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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궁금한 이 남자

알고 보니 품절남 ‘무한도전’ 훈남 조정 코치 김지호

글·구희언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1.09.16 15:10:00

MBC ‘무한도전’ 조정 특집에서 멤버들에게 조정을 가르친 김지호 코치.
첫 방송부터 훈훈한 외모로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치솟는 인기가 부담스러웠는지 방송에 ‘Sorry, I’m married’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나와 ‘유부남 인증’까지 했다.
누리꾼 수사대가 이런 인기남을 가만둘 리 없다. 연극 무대에 오른 사진부터 봉사 동아리 회장 자격으로 한 인터뷰까지 까면 깔수록 매력 넘치는 그와 함께한 시간.
알고 보니 품절남 ‘무한도전’ 훈남 조정 코치 김지호


김지호 코치(29)는 비를 부르는 남자였다. ‘무한도전’에서 조정 연습을 할 때마다 빗속에서 고군분투했는데, 이날도 인터뷰 사진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어둑어둑한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속에서 촬영을 마치고 실내로 들어온 그는 “제가 레인맨”이라며 웃었다.
“무한도전 찍으면서 비에 대한 일화가 하도 많아서…. 배를 탈 만하면 비가 오고, 연습하려고 하면 비가 왔어요. 너무 힘드니까 ‘잠깐 쉴까’ 하면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고요. 비가 그쳤으니 ‘다시 연습하자’고 하면 또다시 비가 내렸어요. 나중에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비만 오면 미사리로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5개월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를 마친 그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서울특별시장애인체육회 조정 코치를 맡은 그는 평일에는 선수에게, 주말에는 일반인에게 조정을 가르친다. 전국체전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국제심판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다. 최근 인기가 높아지자 알아보는 사람도 늘었다. 아내와 함께 간 백화점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무한도전 조정 코치죠?” 하고 물어서 당황했다고. 무한도전과 울고 웃었던 5개월은 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방송 분량의 3배는 더 촬영했을 거예요. 조정은 다 같이 모여서 연습해야 하는 종목인데, 각자 스케줄이 있으니까 전원이 모이기가 어려웠죠. 누굴 꼽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가 열심히 했어요. 아무리 바빠도 연습하러 오면 서너 시간씩 땀을 흘리다 돌아갔죠. 유재석씨는 스케줄도 제일 많은데 시간 날 때마다 조정 연습을 하고는 끝난 뒤에도 헬스장에서 운동하더라고요. 왜 일인자인지 알 것 같았어요. 뭘 해도 성공하실 것 같더라고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올여름, 무한도전팀은 날씨와도 사투를 벌여야 했다.
“연습할 만하면 비가 오니까 힘들었어요. 강가에서 연습하면서 아찔했던 순간도 몇 차례 있었죠.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5m도 안 되다 보니 모터보트나 반대편에서 오는 카누가 안 보여 부딪힐 뻔한 적도 있었어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는 이유 알았다
경기 당일에는 출발이 늦은 점이 아쉬웠다고. “출발이 빨랐으면 상위권 그룹과 경쟁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하던 그는 “연습 마지막 날 호흡이 진짜 잘 맞았다”며 “이렇게 연습할 수 있는 날이 3일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원래 잘 울지 않는다”던 그는 경기를 마치고 멤버들을 다독이다 그만 눈물을 보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보면 그전에는 ‘억지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날 7분대에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구간 기록을 봤는데 여태껏 연습한 것 중에 제일 잘 탔더라고요. 배가 들어와서 멤버들에게 ‘잘했다, 어깨 펴라, 멋있다’ 하는데 정형돈씨가 막 우는 거예요. 하하씨도 ‘코치님 죄송해요’라며 울고, 박명수씨도 길씨도 그러는 걸 보니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등수는 8등이었지만 우리는 지지 않았다’는 말을 정형돈씨가 했는데 그 말이 기억에 남아요. 그날은 멤버 모두에게 감동해서 안 울 수가 없었어요.”
무한도전 출연 기회는 그에게 ‘기적’과도 같았다.
“대한조정협회에서 전국의 조정 지도자에게 예능 프로그램을 찍는 데 관심 있으면 지원하라고 했거든요. 지원자 중에 저보다 실력도 좋고, 외모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난 분이 많았는데 (제가 선택받은 건) 기적이었죠. 대학생 때 무한도전을 보며 ‘저기 한 번만 나가면 뭔가 바꿀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겼는데 유재석씨 노래처럼 ‘말하는 대로’ 된 것 같아요. 꿈을 구체화하고 노력하면 기회가 온다는 걸 깨달았죠.”
프로그램 파워와 훈남 코치의 시너지로 비인기 종목이던 조정은 단숨에 떴다. 그가 어릴 적 조정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아버지가 워낙 운동을 좋아하셨어요. 그 덕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운동을 접했어요. 제일 먼저 시작한 건 펜싱이었죠. 한창 재미를 붙이던 중이었는데 어머니가 반대하셔서 그만뒀어요. 집이 미사리 조정 경기장과 가까워서 자주 나갔었는데 카누를 배우다가 조정까지 하게 됐어요.”

그는 조정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
“조정은 사람의 극한까지 가는 운동이에요. ‘내가 조정도 해냈는데 뭔들 못하겠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중학교 때도 ‘나를 아프리카에 떨어뜨려놓아도 잘 살 수 있다’고 큰소리쳤는데 말이 씨가 됐죠.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아프리카에서 1년 동안 체육을 가르쳤거든요.”
2008년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아프리카로 훌쩍 떠났다. 봉사의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대단한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체육만큼은 자신 있었어요. 제가 아프리카 케냐 콸레 지역 최초의 체육 선생님이었어요. 처음에는 학교 건물이 폐허처럼 문도 창문도 없이 뻥 뚫려 있어서 아직 공사가 덜 끝난 줄 알았어요. 운동장도 경계가 따로 없이 넓은 땅만 있었고요. 그곳에서 현지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쳤어요. 단체로 가거나 경비를 지원받은 게 아니어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만큼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던 시간이었죠.”
그는 대학생 때 2년간 청소년 봉사 단체 로타랙트 회장을 했고, 노숙인을 돕는 봉사 단체 ‘거리의 천사들’에서 3~4년간 노숙인 재활을 도왔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 백악관에서 정책차관보를 역임한 강영우 박사예요. 시각장애인이지만 UN 장애인인권장관도 하셨고 국제로터리 인권상도 받으셨죠. 그의 삶을 쫓아가다 보면 반이라도 따라가지 않을까 싶어요. 교회에서 목사님께 설교를 듣던 중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봉사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라’라는 말이 가슴에 남았어요. 그래서 국외로 봉사 활동도 많이 다녔죠. 봉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같은 성품 덕에 장애인 조정 대표팀 코치 자리도 흔쾌히 승낙했다. 무한도전 멤버를 가르치며 힘든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모습을 떠올리니 인내심으로 무장하고 지체장애인과 시·청각 장애인을 로잉 머신으로 인도하는 장면을 그리기란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장애인의 거동을 돕는 일만 했어요. 가슴에 상처가 있는 분들이라 선뜻 마음을 열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기다렸죠. 시간도 오래 걸렸고 힘들었지만, 진심으로 대하니 나중에는 알아주시더라고요. 조정 경기가 끝나고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뭉클했어요. 조정을 통해 밝아지고 에너지를 얻는 이들의 모습이 큰 힘이 됐죠.”
그는 “조정은 무산소로 시작해서 유산소로, 다시 무산소로 돌아오는 운동이라 고통이 심하다”며 “인간의 극한까지 체험하는 운동이라 유럽에서는 조정을 했다고 하면 한국에서 해병대를 쳐주듯이 대단한 일 한 것으로 인정해준다”고 했다.

일곱 살 연상 아내와는 선생님과 제자 사이
기회가 온다면 예능이나 연기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그는 방송에서 최근 백일을 갓 넘긴 딸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앞서 무한도전에서는 ‘Sorry, I’m married’라는 자수가 박힌 모자를 쓰고 나와 ‘품절남 인증’을 하기도 했다.
“아내와 미국 여행을 가 모자가 예뻐서 샀는데 10달러를 주면 글씨를 새겨준다고 했어요. 아내랑 제 이름을 박으려니 너무 길어서 뭘 할까 하다가 재미로 썼는데, 그 미국인도 새기면서 재밌어 하더라고요. 유부남인지 아닌지 물어보는 분이 하도 많아서 트위터에 ‘방송에 쓴 모자에 힌트가 적혀 있다’고 했는데 5분도 안 돼서 관련 기사가 뜨더라고요.”



알고 보니 품절남 ‘무한도전’ 훈남 조정 코치 김지호

무한도전 멤버들과 5개월 간 함께하며 김지호 코치는 조정을 가르치고 우정을 얻었다. 그는 “비록 등수는 8등이었지만 멤버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기에 결승선에 들어오는 이들을 보며 눈물이 났다”고 했다.



알고 보니 품절남 ‘무한도전’ 훈남 조정 코치 김지호


초보 아빠인 그에게 한 살배기 아들을 둔 유재석은 육아 조언을 주고받는 든든한 선배.
“함께 배를 타면서 ‘아기가 새벽에 너무 울어서 난감하다’고 했거든요. 유재석씨가 ‘그때는 아내도 힘들 때니까 많이 도와주라’면서 ‘백일만 지나면 괜찮다’고 조언해주었어요. 정말 백일이 지나니까 아이가 새벽에 울면서 깨는 횟수가 줄어들더라고요.”
일곱 살 연상 아내와는 대학교 3학년 때 선생님과 학생 관계로 만났다. 당시 아내는 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리더십 강의를 했다. 처음 그가 호감을 표시하자 그녀는 “부모님을 가슴 아프게 하면서 만날 순 없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처음에는 리더십 강의라서 (강단에 선 아내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졌는데, 수업을 듣다 보니 ‘저 사람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거절당하고 거의 2년을 주변에서 맴돌았어요. 수업 조교도 하고, 아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말에 괜히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신청해서 찾아가기도 했어요. ‘선생님이 좋다’고 그랬죠.”
끈질긴 정성에 아내도 차츰 마음을 열었다. 사귄 지 반년 만에 홀로 아프리카로 떠났던 그는 1년 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이 여자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아내는 내조의 여왕이었어요. 봉사 활동에 필요한 물건도 수시로 보내주고, 26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까지 저를 찾아오기도 했어요. 한국에서 아프리카까지 직항이 없거든요. 타고 올 비행기가 결항해서 방콕에서 이틀간 체류했는데, 못 보나 싶어 많이 걱정했죠. 아내와 함께 보낸 일주일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이후에도 계속 제 봉사 활동을 도와주는 모습에 ‘이런 여자는 없구나, 결혼해야겠다’라고 결심했죠.”
대한장애인조정연맹 국가대표팀 입사가 확정되자마자 그는 바로 청혼했다. 결혼식을 부리나케 준비해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유부남이 됐다.
“부모님께서 결혼을 엄청나게 반대하실 줄 알고 작전을 서너 개 짰어요. 그런데 막상 보시더니 (아내를) 좋아하셨어요. 장인 장모님도 (저를 좋아하긴) 마찬가지였고요. 괜한 작전을 세웠던 거죠(웃음). 아프리카에 가 있는 동안 아내는 저 대신 노숙인 재활 봉사 단체에 나갔어요. 거기에 있던 노숙인 한 분이 아내랑 약속하고 알코올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재활에 성공했어요. 한 명이라도 재활에 성공한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이거든요.”

연극배우에 봉사동아리 회장까지 팔방미인
세종대학교 체육학과 01학번인 그의 복수전공은 연극영화. 이순재에게 연기를 배우고 한지혜와 ‘중급연기’ 과목을 함께 들었다. 연극 ‘위선자 따르튀프’ ‘이성계의 부동산’ ‘세 자매’ 등 여러 편의 단막극에 출연한 그는 뮤지컬 ‘그리스’에서는 머리를 빗어넘겨 올려 멋을 한껏 낸 바람둥이 ‘쏘니’ 역을 맡기도 했다.
“젊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 연기를 전공했죠. 다른 대학을 포기하고 세종대를 선택한 이유도 체육학과와 연극영화과가 모두 있어서였어요. 다들 최소 3년 이상 연기 연습을 한 친구들이라 복수전공 시험에 붙을 줄 몰랐는데, 앞자리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는 성실함을 교수님이 좋게 보셨나 봐요. 이순재 선생님은 철학을 전공하셔서 정말 아는 게 많고 지혜로우세요. 연기에 대해 깊이 있게 설명해주셔서 ‘연기가 이런 거구나’ 많이 배웠어요. 일정이 바빠도 항상 수업을 준비하려 학교에 와 계셨죠.”
여성동아 인터뷰가 끝나면 오후에 세종대 신문사 학생 기자들과 만난다고 했다. 학창 시절 “우리 대학교 선배 중에는 대단한 사람이 없다”는 후배의 투정을 듣곤 “학교를 떠나서 내가 먼저 잘되면 되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던 그는 밀려드는 인터뷰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후배가 찾아온다니까 신기할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이런 그의 꿈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후진국 발전을 돕는 체육 경영을 하고 싶다고 한다. 국제심판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도 그런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인이 못 해본 일이니까요. 자신이 활약할 무대를 대한민국으로 국한하지 말고 전 세계를 품고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김연아나 박태환이 되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맡은 작은 일로 인해 나라가 돌아간다는 걸 깨닫는다면 좋겠죠. 저도 조정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온 힘을 다하면 나라를 빛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후배들도 ‘대기업 취직해서 돈 벌어야지, 가게 개업해야지’ 같은 근시안적 목표가 아니라 넓은 무대로 나가서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을 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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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박성연 이소정

여성동아 2011년 9월 5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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