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정말 무상급식 반대야?
“아니, 왜 한 달에 몇백만원 과외를 받는 집 아이들한테까지 공짜밥을 주니?”
“언니는 벌써 영국사람 다 됐다니까. 우리나라는 안 돼. 비밀이라는 게 없다고. 요즘 아이들이 어떤 줄 알아? 야, 너, 우리 부모님이 세금 낸 걸로 공짜밥 먹는 거지? 그러면서 가난한 집 아이들을 상처 준대. 우리나라는 절대 영국처럼 비밀이 지켜질 수 없다고!”
얼마 전 한국에 사는 동생과 나눈 얘기다. 영국은 유상급식을 실시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무상급식을 한다. 동네마다 부의 차가 있어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의 수는 학교 별로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누구인지 학교 직원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필자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 반 아이들 중 누가 유상으로 급식을 받고, 누가 무상으로 급식을 받는지 알지 못한다.
학교급식 담당자에게 어떤 아이들이 무상급식을 받는지 물어봤다. 일단 매년 학부모에게 일괄적으로 무상급식을 받을 수 있는 정보가 이메일로 보내진다. 부모들은 그 정보를 읽고 그 요건(부부 합산 연 소득 3천만원 이하)에 해당하면 지역 구청에 신청서를 낸다. 지역구청에서는 이들이 작성한 자료의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아이가 무상급식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에 알린다.
모든 아이가 급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 절반 정도는 도시락을 싸오고 절반 정도는 학교에서 먹는다. 식당이 카페테리아 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어떤 메뉴를 고르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계산을 할 때는 충전해서 쓰는 카드를 쓰는데, 모두 똑같은 카드를 쓰기 때문에 아무도 누가 공짜 밥을 먹는지 모른다. 학교 담당자한테 그동안 무료로 밥을 먹는 아이들 중 다른 아이들이 알게 돼 곤란에 빠진 경우가 있었냐고 묻자, 자신이 아는 바로는 없다고 했다. 한국 학교도 이렇듯 시스템적으로, 누가 무상급식을 받는지 알 수 없도록 개선을 하는데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영국 학교는 교사가 직접 급식을 하기도 한다. 도시락을 싸오는 아이들은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다.
누가 무상급식 받는지 담당자 외에 아무도 몰라
사실 영국에서는 수업에 필요한 연필, 펜 정도는 개인이 챙겨오지만 교과서나 수업에 필요한 학용품은 전부 학교에서 준다. 미술재료, 재봉 실습에 필요한 옷감, 수학시간에 필요한 모눈종이까지 전부 학교에서 제공한다. 학교에서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는 준비물을 잘 챙겨오고, 어떤 학용품을 쓰느냐로 표가 나는 법인데 여기서는 표가 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넉넉지 못한 집안 살림에 서로 물감을 가져가겠다고 오빠, 동생이랑 싸우다가 그냥 학교에 가 벌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 필자로서는 모든 학용품을 학교에서 다 제공하는 영국 학교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무상급식에 쓰일 돈의 ‘일부’로 한국도 이렇게 변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지식을 배우는 학교에서 지식과 관련된 재료를 챙겨 주는 것, 그것이 더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은영씨는…
한국에서 수학과를 졸업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통역일을 했다. 영국회사에서 일하면서 남편을 만나 영국으로 이주, 중·고등학교에서 7학년부터 13학년까지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생 아들이 하나 있으며 저서로 ‘나는 런던의 수학선생님’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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