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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안타까운 사연

‘제2 조두순 사건’ 피해자 A양 아버지 애끊는 심경 토로

“자꾸 눈물이 흐르지만 아이 앞에선 밝은 모습만 보이려 합니다”

글 김현우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0. 07. 08

대낮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한 어린이가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다.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에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가 치를 떨었고, 피해자의 부모와 함께 가슴 아파했다. 또다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피해 학생의 아버지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제2 조두순 사건’ 피해자 A양 아버지 애끊는 심경 토로


지난 6월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가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김모씨(45)는 오른쪽 주머니에 커터칼을 지닌 채 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가 피해자인 A양(8)을 위협한 후 초등학교에서 직선거리로 300m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피의자는 A양의 등을 왼손으로 밀고, 오른손으로 어깨를 잡아 집으로 가는 동안 A양이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A양은 울먹였지만 행인들은 부녀관계 정도로 생각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날은 재량수업일이라 A양의 담임교사는 학교에 없었다. A양은 김씨의 집에서 결국 무참히 성폭행 당했다. 김씨가 잠든 틈을 타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병원에서 6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고 인공항문을 달아야 했다. 한 아이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슬픔과 분노. 사건 발생 엿새 후 병원에서 A양의 아버지(41)를 만났다.
“그런 놈은 최소 무기징역이나 최고 사형을 줘야 합니다.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한 아이의 인생을 망친 짐승이 살 자격이 있습니까.”
A양의 아버지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사고가 난 당일 아이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며 “할 수만 있다면 범인을 내가 직접 죽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왜 우리 아이가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지. 전날에도 멀쩡하게 밥 먹고 학교에 잘 갔는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 사건 후 A양 어두운 곳 견디지 못해

‘제2 조두순 사건’ 피해자 A양 아버지 애끊는 심경 토로

CCTV에 잡힌 납치 장면. 피의자가 아이를 끌고 교문 밖으로 가고 있다.



A양의 아버지는 힘겹게 사고 당일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아이가 납치된 것 같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급히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에 도착해 경찰과 CCTV를 확인하고 있는데 아내가 운동장에 앉아 혼자 떨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몸에 흙이 잔뜩 묻어 있고, 머리에 꽂았던 핀도 사라졌고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었습니다. 목과 옷에는 핏자국이… 손목에도 상처가 있고….”
A양의 상태는 심각했다. 장장 6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무슨 도구를 쓴 것 같다며 결국 인공항문을 다는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그 어린 것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살이 계속 빠지는 것도 걱정입니다. 몸무게가 27kg인데 일주일 사이 2kg이나 빠졌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딸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라고 하는데 세 숟갈 먹으면 배부르다고 안 먹습니다. 배가 아프다며. 더 먹으라고 하면 다 토해버리고.”
A양은 앞으로 두 차례 더 수술을 받아야 한다. 병원에서는 한 달간 입원 치료, 6개월 동안 통원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A양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침대에서 내려와 휠체어를 타고 병실 안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하나뿐인 동생과 게임기를 가지고 서로 자기 것이라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사고 전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런 험한 일을 겪고 말을 하기 시작한 건 사건 발생 후 4일인 지난 11일(금요일)부터였습니다. 그전에는 아무 말도 없이 하루 종일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피를 뽑는다고 굵은 주삿바늘이 들어가는데도 예전 같으면 아프다고 엄살이라도 부려야 할 아이가 자기 살이 아닌 것처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더군요.”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그는 차라리 아이가 펑펑 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프다는 것을 표현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것 같아 더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제가 ‘아프면 표현을 해’라고 말을 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아프다’고 하더군요. 일부러 말을 붙입니다. ‘다 나으면 바이킹 타러 가자’하니까 씩 웃더군요. 놀이공원에 가면 몇 번이고 바이킹을 탈 정도로 좋아하던 녀석인데. 예전 같으면 무척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었을 텐데…. 아이가 원래는 무척 활동적이었거든요. 학교에서 발표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 수영도 잘했어요. 저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죠. 학교 주변에 탈 곳이 마땅치 않아서 다칠까봐 안 사줬는데….”



‘제2 조두순 사건’ 피해자 A양 아버지 애끊는 심경 토로

A양 사건으로 학부모들은 또다시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데리고 가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피의자 김씨의 집은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조그만 방이었다. 경찰이 현장검증을 하기 위해 찾은 김씨의 집은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로 조그만 창이 나 있었지만 빛은 방 안으로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는 이제 어두운 곳을 견디지 못한다.
“옛날에는 자기 방에서 불 끄고 혼자 잠도 잘 잤는데 지금은 형광등을 켜놓고 병실을 환하게 해놓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아요. 무섭다고 해요. 어두운 게 무섭다고.”
아버지는 딸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아이 병실을 지키다가도, 아내와 밥을 먹다가도, 문득문득 눈물이 흐르지만 아이 앞에선 밝은 모습만 보이려 애쓴다고.
“아이가 집처럼 느낄 수 있도록 예전에 쓰던 베개를 병원으로 들고 왔습니다. 옆에는 곰인형을 놓아주었죠. 그랬더니 조금 잠을 자더군요. 하지만 잠이 들었다가도 새벽 4시쯤 깨곤 합니다. 그럼 아내가 딸이 잠들 때까지 온몸을 주물러줍니다. 어느 날 심리 상담 선생님이 오시더니 주의를 주더군요. 부모가 아이 앞에서 분노하거나 절망하면 아이도 자신의 상태를 그렇게 느낀다고. 그때부터 아이 앞에서 슬프거나 힘든 표정을 짓지 않았습니다. 밝게 웃고 장난도 치고 그럽니다.”
그는 사고 발생 당시 학교를 향한 분노가 높았다. “재량수업일이라 학교에 선생님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건 결국 아이들을 방치한 것 아닌가”라며 학교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그는 “당시 학교에는 일직 선생님이 있었고 범인 김씨를 봤다고 했다”고 말했다.
“일직 선생이 김씨한테 ‘여기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는데 김씨가 ‘5학년 아들을 찾으러 왔다’고 대답했답니다. 그런데 그날은 5학년 수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일직 선생님이 김씨를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사고 발생 이후 이틀에 한 번꼴로 병원으로 담임 선생님이 찾아 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갑니다. 학교 교장 선생님이랑 교감 선생님도 자주 오셨었습니다. 죄송하다고 하더군요.”

비슷한 경험한 나영이와 부모의 조언 많은 도움 돼
6월12일 나영이(가명)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영이도 2008년 A양과 똑같은 일을 당했다. 범인 조두순에 의해 무참히 성폭행당한 후 몇 번의 수술을 거쳐 인공항문을 달아야 했다. 이번 사건을 ‘제2의 조두순 사건’이라고 하는 것도 사건의 성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나영이 아버지는 A양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다. 악몽과도 같은 일을 나영이 아버지도 똑같이 겪었기 때문이다. 나영이 아버지는 “돕고 싶다”고 했다.
“혹시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만나러 나갔습니다. 나영이가 최근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했고. 앞으로 딸에게 제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묻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나영이 아버지는 그에게 조기 치료 및 심리 치료의 중요성을 조언했다. 나영이는 조기 치료를 잘 받아 지금 학교도 잘 다니고 있고, 성격도 밝아졌다고 했다. 나영이는 올해 한 번 더 수술을 받으면 인공항문을 뗀다고도 했다.
“나영이 아버님이 저에게 한약을 주시더군요. 나영이가 사건 후 치료를 받으면서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병원 치료로도 낫지 않아 이걸 지어 먹였더니 금세 괜찮아졌다고. 고마웠습니다.”
나영이가 건넨 선물도 있었다.
“나영이가 병원에 있으면 심심하다며 책을 읽으라고 문화상품권을 줬대요. 아버님이 깜박 잊고 안 갖고 왔다고 하던데 다음에 만나면 받기로 했습니다.”
그는 “지금은 딸의 치료에 집중하고 있지만 나중에 나영이 아버님을 만나면 나영이가 어떻게 학교에 적응했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딸이 다시 학교를 갈 수 있을지, 그는 부모로서 불안해했다.
아직 A양은 병실 문 쪽을 바라보지 못한다. 낯선 이가 오면 몸이 굳는다. 다른 병실 문은 활짝 열려 있지만 A양의 병실은 페트병 지름만큼만 열려있다. 그 문이 활짝 열리는 날 A양은 “집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할 일이 참 많다. 아버지에게 피아노도 들려줘야 하고, 상을 여러 번 탄 그림도 그려야 하고, 가고 싶은 수영장에도 가야 한다. A양이 병실에서 물감으로 그린 그림엔 녹색 풀과 파란 구름이 넘실거리고 밤색 애벌레가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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