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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사망 20주기 아들 김완제가 부르는 사부곡

글·정혜연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밀키웍스 제공

입력 2010.12.16 17:53:00

세상을 떠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누군가 기억해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있을까. 그런 면에서 가수 김현식은 행운아다. 간경화로 세상을 뜬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와 그가 부른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 김현식 사망 20주기를 맞아 앨범을 내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아들 김완제를 만났다.
김현식 사망 20주기 아들 김완제가 부르는 사부곡


1990년 11월1일, 가수 김현식은 서른둘의 짧은 일기를 마감했다.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남긴 명곡을 따라 부르고 있다. 생전 김현식과 호형호제했던 가수 김장훈은 그의 기일에 맞춰 ‘레터 투 김현식’이라는 앨범을 발매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김현식의 아들 김완제(28)와 함께 KBS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 그를 추억하며 노래를 불렀다. 아들 김완제는 아버지와 달리 깨끗하고 맑은 목소리를 가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그 자리에서 “이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수의 길을 걸으려 한다. 아버지와 같이 10년, 20년이 지나도 김완제라는 가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는 이들이 생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방송 이후 11월 중순, 내년 초 열릴 김현식 추모 콘서트 준비로 바쁜 김완제를 어렵사리 만났다. 생전의 김현식과 닮은 듯 다른 얼굴의 김완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밝고 당당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는 “아버지 이미지 때문인지 저도 비슷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아버지의 부재로 아들이 음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며 웃음 지었다.
“사람들은 다들 제가 힘들게 자랐을 거라 생각하시더라고요. 김현식 아들이라고 하면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시는 분도 많은데 그럴 때면 참 당황스러워요. 전 오히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거든요. 친가, 외가에 친척 분들이 많은데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신 뒤로 더 많은 사랑을 주셨어요. 그래서 사실 아버지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지 못한 채 자랐어요. 빈자리를 느낀다면 오히려 몇 년 전부터 가수 준비를 하면서 조언을 구할 데가 없을 때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할 뿐이죠.”
사비를 들여 대대적으로 헌정음반을 발매한 김장훈 외에도 지난 5월 많은 후배가수들이 김현식을 기리며 헌정음반 발매에 참여했다. 아직까지도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 대해 김완제는 “놀라울 따름”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늘상 하는 대답이긴 하지만 아버지를 기억하고 노래를 따라 불러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전 여덟 살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아요. 대신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셨던 김장훈 삼촌, 김종진 아저씨 등 많은 분들이 당시의 일화를 이야기해주시니까 그런 분이셨구나 하고 조금 더 이해를 하게 되죠. 그분들 덕분에 저도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게 돼 정말 감사해요.”

무대에 올라가기 싫다던 꼬마, 이제는 무대 갈망해
91년 12월 열린 제6회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 시상식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김완제의 어린 시절을 절로 떠올릴지도 모른다. 김현식이 세상을 떠나고 난 이듬해 발매된 6집 앨범 수록곡 ‘내 사랑 내 곁에’는 큰 인기를 얻으며 5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근 1년 가까이 선풍적인 인기를 이어가다 결국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당시 김현식을 대신해 아홉 살이던 김완제가 시상식에 올라 대리 수상했는데 그 모습이 많은 이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김완제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너무 어릴 때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그때 올라가기 싫다고 많이 울었대요(웃음). 객석에 사람들도 많고 카메라도 돌아가고 있었으니 어린 마음에 많이 놀랐던 모양이에요. 결국 어찌어찌 해서 무대에 올라갔는데 신기하게도 올라가서는 울지도 않고 곧게 걸어 나가 상을 받더래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제가 상을 받은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김현식 사망 20주기 아들 김완제가 부르는 사부곡


‘내 사랑 내 곁에’는 가요계 역사에 있어서, 또 김완제에게 있어서도 뜻 깊은 곡이다. 이 곡은 원래 88년 당시 ‘신촌블루스’에서 기타연주를 맡았던 오태호가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었는데 이를 우연히 들은 김현식이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해 그에게 건네졌다. 이후 김현식은 6집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고 정식 녹음 전 가녹음을 해놓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사망했다. 때문에 이 곡은 완성되지 못한 채로 앨범에 실렸는데 뜻하지 않게 많은 인기를 얻었고 그해 연말에는 캐럴보다 더 많이 불렸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김완제는 지난 5월 이 노래를 직접 불러 헌정앨범에 수록했는데 아버지의 노래를 부르는 심경이 남달랐을 법했다.
“솔직히 말하면 부르고 싶지 않았어요. 부르기 싫은 건 아니지만 좋은 곡을 망치는 건 아닌가 하는 부담감이 너무도 컸거든요. 오랫동안 가수 준비를 하긴 했지만 아버지가 부르신 그 느낌 그대로 부르기란 아직도 많이 모자란 것 같아요. 제 목소리가 아버지 1·2집 때 목소리와 비슷한데 워낙 미성이다 보니 ‘김현식 아들 맞냐’고 하시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1·2집 때 아버지 목소리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비슷하다고들 하시죠.”
김완제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허스키한 목소리와 우수에 찬 눈빛의 김현식 모습은 쉽게 오버랩되지 않는다. 오히려 김완제의 고운 피부와 날렵한 눈매가 정반대 이미지를 갖게 한다. 어린 시절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그 때문인지 김현식은 아들에게 항상 엄했다고 한다.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굉장히 무서우신 분’이에요. 어릴 때 집에 이모·고모 등 여자 친척 분들이 많이 오시고 교류도 빈번해서 오냐오냐 컸는데 아버지는 외동아들이었던 제가 꽤 걱정되셨던 모양이에요. 이유 없이 혼날 때도 많았고, 남자답게 말하고 행동하는 법에 대해 자주 알려주셨던 기억도 나요.”
일찍부터 음악활동을 했던 김현식은 김장훈·김종진·전태관 등과 오랜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그중 김장훈은 서로의 어머니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터라 김현식의 집에서 거의 형제처럼 지냈다고. 김완제는 가수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이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고 음악적으로 도움을 구하며 친분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장훈이 삼촌은 초등학교 때까지 정말 친삼촌인 줄 알았을 정도로 자주 뵀었죠. 그런데 다들 바빠지시고 저도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동안에는 연락이 자연스레 끊겼어요.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가수 준비를 하던 차에 제가 먼저 그분들께 연락을 드렸고 지금까지 교류하고 있죠. 몰랐는데 사진작가 김중만 아저씨도 아버지와 친구셨다며 제게 잘하라는 격려를 해주셨는데 이런 의외의 만남을 통해 관심을 받을 때면 참 감사해요.”
가요계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수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많다. 대부분 20대 초반을 전후로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하는 것에 반해 김완제는 군대를 다녀온 후부터 가수 준비를 시작했다. 왜 이렇게 늦게 결심하게 된 걸까.
“실은 전혀 음악에 뜻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제가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하길 바라셨고 덕분에 저도 특별히 음악 쪽으로는 눈을 돌릴 기회가 없었죠. 고등학교 1학년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는데 7년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며 한국과는 점점 멀어졌던 이유도 컸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에 관심에 많아서 그쪽 관련 공부를 계속하려고 했는데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해서 결국 대학은 못 갔어요. 그렇게 지내던 차에 병역 문제로 한국에 들어오게 됐죠.”



2004년 입대한 김완제는 오랜 외국 생활에도 불구하고 적응을 잘했다고 한다. 오히려 너무 적응을 잘해서 부대 내에서 유명인사가 됐을 정도. 군대 장기자랑 시간에 나가서 노래를 불렀는데 이를 본 선임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군 내 노래방 기계에 신청곡을 넣어 노래를 부르게 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완제는 차츰 가수의 꿈을 품기 시작했다.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였어요. 제대를 하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건지도 정하지 못하고 있었죠. 상당히 막막했는데 군대에서 선·후임들이 자꾸 제게 노래를 잘한다고 하니 ‘그럼 이쪽으로 나가볼까’ 싶더라고요. 제대를 앞두고부터는 그런 생각이 점점 강해져서 제대 하자마자 가수 준비를 하기 시작했죠.”

김현식 사망 20주기 아들 김완제가 부르는 사부곡


방황 끝에 선택한 가수의 길
한국에 정착한 뒤 여러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던 김완제는 한 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음반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즈음 소속사의 상황이 안 좋아져 결국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음반을 발매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이후 다른 소속사에 들어갔지만 또 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결국 올해로 계약이 종료됐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김완제는 정식으로 가수 데뷔를 하지 못한 채 곡 작업과 노래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다.
“후회하지 않냐고요? 전 오히려 그동안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제게 약이 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소속사 사장님들도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니라 사정이 안 좋아서 그렇게 된 걸 뭐라고 할 수 없잖아요. 지금까지도 형 동생으로 잘 지내고 있고 잘될 거라고 격려해주고 계세요. 음악에 대해 무지했던 제가 4년 동안 음악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죠. 하지만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내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꼭 음반을 내고 정식으로 데뷔할 생각이에요. 그동안 음악 하느라 관리를 소홀히 해서 체중이 많이 불었는데 이제 슬슬 다이어트도 시작하려고요(웃음).”
제대를 하면 곧장 유학을 가라고 말하던 그의 어머니도 이제는 아들의 든든한 지원자가 돼주고 있다고. 김완제는 어머니가 음악인의 인생이 어떤지 직접 곁에서 지켜본 터라 아들이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지만 다 큰 아들의 뜻을 꺾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생각에 묵묵히 지켜보는 쪽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완제는 현재 내년 초에 열릴 김현식 추모 콘서트에 오르기 위해 노래 연습 중이다. 공연에는 김장훈을 비롯해 많은 후배 가수들이 참여할 예정이라고. 그는 끝으로 자신이 꿈꾸는 가수 상에 대해 진솔하게 말했다.
“가수 준비를 하면서 항상 아버지와 함께 거론되는 것이 부담스럽고 걱정되기도 해요. 제 소원은 ‘김현식 아들이라 노래 참 잘하네’라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주변에 노래를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저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KTX를 타고 가는 기분이 들어요. 우위에 있다는 건 그만큼 득이 될 수도 있지만 실이 될 수도 있거든요. 반드시 실력 있다는 평가를 듣고 싶고, 또 10년 20년이 흘러도 ‘김완제’라는 가수가 있었다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전 만족할 것 같아요.”

여성동아 2010년 12월 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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