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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열풍 속 흔들리는 중국의 독서 문화

글&사진 | 이수진(중국 통신원)

입력 2011.11.01 16:42:00

판타지 열풍 속 흔들리는 중국의 독서 문화

한 학생이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다. 중국은 지금 판타지 소설과 드라마 열풍에 휩싸여 있다.



판타지 열풍 속 흔들리는 중국의 독서 문화


‘우연히 시공을 초월, 당(唐)나라 공주가 되어 남장을 하고 사냥에 나선다.’ ‘청나라 궁궐에 들어가 황자들의 황위 다툼과 핑크빛 삼각관계에 휘말린다.’
요즘 중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중국식 타임 슬립 판타지인 촨위에(穿越)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촨위에 소설 돌풍이 드라마로 이어지면서 광범위한 연령층으로부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올 초 후난TV에서 방영된 드라마 ‘궁쒀신위’는 ‘청나라판 꽃보다 남자’라는 평가와 함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더니 후속편 제작에 들어갔다. 최근에는 촨위에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부부징신’이 한창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 작품은 현대의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과거로 돌아가 낯익은 역사 속 인물들과 함께 좌충우돌하는 스토리로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학부모들에게는 이 같은 촨위에 소설의 인기가 오히려 근심거리다. 요즘 같은 세상에 책을 손에 들어주는 것만도 반가운 일이지만 문제는 판에 박힌 촨위에 소설에 아이들이 중독되는 것. 소설에 빠져 학과 공부를 소홀히 하고 현실을 망각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밥을 잘 안 먹는 아이 때문에 걱정하다가 잘 먹는 메뉴를 찾아서 한시름을 놓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불량식품이나 패스트푸드인 셈이다. 영양은 적고 중독성은 강하다 보니 안 먹느니만 못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중학생 딸을 둔 한 중국 친구의 말이다. 게다가 소설 속 이야기에 지나치게 빠져들어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사례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시공 초월의 지점, 형태, 방식, 신분, 초월 시 꼭 알아야 할 옛 시구 등 시공을 초월하는 방법에 관한 토론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명치에 칼 꽂기,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기, 벼락 맞기, 손목 긋기,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수면제 먹기 등이 소개돼 있는데 사실상 자살 조장에 가깝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판타지 영향으로 시공 초월하는 법에 대한 토론방도 인기

판타지 열풍 속 흔들리는 중국의 독서 문화




이 같은 독서 취향은 아이들의 글쓰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에서도 외계어나 다름없는 인터넷 은어의 남용, 호흡이 짧고 논리적이기보다 감각적으로 내뱉는 글쓰기 등의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공식적인 글쓰기나 시험 문제를 풀 때조차 판타지물을 쓰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최근 한 중학교에서 ‘운명’을 주제로 한 작문 시험을 냈더니 이 학급 40명 중 3명이 판타지물의 내용을 쓴 사례가 신문에 보도됐다. 첫 번째 학생은 명나라 왕이 돼 암살을 피하는 내용을, 두 번째 학생은 삼국시대로 가서 조조, 유비, 손권을 이기고 삼국을 통일하는 내용을, 세 번째 학생은 청나라 아름다운 공주가 된 내용을 썼다. 담당 교사는 역사를 멋대로 각색하는 판타지 소설 때문에 학생들이 역사를 오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사는 또 청소년 시기의 독서가 말초적인 흥미를 자극하는 판타지 로맨스물에 편중되면서 학생들의 작문 실력이 되레 떨어지는 것은 물론 가치관이 왜곡될까 염려스럽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판타지물에 빠지는 현상은 일종의 현실 도피라는 점에서도 염려를 낳고 있다. 말초적인 재미의 촨위에 소설에 쉽게 빠져들고 현실과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것 자체가 재미없고 답답한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책을 읽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중국에서도 아이들이 당장 구미가 당기는 책보다는 오래 곱씹을수록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 환경을 구축하는 데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수진씨는… 문화일보에서 14년 동안 기자로 일하다 지난해부터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로서 인민화보 한글판 월간지 ‘중국’의 한글 책임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중1, 초등5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여성동아 2011년 11월 5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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