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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억원 기부’ 원로배우 신영균 아름다운 선택

글·정혜연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신영균 제공

입력 2010.11.16 14:08:00

자수성가해 번 5백억원이라는 큰돈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1960·70년대 한국영화계를 풍미한 원로배우 신영균. 정치인·치과의사보다 영화배우로 살았던 18년이 일생 중 가장 행복했다는 그는 자신의 재산이 한국 영화계 발전에 보탬이 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한다.
‘5백억원 기부’ 원로배우 신영균 아름다운 선택


지난 10월 초, 인터넷은 온통 ‘5백억원 기부’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누리꾼들은 도대체 누가 이런 엄청난 결심을 했는지 궁금해 했고, 사연의 주인공인 원로배우 신영균(82)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을 내놓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신영균은 1960·70년대를 풍미한 영화배우. 영화 ‘연산군’ ‘빨간마후라’ 등 총 2백9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 한국 영화역사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더불어 그는 서울대 출신 치과의사이자 제15대,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영화계 은퇴 후에는 예술행정가를 거쳐 재단법인 신영문화재단을 창립, 장학사업과 영화인재 발굴에 힘쓰기도 했으며 제주방송, SBS프로덕션 등의 주주로 지내며 예술문화와 미디어산업의 경영발전에도 열정을 바쳤다. 기사 발표 직후 만난 신영균은 “저를 아껴주신 분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가고 싶었습니다”라며 기쁜 심경을 드러냈다.
“김수용 감독이 저만 보면 ‘재벌, 재벌’ 합니다만 전혀 아니에요. 물론 영화배우로서는 돈이 좀 있는 편이죠. 그렇지만 전문경영인이나 일반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에 비하면 천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 돈이라는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신영균이라는 배우를 있게 해준 영화 관계자분들,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도와준 우리 가족, 그리고 항상 축복해주신 하나님… 이분들이 훨씬 중요하죠. 오래전부터 모두에게 어떻게 보답을 할 수 있을까 고심한 끝에 기부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가 이번에 기부한 재산은 대지를 포함한 총 2개의 건물. 하나는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명보극장으로 이곳은 지하 6층, 지상 6층의 영화관 중심 복합공연시설이다. 이 지역이 현재 재개발 예정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미래가치는 지금의 두 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나머지는 제주도 해안의 관광 절경지에 위치한 신영영화박물관. 희귀 영사기자재와 영화 실물소품 등 중요 수집품 9백여 점(추정 가치 약 1백억 원)을 전시하고 있는데 신영균은 박물관 시설물과 전시물 전부를 기부 재산목록에 포함시켰다. 그가 기부한 재산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박종원 총장과 영화계 관계자들의 논의를 거쳐 설립된 재단을 통해 한국영화 발전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어려운 결정 뒤엔 항상 뜻에 따라준 아내 있어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맨몸으로 한평생 일해서 5백억원이라는 돈을 손에 쥐기 쉽지 않다. 그 역시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 어려운 형편에서 자랐다고 한다. 때문에 그의 성공은 더욱 대단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신영균은 모든 공로를 아내 김선희씨(76)에게 돌렸다.
“어릴 때부터 영화배우를 꿈꿨기 때문에 평생 연기를 하다가 죽고 싶었습니다. 제겐 그것이 큰 영광이지만 어느 날 불현듯 ‘내 식솔은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어요. 가족을 위해 부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명보극장 옆에 빵집을 차린 것이었죠. 저는 촬영을 다니느라 바빠서 주로 아내가 빵집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의상을 챙겨주고, 스케줄을 잡아 주는 등 요즘 말로 매니저 역할까지 다 했어요. 버는 돈은 모두 아내에게 가져다줬고 아내가 알뜰하게 관리한 덕분에 33년 전 명보극장을 인수할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매 순간 아내가 없었더라면 저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5백억원 기부’ 원로배우 신영균 아름다운 선택

1 그가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초창기 때 찍은 가족 사진. 2 기부를 결정하는 데 힘이 돼준 그의 가족. 왼쪽부터 딸 혜진, 부인 김선희, 신영균, 손녀 시진, 며느리 임치주, 아들 언식씨.



그는 군장교로 근무하던 56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당시 신영균은 서울대 치과대학을 마치고 입대를 한 상태였고, 아내 김선희씨는 치과의사인 그와 결혼하면 끼니는 거르지 않을 거란 생각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제대 후 잠시 치과의사로 일하다가 60년 영화 ‘과부’로 데뷔, 영화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남편의 돌연한 선택에 아내 김씨는 “그를 믿었기에 그 뜻을 따랐다”고 한다.
“남편이 영화계로 뛰어들 때 제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난 당신이 치과의사라 결혼했지 소위 말하는 딴따라와는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일을 하더라도 평생 가족을 위해 살겠다는 약속만큼은 꼭 지켜달라’고요. 그랬더니 남편이 ‘절대로 당신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죠. 이후로 저도 남편을 믿고 평생을 하늘처럼 모시고 살았습니다. 남편이 영화배우로 활동해서 여자문제가 많았을 거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단연코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곁에서 아내의 이야기를 듣던 신영균은 “나는 행복한 사나이”라며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우리 집사람은 저하고 50여 년을 살면서 한 번도 제 뜻을 어겨본 적이 없었어요. 일평생 열심히 나를 내조한 사람이에요. 아마도 남편을 이렇게 잘 내조한 경우는 요즘 같은 시대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찾기 힘들 거예요. 이번에 기부를 결심했을 때도 ‘장한 일 하시는 거예요’라고 말해줘서 얼마나 기뻤는지…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습니다.”
아내를 끔찍이 아끼는 신영균은 2006년 금혼식을 맞아 행복한 결혼생활을 자축하는 의미로 잔치를 크게 벌일 생각이었다고 한다. 환갑·칠순 모두 가족과 조촐하게 보낸 터라 금혼식만큼은 성대하게 치르고 싶었다고. 몇 달 전부터 호텔을 예약하고 친분이 있는 영화인과 정치인을 초대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는 돌연 이 성대한 금혼식 일정을 취소했다.
“금혼식이 있기 일주일 전 ‘이 모든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로 우리가 여태껏 우리만을 위해 먹고 살았지 남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화려하게 금혼식을 치르고 하루 동안 많은 돈을 다 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보다 여러 사람들과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눠 먹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길로 1억원을 들고 신문사로 가져갔고, 불우이웃성금으로 냈어요. 그때 ‘좋은 일을 하면 이렇게 행복하구나’라는 걸 생전 처음 느꼈습니다.”



“정치인·치과의사보다 영화배우란 타이틀이 제일 좋습니다”
기부로 세상에 다시금 이름이 알려졌지만 신영균을 알기 위해선 몇 차례 검색이 필요했다. 60·70년대에 영화배우로 활동했던 그는 오늘날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요즘 기자들은 영화배우 신영균하면 잘 모르실 겁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는 아마 잘 아실 거예요. 60년에 시작해서 78년에 은퇴하기까지 ‘빨간 마후라’ ‘연산군’ ‘미워도 다시 한 번’… 뭐 이런 영화를 찍었죠. 그때는 요즘같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특수 촬영하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참 어렵게 촬영했어요. ‘5인의 해병’을 찍을 때는 특수 효과를 낼 장비가 없어서 실탄을 장착한 진짜 총을 쏴야했을 정도였죠. 그렇게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촬영한 덕분인지 그해 동남아에서 열린 아시아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까지 받았어요(웃음).”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던 그는 영화계에 입문하기 오래 전부터 연극무대에 오르며 실력을 쌓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극단 ‘청춘극장’에 입단, 신극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연기의 기본을 다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하자 연기에 대한 꿈은 잠시 접어야 했고 공부에 몰두해 서울대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식지 않는 연기 열정으로 직접 총학생회 연극부를 창립해 공연활동에 깊이 빠져들었다. 신영균은 당시 경험이 18년 영화인생의 든든한 토양이 됐다고 회고한다.

‘5백억원 기부’ 원로배우 신영균 아름다운 선택

1 신성일과 함께 출연했던 작품 ‘남과 북’. 2 3 그에게 수상의 기쁨을 안겨준 작품인 ‘연산군’과 ‘5인의 해병’. 4 제주도 신영박물관에 전시된 그의 밀랍인형. ‘빨간 마후라’에 출연했던 모습을 본떴다.



그는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업적을 인정받아 많은 상을 받았다. ‘연산군’으로 제1회 대종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제2회, 4회에도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청룡영화제와 백상예술대상에서 각각 남우주연상(3회)과 최우수 연기상(2회)을 받았다. 많은 작품 중에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많은 분에게 사랑받은 ‘연산군’ ‘상록수’ ‘빨간 마후라’ 같은 작품에 애착이 가죠. 데뷔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작품들이라 어떻게 찍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연산군’ 찍을 때 말 타는 장면이 유독 많았는데 요즘처럼 훈련된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목숨을 내 놓고 촬영해야 했어요(웃음). 한번은 아스팔트 내리막길에서 카메라를 실은 지프차를 따라 말을 타고 가는데 무조건 뛰어가는 바람에 떨어질 뻔도 했죠. 그 장면만 스무 번 넘게 촬영했던 기억이 나네요.”

영화배우란 외로운 직업, 후배들이 사람을 재산으로 여겼으면

‘5백억원 기부’ 원로배우 신영균 아름다운 선택


한국 영화계의 대부였던 그는 68년에는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치과의사였던 경력을 살려 예술인의료보험조합을 결성, 사회단체의 의료 복지운동 부문에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영화계 안에서 입지를 다진 신영균은 정치계 러브콜을 받았고 제15대,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당시 여야 의원 62명으로 구성된 국회문화예술연구회를 만들어 문화예술계의 지원과 발전을 위한 입법 활동에 앞장서 많은 이의 지지를 받았다. 그에게 정치인·치과의사·영화배우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어떤 걸 고르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의 답은 고민할 것 없이 ‘영화배우’입니다. 지금 심정으로는 죽기 전에 한 작품 더 하고 죽는 게 소원입니다(웃음). 사실 오래 전부터 시나리오를 고르고 있는데 저에게 맞는 역할이 없어요. 스토리가 가장 중요한데 요즘 영화를 보면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쉽기도 하죠. 한국 영화가 발전하려면 콘텐츠 확보가 중요하고 그런 부분을 채우는 데 제 재산이 쓰였으면 해요.”
신영균에게는 슬하에 한국맥도날드 대표를 지낸 아들 신언식씨와 세영 엔터프라이즈 대표인 딸 신혜진씨가 있는데 이번 기부 결정에 두 사람 모두 선뜻 찬성했다고 한다. 특히 아들 신언식씨는 아버지를 대신해 직접 유인촌 문화관광부장관 등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인사를 만나 어떤 일에 쓰이면 좋을지 자문을 구하는 등 많은 시간 고민했다고. 결국 신영균은 아들의 조언에 따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과 영화계 인사들을 만나 재산을 기부하며 재단을 만들어 영화발전에 사용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가 가족과 친인척, 지인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을 때 가장 기뻐한 이들은 손자손녀였다고 한다.
“맏손녀는 ‘할아버지 존경해요’라고 말해줬고 미국에 있는 손자손녀는 바로 전화를 걸어와 ‘할아버지 멋쟁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손녀는 학교를 졸업하면 저를 따라 영화배우가 되고 싶대요. 집안에서 한명쯤 연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아서 시켜보려고 합니다. 대신 공부는 다 마치라고 했어요. 저도 대학 공부 다 하고 서른하나에 영화배우를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랐거든요.”
신영균은 현재 영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 연기자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경험에서 비롯된 팔순 인생 선배의 말이기 때문일까. 영화계 후배는 아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기자의 가슴에도 그의 말이 들어와 깊이 박혔다.
“영화배우란 인기가 떨어지면 외로운 직업입니다. 지금 인기가 많은 후배들도 뒤따르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순간이 반드시 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외롭지 않도록 노후도 잘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해요. 사람들에게 제대로 베풀기는 했는지, 돈과 명예를 좇다가 중요한 걸 잃지는 않았는지 꼭 한 번씩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나이가 되니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오찬을 하는 때가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후배들 모두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잊지 말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여성동아 2010년 11월 5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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