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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아이로 키우는 유대인식 교육법

‘탈무드’ 저자 마빈 토케이어에게 듣다

글 김유림 기자 사진 장승윤 기자

2010. 09. 03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법한 책 ‘탈무드’. 5천 년 유대인의 지혜가 담겨 있는 이 책은 시공을 초월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똑똑한 민족’ 유대인의 교육법은 무엇이 다를까.

지혜로운 아이로 키우는 유대인식 교육법


탈무드를 배우겠다며 찾아온 한 청년에게 랍비(율법학자)가 질문을 던진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검게 돼 내려왔고, 다른 아이는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과연 누가 얼굴을 씻을 것인가.” 청년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얼굴이 검게 된 아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랍비는 차갑게 고개를 저으며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얼굴이 깨끗한 아이를 보고 자신의 얼굴도 깨끗하리라 생각하지만, 얼굴이 깨끗한 아이는 얼굴이 더러운 아이를 보고 자신도 더러울 거라 생각해 세수를 한다”고 설명한다. 깜짝 놀란 청년은 문제를 맞힐수 있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랍비를 조른다. 그러자 랍비는 어쩐 일인지 아까와 똑같은 문제를 낸다. 청년이 밝게 웃으며 “얼굴이 깨끗한 아이”라고 말하자 랍비는 “탈무드를 배울 자격이 없다”며 대로한다. 이유인 즉 두 아이가 똑같이 굴뚝을 청소했는데 한 아이만 얼굴이 더럽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탈무드’ 머리말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얼핏 생각하면 말장난 같지만 우리가 가진 상식이나 지식의 한계를 일러준다. 특히 전제부터 잘못된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강조한다. 탈무드는 유대인 율법학자들이 사회의 모든 사상에 대해 구전·해설한 것을 집대성한 책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지난 8월 초 탈무드 연구의 대가 마빈 토케이어(74)가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나라에 나와있는 대부분의 탈무드 서적은 그가 일본어로 저술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쉐마교육학회 주최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만난 그는 “유대인 교육의 기초는 탈무드를 활용한 토론학습”이라고 강조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32%가 유대인이고, 세계의 정치·경제·문화 등에 미치는 유대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유대인 가정에서는 아이가 세 살 때부터 탈무드를 가르친다고 한다. 2~4명이 짝을 이뤄 탈무드를 한 구절씩 읽고 토론을 벌이는데, 이때 상대방의 논리를 공격하고 방어하면서 자연스럽게 논리력이 키워진다고.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부모 역시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또 아이가 답을 빨리 아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질문과 토론으로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 유대인 부모의 특징이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와의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안식일인 토요일은 반드시 하루 종일 자녀교육에 시간을 쏟죠. 아이들한테는 공부하라고 하고 자신들은 TV나 보는 그런 부모들은 없어요. 제가 알기로 한국 부모들은 아이를 학교나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건 잘하지만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부모예요.”

안식일인 토요일은 반드시 하루 종일 자녀들과 시간 보내는 유대인 부모

지혜로운 아이로 키우는 유대인식 교육법




마빈 토케이어는 토론 위주의 탈무드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질문’이라고 강조한다.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지식을 얻어가는 과정이 재미있게 다가온다는 것.
“보통 엄마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은 학교에서 뭘 배웠니?’하고 묻지만 유대인 엄마는 ‘선생님한테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습니다. 수업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금한 걸 묻고 토론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유대인 학교에서 가장 좋은 학생은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입니다. 변변찮은 질문은 있을 수 있어도 나쁜 질문이란 없어요.”
유대인 학교에서는 매일 오전 탈무드를 공부한 뒤 오후에 일반 교과 과목을 배운다. 탈무드 시간에는 랍비가 학생들에게 한 가지 주제를 던져주면 아이들끼리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이후 랍비의 강의가 끝나면 아이들은 복습을 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 선생님의 가르침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 또다시 토론을 벌인다고.
마빈 토케이어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40년 전 군종병으로 한국에 머물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것. 끊임없이 외세의 침입을 받은 고난의 역사가 유대인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더욱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오랜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소감에 대해 “현대 기적을 보았다”고 말했다. 한편 따끔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단 60년 만에 재건을 이룩해 낸 대단한 민족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첨단기술의 발전에 밀려 한국 고유의 전통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의 격언 중 ‘배에 올라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뒤를 보면서 노를 저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인도 이 점을 유념해 옛것을 지키는 것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탈무드는 1쪽이 없고, 마지막 페이지 또한 공란으로 비워져 있다. 첫 장이 없는 것은 ‘우리는 항상 중간에 있으며 탈무드를 공부하는 데는 따로 시작이 없다’는 의미라고 한다. 누구든지 현재 자신의 상태에 맞춰 탈무드를 배울 수 있다는 것. 또한 마지막 쪽 역시 비어 있는 것은 삶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탈무드의 빈 공간을 채워나가라는 의미라고 한다. 마빈 토케이어는 “이제는 한민족이 탈무드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 시간이 아닌가 싶다”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지혜로운 아이로 키우는 유대인식 교육법

마빈 토케이어와 함께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정통파 율법학자들(왼쪽). 탈무드의 지혜를 듣고자 모인 청중들로 강연장이 꽉 찼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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