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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Life in NewYork | 푸드칼럼니스트 미령·셰프 로랭 부부 맛을 탐하다

스타 셰프 임정식의 뉴욕 입성기

“뉴 코리안 푸드로 뉴요커 입맛 사로잡겠다”

글 | 이미령 사진 | 로랭 달레, 임정식 제공

입력 2011.11.01 15:55:00

스타 셰프 임정식의 뉴욕 입성기

뉴욕 ‘정식’ 레스토랑 내부.



9월 초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정식당’ 임정식 셰프가 뉴욕에 입성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뉴욕 트라이베카 명물이었던 샹트렐(Chanterelle, 뉴요커들은 찬트렐로 발음) 레스토랑이 30주년 기념일을 한 달 앞두고 간판을 내린 바로 그 자리에 ‘정식(JUNGSIK)’이라는 이름의 한식당이 들어섰다. 구세대는 물러나고 신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Le Roi est mort! Vive le Roi!(왕이 죽었다. 새 왕이여, 만세!)”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한국인 셰프가 뉴요커의 사랑을 받던 샹트렐 자리에 한식당을 연 것은 내겐 그토록 흥분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아직 오픈하지도 않은 레스토랑을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같은 주요 언론이 비중 있게 다룬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임 셰프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이 식당에서 어떤 콘셉트로, 어떤 음식으로 뉴요커들을 사로잡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인터뷰는 9월14일에 진행됐고, 정식 개장 다음날인 9월17일 시식을 했다.

스타 셰프 임정식의 뉴욕 입성기

임정식 셰프. 이 사진은 ‘뉴욕타임스’에도 게재됐다.



최고급 퓨전한식으로 승부
오전 10시30분쯤 뉴욕 허드슨 가와 해리슨 가를 낀 모퉁이에 있는 정식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임정식씨는 짧은 버뮤다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개장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시기에 인터뷰를 요청한 게 미안했지만 ‘정식’이 정식으로 오픈하면 더 시간을 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는 이내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이하며 직사각형 모양의 깨끗하고 아늑한 홀로 안내했다. 양 벽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테이블들을 눈어림으로 헤아려보니 35석. 홀을 가로질러 벽 전체가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이뤄진 뱅큇(Banquet: 연회석) 룸으로 들어갔다. 이곳도 20석가량이 됐다. 은은한 베이지색, 부드러운 백색, 그윽한 브라운 컬러와 우아한 검정색 대리석 재질의 바닥 마감 장식으로 미니멀하게 꾸며진 인테리어에서 쓸데없는 장식이나 요란함을 좋아하지 않는 주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었다. 문득 단정하고 과장된 제스처가 없는 임 셰프의 분위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 왜 뉴욕에 진출했나.
“뉴욕에는 파인 다이닝(고급 레스토랑)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색다른 음식 문화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 음식 문화의 중심지라고 생각한다.”
▼ 유명한 ‘샹트렐’ 자리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4월, 맨땅에 머리 박는다는 각오로 뉴욕에 왔다. 부동산들을 방문했더니 매물들이 엄청 많았다. 2008년부터 시작된 심각한 경기 침체로 경영이 어려워진 파인 다이닝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샹트렐 자리에 ‘정식’을 여는 것은 나의 꿈이자 모험이다. 원래부터 트라이베카 지역을 좋아했고, CIA 졸업 후 트라이베카에 있는 데이비드 불레(David Bouley) 레스토랑에서 수련을 받아 이 지역을 잘 안다. 창고,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는 지하 포함 5천 평방스퀘어(약 1백40평)의 넓은 공간도 내 마음에 꼭 들었다.”
▼ 준비 기간은 얼마나 됐나.
“장소 선정을 마친 후 올 1월에 시작해 9개월 정도 걸렸다. 뉴욕에서 파인 다이닝 을 열려면 적어도 1년 이상의 준비 기간이 걸리는데 다른 셰프들이 놀랄 만큼 빠른 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디테일에 신경 쓸 일이 많다.”
▼ 이미 뉴욕에는 수많은 한식당들이 있는데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한식당은 많지만 파인 다이닝으로 퓨전 한식을 소개하는 식당들은 그리 많지 않아서 늘 아쉬웠다. 한식도 최고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한식 스타 셰프 임정식

임정식(33)은 군대 시절 취사병에 차출된 것을 계기로 요리에 눈을 떴다. 제대 후 미국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아예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입학해 본격적인 요리 수업을 받았고, 졸업 후 뉴욕에서 손꼽히는 프렌치 레스토랑 ‘불레’와 미슐랭 별 세 개짜리 스페인 레스토랑 ‘아케라레’ 등에서 경력을 쌓으며 틈틈이 유럽 전역으로 미식 여행을 다녔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한식 ‘뉴 코리안’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로 2009년 강남구 신사동에 ‘정식당’을 열었다. 푸아그라 무스 위에 인삼 젤리를 올리거나 미역소스와 깍두기를 곁들인 스페인식 볶음밥 파에야 등 퓨전한식 메뉴로 유명하다.




스타 셰프 임정식의 뉴욕 입성기

1 복분자 젤리를 얹은 푸아그라 무스. 2 성게 비빔밥. 3 ‘어머니의 관자’라는 이름이 붙은 요리. 4 바삭하게 구운 돼지고기 위에 상큼한 소스를 얹은 요리.



▼ 식재료는 어떻게 구입하는가?
“유기농 재료를 주로 구입한다. 다만 해산물은 싱싱한 재료를 직접 보고 구입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대량으로 구입하는 데다 전부 포장된 채 박스로 도착한다. 배달 시간을 통제할 수 없는 것도 불편하다. 한국처럼 효율적인 배달 서비스를 뉴욕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육류는 뉴욕 인근 농장에서 자연적으로 사육된 질 좋은 육류를 구입한다.”
▼ ‘정식’이 선보일 메뉴에 대해 소개해달라.
“한식 재료와 향신료를 전통 서양 요리 기법에 접목시켜 뉴요커들의 입맛에 잘 맞는 퓨전음식으로 승부할 생각이다. 예를 들어 멍게비빔밥은 한국 사람들은 좋아하는데 미국 사람들에게서는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한다. 토종 맛을 간직한 자극적인 김치찌개도 마니아 이외의 서양인들에게 그대로 소개하기 어렵다. 이곳 입맛에 맞는 음식을 끊임없이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수 비드(Sous vide: 프랑스어로 진공포장요리를 가리킴) 조리법도 즐겨 사용하는 편이다.”
▼ 수 비드 조리는 보툴리누스 식중독 문제로 뉴욕 시 식품위생 관련기관의 심사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뉴욕 시가 요구하는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
▼ 와인 리스트는 있는가?
“5백50여 종의 와인이 준비돼 있으며 계속 컬렉션을 늘려가고 있다. 많은 경험을 쌓은 김경문 소믈리에(한국 정식당 오프닝 멤버)의 작품이며 한식 퓨전음식에 잘 맞는 와인들로 골고루 선정했다.”
▼ 정식당을 체인화할 계획인가?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등 파인 다이닝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대도시에 진출하고 싶다. 뉴욕은 E 2비자를 이용한 개인투자이나 다른 나라에서 오픈할 정식당은 투자 파트너를 적극 영입할 생각이다.”

“퓨전한식으로 승부해 뉴욕에서 성공할 자신이 있나요?”라는 나의 싱거운 마지막 질문에 그는 “해봐야죠. 해봐야 아는 거 아니겠습니까?”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의 확신에 찬 미소를 보고 안심했다. 머리로 계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심장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해보겠다는 용기가 그에게 성공을 안겨주리라 믿는다. 4년 반 전 로랭도 그랬다. 파리에서 잘나가던 대기업 엔지니어였던 그는, 어느 날 요리를 배우겠다며 짐을 꾸려 뉴욕으로 향했고, 얼떨결에 나도 따라나섰다. 그때 이미 로랭은 마흔 살이 다 됐다. 고급 한식을 세계에 선보이겠다는 목표 하나로 ‘맨땅에 머리 박듯’ 뉴욕으로 온 임 셰프와 로랭의 공통점이라면, 꿈만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노력과 행동을 통해 실현해내는 용기와 결단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그런 모험을 할 수 없다.

김밥을 해체한 요리에 반하다
두 번째 약속한 날에 다시 ‘정식’으로 갔다. 이번에는 하얀 셰프복을 입은 임정식 셰프가 우리를 맞았다. 바로 시식에 들어갔다. 애피타이저는 복분자 젤리를 얹은 푸아그라 무스. 단맛과 고소한 맛이 깔끔한 조화를 이뤘고 바삭바삭한 크루통(튀긴 빵조각)은 약간 지루한 푸아그라의 모노톤 텍스처를 보완해 보기에도 맛으로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푸아그라의 독특한 맛에 거부감이 있다면 이런 무스 형태로 거위 간을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성게비빔밥. 밥, 김, 퀴누아, 김치, 여러 가지 채소를 섞은 것인데 김밥을 해체(Deconstruction)한 듯한 음식이다. 문득 ‘자크 데리다의 해체철학이 이렇게 접시에 담길 수도 있구나’ 싶다. 분명히 김치가 들어 있는데도 김치의 강한 맛이 다른 재료들의 고유 맛을 해치지 않고, 어느 한 가지 맛이 튀지도 않으며, 모든 재료의 맛과 텍스처가 두루두루 조화를 이룬다.

스타 셰프 임정식의 뉴욕 입성기

전반적으로 은은한 컬러에 깔끔한 인테리어를 한 ‘정식’ 내부. ‘정식’의 요리는 눈으로 봐도 즐겁다.



다음은 셰프 로랭이 좋아했던 ‘어머니의 관자(Mom’s Scallop)’라는 제목의 요리. 임 셰프의 어머니가 즐겨 만드시던 조개젓국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했다. 집에서 만든 부드러운 두부, 담백한 핼리벗(큰 넙치), 완벽하게 조리된 관자, 서양 가지 등이 할라페뇨 고추기름과 바질 기름 등이 살짝 가미된 젤리화된 수프에 담겨 나왔다. 젤리화는 잔탄을 사용하여 만들어냈다는 설명을 들었다. 버터 대신 모든 재료를 식용유로 조리한 것도 특징. 로랭은 이 음식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임 셰프는 하나하나 성실하게 대답했다. 임 셰프가 주방으로 돌아간 뒤 로랭은 이 음식에 매운 맛 대신 레몬즙을 사용한 새콤한 맛을 실험해보고 싶다며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다.
마지막은 돼지고기 요리. 한국산 깻잎 퓌레, 블루베리 잼, 무 장아찌, 양파 퓌레 등이 어우러져 새콤달콤 고소한 데다 표면이 바삭바삭하게 구워진 돼지고기를 씹는 맛까지 기분 좋은 요리였다. 채식주의자나 유대교·이슬람교 신자가 아닌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이다.
시식이 진행되는 동안 임 셰프는 직접 음식을 서빙하며 음식에 사용된 재료와 조리법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시식하는 내내 2009년 한국의 정식당에서 맛봤던 음식들보다 뉴욕의 음식들이 상당히 업그레이드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자 임 셰프는 “정식당이 계속 발전해 나가는 것이겠죠”라며 미소로 대답했다. 시식을 마치고 임 셰프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와 로랭은 우리가 시식한 음식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제는 퓨전한식의 정체성이었다.

요리사의 정체성이 곧 음식의 국적

스타 셰프 임정식의 뉴욕 입성기


미령 임 셰프 음식을 먹으면서 한식이라는 정체성을 느낄 수 있어?
로랭 한식의 정체성이 뭔데? 한국에서 늘 먹는 음식들에서 느껴지는 그런 매우 ‘한국적인’ 독특한 느낌?
미령 정식당이 한식당인지 모르는 뉴요커(즉 맨해튼 32번가에서 불고기를 즐겨먹던 뉴요커)들이 임 셰프의 음식을 코리안 퀴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로랭 물론이지. 뉴욕에서 프랑스 음식을 만드는 프렌치 셰프들의 음식도 프랑스 본국에서 먹는 음식들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그들이 만드는 음식이 프랑스 사람이 만든 프랑스 음식이라는 정체성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거든. 프랑스인 셰프가 미국식 조리 기법을 이용해 미국 사람 입맛에 맞는 프렌치/아메리칸 퓨전 음식을 만들더라도 그의 음식에서 ‘프랑스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고 나는 믿어. 어떤 음식의 정체성은 바로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체성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조리 기법은 상관없다고 생각해. 베토벤 음악과 베토벤, 반 고흐의 그림과 반 고흐. 창조자와 창작품의 정체성이 완전히 일치하잖아. 베토벤의 논리적이며 절제된 감정이 풍부한 음악에서 독일적 성향을 발견하고, 반 고흐의 작품 ‘straight forward’와 ‘honest’는 완전히 네덜란드적이지. 창작품에는 창조자의 문화적 배경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봐.

한국인인 임 셰프가 한국의 맛과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니 그의 음식은 한식이다라고 인정하고 싶다. 그 자신도 당당히 한식의 고급화를 추구하고 싶다고 말한다.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젊은 셰프들이 만드는 음식이다. 진화가 없으면 도태한다. 전통 궁중음식, 한국 대중음식, 모던한 퓨전한식. 전부 한식이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렇게 다각도로 시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정식당을 다시 찾아가 식사할 것이다. 시식 때의 신선한 느낌을 다시 경험해보고 싶다. 임 셰프와 작별인사를 하며 너무 상투적인 것 같아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이 자리를 빌려 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If you can do it in New York, you can do it anywhere!”

푸드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스타 셰프 임정식의 뉴욕 입성기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 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지금은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하고 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 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뉴욕에서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며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여성동아 2011년 11월 5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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