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로 아홉 살인 태욱이는 늘 또래보다 머리 하나쯤 키가 작았다. 유치원 때는 ‘다람쥐’ 같은 별명을 달고 살았고 가끔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날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그런 게 사라졌지만 은연중 ‘나는 작은 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키가 작은 것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자신감 부족이 성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됐다. 병원을 찾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신장증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받는 게 낫고, 그게 아니라면 아이에게 위안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성장판 엑스레이, 고환 크기, 척추측만증 등 다양한 검사
병적으로 키가 작은 아이들만 성장클리닉을 찾는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 가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한눈에도 그리 작지 않고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성장클리닉을 방문했다. 성조숙증, 성장판이 일찍 닫힌 경우, 척추측만증 등 원인도 다양했다. 요즘 부모들은 워낙 자녀의 키에 민감해서 조금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도 바로 전문가를 찾아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으며,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클지 궁금해서 찾아오는 부모들도 많다고 한다.
검사는 문진표를 작성하고, 키와 몸무게, 체성분을 측정한 뒤 혈액 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을 통한 성장판 검사 순으로 진행됐다. 전문의의 소견상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소변 검사와 성장호르몬 분비 검사, MRI 검사 등을 통해 만성 질환이나 성장호르몬 합성과 분비 등에 이상이 없는지 등을 확인해야 하지만 태욱이의 경우는 그런 특이 소견이 없어 정밀검사는 받지 않았다.
문진표에는 출생 시 키와 몸무게, 부모와 조부모의 키와 몸무게 등 가족력, 최근 1년 성장 정도 등을 자세히 기재하도록 돼 있다. 키와 몸무게를 규칙적으로 측정한 기록이나 그동안 앓았던 질병을 기록한 성장 일기가 있다면 유용할 듯하다.
2003년 11월생, 만 7년7개월인 아들의 키와 몸무게는 124.1cm, 29.1kg. 표준보다 키는 3~4cm 적고, 몸무게는 4kg 정도 많이 나갔다. 체성분 검사상으로도 단백질·무기질 등 다른 성분에는 문제가 없지만 근육에 비해 지방질이 너무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 체성분 검사 결과를 받고 나서 곧바로 전문의와 상담에 들어갔다. 박미정 상계백병원 교수가 직접 태욱이의 상태를 진찰했다.
박 교수는 먼저 청진기로 기본적인 검사를 한 뒤 고환의 크기를 측정하고, 등을 굽히도록 해 척추 발육 상태를 살폈다. 제 나이에 비해 고환의 크기가 크면 사춘기가 빨라져 키 성장이 일찍 멈출 수 있고, 흔하지는 않지만 고환의 크기가 지나치게 작고 비만인 경우엔 프레더윌리증후군이라는 성장 장애 질환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또한 척추가 S자나 C자로 휘어진 척추측만증의 경우에도 키가 작아 보이거나, 이로 인해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다행히 태욱이는 이런 부분에서 모두 이상이 없었다.
상담을 받는 동안 혈액 검사와 엑스레이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혈액 검사에서도 특이 소견은 없었고 성장판 엑스레이 검사에서는 뼈 나이가 7년2개월로, 자신의 나이에 비해 뼈 성장 속도가 5개월 정도 늦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태욱이는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는 속도도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씩 느렸다. 전반적으로 태욱이는 성장과 관련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제 나이보다 뼈 성장 자체가 5개월 정도 느린 데다 11월생으로 생일도 늦은 편이라 다른 친구들보다 키가 훨씬 작아 보였던 것이다.
칼슘 흡수를 도와 뼈 성장을 촉진하는 비타민 D는 자외선을 통해 만들어지므로 밖에서 1시간 이상 햇빛을 쬐며 뛰어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다. 부모의 키 등을 기준으로 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살펴보면 태욱이가 성인이 됐을 때 예상 키는 176cm. 요즘 기준으로 볼 때 그리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다행히 예상 키는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 ± 5cm 정도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노력 여하에 따라 키를 더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아들이 키가 작은 원인은 여러 가지로 유추해볼 수 있지만, 일단 임신 38주 만에 2.5kg, 44cm로 표준에 비해 5cm 정도 작게 태어났는데 지금껏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미정 교수에 따르면 저체중이나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 중 80% 정도는 자라면서 정상아로 태어난 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만, 20% 정도는 끝내 극복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영양 섭취를 하게 했다가는 비만이 되기 십상이고 그 경우 역효과가 나기 쉬우므로 비만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충분한 운동을 병행하면서 키를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부족한 야외활동과 수면시간이 문제
또 충분치 못한 수면 시간도 문제였다. 학교가 끝난 뒤 학원 세 군데를 돌고 집에 돌아와 숙제 하고 잠드는 시간이 보통 밤 11시, 일어나는 시간이 오전 8시다. 잠을 자는 동안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걸 감안하면 수면 시간이 턱없이 짧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하루 10시간 정도 수면이 적절하다고 한다.
영양 면에서 큰 문제는 없지만 우유 섭취량을 조금 늘릴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태욱이는 우유를 하루 350~400ml 정도 마시는데 600ml 정도까지 섭취량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유는 양질의 단백질과 칼슘이 흡수가 잘되는 형태로 들어 있기 때문에 ‘키 크는 데 최고 음식’이라는 것이 박미정 교수의 설명이다.
생활습관에도 문제가 있었다. 태욱이는 낮 시간 동안 주로 교실, 학원 같은 실내에서 생활하는데 이는 성장 측면에서는 좋지 않다고 한다. 칼슘 흡수를 도와 뼈 성장을 촉진하는 비타민 D는 자외선을 통해 만들어지므로 밖에서 1시간 이상 햇빛을 쬐며 뛰어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하루 1시간 이상 충분히 운동하면 작았던 키를 만회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박 교수의 말에 태욱이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태욱이는 앞으로 매달 규칙적으로 키 성장 정도를 체크한 뒤 6개월 후 다시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기로 했다.
Check Point
1 키와 몸무게 측정
2 체성분 측정
3 혈액 검사
5 청진기로 기본적인 검사
6 척추 발육 상태 확인
■ 도움말·박미정(상계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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