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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감동의 하모니

수잔 시먼의 아름다운 음악 수업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창립 멤버

글·구희언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1.08.31 16:33:00

‘엘 시스테마’란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교육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말이다.
음악을 통한 구원이 엘 시스테마가 추구하는 목표. 지난 35년간 30만 명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나눠주고 음악을 가르치며 삶을 바꿔놓은 엘 시스테마의 창립 멤버 수잔 시먼이 한국에서 음악 교육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수잔 시먼의 아름다운 음악 수업


음악을 통해 새로운 베네수엘라를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1975년 시작한 ‘엘 시스테마’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총과 마약 대신 악기를 쥐여주고 그들의 삶을 음악가의 그것으로 변화시켰다. 엘 시스테마로 베네수엘라 자체가 변한 것이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11명의 아이를 대상으로 시작된 오케스트라 운동은 현재 미국, 영국 등 25개국으로 확산됐다.
수잔 시먼(47)의 한국 방문은 ‘꿈의 오케스트라(지역사회형 아동 청소년 오케스트라)’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꿈의 오케스트라 네트워크 지원본부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8월10일 경기도 부천 복사골문화센터 콘서트홀 객석에는 엘 시스테마의 특별한 교육법을 배우기 위해 모인 30여 명의 선생님이 수잔 시먼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그의 시범 수업과 공연이 이어졌다. 무대에 오른 34명의 아이들은 한국 선생님에게 6월부터 첼로, 바이올린, 플루트, 클라리넷을 배웠다. 수잔 시먼과는 사흘간 호흡을 맞췄다.

숨바꼭질처럼 재미있는 오케스트라 수업
이유진양(10)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클라리넷을 잡아봤다.
“모든 게 흥미로워요. 원래 알던 친구들도 있지만 새로 사귄 친구들도 많아요. (12월까지 교육을 받을 텐데) 교육이 끝난 뒤에도 클라리넷 연주를 계속하고 싶어요. 다른 친구들이 하는 악기 중에서는 첼로를 켜보고 싶어요. 첼로가 크기도 하고 소리가 부드럽고 예뻐서요.”
바이올린 연주를 맡은 김아로양(9)은 “이곳에서 바이올린을 처음 배웠는데 재미있다”며 “나중에 클라리넷같이 다른 악기도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첼로 연주자 이창민군(9)은 “선생님께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한번 해보라고 해서 참가했다”며 “악기는 직접 고르는 건데 소리가 좋아서 첼로를 골랐다”고 말했다.
수잔 시먼은 직접 무대를 오가며 오케스트라 교육을 지휘했다. 수업은 스페인어로 진행됐고 통역사가 우리말로 옮겼다. 아이들은 스페인어를 전혀 몰랐으며, 수잔 시먼 역시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바이올린과 첼로로 소통했고, 플루트와 클라리넷으로 호흡했다. 그는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표정과 온몸을 활용해서 오케스트라에 대해 설명했다.
“자, 우리 입장하는 연습을 해보자. 모두 무대에서 안 보이게 커튼 뒤로 숨어요. 제2바이올린은 더 뒤로 들어가 주세요.”
아이들이 무대 뒤로 들어가자 그는 관객에게 물었다.
“관객 여러분, 어디가 보이죠?” “첼로요!” “첼로 더 뒤로 들어가세요~”
재차 “다른 파트가 더 보이나요” 하고 묻자 객석에서 “바이올린이요!” 하고 외쳤다. 그는 “바이올린, 얼른 숨어요~”라며 아이들을 다독였다. 오케스트라의 입장과 퇴장을 그는 ‘숨바꼭질’ 형식을 빌려 가르쳤다. 음악 시간이라기보다 ‘오케스트라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커튼 뒤에 숨바꼭질하듯이 잘 숨어야 해요. 잘했어. 오케스트라가 어디 숨었는지 지금 관객은 모르고 있죠? 이야기도 안 하고 조용히 있네요. 완벽한 상태예요. 훌륭합니다.”
그는 허리를 숙이곤 한 학생 한 학생 눈을 맞추며 바로 앞에서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백문이불여일견. 아이는 금세 수잔 시먼의 몸짓을 따라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바이올린) 현을 다 박살내도 괜찮아. 선생님이 새로 사줄 테니까 전체 활을 다 써서 연주해보자. 이렇게 아기 같은 소리를 내면 어떻게 해. 아직 기저귀 차고 다니는 사람 있어? 바이올린이라면 이렇게 장중한 소리를 내야지. 걸음마를 방금 시작한 학생이라면 이해할게. 관객들이 ‘(바이올린이 아니라) 첼로 소리야?’ 할 정도로 크게 해보자.”

수잔 시먼의 아름다운 음악 수업


수잔 시먼의 아름다운 음악 수업

3일간 진행된 세미나에서 수잔 시먼은 한국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엘 시스테마의 정수를 가르쳤다.





수잔 시먼은 수업 중에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다. 바이올린 활을 들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에게도 “그건 칼 아니거든” 하고 부드럽게 제지했다.
“어떻게 훌륭한 연주가 이뤄지는지 앞에 앉은 분들에게 보여줘야겠지? 선생님은 여러분이 잘할 거라 믿지만 말이야.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해. 연주가 끝나면 여러분은 유명해질 거고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자고 올지도 몰라. 특히 중요한 건 모든 게 다 잘되려면 입장하는 것을 잘해야 한다는 점이야. 악장과 지휘자가 입장을 잘해야 멋진 결말을 지을 수 있겠지? 자, 그럼 시작해볼까!”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한쪽 발을 구르며 바이올린과 첼로를 켜기 시작했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가세했다. 장난꾸러기는 없었다. 모두가 진지한 눈빛이었다. 6월부터 배운 실력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조화로운 하모니가 콘서트홀을 메웠다.

아이들은 선생님 흉내 내며 자연스럽게 배워
수업을 참관한 김경선씨(31)는 “1차 세미나에 참여한 뒤 2차 세미나를 연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가했다”고 말했다.
“1차 세미나 때는 영상과 책으로만 엘 시스테마를 접했는데 이번에는 실제 시범 수업도 보고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분이 직접 설명해주니까 좋았어요. 바이올린을 전공한 저로서는 저런 초보 단계의 아이들이 오케스트라를 한다는 게 처음에는 의아했어요. 악기를 전혀 다룰 줄 모르는 아이라도 선생님이 앉는 법, 무대에서의 태도, 악기 조율하는 법 등을 흉내 내며 배우고 단계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대안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심선우씨(51)는 “원래 전공이 음악”이라며 “소외 계층 청소년과 다문화가정이 많은 지역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했다.
“교사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만나느냐가 문제인 것 같아요. 음악적인 부분과 가르치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수잔 시먼이 강조하는 것은 ‘인간 이해’라고 생각해요. 교사가 아이를 얼마나 존중하는지에 따라 아이가 음악가로서 첫발을 내딛느냐 내딛지 못하느냐가 결정된다는 걸 강조하는 것 같아요.”
이날 교육에는 다양한 분야의 선생님이 참석했다. 연극 강사인 박란주씨(52)는 “원래 엘 시스테마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소외 계층의 사람이라도 음악적으로 누구나 다 즐겁게 잘 살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 같아요. 수잔 시먼의 프로그램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인간관계를 중시한다는 거죠. 어린아이라도 존중해주면서 항상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참 좋았어요. 악기를 선택할 때에도 무조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조건이 맞는지도 보는 것 같더라고요. 플루트를 하는 친구라면 구강 구조를 살피고, 키가 큰 친구가 커다란 첼로를 맡는 식으로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교육 기간 내내 수잔 시먼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와우, 너무 잘했다” “완벽해요” “이것보다 더 잘할 순 없어” 같은 말을 하며 아이들을 다독였다. 출연자 대기실에서 만난 그는 에너지 넘치는 여자였다. 미국 마이애미 뮤직프로젝트 프로그램 총괄감독인 그는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시작해 엘 시스테마 창단 멤버로서 20여 년간 교육 활동을 해온 엘 시스테마 1세대다.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8단계에 이르는 오케스트라 교육 체계를 정립해 베네수엘라 전역과 전 세계로 확산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질문하면 알아듣지 못해도 눈을 빛내며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고, 통역을 통해 말을 전해 들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새로 엘 시스테마에 들어오는 학생 외에도 과거에 가르친 이들 대부분이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어요. 일부는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하죠. 과거에 참여한 학생은 전문 연주자가 돼 있거나, 여전히 엘 시스테마의 교육을 담당하며 세계 각지에서 엘 시스테마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한국에서 사흘간 학생들을 가르친 소감을 물었다.
“한국 학생들도 세계 각국의 여느 아이들처럼 귀엽고 똑똑하고, 선생님을 존경할 줄 알아요. 특히 한국 선생님이 짧은 시간에 아이들이 음악과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놀라웠어요. 아이를 어떻게 해야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지도 알고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제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다가오지 못했는데, 3일째 되는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요.”

무대에 오르는 순간 누구나 승자인 음악

수잔 시먼의 아름다운 음악 수업


그는 엘 시스테마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제가 이렇게 한국에 날아와서 엘 시스테마의 철학을 전하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이 모든 것을 만든 아브레우 선생님(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 엘 시스테마 설립자)이 하신 이야기가 있어요. 그분은 ‘엘 시스테마를 통해서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선생님이 정말 이상하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할까’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뚜렷한 확신이 있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혁명의 수단이 ‘음악’이었던 이유를 묻자 “일단 제가 음악가였기 때문”이라며 말을 이었다.
“음악을 하면서 내가 가진 가치, 나의 인생,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립할 수 있었어요. 제게 큰 자신감을 준 것도 바로 음악이었죠. 수많은 수단 중에 음악을 택한 이유요? 예를 들어 스포츠는 항상 경쟁하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승자와 패자가 나뉘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모두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 승리자가 될 수 있어요. 자신이 가진 음악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많은 시간을 음악에 투자한 노력, 성취감에 대한 승리는 청중의 박수로 보답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는 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 가족은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됐어요. 딸과 아들 모두 훌륭한 음악가로 자랐죠. 첫째 딸은 첼로 연주자로 마이애미 심포니에서 저와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둘째 딸은 스위스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있고요. 열여덟 살인 셋째 딸은 첼로, 열다섯 살인 막내아들은 트럼펫 연주를 하는데 모두 장래가 유망해요. 전 세계에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한자리에 모일 때면 이렇게 얘기해요. ‘엄마, 내가 이걸 해냈어. 그런데 그 이유가 뭔지 알아? 엄마에게 음악을 배운 덕분이야’라고요. 가족은 하나의 작은 오케스트라이고, 저는 그들을 이끄는 지휘자이자 어머니입니다. 4명의 아이들뿐 아니라 제 손을 거쳐 간 아이들의 어머니이기도 하고요.”
초기 엘 시스테마는 가난과 폭력, 마약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던 빈곤 계층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솔로보다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중심으로 음악 교육이 시행됨에 따라 거리를 떠돌던 아이에게 소속감을 심어주고 질서, 책임과 의무, 배려 등의 가치를 익히도록 도왔다. 악기가 없는 아이들은 합창부터 시작했다. 그를 통해 비로소 아이들은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물론 엘 시스테마를 시작할 때의 철학과 지금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걸음마를 하고 차차 뭘 할지 고민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엘 시스테마의 가장 큰 목표는 훌륭한 음악가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베네수엘라를 대표할 음악가가 없었거든요.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아주 많이 달라졌어요. 음악을 하나의 목표로 삼고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아이들도 많아졌고요. 17명에서 시작한 엘 시스테마는 40여년이 지난 지금 35만 명이 참가하는 큰 프로그램으로 발전했고, 음악으로 사회적 구호활동을 벌이고 개개인의 인생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한국에서의 활동 계획을 묻자 그는 “추후 조직위를 통해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공동 프로젝트가 전 세계에 음악을 전파하는 하나의 그룹이 되길 원해요. 사흘 동안 아이들과 공부한 결론이 바로 오늘 연주회라고 할 수 있죠. 아이들이 연주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나도 뭔가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여성동아 2011년 9월 5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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