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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돌아와 인생 3막 열다 조하문 최지원 부부

“방탕한 삶 청산하고 신앙에 기대 산 지 14년, 달라진 인생 고백”

글·김유림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1.09.16 14:51:00

‘해야’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등으로 인기를 누리다 돌연 목사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던 조하문.
2003년 캐나다로 떠나 8년 동안 소외된 계층을 찾아다니며 사역 활동을 한 그가 얼마 전 고국으로 돌아왔다. 젊은 시절 공황장애·우울증·알코올중독에 시달리다 기적적으로 새 삶을 시작한 조하문 목사의 회복일기.
캐나다에서 돌아와 인생 3막 열다 조하문 최지원 부부


하늘을 찌르는 인기, 물질적 풍요,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가족까지. 뭐 하나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였지만 손에 쥐는 것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더욱 황폐해져 갔다. 끝내 대마초에 손을 댄 그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고, 그 고통을 이겨내려 날마다 술을 마셨다. 80년대 히트한 노래 ‘이 밤을 다시 한 번’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의 주인공 조하문(52)의 얘기다. 하지만 그는 이제 가수도 연예인도 아니다. 2002년 목회자로 변신한 뒤 이듬해 캐나다로 떠나 그곳에서 8년 동안 어둡고 낮은 곳의 사람들을 위로하며 사역 활동을 했다. 얼마 전에는 ‘다시 찾은 나, 그 후’라는 부제가 붙은 책 ‘조하문의 회복일기’(홍성사)도 펴냈다.
지난 8월 초 귀국한 지 두 달 된 조하문·최지원 부부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뭐든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지만, 얼굴 표정에서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특히 넉넉한 풍채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는 조하문 목사에게서는 젊은 시절 가수 조하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이유에 대해 과거 자신처럼 고통 속에 있는 고국의 많은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도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고 위로해 주는 일이었다. 그는 현재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모임에서 책임목사를 맡고 있다. 그 밖에도 크고 작은 교회나 기업 강연, 선교와 관련된 콘서트에 참석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 보니 힘겹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젊은이들이 정말 많아요. 사실 목사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닌다고 해도 마음 아픈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하나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정확히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할지 정해지진 않았어요. 지금껏 그래왔듯이 제가 정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시는 일을 하는 거죠.”

가수 조하문과 목사 조하문은 ‘동명이인’
책 집필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펴낸 책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에서는 어두운 과거로부터 새 삶을 찾기까지의 인생 역정을 고백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그 이후의 삶, 즉 그가 목사로 활동하며 깨달은 바를 정리했다. 조 목사는 “많은 사람들이 갈등과 번뇌 앞에서 ‘원래 타고난 내 성격이 이래’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는데, 그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모든 가정이 남녀간의 결혼을 통해 이뤄집니다. 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를 키우며 남자와 여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죠. 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훗날 아이의 성품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폭군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사람은 어릴 적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 자신의 성품이 원래 타고난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아요. 내면의 선과 순수함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거죠. 과거 저도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냈지만 종교를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가수 조하문과 목사 조하문은 동명이인일 뿐이에요. 제가 직접 경험에서 깨달은 바를 이번 책에 옮겨놨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신앙에 의탁하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가수로 활동할 당시 인기가 높아질수록 마음의 병은 깊어졌고, 의미 없는 것에 대한 허무함이 그의 목을 조여왔기 때문이다. 조 목사는 연세대 지질학과 재학 중이던 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룹 ‘마그마’의 보컬로 ‘해야’를 불러 은상을 받은 뒤 87년 솔로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마음은 조명 꺼진 무대처럼 쓸쓸하고 황폐해져만 갔다. 몸 어디 한 군데 안 아픈 곳이 없었을 정도로 원인 불명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캐나다에서 돌아와 인생 3막 열다 조하문 최지원 부부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가요제에서 상을 받았을 때도 그렇게 기쁘진 않았던 것 같아요. 하루아침에 가수가 되고 인기가 올라가면서 결국 만족하지 못하는 병에 걸리고 만 거죠.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부족한 게 없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저는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자신을 많이 괴롭혔어요. 곡을 만드는 등 음악 자체는 좋아했지만 무대에서 노래하는 건 너무 힘들었죠. 그 때문에 방송에 차질도 많이 빚었고요. 방송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어요.”
매일같이 술만 마시고 힘들어 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 최지원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탤런트 최수종의 누나이자 연기자 출신인 최씨는 85년 결혼 후 남편의 반대로 연기 활동을 접고 가정주부로 지내왔다. 결혼 전부터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해왔던 최씨는 끊임없이 남편에게 신앙 생활을 권했지만 조하문 목사는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성경책을 내던지고 십자가를 부수며 격렬히 거부했다. 최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참고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남편 때문에 화가 나고 속상했던 적이 많았지만 이혼은 감히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이 몸과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거였기 때문에 안쓰러운 마음이 컸죠. 저마저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물론이고 모두가 힘들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이 또한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꽉 잡아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성경 한 구절로 180도 바뀐 인생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조 목사는 결국 모든 걸 비관하고 한때 죽음을 결심했다. 어떻게 하면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동네를 걷다가 우연히 만난 지인이 “얼굴빛이 너무 안 좋다”며 그에게 건넨 성경을 통해 그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바뀌고 말았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요한복음 편을 펼쳐든 조 목사는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자신이 그토록 갈망해오던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부터 성경에 빠져 지낸 그는 99년 모든 사업과 연예계 생활을 접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 입학해 목사가 됐다. 그가 신앙에 의지하면서 가정에도 평화가 깃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성경을 접하고부터 남편은 외출도 하지 않고 성경에 빠져 살았어요. 저와 아이들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등 성경 말씀을 실천하려 애썼죠. 가족뿐 아니라 자신이 그동안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떠오르면 무조건 찾아가서 사과를 했어요. 물질적으로도 낮아져야 한다며 고급 승용차를 팔고 헬스클럽이며 콘도 회원권도 다른 사람들에게 줘버리니까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웃음). 사실 저는 남편이 목사까지 되는 건 바라지 않았거든요. 신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아이들과 함께 가족회의를 하기도 했어요. 결국 남편의 말이 옳고 남편이 실천하고자 하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걸 알기에 모두 찬성했지만요.”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고독과 행복이 공존했다. 아는 이 한 명 없는 낯선 땅에서 처음부터 모든 걸 새로 시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 목사는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 일들을 해냈을까.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이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고독이었다. 교회에서 설교하는 시간을 빼고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잔디와 하늘만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했다. 수요예배와 주일예배 사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않고 책을 보고 설교문을 쓰고 마당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최지원씨 또한 오로지 목사의 아내로만 지내는 생활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5년 정도까지는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좋았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더라고요. 그곳에서는 목사와 목사의 아내로만 살 뿐 허심탄회하게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만한 친구가 없었거든요. 큰아들은 직장 다니느라 주말에만 보고, 작은아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거의 못 봐요. 집에서 남편과 단둘이 있는 날이 대부분이었는데, 저녁식사 할 때까지 서로 말 한마디 안 할 때도 많았어요. 물론 교인들과의 생활이 즐거웠지만 나머지 시간은 고독 그 자체였죠.”
그럼에도 이들이 8년이란 긴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목회를 통해 얻는 기쁨이 컸기 때문이다. 조 목사는 “다시 캐나다에서 외롭게 지내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이민 목회를 다시 하라면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고독이 외로움이 아닌 고독 그 자체로 머물렀기에 목회자로서 더 성숙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돌아와 인생 3막 열다 조하문 최지원 부부

조하문 목사는 캐나다에서 한인 목회와 장애인 공동체 목회를 하며 새로운 인생을 쓰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돌아와 인생 3막 열다 조하문 최지원 부부

조하문 가족 사진. 왼쪽은 큰아들 태관씨, 오른쪽은 둘째 아들 경관군.



“이민 온 사람들 중에는 가난하고 아프고, 가정이 깨진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저는 이민 목회가 좋아요. 그분들은 더욱 뜨겁게 찬양하기 때문에 설교도 뜨겁게 전하게 되거든요. 제가 고독해서 숨이 넘어갈 정도가 되니까 한 영혼을 위해 울면서 기도하게 되고, 금식기도도 하게 되더군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어려운 상황에서 열심히 사는 분들을 보면서 배운 점도 많죠. ‘지금까지 인생 헛살았구나’ 싶을 정도로 큰 깨달음을 얻은 적도 많아요. 캐나다에 있는 동안 한인 목회 6년, 장애인 공동체 목회 7년 하면서 그런대로 뿌리를 내렸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을 때는 서운한 마음에 새벽녘 침대 위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조하문·최지원 부부는 신앙에 의탁한 제2의 삶을 시작한 뒤로는 크게 다툴 일이 없다고 한다. 서로 뜻이 맞지 않을 때는 정면 대결하기보다 잠시 각자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만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제 나이 드니까 어떤 일로 다퉜는지 기억도 안 날 때가 많아요. 많은 부부가 소소한 일로 불꽃을 튀기며 으르렁대죠. 저희도 한때 그랬지만 서로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한 뒤로는 크게 다툰 적이 없어요.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풀려 하고, 설령 마음이 안 맞아 갈등이 생길 때면 각자의 방에서 기도를 하고 만나요. 그러면 부부 사이가 한결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최지원)

“아내와 남편을 시어머니와 장모의 눈으로 바라보세요”
“세상 사람들 모두 지구가 정육면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지만 결국 틀렸어요.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건 있을 수 없어요.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만 다툼이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아내와 남편을 시어머니의 눈으로, 장모의 눈으로 바라보세요. 내 아들이라면, 내 딸이라면 그렇게 서로를 비난하고 괴롭히지 않겠죠. 남편이 밤늦게 들어오면 아내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저 인간 또 늦었구나’ 하겠지만, 아들이라면 벌떡 일어나 ‘늦게까지 일하느라 수고했다’면서 등을 토닥여준단 말이죠(웃음). 서로가 누군가에게는 귀한 아들, 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조하문)
캐나다 이민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두 아들은 어느덧 듬직한 청년으로 잘 자라줬다. 현재 두 아들은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데,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과거 아이들에게 윽박지르고, 술에 찌들어 있는 모습만 보이던 아버지에서 잠들기 전 가족과 함께 기도를 올리고, 아이들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로 바뀌자 아이들 또한 자연스레 변했다.
“특히 큰아들은 어릴 때 굉장히 거칠었어요. 여자아이들도 많이 괴롭혀서 같은 반 학부모들한테 항의 전화 받는 게 일이었죠. 얼마 전 큰아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중 한 여자 친구가 ‘왜 이렇게 여성스러워졌냐’고 하더래요(웃음). 실제로 큰아들은 무척 가정적이에요. 외모는 아빠를 쏙 빼닮았고, 피아노·기타도 독학으로 배워 제법 연주를 잘 해요. 요리나 집안일 돕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아직 여자 친구가 없어요(웃음).”
한국에 들어온 뒤로 이들 부부는 동생네인 최수종·하희라 부부와도 자주 만난다. 동생 부부도 교회에 다니는데, 부부가 함께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다고 한다. 원래 크리스천인 최수종은 종교가 다른 하희라가 스스로 교회에 나가겠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줬다고.
“몇 년 전 캐나다로 전화가 왔어요. 동생이 울면서 ‘누나, 민서 엄마도 교회에 같이 나가게 됐어’ 하더라고요. 그 후 두 사람이 토론토에 있는 저희 교회에 찾아와서 간증을 했는데, 그때 올케가 ‘시집 식구들이 교회에 나가라고 강요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준 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걸 보고 저 또한 고마웠어요. 얼마 전 대전에서 집회가 열렸을 때는 동생 부부가 함께 가스펠도 부르고 좋은 얘기도 많이 하고 갔어요.”
조하문 목사는 앞으로 고국에서 ‘영혼 구조대’로 활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영혼 구조대’는 어느 날 조 목사가 많은 젊은이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설교하는 모습을 보고 큰아들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물뿌리개처럼 ‘생명뿌리개’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조 목사는 앞으로 더 낮고 어두운 곳을 찾아 생명의 말씀을 전하겠다고 다짐한다.
“교회가 아니더라도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갈 생각입니다. 특히 죽음을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어요.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생명의 빛줄기를 밝혀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여성동아 2011년 9월 5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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