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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친구 사귀기 어려운 이유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한여진 기자 글&사진·유디트

입력 2011.09.01 14:40:00

한국에서 친구 사귀기 어려운 이유


나는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독일로 간다(이 글을 보낸 8월10일, 현재도 독일에 머물고 있다). 몇 년 전까지는 일 년 내내 독일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국에 살면서 독일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에도 자주 걸렸다. 독일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수첩 가득 적어두기까지 했다.
‘독일에 도착하면 빵집으로 달려가 독일 빵과 치즈, 소시지를 먹어야지. 마트에서 신나게 장도 보고, 서점에 가 읽고 싶던 책도 사야지. 아~ 독일 신문도 읽고 싶다. 나의 고향 브레멘 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베저 강의 강변길을 따라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공원에서 산책도 마음껏 해야지. 집 근처 작은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라며 독일 가기 전까지 주문을 외우듯 지냈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독일로 향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언젠가부터 독일을 그리워하는 횟수가 줄더니 여름이 되면 독일 가는 즐거움보다 한국을 떠나는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진다. 독일에 가 있는 몇 주 동안 잡초가 무성하게 자랄 우리집 텃밭과 기르는 야옹이가 걱정된다. 혼자 지낼 남편에게도 미안하다. 한국에 온 지 11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확실히 나의 새로운 고향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직도 매년 독일에 가는 이유는 가족과 친구가 그리워서다. 아버지와 함께 등산하고, 어머니와 하루 종일 수다를 떨고 싶다. 독일 친구들과 여행을 하면서 일 년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싶다. 독일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독일 친구들은 여전히 애틋하다.
독일 친구들이 아직도 애틋한 것은 한국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국인이라 문화 차이가 있고, 의사소통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내성적인 내 성격 역시 한국에서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에서 친구 사귀기 어려운 이유는 한국 사람들의 ‘친구 개념’ 때문인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나이가 같거나 비슷한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한다. 독일에 계시는 67세 되신 우리 어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는 51세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친구 관계를 보고 자라서인지 나이를 엄격하게 따져서 친구를 맺는 한국 문화가 아직은 불편하다.

한국에서 친구 사귀기 어려운 이유


한국에서는 나이 차이가 있을 때 친해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나이 차이가 있으면 진짜 친구처럼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역할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엄마나 아빠,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학생, 선생님, 오빠, 언니, 누나, 동생, 선배, 후배, 며느리, 시어머니, 사위, 장인…처럼. 한국에는 이런 사회적인 역할이 많고, 그 역할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만날 때 자신의 역할과 상대방의 역할을 먼저 따져보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선생님은 선생님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오빠는 오빠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아줌마는 아줌마답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답게 말이다. ‘~답게’라는 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생각해보라. 수다 떨지 않는 아줌마, 부끄러워하는 할아버지, 애교 있는 아저씨, 겁쟁이 아빠, 정답을 모르는 선생님을 본 적이 있는가? 한국 사람은 자신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역할이 있어 사람과 관계 맺음이 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규정된 역할이 ‘진짜 소통’을 막는다고 생각한다.
여름 휴가를 떠나기 전에 어느 한국인 부부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앞마당에서 인사를 나누고 차를 대접했다. 부부와 얘기를 나누다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니 마흔다섯 살쯤 돼 보이는 부인이 따라 들어왔다.
“유디트씨 몇 살이에요?”
“마흔 살이에요.”
“아, 네. (잠깐 망설인 후에) 이 주방을 더 예쁘게 꾸미세요! 여기에 선반 하나 설치하면 참 좋을 거예요. 아, 된장찌개에 다시마 안 넣었죠? 다시마를 넣으면 더 맛있어요. 그리고 쌈장은 큰 접시에 담는 게 아니에요! 더 작은 접시 없어요?”
“으, 글쎄….”
늦은 저녁, 부부가 집으로 돌아간 후 남편을 붙잡고 불평했다.
“아까 그 여자 분은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30초도 안 되는 사이에 조언을 세 가지나 했어. 혹시 그 부인이 일부러 내 짜증을 돋우기 위해 그런 것 아니야?”
“아닐 거야. 당신을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을 거야. 좋은 언니처럼.”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면 언니든 동생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역할이 주어지기를 기다린다. 서로의 역할이 분명해지고 나면 그 역할에 맞춰 행동하기 시작한다. 즉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언니(혹은 동생)임이 분명해지면’ 갑자기 편안해한다. 하지만 언니 혹은 동생이고자 하는 사람과 어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주어진 역할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행동해야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한국에서 10년이 넘게 살고 있어도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 독일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좋은 이유는 나에게 친구인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이 상관없는 내 친구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 친구들과 헤어질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진짜 친구’를 사귀고 싶다! 아마 한국에도 나이에 따른 역할이 아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 친구 사귀기 어려운 이유




유디트씨(40)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여성동아 2011년 9월 5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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