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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사연

자살로 생 마감하고 누나 곁으로 떠난 고 최진영 아버지 최국현씨 눈물 인터뷰

글 박혜림 사진 지호영 현일수 이기욱 기자

입력 2010.05.18 09:55:00

2년 전 딸 최진실에 이어 아들 최진영마저 떠나보낸 아버지 최국현씨는 장례식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삼우제 이후 세 차례 대화를 나눴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는 듯했다.
지난 3월29일 최진영(39)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누나 최진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 2년여 만에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누나에 대한 그리움, 조카들과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감, 연예계 복귀에 대한 고충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연예계 대표 남매 스타의 연이은 죽음에 연예계는 물론 국민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자식 둘 앞세운 심정,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

자살로 생 마감하고 누나 곁으로 떠난 고 최진영 아버지 최국현씨 눈물 인터뷰


최진영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버지 최국현씨(73)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아담한 체구가 남매를 떠올리게 했다. 발인을 하던 날, 겨우 정신을 차린 어머니 정옥숙씨가 울부짖다 실신하기를 반복하자 그는 그 모습을 애통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최씨는 최진실·최진영 남매가 어릴 때 정씨와 이혼해 오랜 시간 자식들과 떨어져 살았다.
3월31일 성남시립승화원에서 최진영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최씨는 건물 앞에서 하염없이 담배만 피웠다. 가끔 비 내리는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차마 말을 걸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표정이었다.
“죽기 이틀 전, 이상하게도 아침 일찍부터 전화가 왔어요. 7시30분에 전화가 와서는 20분 정도 통화했어요. 원래 한 달에 한 번 정도 연락해 잘 지내는지, 제 생활이 어렵진 않은지 묻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이른 아침부터 식사는 했느냐 하고 물었어요. 목소리에 힘이 너무 없어서 이상하다 했는데….”
삼우제가 있던 날 오후, 전화를 받은 그의 목소리는 많이 갈라지고 가라앉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건강은 괜찮으냐고 묻자 “밥을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 목구멍에서 전혀 넘어가질 않는다. 오늘도 밥을 한 끼 먹었는데 그마저도 3분의 1을 채 다 못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의 발인, 삼우제 때 외에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이틀에 한 번꼴로 즐겨 찾던 경로당에도 발걸음을 끊었다.
“진영이 엄마가 평소에 연락을 하지 않는데 그날 전화가 왔어요. 울면서 아들 이야기를 하는데 믿을 수가 없었고 제발 아니길 바라며 병원으로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을 보며 믿기지 않았어요. 자식을 하나도 아니고 둘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몸이 아파서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니고. 기가 막힙니다.”

누나 떠난 후 의기소침한 가운데도 두 조카 살뜰히 챙겼는데…



자살로 생 마감하고 누나 곁으로 떠난 고 최진영 아버지 최국현씨 눈물 인터뷰

1 발인식날, 어머니 정씨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2 갑산공원묘원에서 그를 보내는 동료들.



그는 최진영과는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 후 4번 정도 만났다고 한다. 그중 한 번은 최진영이 최씨에게 양육권 포기각서를 받으러 왔는데 어머니에게 양육권이 넘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진영이의 조카 사랑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아들에게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 결혼을 안 하냐”고 물을 때마다 최진영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며 조카를 우선시했다고 한다. 두 손자 손녀의 근황을 묻자 그는 한참 말을 아끼더니 “큰아이는 외할머니와 있고 작은아이는 평소 돌봐주던 이모와 있는 걸로 안다”고 대답했다.
고 최진실·최진영 남매는 아버지의 외모뿐 아니라 끼와 재능도 물려받았다. 최국현씨는 젊은 시절 연극무대에서 활동했고 KBS 공채 탤런트 시험에도 합격한 바 있다. 그는 “두 아이 다 밝고 착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할 만큼 밝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진영이는 진실이에 비해 조금 소극적이지만 씩씩한 아이였는데 누나가 세상을 떠난 후 목소리에 늘 힘이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진영이가 누나가 살아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를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저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드라마 배역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후에 제게 전화를 했는데 그 일로 속이 많이 상했던 것 같아요.”
최국현씨는 “마지막 통화에서 ‘아버지 나 힘들어요’하던 아들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며 말끝을 흐렸다.
최씨는 남겨진 아이들과 정옥숙씨에 대한 걱정도 덧붙였다.
“아이들이 겪게 될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 안됐어요. 제 마음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늘 아들과 함께 지내던 엄마 마음은 오죽하겠어요. 고통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늙은 아버지가 자식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게 이치인데, 자식 두 명 다 먼저 갔으니…. 언제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최진영이 세상 뜬 이유 · 마지막 가던 길

자살로 생 마감하고 누나 곁으로 떠난 고 최진영 아버지 최국현씨 눈물 인터뷰

1 생전의 최진영 모습. 2 최진영은 2년 전 누나를 떠나보내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최진영의 발인이 있던 3월31일에는 오전부터 차가운 비가 내렸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영결식이 치러지는 동안 ‘진영아’ 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최진영의 영정사진을 들고 빈소를 나서는 행렬 속에는 지인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걸음을 떼는 어머니 정옥숙씨가 있었다. 딸 최진실을 가슴에 묻은 지 1년 반 만에 아들마저 떠나보낸 정씨는 “진영아 엄마는 어찌 살라고 너만 가느냐”며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바라보는 이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날 최진영의 두 조카는 보이지 않았는데 삼촌의 죽음을 모른다 했다.
강남 논현동 자택에서 숨진 그가 발견된 시각은 3월29일 오후 2시14분경. 어머니 정씨는 평소 최진영과 친하게 지내는 학교 후배 정모씨를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잠시 후 최진영의 침실로 올라간 후배 정씨가 비명을 질렀다. 최진영이 자신의 침실 천장에 설치된 빔 프로젝터에 목을 맨 것.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가 사망한 뒤였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최진영은 오후 1시께 가사 도우미에게 물을 달라 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행적을 미뤄 사망시각은 오후 1시에서 2시14분 사이로 추정되며 사망의 직접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라고 공식 발표했다.
정씨는 빈소에서 “진영아, 진영아”라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다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자식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충격과 아픔까지 더해져 정씨는 장례식 내내 몸을 가누지 못했다. 최진영과 절친했던 김정민·김보성·유지태·김승현 등이 가족과 함께 고인의 곁을 지켰는데 자주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90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연기자로 데뷔한 최진영은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을 통해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대한민국 톱스타였던 누나 때문에 ‘최진실의 동생’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자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99년 얼굴과 본명을 감춘 채 ‘스카이’란 이름으로 가수에 도전한 그는 ‘영원’으로 가요 차트 1위를 석권하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3년 전 KBS 드라마 ‘사랑해도 괜찮아’에도 출연했던 그는 2008년 누나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슬픔으로 활동을 접었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고통, 이미 한 차례 자살 기도
최진영의 운구행렬이 그의 모교 한양대학교에 도착했다. 연극영화과 선후배, 동기들이 마련한 임시분향소에는 가수 시절 그가 부른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영정사진이 들어서자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09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지난해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학교생활에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에는 동문들과 함께 연극 ‘한여름 밤의 꿈’에 도전하며 연기자로서의 재기를 꿈꿨다. 최진영은 올해 들어 학교수업을 계속 빠졌는데 학교 측에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진 않은 채 건강상의 문제로 쉬고 싶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사망 당일에도 연극영화과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나중에 학교에 가면 열심히 하겠다”는 열의를 내비쳤다고 한다.
연예계 복귀에도 적극적이었다. 최진영은 친한 친구인 가수 겸 연기자 김정민의 소개로 새 소속사에 둥지를 틀고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제부터 열심히 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는 3월 초에도 기자들을 만나 “누나를 잃은 아픔에 오랫동안 활동 재개를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조카들에게 삼촌이 원래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망 당일 저녁에는 외주제작사 PD와 요리 프로그램 MC를 맡는 일에 관해 논의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출연이 확정된 작품은 없었지만 논의 중인 작품은 여러 편이었다고 한다.
“지친다. 사람이란 것에 지치고 살아온 것들에 지치고 이런 나 때문에 지친다….”(지난해 3월, 최진영의 미니홈피)
하지만 최진영의 씩씩한 모습 뒤에는 홀로 짊어지기 힘든 두려움과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송 및 대외 활동을 통해 밝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평상시 혼자 있을 때는 여전히 힘들어했다고 한다. 경찰은 “최진영은 누나가 자살한 뒤 우울증을 앓아왔으며 병원 진료를 받아보자는 모친의 권유도 거부하고 약을 구입해 복용했다. 5~6개월 전부터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모든 것이 힘들다고 말했고 불면증으로 신경안정제 같은 약을 많이 복용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이미 한 차례 자살을 기도해 강남 한 병원에서 위세척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슬픔에 복받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의 핸드폰 문자음. ‘괜찮니?’ ‘괜찮아ㅋㅋ’ 다들 나의 ‘ㅋㅋ’ 한마디에 나의 슬픔을 짐작할 수 없다.”(지난해 1월, 최진영의 미니홈피)
그가 장난처럼 가볍게 남긴 글에서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 그런 감정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진실아, 네 동생 왔다”

자살로 생 마감하고 누나 곁으로 떠난 고 최진영 아버지 최국현씨 눈물 인터뷰

최진영이 마지막으로 머물던 논현동 자택.



최진영의 유골은 누나 최진실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갑산공원묘원으로 옮겨졌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구슬프게도 그칠 줄을 몰랐다. 어머니 정씨는 아들의 유골함을 가슴에 꼭 안고 품에서 놓아주지 않으며 마른 목소리로 ‘진영아, 진영아’ 하고 불렀다. 최진영은 누나의 유골함이 놓인 자리에서 1m 남짓 떨어진 임시 납골당에 안치됐다. 정씨는 “진영아, 나만 두고 가면 어떡하니. 엄마도 데려가야지. 진영아, 진영아” 하며 피울음을 토해냈다. 그는 딸의 납골묘 앞으로 걸어가 “진실아 네 동생 왔다”며 오열하다 끝내는 실신하고 말았다.
최진영은 평소 최진실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토로해왔다. 누나와 이별하고 2개월 뒤 ‘박중훈 쇼’에 출연한 그는 “누나를 너무 허망하게 떠나보냈다. 너무 힘들다. 내게 너무 많은 짐을 떠맡기고 가서 원망스럽기도 하고 밉다”고 하면서도 “누나가 정말 보고 싶다. 편안히 있다는 말이라도 듣고 싶다”며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누나를 마음에서 비우기보다 그리워하며 살았다. 최진실이 살아서 꿈꾸던 베트남 자원봉사를 떠나는가 하면 동생이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하던 누나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두 남매는 밥 한 끼 마음 놓고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최진영은 “밥은커녕 등하교 시 버스를 탈 돈이 없어서 먼 거리를 걸어 다녔다. 누나가 햄버거 가게에서 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난 후 얻어오는 햄버거를 기다렸다가 끼니를 때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최진실이 “밥 대신 수제비만 먹어 수제비는 거들떠보기도 싫다”고 한 것은 온 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한 일화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함께 자란 두 사람은 애틋한 남매 사랑으로 유명했다. 최진실은 톱스타가 된 후에도 동생 일이라면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자주 “진영이가 잘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누나에 대한 사랑만큼 누나의 분신과도 같은 두 조카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최진실이 조성민과 이혼한 후부터 아이들에게 아빠와 다름없는 역할을 해오던 그는 누나가 세상을 떠난 후 “당장은 결혼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하고 있다. 현재의 목표는 조카들이 잘 크는 것이고 좋은 삼촌이 되는 것이다”고 말할 만큼 조카들을 아꼈고 책임감을 느꼈다. 한 주간신문이 입수한 그의 메모에는 “환희 어떻게 하지. 요즘 웃지도 않고. 비염이 심하다”고 써 있어 그가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고통스러워하던 순간에도 조카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그가 두 아이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던 듯싶다. 그는 지인들에게 “모든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종종 토로하곤 했는데, 길었던 공백기와 든든한 나무와도 같았던 누나의 부재는 그에게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준 것 같다. 연예계 복귀에 실패하는 것이 예전에는 배우로서의 자존감 문제였다면 누나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경제적인 책임감으로까지 이어져 더욱 괴로워했다. 그는 “둘째 조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학비도 많이 든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한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아침에야 잠을 잔다”고 말하며 괴로워했다. 그는 결국 모든 것을 놓고 가장 사랑했던 누나 곁으로 떠났다.

최진영 떠난 지 3주, 어머니 가까스로 건강 회복 중
최진영이 세상을 떠난 지 3주째 되는 날, 그가 살던 서울 논현동 자택을 찾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과 달리 주택가는 봄기운으로 따뜻했고 고요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가사 도우미의 목소리가 응답했다.
“어머니와 아이들 모두 집에 없고 다른 곳에 갔어요. 어딘지는 알려줄 수가 없어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셨는데 이제 겨우 조금 회복이 됐습니다. 누구를 만날 정도는 아직 아닙니다.”
특히 그는 아이들에 대해서 극도로 말을 아꼈다. 삼촌의 죽음을 아이들이 아느냐는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아이들 이야기는 어떤 말도 해줄 말이 없다”고 답했다.
최진영의 갑작스런 죽음은 이웃들에게도 충격이었던 것 같다. 집 맞은편 세탁소 주인은 “가족이 외출한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고 근처 슈퍼마켓 종업원도 “어머니가 마음을 추스를 기운이 있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근처 부동산 주인은 “너무 안쓰럽다. 논현동 집이 매물로 나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직 내놓지 않은 걸로 안다. 지금 집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있겠나. 집을 내놔도 잘 팔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년 전 최진실이 숨을 거둔 잠원동 빌라는 매물로 내놓았지만 아직까지 처분되지 않고 있다.
최진영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집을 등지고 돌아오는 길, 봄볕이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졌다.

여성동아 2010년 5월 5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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