 대만뿐 아니라 중국, 필리핀, 일본 의사들도 참여했고, 지난 1년 동안에는 5백 명 이상의 중국인 의사들이 연수를 받았다.
왜 아시아권 국가들이 유럽이나 미국의 선진국이 아닌 우리나라 일반 의원에서 실시하는 연수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는 걸까. 이에 대해 정 원장은 “서양인과 동양인의 코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서양인들은 주로 높고 큰 코를 작게 만드는 수술을 합니다. 하지만 동양인들은 콧대를 높이거나 들창코를 길게 하는, 즉 코를 크게 하는 수술을 주로 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수술법이 다르다고 할 수 있죠.”
그 밖에도 정 원장은 코 성형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코끝 회전피판(코의 특정 부분을 자른 뒤 돌려 붙이는 방법)’이라는 새 수술법을 개발했다. 또한 고어텍스나 연골 등 부드러운 재료를 쉽게 삽입할 수 있는 수술기구를 개발해 특허를 취득했다.
다른 사람보다 늦게 자신의 길을 찾은 정동학 원장은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비결로 ‘열정과 집중’을 꼽았다.
“항상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단 1%라도 있다면, 그걸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 아낌없이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코 성형 분야 최고’라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집중했습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에 무섭도록 집중하고 투자할 때 인생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정동학 원장이 전하는 메시지다.

여성동아 2011년 11월 5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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