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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뛰는 중년 로맨스 연기한 김기섭

글 김유림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입력 2010.10.19 15:07:00

산타클로스의 넉넉한 풍채를 닮은 중견 탤런트 김기섭.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에서도 훈훈함이 느껴진다. 데뷔 후 지금껏 악역 한번 맡지 않았을 정도로 선한 이미지를 이어오고 있는 그는 연기자로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라고 한다.
가슴 뛰는 중년 로맨스 연기한 김기섭


얼마 전 막을 내린 MBC 드라마 ‘민들레 가족’에서 이미영과의 ‘닭살 돋는’ 애정 행각으로 중년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탤런트 김기섭. 그야말로 중년의 로맨스를 제대로 보여준 그는 “연기할 때는 민망해서 혼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며 웃었다.
“누군가 ‘황혼의 로맨스’라고 하기에 ‘오후의 로맨스’라고 정정해줬어요(웃음). 나야 괜찮지만 미영씨가 들으면 기겁할 일이지. 연기를 해보니까 중년의 사랑이 젊은이의 사랑 못지않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더 가슴이 콩닥대고 얼굴이 붉어지거든(웃음). 아내가 들으면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연기하는 동안에는 미영씨와 연애하는 감정으로 지냈어요. 대본 연습할 때도 남들은 국어책 읽듯 대충대충 읽는데 우리는 감정을 80%정도까지는 끌어 올려 연습을 했죠. 젊어서부터 미영씨는 친구 동생으로 잘 알고 지냈어요. 미영씨 오빠 이창훈씨와 연극을 함께 했거든요.”
그에게 “아내의 매서운 눈초리가 두렵지 않냐”고 했더니 그는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말로는 ‘더 잘하라’고 격려해줬다”며 웃었다. 실제로 그의 아내는 그보다 통이 크고 남성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잔소리를 하거나 바가지를 긁는 법이 없고 심지어 돈벌이가 시원치 않을 때도 묵묵히 살림을 꾸려갔다고.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기로 유명한 그는 젊은 시절 온갖 관혼상제를 좇아다니느라 정작 집안일엔 소홀했다고 털어놓았다.
“나이 먹으니까 집사람한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들어요. 결국 저 위해주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더라고요.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철이 안 든다는데 그 말이 맞나봐요(웃음). 젊어서는 거의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는데, 요즘은 아내와 함께 집에서 반주를 즐기는 날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주로 저녁 식사를 밥 대신 술안주로 해결하죠. 아내와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몰라요.”
그의 아내는 그가 30년 넘게 연기 생활하면서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준 가장 든든한 지원자다. 오랫동안 연기를 쉬었을 때도 그를 원망하거나 재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드라마 ‘민들레 가족’도 2002년 드라마 ‘여인천하’ 이후 8년 만에 출연했다. 중간에 특집드라마에 간간이 출연하긴 했지만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가 한 동안 연기를 멀리한 이유는 ‘중견배우에 대한 처우’가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가 들다보니 작품 속 비중도 줄어들고 개런티도 낮아져 쉬는 날이 많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주인공이 100을 받으면 나머지 사람들도 똑같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응당한 대우를 해줘야하는데, 요즘 방송계는 그렇지 못하다”며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섭외전화는 꼭 밤늦은 시간에 와요(웃음). 전화기가 ‘드르륵’ 울리면 아내도 잠결에 전화통화 내용을 다 듣기 마련이지만, 다음날에라도 ‘왜 일 안하기로 했냐’고 묻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왜 안 물어보냐고 하면 ‘당신이 알아서 할 텐데 뭘 궁금해 하냐’고 하죠(웃음). 일을 쉬고 있으면 아내보다 주위 사람들이 ‘요즘은 왜 TV에 잘 안 나오냐’고 하도 물어서 괴로워요.”

가슴 뛰는 중년 로맨스 연기한 김기섭


하지만 그에게도 ‘아줌마 부대’를 이끌던 시절이 있었다. 86년부터 드라마 ‘노다지’ ‘천명’ ‘아내의 뜰’에 내리 출연하며 4년 가까이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후 89년에는 일본 NHK 드라마 특집극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한류 배우 원조”라며 허허 웃었다. 최상현 원로 PD의 추천으로 일본 드라마에 출연한 그는 당시 우리나라보다 한창 앞서 있던 일본 촬영 시스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아키오시 구미코라는 여자 배우와 연기했는데, 당대 최고 인기 배우여서 그랬는지 수행원이 다섯 명이나 붙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연예인 혼자 모든 걸 알아서 할 때였기 때문에 신기했죠. 드라마 촬영하는 동안 저한테도 코디와 로드 매니저를 붙여주는데 어색해서 혼났어요(웃음). 과거에는 기술면에서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었지만, 지금은 역전이 됐어요. 작품 스토리나 연기 면에서 충분히 한류를 주도해 나갈만 하죠.”
이후에도 숱한 연속극에 출연하며 바쁘게 지내던 그는 95년 ‘제4공화국’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을 연기하며 덩달아 유명인사가 됐다.
“제가 비슷하게 흉내를 잘 냈었나 봐요(웃음).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화제가 됐거든요. 그 이후로 2~3년 동안은 인터뷰며 토크쇼 출연이 줄줄이 이어졌죠. 한마디로 제 2의 전성기였어요.”

군대에서 쇼 프로그램 만들며 승승장구
서울 토박이로 어려서 부잣집 아들로 곱게 자란 그는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꺾고 연기자가 됐다. 당시만 해도 연기자는 ‘광대’ 취급 받던 때라 그의 아버지는 “집안 망하게 할 놈이 나왔다. 호적에서 이름을 파겠다”며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연기를 하게 된 데는 아버지로부터 검도를 배운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죽검 만드는 사업체를 운영한 아버지는 세 아들 중 막내인 그에게 검도를 가르쳤다고 한다.
“중학생 때부터 성균관대 선배들과 검도를 배웠어요. 체격이 커서 베레모 쓰고 대학생 형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누나들과 미팅도 많이 했어요(웃음). 그러다 60년대 말 우연히 액션영화에 출연하게 됐어요. 여러 명이 싸움하는 장면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거죠. 대사는 칼에 맞아 쓰러지면서 ‘으, 악’ 하는 게 전부였어요. 당시 그런 류의 액션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는데, 흔히들 그런 영화를 ‘으악새’ 영화라고 불렀어요(웃음).”
영화판을 쫓아다니며 배우가 되길 꿈꾸던 그는 어느 날 “연기를 제대로 하려면 공부를 해야한다”는 한 감독의 말을 듣고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예대 연극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이후 CF 모델로 조금씩 두각을 나타냈는데, 그 무렵 아버지의 불호령으로 군대에 가게 됐다. 조건도 따라 붙었다. 더 이상 연예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다는 거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지금의 연예사병과 같은 군예대 사병으로 뽑혀 본격적으로 연예활동을 시작했다.
“선배들한테 부탁해서 ‘쇼쇼쇼’ ‘웃으면 복이와요’ 등 방송국 쇼 프로그램 대본을 얻어서 군대쇼를 만들었어요. 제 나름대로 각색 편집해서 무대에 올리면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타 부대로 불려다니기도 했어요. 학교 다닐 때 상 한번 못타보다 군대 가서 처음 실력을 인정받으니까 기분 좋더라고요.”



그는 군 제대 후 학교를 졸업한 뒤 예그린이라는 예술단체에 들어갔다. 예그린은 현 서울시립뮤지컬단체의 전신으로 당시 연극, 오페라, 창극, 뮤지컬 등 분야를 막론하고 연기를 해야 했다. 월급을 받으며 5년 정도 예그린 소속 배우로 활동했던 그는 79년 탤런트 장미희와 ‘봄이 오면 산에 들에’라는 제목의 연극에 함께 출연한 뒤 TV로 방향을 틀었다.

좋아하는 술 마시기 위해 건강관리 철저

가슴 뛰는 중년 로맨스 연기한 김기섭


그러고 보면 그에게는 무명 생활이 없다. 배우가 되기 위한 훈련 기간이었을 뿐, 연기를 쉬어 본 적은 없다. TV로 활동 무대를 옮겨서도 그를 찾는 이들이 많았다. 어떤 배역이든 맡겨놓으면 다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암행어사’라는 드라마를 촬영할 때는 장항선씨와 함께 아파트 12층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스턴트맨 없이 직접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달리는 덤프트럭에서 맨 손으로 싸우는 등 위험한 장면도 잘 소화해 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인물에 캐스팅되고부터는 줄곧 선한 역할을 맡아왔다. 중후한 이미지 때문인지 성공한 기업가 내지 따뜻한 남편, 후덕한 맏아들 등을 주로 연기한 것. 그래서인지 그는 20대 때부터 아줌마 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젊은 시절 악렬한 악역 한번 못해본 것이 아쉬운 눈치다.
어려서부터 운동으로 몸을 다져온 그는 25년 넘게 테니스를 즐겼지만 몇 년 전 연골을 다치면서 자전거 타기로 종목을 바꿨다. 자전거 중에서도 큰 체구를 견뎌낼 수 있는 MTB 산악자전거를 즐겨 탄다고. 사실 그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부담 없이 술을 마시기 위한 것. 술을 즐기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아침마다 누룽지를 대령한다고 한다. 신혼 때부터 아침밥은 냄비밥으로 짓는 바람에 늘 구수한 누룽지를 맛볼 수 있다고.
그에게는 예쁜 딸이 둘 있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 중인 큰 딸은 그와 대학 과동문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보며 연기자의 꿈을 키웠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스튜어디스직을 선택했다고 한다. 대학교 2학년인 둘째 딸은 첫째에 비해 오히려 끼가 많다고. 연기를 전공하는 건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딸들에게 그리 다정한 아빠는 아니에요. 젊어서는 일하느라 바빠 아이들 크는 것도 잘 못보고 살았죠.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겼는데, 조만간 시집가겠다고 하겠죠(웃음)? 그 전에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아야할 텐데….”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후에 묘를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화장해서 바다에 날려주길 바랐다는 것. 하지만 최근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아내와 함께 부부묘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이유인즉 묘소 앞에 ‘배우 김기섭’이라 새겨진 묘비를 세우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는 연기를 보여드려야겠죠. 평생 연기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이제야 연기가 뭔지 알 것 같아요. 사람 냄새 나는 연기, 인물에 완전히 몰입한 연기. 이제는 그런 연기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어요. 나이와 배역에 상관없이 끝까지 성실한 연기자로 살다 생을 마감하면 좋겠어요”

여성동아 2010년 10월 5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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