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는 정치·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모범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세계인으로부터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는 아무래도 교육이다. 핀란드는 OECD 국가의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연이어 1등을 거머쥐며 ‘교육 강국’으로 떠올랐다. 교육과 관련해서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시작한 것이 또 있는데 이는 얼마 전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무상 급식 제도이다. 핀란드는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라는 멍에를 지고 전쟁 배상금을 갚아나가던 어려운 시절, 무상 급식을 세계 최초로 실시했다.
그런데 최장의 무상 급식 역사를 자랑하던 핀란드에서도 최근 급식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사건의 발단은 헬싱키에 거주하는 2명의 학부모가 페이스북에 급식과 관련된 페이지를 개설하며 시작됐다. 이들은 아이들 급식으로 제공되는 음식의 성분 분석표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화학 첨가물이 너무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학부모들은 ‘급식에서 화학 첨가물을 몰아내자!’는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한다.
핀란드 초등학교 급식 풍경.
캠페인 초기, 헬싱키 시는 “집에서 조리할 때도 어느 정도의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느냐, 학교 급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이들의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이들의 주장이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고 부모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자 시 당국도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화학 첨가물을 완전히 없애달라는 이들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수용하지는 못하지만, 대표적 식품 첨가물인 MSG를 급식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공권력을 상대로 끈질긴 캠페인을 벌인 용감한 2명의 어머니 덕분에 이젠 내 아이들도 화학조미료가 첨가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는 혜택을 누리게 된 것에 필자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화학 첨가물 몰아내기 캠페인 이후 급식에 대한 관심 높아져
친환경 급식 캠페인을 벌여 국민적 스타로 떠오른 학부모들.
최근 몇 년간 핀란드 학교 급식이 식품 첨가물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된 주 원인은 핀란드 중앙·지방 정부의 예산 절감에 있었다. 정부는 지금까지 예산 절약이 필요할 때마다 학교 급식을 첫 번째 희생물로 삼았다. 그런 이유로 지난 2004년과 비교할 때 학생 1인당 1일 급식 예산은 50센트(한화 약 8백원)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급식 공급 업체들은 비싼 천연 재료 대신 화학조미료로 값싸고 쉽게 맛을 내는 변칙적인 방법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지금 핀란드에서는 이런 문제를 제기한 2명의 학부모가 시민운동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급식 문제는 정치가의 공약이나 담론만이 아닌 국민 모두의 초유의 관심사가 됐다. 그런데 부러운 소식 하나가 또 들려왔다. 핀란드 한 학교 근처 쇼핑센터 상인들이 점심시간에 학생들의 쇼핑몰 출입을 통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지 않고 근처 상점에서 군것질하는 일이 늘자 상인들이 자진해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아이들의 건강이라는 공익에 더 큰 가치를 두었기에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격언이 떠올랐다.
이보영씨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교육공학 석사과정을 거쳤다. 1999년부터 핀란드에 거주하고 있으며 핀란드 교육법을 소개한 책 ‘핀란드 부모혁명’ 중 ‘핀란드 가정통신’ 의 필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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