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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이재현의 스포츠와 건강

귀한 딸일수록 운동시켜라

운동 능력 뛰어날수록 지능지수도 높아

글 | 이재현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REX 제공

2011. 11. 04

앉아서 인형놀이와 소꿉놀이만 하는 아이. 딸이니까 다 그런 걸까? 온종일 책만 읽고 뛰어놀 줄 모르는 아이. 영재여서 그럴까? 외국어 학습만큼이나 운동에도 ‘결정적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친 뒤 성인이 되어 배우려면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왜 운동은 아무 때나 대충 해도 된다고 생각할까?

귀한 딸일수록 운동시켜라


캐나다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슬린은 오후 5시30분 직장 업무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가방을 챙겨 달려 나간다. 중간에 잠깐 친구 집에 들러 야구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던 친구를 차에 태우고는 15~20분 떨어진 공원 내 야구장으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서는 20~30대 여성들이 캐치볼 연습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캐치볼을 하며 공을 주고받는 그녀들의 폼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글러브에 기분 좋게 공이 꽂히며 내는 소리로 보건대 그저 그런 속도로 던지는 공이 아니라 파워가 충분히 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역에서 취미 삼아 여자들끼리 야구를 하는 동호회임에도 그들의 실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잠시 후 마운드에 들어선 투수의 어깨를 보고 또 한 번 감탄을 했고, 펜스에 붙어서 경기를 관람하며 여자 친구 혹은 아내를 응원하는 남자들의 모습이 신선했다. 사실 이런 기술들은 성인이 된 후 단시일에 연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아버지들이 코치, 감독, 심판을 하며 어려서부터 딸들에게 축구, 야구, 농구를 가르친 결과다.
캐나다에서 박사후 과정을 하던 7년여 전 즐거웠던 여자들의 야구 경기 장면을 떠올리는 동안, 대학 시절 필수교양 체육이었던 소프트볼 시간, 천천히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공을 겁내다가 결국 얼굴로 공을 받아 입을 감싸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친구가 문득 생각났다.

운동과 외국어 학습의 공통점
사실 우리 여건에서 어렸을 때 다양한 운동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여학생들은 더더욱 그렇다. 대체로 여학생들이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고 하지만, 좋아한다 해도 같이 모여서 운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다. 더욱이 이를 지원해줘야 할 부모들은 아들과 달리 딸들이 운동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을 내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외국어 학습을 더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영어 교육 광풍은 혀를 내두를 만한데, 조기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가 자주 언급된다. 새끼 오리들이 부화하고 처음 보는 하얀색 물체를 어미로 알고 따라간다는 로렌츠의 실험이나, 어린 고양이의 왼쪽 눈을 가리고 몇 주 후에 풀어주니 오른쪽으로만 자극을 받아들이고 왼쪽 눈의 기능을 상실하며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 상태였다는 실험 등에서 성장기 특정 시기에 주어지는 자극이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즉, 결정적 시기 안에 시냅스 연결이 모두 굳어버리고 그 뒤로 고정된 행동 패턴을 바꾸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귀한 딸일수록 운동시켜라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스캐몬 곡선(Scammon’s curve)에서 보듯이 신경계의 발달은 6세가 되면 성인의 90%에 이르고 12세가 되면 이미 성인 수준에 이르게 되는데 이 시기를 지나기 전 언어를 학습해야 효과가 빠르고 뇌에 각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적 시기의 학습 효과는 비단 언어 교육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운동 학습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듯이 어렸을 때 수영, 테니스, 스키, 스케이트 등을 경험하고 배웠던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그 운동을 하지 않고 어른이 돼도 몇 번의 연습만으로 쉽게 배웠던 기술들을 구사할 수 있는 반면, 성인이 되어 시작하는 운동에는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발달은 단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전 단계의 발달 없이 그 이후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다. 특정 단계에서 앉고, 기고, 걸어야 그 다음 단계에서 달리고 점프하고 구를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성숙 단계로 나아가려면 특정 시기에 해당하는 적절한 자극이 그때 그때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경험이나 자극이 차단됐을 경우에는 보다 분화되고 고급화된 단계로의 발달이 좌절된다.



운동 잘하면 공부도 잘한다!
운동은 신체적 능력만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운동하면 머리도 좋아진다는 내용의 연구가 최근 몇 년간 쏟아져 나왔다. 일리노이 주의 초등학교 3, 5학년생 2백59명을 대상으로 기초체력을 검사하고 일리노이 주 표준시험에서 보여준 수학·읽기 능력과 비교했더니 운동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지능 수준도 높았다는 결과 보고가 그 한 예다.
노인들의 치매 예방을 위해 운동 프로그램이 권장되는 것도 운동이 뇌혈관을 건강하게 하고 결국 뇌로의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하며 신경 성장 유발 물질 수치 또한 증가시킨다는 결과를 반영한 예다. 우리 몸의 CPU라고 할 수 있는 신경계의 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퇴화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은 전 생애주기를 통해서 중요한 건강 이슈다. 퇴화를 예방하는 일은 퇴화가 오는 시기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발달 시기에 최대한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성장기 결정적 시기에 밖으로 끌어내지 못한 신경계의 발달은 이 시기가 지나서 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자.

러닝머신 위에서 살 빼는 아이, 바람직할까?

귀한 딸일수록 운동시켜라


성장기 운동은 다양한 놀이나 스포츠를 통해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간혹 체중 감량을 위해 러닝머신 위에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걷고 있는 아동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도 잠시, 얼마 못 가 아이들은 벨트 옆으로 나가 서서 벨트 혼자 돌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너무 지겹다 못해 벌 받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기도 한다.
성장기에는 운동이 재미있다라고 느끼고 스스로 찾아 즐길 수 있도록 흥미도를 높이는 것이 운동의 중요한 목표가 되기도 한다. 이 시기의 경험으로 평생 운동에 대한 선호도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에 대한 선호도가 낮은 여학생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얘기다.
또한 성장기에는 성인기에 주로 권장되는 근력, 심폐지구력, 유연성 등을 강화시키는 운동에 주력하기보다 균형 감각, 민첩성, 협응성 등 운동 기술과 관련된 체력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을 가지고 하는 야구, 농구, 테니스나 스케이트, 스키 등이 이에 해당하며 여러 가지 놀이 방식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운동들은 신경의 발달을 최대한 자극하는데 예측할 수 없는 공의 움직임이나 순간순간 변화하는 환경의 조건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신경이 활발하게 작용하면서 집중력이 길러지고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의 협응이 극대화될 수 있다.
여학생들은 구기나 도전적인 스포츠를 잘 못한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이런 경험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의 규칙을 바꾸거나 맞춤식 교육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즐겁게 운동을 경험할 수 있다. 또 인지 기능의 발달과 인성 교육을 위해 팀 스포츠, 단체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전략적 사고를 기르고 타인과 협동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소극적인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변화되고 새롭게 리더십을 발견하는 사례도 종종 보게 된다. 현대의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하다.
일반인에게서 나타나는 운동 능력의 성(性)차가, 엘리트 선수들의 성차보다 크다는 보고가 있다. 일반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운동을 경험하는 데 소극적이고, 여자 운동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그 능력을 개발한다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일상생활에서 운동을 덜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습관을 단지 성호르몬의 차이라고 단정 짓지 말자. 어린 시절로 회귀해 우리의 경험과 우리에게 주어졌던 환경적인 조건들을 살펴보자. 그리고 그 기억을 토대로 우리 딸들은 운동에서 소외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에는 평생 동안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데 운동의 중요성이 너무나 크다.

귀한 딸일수록 운동시켜라


이재현 박사는…
고려대학교 체육학과에서 운동생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다가 캐나다 McMaster University, Medical Center 내 Children’s Exercise and Nutrition Center에서 박사후 연수 뒤, 하늘스포츠의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지금은 대한비만학회 운동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운동 싫어하는 아이에게 권해보세요!

귀한 딸일수록 운동시켜라
Choice 1 균형 감각과 집중력 키워주는 스터빌라이저
스터빌라이저(또는 스터빌리티)는 색상에 따라 다양하게 접촉하며 걷도록 한 일종의 징검다리 놀이도구다. 예를 들면, 파란색은 한 번 딛고, 녹색은 두 번 딛고, 검정색은 한 발로 딛게 한다. 순서를 바꾸면서 난이도를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녹색, 녹색, 검정색, 파란색, 녹색, 파란색, 검정색, 파란색 식으로 배열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균형 감각과 집중력을 동시에 증진시킬 수 있는 운동이다.
Choice 2 누구나 할 수 있는 야구 티볼
티볼(Tee Ball, T-ball)은 야구를 변형시킨 스포츠로 공을 티(tee) 위에 올려서 치고, 1, 2,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는 게임이다. 아동들이나 여성들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Choice 3 라켓 운동의 전 단계에 하는 라켓룬과 패들룬
라켓룬은 가볍고 손 조작이 쉬운 라켓과 일반 공 대신 솜털공을 사용함으로써 다양한 라켓 게임이나 야구 게임을 하기 전에 라켓을 습득하는 교구로 사용한다. 패들룬은 라켓 형태의 도구로 풍선을 튀기며 게임을 한다. 어린아이들도 다양한 형태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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