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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ORY OF CEO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대표에게 아름다움의 길을 묻다

글·김명희 기자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11.08.17 11:08:00

사람이 살아온 이력은 자연스럽게 얼굴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대표는 편안해서 그 옆에 있으면 기분이 밝고 차분해진다. 여성으로부터 얻은 부를 여성에게 돌려준다는 소신을 지니고 나눔 경영에 앞장서고 있는 그를 만났다.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대표에게 아름다움의 길을 묻다


6월29일 서울 인사동 노암갤러리에서는 눈물 속에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생계가 어려운 여성 가장에게 저금리로 대출, 창업과 자립 기반을 마련해주는 ‘희망가게’ 백호점 개장을 기념해 조선희 작가의 사진전 ‘두 개의 像’ 전이 열린 것. 조 작가는 재활용센터·세차장·식당·의상실·미용실 등 1백 군데 가게를 일일이 누비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가장들의 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냈다.
희망가게 역대 창업주와 가족, 축하객들로 붐비는 미술관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점잖은 신사가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여성 가장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크게 웃으며 열심히 박수를 쳤다.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대표(48)다. 희망가게는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인 고(故) 서성환 회장의 유지에 따라 그의 가족들이 2003년 ‘아름다운재단’에 유산(당시 5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서경배 대표도 부친의 뜻을 받들어 추가로 세 차례 기금을 출연했으며, 아모레퍼시픽 임직원들은 일 년에 한 번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희망가게 기금으로 기탁한다.
아모레퍼시픽이 여성 복지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브랜드 히스토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서 대표의 할머니인 고(故) 윤독정 여사는 동백기름을 팔아 생계를 잇고 자녀들을 뒷바라지했는데 이것이 아모레퍼시픽의 시초가 됐다. 이날 서 대표도 할머니 이야기를 언급하며 “희망가게가 여성뿐 아니라 한 가정,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까지 바꿀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모인 희망가게 창업주들은 이를 통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또 이들 중 일부는 희망가게 다음 점포 오픈에 써달라며 성금을 내놓았다. 공식 행사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던 서 대표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사진집을 몇 권 구입했다. 이렇게 희망의 씨앗은 이심전심으로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 희망가게 오픈 때 사진집을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가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사진집을 구입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했습니다. 모두 좋아하고 감동하시더라고요.”
▼ 2004년 1호점을 연 희망가게가 7년 만에 1백 개로 늘었습니다. 소감은?
“백호점 오픈 기념식에서 만난 창업주들, 그리고 사진 속 주인공들이 치열하게 사는 모습이 참 멋져 보이더군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도록 희망가게를 가슴 깊이 응원하겠습니다. 또 그분들과 고객, 사회에 부끄럽지 않은 경영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 희망가게가 할머니의 삶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할머니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하게 말씀해주세요.
“할머니는 젊었을 때 아버지를 등에 업고 밥을 짓고, 동백기름을 짜 시장에 파는 고된 하루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어려움 속에서 일가를 이룬 어머님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여성의 자립 지원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하고요. 할머니는 사업 수완이 좋아 개성에서 서울까지 진출하긴 했지만 당신께서 운영하던 사업체를 크게 키우지는 못하셨죠. 그런데 할머니 밑에서 일을 배운 아버지는 태평양 너머로 진출하겠다는 꿈을 갖게 됐고, 현재의 아모레퍼시픽을 일구셨습니다. 대부분의 희망가게가 아직 작은 점포에 불과하지만, 자녀들은 어머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더 큰 꿈과 비전을 갖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 희망가게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다면.
“저희 회사에서는 매년 희망가게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바자회를 여는데 바자회가 끝나면 꼭 희망가게 1호점 ‘미재연 정든찌개’로 식사를 하러 갑니다. 그곳 부대찌개가 기가 막히게 맛있기 때문에 매년 바자회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웃음). 사실 저는 좋은 곳에서 식사할 기회도 많습니다만, 그곳의 부대찌개 맛은 그 어떤 고급 음식점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랐을 텐데도 재료를 그대로 넉넉하게 쓰시는 것 같더군요. 단골손님도 많아 최근에는 식당을 조금 더 확장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습니다.”

신제품은 꼭 써보고 품평, 아내와 두 딸도 도와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대표에게 아름다움의 길을 묻다

희망가게 1백호점 개장 기념 사진전에서 조선희 작가(오른쪽끝)가 서경배 대표, 박상증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왼쪽끝) 등 참석자들에게 사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코넬대 MBA 과정을 거친 서경배 대표는 87년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화학 과장으로 입사해 차근차근 경영 수업을 받은 뒤 97년 태평양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그가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 매출이 3.5배 이상 늘어 지난해에는 매출 2조5백85억원, 영업이익 3천4백2억원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설화수·라네즈·마몽드·에뛰드 등 거의 모든 라인이 연 1천억원 이상의 고른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브랜드 관리가 잘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제품 관리에 철저한 서 대표의 열정이 숨어 있다. 그의 집 욕실은 실험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온갖 화장품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물론 별도의 제품개발팀을 꾸리고 있지만 헤어나 기초 라인은 신제품이 나오면 반드시 직접 써보고 품평을 내놓는다.
아모레퍼시픽의 연구개발투자 비율은 매출의 3% 이상으로 에스티로더 1.1%, 시세이도 2.2%(2009년 기준) 등 외국 기업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여기서 비롯된 제품력을 바탕으로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5월 국내 화장품 회사 중에선 처음으로 ‘피부과학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피부과학술대회(WDC)’를 공식 후원했다. WDC 후원사로 채택됐다는 것은 세계 피부과 석학들로부터 아모레퍼시픽의 제품력을 공식 인증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요즘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외국 뷰티 기업들도 신제품을 출시하면 한국에서 반응을 테스트한다고 합니다. 한국 여성의 미적 수준을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한국 여성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높습니다. 다양한 제품을 써보고 품평도 많이 하며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이런 얼리어답터 성향과 적극적인 관심이 우리나라를 뷰티 강국으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 뷰티 기업 CEO로서 외모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실 듯한데, 특별한 미용 비결이 있나요.
“스킨케어의 기본은 클렌징이죠. 면도할 때는 얼굴 전용 클렌징 제품을 꼭 씁니다. 자외선은 피부 노화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므로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하게 바릅니다. 또 풍성한 헤어스타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방샴푸 ‘려’는 제가 가장 애용하는 제품입니다(웃음).”
▼ 남성으로서 여성을 주 고객으로 하는 기업을 운영하는 어려움은 없는지요, 또 아내와 자녀들의 의견도 제품에 반영하는지요.
“저희 가족은 자사의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하고 객관적인 품평을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우리 회사 제품으로 염색을 자주 합니다. 테스터인 거죠. 새로 나오는 제품이 있으면 항상 자극이 없는지, 제품력은 뛰어난지 반드시 써봅니다. 기업이란 ‘축구공 위에 서 있는 선수’와 같습니다. 공의 움직임에 적응하지 못하면 균형을 잃고 넘어지듯, 기업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고객에 대해 알지 못하면 시장에서 외면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항상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 태평양화학 과장으로 입사한 이래 24년이 흘렀습니다. 회사에 몸담은 후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1990년대 초반 회사의 체질을 개선했던 일이 가장 큰 도전이었습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창업 이래 줄곧 ‘대한민국 최고’라는 안일함에 사로잡혀 변화된 세상과 고객을 미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죠. 아버님과 저는 ‘만약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고민했고, 당시 아버님은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비로소 길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화장품과 관련 없는 사업을 단계적으로 정리하고 핵심 사업에 전력하기로 했죠. 십수 년간 지속해온 다각화를 포기하고 선택과 집중으로 방향을 선회한 터닝 포인트가 이때였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대표에게 아름다움의 길을 묻다


▼ 아모레퍼시픽은 보육 시설, 장학금 제도를 비롯한 자녀 교육 지원 등 직원 복지가 잘돼 있는 걸로 유명한데요, 이와 관련해 소신이 있다면.
“직장 생활이 즐겁지 않고서야 어떻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하루가 즐겁고 보람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고 이는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겁니다.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은 즐거움으로 가득 찬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인이 존경하는 기업에 근무하는 뿌듯함, 그 기쁨을 누리는 것이 바로 우리 회사의 임직원이 되게 하려고 합니다.”

여행과 독서로 재충전, 두 딸은 개성 존중하며 키워

서경배 대표는 경영·경제 등 업무와 관련된 분야 외에도 역사·문화·철학·미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빠르게 변화하는 화장품 시장의 조류를 파악하고자 거의 매달 해외 출장을 다니는데 그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한 달 평균 10권 이상의 책을 읽으며 책을 읽은 뒤에는 직원들이 이용하는 도서관에 기증한다. 직원들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을 때 책을 권하는 것으로 대신하거나 대량 구매를 해서 나눠주기도 한다. 또한 작가·탐험가·공연 기획자 등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초청해 임직원들과 함께 강의를 듣기도 한다.
화장품 기업답게 아모레퍼시픽은 여직원 비율이 60%에 이른다. 서 대표는 회사는 물론 가정에서도 온통 여자로 둘러싸여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의 막내딸 신윤경씨와의 사이에서 민정(20) 호정(16) 등 두 딸을 얻었다. 그러다 보니 ‘레이디 퍼스트’ 정신이 몸에 익었다.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여직원을 만나면 자연스레 먼저 타게 하고 짐도 들어준다. 그런 그가 여성 가장 지원 사업인 희망가게와 유방암 예방을 위한 핑크리본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 자상한 가장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소신이 있다면.
“저는 아이들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또 어떤 일을 하든 사회의 다양한 면을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으로 커가기를 바라고 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작가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어른들은 사물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는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세상 모든 청소년들이 ‘사물의 본질을 보고 그것을 통해 진리를 찾는 어른’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자유롭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종이나 방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신념과 자아의 자유’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네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말보다 ‘자유롭게 풀어놓는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 한창 여름 휴가 시즌인데, 가족과 여행이나 휴가 계획이 있으신지요?
“거의 매달 출장을 가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휴가를 내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합니다. 올해도 그럴 것 같습니다. 여행을 가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데서 시간을 보냅니다. 고객과 기업이 어떻게 만나는지, 유통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하거든요. 저는 호기심이 많고, 알고 싶은 게 많습니다. 그래서 음식도 항상 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것을 먹습니다. 양고기를 먹는 나라에 가선 양고기를 먹어야 하고, 생선을 절여먹는 데 가선 꼭 그 생선을 먹어봐야 합니다(웃음).”
▼ 인생의 멘토는 누구인지,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 말씀해주세요.
“아버님을 가장 존경합니다. 아버님은 ‘신용’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셨죠.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드리겠다는 고객과의 약속, 장기적인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거래처와의 약속, 일하기 좋은 일터를 제공하겠다는 직원들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또 ‘항상 남과 달라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원료와 성분, 판매 방식이나 기술 등에서 한발 앞서 생각하고, 우리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녀야 한다는 말씀이셨죠. 이런 아버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세계인의 마음속에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Asian Beauty Creator)’로 자리 잡기 위해 계속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여성동아 2011년 8월 5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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