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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한 그녀

개성 있는 조연, 하재숙과의 화통한 수다

“터프한 배역 전문? 알고 보면 손뜨개 잘하고 마음 여린 여자랍니다”

글·이연경 사진·지호영 기자, SBS 제공

2011. 09. 22

SBS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최강희 단짝 하재숙이 그 주인공. 동글동글한 외모와 달리 배우의 꿈을 품고 10년을 하루같이 차곡차곡 연기 내공을 쌓아온 악바리다. 개성 있는 연기로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의 미래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개성 있는 조연, 하재숙과의 화통한 수다


한 달 내내 내리던 비가 그쳤다. 따가운 햇살이 고맙기까지 한 그날, 하재숙(32)을 만났다. 손예진 단짝 친구로 출연한 드라마 ‘연애시대(2006)’를 시작으로 ‘태양의 여자’ ‘솔약국집 아들들’ ‘파스타’ 그리고 얼마 전에 종영한 ‘사랑을 믿어요’까지 제법 탄탄한 조연의 길을 걸었다. 그에 비해 하재숙이란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SBS ‘보스를 지켜라’에서 명란으로 출연 중인 그는 첫 방송 때 은설(최강희)과 함께 남자 불량배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궁금증이 쏟아졌다. 저 배우 대체 누구지?

대학 자퇴 후 배우의 길 선택
부드러운 느낌의 짧은 머리, 화사한 원피스….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쑥스러워하는 그는, 드라마 속에서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클래식과 공연을 좋아하는 부모 밑에서 1남2녀 중 둘째 딸로 자랐으며 고향은 대구다. 뜨개질이 취미라는 그는 ‘사랑을 믿어요’ 종방 후, 동료 연기자와 스태프에게 직접 손으로 뜬 작은 선물을 전하기도 했다고.
중학교 때부터 연극배우의 꿈을 키운 그는 대구에서 열리는 공연이란 공연은 모두 찾아다녔고, 대구에서 볼 수 없는 공연은 테이프를 구해서라도 볼 정도로 연기에 관심이 많았다. 대입 수능시험을 앞두고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처음에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그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입시를 앞두고 대학을 포기하겠다고 하니까 그제야 말리기 시작하셨죠. 그래도 안 되니까 조건을 내거셨어요. 일단 대학을 가서 1년이라도 다녀보고 다시 생각하자고요.”
하재숙은 부모의 뜻을 따라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공부를 접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그 순간부터 집안의 힘을 빌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학교 자퇴를 결정했을 무렵 아버지 사업이 조금 기울었어요. 그래서 이제 스스로 나를 책임져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때부터 대학로 연습실에서 무작정 연습만 했어요.”
돈도 없었다. 이렇다 할 후원자도 없었다. 맨몸으로 연습만 했다. 젊음과 열정이 있었기에 2년 가까이 앞만 보고 달렸다. 화장실이 밖에 있는 집에서 살며, 바퀴벌레와 동고동락했다.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한층 씩씩한 하재숙이 돼 있었다. 당시엔 암담하고 끝이 없어 보였는데 지나고 나니 고생도 약이 되더라고 말한다. 그는 이 모든 고난을 배우라는 꿈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지금도 속상하고 지칠 땐 그 시절을 생각한다.
“오디션이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수백 번 넘게 오디션을 본 끝에 2000년 ‘앙상블’이라는 악극에 발탁됐죠. 대사가 두 마디밖에 없었지만 ‘드디어 내가 무대에 서는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는데, 한 달 연습 후에 잘렸어요. 정말 허탈했죠.”
그러면서 혼자 당시의 대사를 읊어댄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섭섭하긴 했나 보다. 그 후 하재숙은 다시 쌍코피를 흘리며 연습을 계속했다. 그런 노력이 통했는지 연극 무대에 설 기회가 왔다. 여전히 생활은 어려웠지만 그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한다. 온 힘을 소진하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관객들에게서 받는 에너지가 더 크다고 한다. 관객들의 눈빛, 웃음소리, 박수치는 모습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힘이 되고 약이 됐다.
그리고 드디어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한지승 PD의 눈에 들어 드라마 ‘연애시대’에 출연하게 된 것. 한 PD는 그에게 취미, 특기 등 몇 가지 일상적인 질문만 하고는 은호(손예진)의 단짝 친구이자 레슬러인 유리 역에 캐스팅했다. 일이 너무 쉽게 진행되자 그는 “한지승 PD가 캐스팅을 미끼로 연예 지망생을 등치는 사기꾼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 PD에게 하재숙을 추천, 그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하재숙은 드라마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일이 너무 술술 풀려서일까. 하재숙은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사실 제 성격이 여성스럽고 소심한 편이에요. 낯도 좀 가리고요. 그래서인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촬영장에서 늘 혼자 주눅이 들어 있었어요. 손예진씨나 감우성씨가 TV에 나오는 연예인으로만 느껴졌지 같은 배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 봐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하재숙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차도 없었고, 코디네이터도 없었다. 더군다나 어린 마음에 몸 쓰는 건 자신이 있다고 시작한 역이었지만, 레슬링을 배우는 건 만만치 않았다. 연습 당시 팔이 부어서 1주일 동안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는 아직도 ‘연애시대’ OST를 들으면 가슴 한구석이 짠해진다고 한다.

긍정의 힘 뒤에는 언제나 든든한 가족

개성 있는 조연, 하재숙과의 화통한 수다

현재 하재숙이 출연 중인 ‘보스를 지켜라’는 배우들과 제작진의 팀워크가 좋아 연기하기가 즐겁다고 한다.





‘연애시대’ 후 꾸준히 배역을 맡은 그에게 2008년 ‘태양의 여자’를 끝으로 공백기가 찾아왔다. 많은 연기자들이 그렇듯 그 역시 막연한 불안감에 슬럼프에 빠졌다.
“10개월 정도 쉬는데, 정말 불안했어요. 다시 일을 하고 싶은 생각과 좋은 작품을 만나지 못하면 어떡하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눈덩이처럼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대구로 내려갔죠. 부모님을 만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분들도 걱정은 하시지만 저에게는 늘 긍정적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리고 언제나 저를 믿어주시니 그것만큼 힘이 되는 게 없더라고요.”
긍정의 힘이 통했던 것일까 그는 곧 ‘솔약국집 아들들’에 약국집 안주인 배옥희(윤미라)의 밉상 조카 조미란 역에 캐스팅됐다. 하지만 이번엔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드라마 중반부터 합류했는데, 방송 후 게시판에 들어가봤더니 악플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더라고요. 캐릭터가 아무리 밉상이어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분명 초등학생이 달았을 거야’ ‘하재숙이 아니라 조미란이 미운 거겠지’라고 의연하게 넘기려고 해도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부모님께서 ‘그래도 무플보다는 약플이 낫다’고 말씀해주셔서 위안이 되기는 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당하는 게 얼마나 큰 충격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됐어요.”
얼마 전 종영한 ‘사랑을 믿어요’에서도 한 차례 고비를 겪었다. 스스로 ‘연기 패턴이 고정되는 게 아닌가’ ‘좀 더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반복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 이런 그를 일으켜준 이는 함께 출연한 선배 연기자 나문희였다.
“저를 따로 불러서 말씀하신 것도 아니었어요. 대본 읽으며 연습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말로 ‘쟤가 참 잘하는구나’라고 한마디 하셨거든요. 그때 그 한마디에 힘이 나고 웃음이 나고 ‘이제 다시 할 수 있겠다’‘그래 다시 해보지 뭐’라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고마운 마음에 나문희 선배에게 편지까지 썼다고 한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바로 나문희다. 어린 시절 그가 나오는 ‘어머니’라는 공연 테이프를 힘들게 구해 보고는 ‘나도 커서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이후에도 그의 연기를 보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것. 더군다나 연기 외적인 면으로도 닮고 싶은 존경하는 선배라고 한다.
“연세도 있고, 내공도 탄탄한데다 늘 한결같으세요. 대사도 먼저 맞춰보자고 하시고, 대충 읽어도 될 부분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세요. 촬영 8개월 동안 늘 집중하시고, 흐트러진 모습을 뵌 적이 없어요.”

연기 경력 10년 ‘보스를 지켜라’로 떴다

개성 있는 조연, 하재숙과의 화통한 수다


요즘 하재숙은 물 만난 고기 같다.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 촬영을 하면서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단다.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촬영장 분위기가 좋아서 연기하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지성 오빠가 아이디어를 내서 촬영을 시작하기 전 모든 출연자와 스태프가 1박2일 MT를 다녀왔어요. 제가 낯가림도 많이 하고 소심해서 MT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를 어쩌나’ 고민했지만, 실제로 가보니 굉장히 즐겁더라고요. 서로를 더 잘 알게 됐고 덕분에 팀워크도 좋아졌어요.”
이런 분위기가 브라운관 밖에도 전해져서일까. ‘보스를 지켜라’는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보스를 지켜라’는 청년 실업자 은설이 우여곡절 끝에 대기업에 취업해 불량 재벌 2세 차지헌(지성)을 만나 벌이는 해프닝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이와 관련, 하재숙은 얼마 전 드라마 촬영을 중 최강희와 청년 실업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신은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이 시대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리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정말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어느덧 하재숙의 연기 경력도 10년이나 됐다.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열정엔 변함이 없다.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대학을 포기했고, 숱한 난관을 거쳐 배우의 꿈을 이뤘다. 이제 대중에게 좀 더 다가서는 일이 남았다. ‘하재숙’이라는 이름을 좀 더 각인시켜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물러서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와 노력. 이런 모습이 그를 먼 훗날에도 빛날 연기자로 만들어줄 것이다.

장소협찬·리스토란테 일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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