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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재능 붕어빵 ②

사진작가 김중만 & 아들 김네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사진 시작했지만 언젠가 아버지 뛰어넘을 거예요”

글·김유림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1.08.17 10:44:00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 경쟁 구도를 이룰 때가 온다. 장성한 아들은 아버지를 뛰어넘기 위해,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정을 불사른다.
대학생 신분으로 잡지 발행을 준비하고 있는 사진작가 김중만의 아들 네오군은 아버지에 이어 사진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다짐하는 당찬 청년이다.
사진작가 김중만 & 아들 김네오


안락한 부모의 품을 떠나 햇볕도 들지 않는 지하 스튜디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사진을 찍는 스물두 살 청년이 있다. 바로 국내 최고 사진작가로 꼽히는 김중만의 아들 네오군이다. 그가 집을 나와 서울 홍대 부근 지하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유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과연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학생 신분으로 매체를 창간하려는 이유는 뭘까. 궁금한 마음에 그에게 인터뷰 요청 전화를 건 순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굵고 나지막한 목소리에 기자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 김중만의 목소리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목소리만 닮았다”며 머쓱해하던 그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를 직접 만난 날, 또 한 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가 작업실이라며 안내한 곳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 다닐 수 있는 좁은 계단 아래에 있는 작은 사무실. 공간은 세 파트로 나뉘어 있었는데, 입구에는 네댓 개 책상이 놓여 있고 왼편에는 벽면 전체를 흰색으로 칠해놓은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 옆으로 전자레인지와 커피포트가 마련된 소박한 식당도 있었다. 허름한 공간이지만 찬찬히 내부를 들여다보니 청년들이 모여 생활하는 공간치고는 제법 구색을 갖췄다. 카메라며 노트북 등 잡지를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장비가 모두 마련돼 있었다.
네오군은 현재 계원디자인예술대 사진학과를 휴학 중이다. 학업을 중단하면서까지 그가 잡지 창간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는 첫 사회생활에서 맛본 실패를 그냥 실패로 놓아두기 싫어서다.
“어려서부터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는 걸 좋아했어요. 아는 형이 잡지사에서 한번 일해보라고 해서 합류했는데, 한 달 만에 매체가 폐간됐어요. ‘그럼 내가 해보자’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이 일을 벌였죠. 아휴, 그런데 잡지를 만든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1년 가까이 준비만 하고 있거든요. 어떻게든 올해 안에 꼭 창간호를 낼 거예요(웃음).”

휴학하고 잡지 창간 준비 중인 당찬 청년

사진작가 김중만 & 아들 김네오


젊은 패기로 무작정 일을 시작했지만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잡지는 난항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네오군은 얼마 전 편집장 자리를 다른 친구에게 내줬다. 창간이 계속 늦춰지자 멤버들은 내부 회의에 들어갔고, 고문 노릇을 해주고 있는 업계 선배들의 의견도 참고해서 좀 더 현실감 있는 사람이 방향키를 잡기로 결정했다. “섭섭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친구들한테는 아니라고 했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마음이 많이 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생각해도 그동안 해온 일들이 너무 추상적이었던 것 같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현재 함께 일하고 있는 인원은 총 6명으로 모두 그를 주축으로 뭉쳤다. 사진과 글, 편집이 어느 정도 구분돼 있지만 대부분이 멀티플레이어를 자처한다. 에디터 중 한 명은 고교 시절 호주에서 유학하며 만난 친구고, 또 한 명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에디터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스스로 찾아온 경우다. 그와 함께 사진을 찍는 친구는 고등학생 시절 사진 전시회에서 만난 게 인연이 됐다.
잡지 이름은 ‘소바주’. 불어로 야생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식물들이 등장한다거나 오지 탐험을 콘셉트로 하는 것은 아니다. 네오군은 “본능에 가까운, 사람 냄새 나는 잡지를 모토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그가 진행한 촬영은 ‘한국 1세대 모델 화보’. 이는 80년대 우리나라 톱모델로 활동했던 어머니 이인혜씨의 전폭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촬영에 참여한 모델 이름을 묻자 그는 “성은 정확히 모르겠고, 미혜 이모, 명숙이 이모, 미숙이 이모 등”이라며 웃었다.
“어릴 때 자주 뵀던 분들이라 편하게 진행했어요. 모델들이 지춘희 선생님 옷을 입고 찍었는데 다들 능숙하게 포즈를 취해주시더라고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 밖에도 SBS ‘웃찾사’ 개그맨들, 사진작가 강영호, 가수 김장훈 등의 화보를 진행했다. 김장훈은 촬영을 마치고 식사를 하다가 거금 5백만원을 주고 광고 한 페이지를 사기도 했다. 대신 광고 내용이 ‘김장훈이 세상에서 노래를 가장 잘 부른다’는 거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광고물 작업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인터뷰나 촬영 섭외 과정에서 아버지의 인맥이 동원되는 경우는 없는지 궁금한데, 그는 “간혹 있다”며 솔직하게 말했다.
“평소에는 제가 아버지 아들이란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춰요. 물론 제 이름이 특이해서 간혹 먼저 알아봐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요. 그런데 꼭 해야 하는 섭외가 잘 안 될 때, 마침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분이라면 바로 SOS를 치죠(웃음). 그렇지 않은 건 전부 저희가 알아서 해요.”
지난겨울 아버지의 요청으로 세계적인 사진작가 마이클 케냐와 일주일을 함께 보내는 행운을 얻었다. 한국의 풍경을 찍고자 방한한 케냐를 그가 운전기사 자격으로 가이드한 것. 더욱이 평소 그가 가장 존경해온 사진작가이기에 네오군은 그와 지낸 일주일이 꿈만 같았다고 한다. 더불어 이런 기회를 준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케냐의 사진도 좋아하지만, 함께 생활해보니까 인간적인 매력이 더 크게 와 닿더라고요. 보통 예술 하는 사람들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고독하거나 우울한 경우가 많은데, 케냐는 정말 밝고 동네 아저씨 같은 털털함을 지녔어요. 눈이 많이 내려서 자동차에 체인을 끼워야 했는데, 제가 잘 못해서 낑낑대니까 선뜻 팔을 걷어붙이고 체인을 감더라고요. 눈밭에서 구르면서 사진 찍는 모습도 정말 멋졌어요(웃음).”



사진작가 김중만 & 아들 김네오


작업실 임대료를 비롯해 잡지 제작, 생활비로 드는 비용은 6명의 멤버가 함께 충당하고 있다. 집에서 받는 용돈과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 대부분을 털어 넣는다. 금액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고 각자 능력이 되는 한도에서 내놓기로 했다. 네오군은 작업실이 일터이자 집이기에 다른 멤버들에 비해 조금 더 돈을 내고 있다.
그가 집에서 독립한 지 어느덧 4년이 됐다. 안양예고 재학 중 홍대 부근에 방을 얻어 자취 생활을 시작했는데, 잡지를 창간하기엔 공간이 너무 좁아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지금은 지하이긴 하지만 세 배 정도 넓고 월세도 크게 차이 나지 않아요. 아주 잘 구했죠(웃음). 천장이 높아서 스튜디오로 사용하기에도 적당하고요. 대신 냉기가 좀 올라와요(웃음). 저희는 일정한 틀이나 규정을 만들어놓지 않아요.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고 주5일 근무는 기본이죠. 주말에는 연애도 하고, 청춘을 즐겨야 하니까요(웃음). 그래서 그런지 저희는 팀원끼리 다투거나 의견이 안 맞아서 불화가 생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고교시절 처음 기획한 사진전으로 ‘대박’

그가 따로 살겠다고 했을 때 부모는 반대하지 않았다. 이미 중학생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서 혼자 지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이 없었다. 집에는 아주 가끔 들르는데 아버지를 만나려면 스튜디오로 찾아가고 어머니를 만날 때는 청담동 커피숍을 주로 찾는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며 웃었다.
잡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의 만남도 부쩍 늘었다. 종종 자신이 찍은 사진을 들고 아버지가 계신 스튜디오로 찾아가는데, 그럴 때면 그는 아버지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 애쓴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도 예전에 잡지 작업을 많이 하셨다. 그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은데 그러려면 자존심은 접고 대선배로 깍듯하게 모셔야 한다”며 웃었다. 그에 반해 김중만은 아들이 내민 사진을 볼 때면 디테일한 설명 없이 “화이트가 너무 강하다. 배경이 너무 어둡다” 등 큰 맥락만 잡아준다.
네오군은 사진을 접하기 전까지 다소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열일곱 살에 호주로 유학을 떠났지만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그는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아버지의 권유로 안양예고 사진학과에 입학했다. 괜한 반항심에 어린 시절 ‘사진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막상 사진을 접하자 미처 알지 못했던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고2 때 용돈을 벌 요량으로 직접 기획한 사진전이 소위 ‘대박’이 나면서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어느 날 ‘프로 작가만 사진을 팔라는 법이 있나. 나도 한번 팔아보자’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구사진비엔날레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친구들을 모았죠. 저희 학교와 한강미디어 고등학교 사진과 학생들이 참여했는데 당시 전시회 타이틀은 ‘Made in Seventeen’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창피한데, 어떻게든 작품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에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호객 행위를 심하게 했어요(웃음). 국제 중학교를 나온 덕분에 프랑스어와 영어가 어느 정도 가능하거든요. 작품 한 점당 10만원이었는데, 이날 내놓은 50점이 전부 다 팔렸어요. 정말 기분이 최고였죠.”
첫 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치자 그 여세를 몰아 두 번째 전시를 기획했다. 구서울역에서 열린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에 참가했는데 이번에는 41점 중 단 4장만 판매되는 굴욕을 맛봤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고3 때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결과는 대성공. 매진을 넘어서 재주문까지 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듯 세 번의 전시를 기획하며 그는 자연스럽게 사진에 미쳤다.
“스스로 사진 찍는 걸 즐기게 됐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 학교 수업 과제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아름다운 피사체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한 거죠. 솔직히 처음 사진과에 들어왔을 때는 카메라를 켜는 법밖에 몰랐어요. 아버지도 따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카메라 다루는 법을 혼자 터득했어요.”

아버지에 대한 부담감 이제 자부심으로 바뀌어
아버지에게 사진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따르면 그의 사진은 아버지의 사진과 매우 닮았다고 한다. 나무와 풍경 등 자연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야생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도 비슷하다. 이는 어린 시절 2년 가까이 아버지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면서 받은 자연스러운 영감일지도 모른다. 1999년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로 떠난 김중만은 현재도 아프리카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넓은 들판에서 흑인 꼬마 아이들과 달리기 시합도 하고 재미있게 보냈죠. 아프리카 음식도 입에 잘 맞아서 1년 동안 살면서 살이 많이 쪘던 기억이 나요(웃음).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어린 나이였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가끔은 위험한 상황도 벌어졌어요. 밤에 스트로보를 터뜨려서 놀란 하마가 갑자기 돌진해와 죽을 뻔한 적도 있고, 돛단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악어가 득실거리는 걸 보고 기겁하기도 했죠. 왜 이런 고생을 하나 싶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평생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한때 네오군은 아버지가 김중만이라는 사실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아버지에 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는데 친한 친구가 “혹시 아버지가 조폭이냐”며 조심스레 물은 적도 있단다. 지금은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많이 벗어났다. 그는 “내 아버지가 유명한 사진작가 김중만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아버지에게 덤비는 것이다.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는 훌륭한 사진작가가 되려면 열심히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고 당차게 말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커진다고 한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조금도 식지 않은 열정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그는 “아버지는 정말 사진에 미친 분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습은 자식이기 이전에 같은 남자로서 존경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임이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사진작가 김중만 & 아들 김네오

잡지 ‘소바주’를 만들고 있는 열혈 청년들. 왼쪽에서부터 사진 박지훈(22), 에디터 김아름(22), 미술디자이너 김재원(21), 사진 김네오(22), 편집장 김한나(26), 에디터 장호성(22).



여성동아 2011년 8월 5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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