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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장애 이긴 열정

시각장애 딛고 서울대 피아노학과 합격! 김상헌군 감동 스토리

글 정혜연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입력 2010.03.16 13:08:00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었지만 피아노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된 김상헌군.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당당히 서울대 피아노학과에 합격한 그는 “아직도 꿈꾸는 듯한 기분이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딛고 서울대 피아노학과 합격! 김상헌군 감동 스토리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믿어지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너 이제 서울대생이야’라고 말해줘서 그제야 믿겨졌죠. 아직도 얼떨떨해요.”
지난 1월 말, 서울대 정시모집 특별전형 합격자 명단이 발표됐다. 일반 학생들과 함께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한빛맹학교 학생 김상헌군(19). 1급 시각장애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는 그가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그의 합격 소식에 더욱 감격한 사람은 가족. 특히 어릴 때부터 그의 손과 발이 돼준 엄마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겉으로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지만 속으로 매우 기뻐하시는 듯했다고. 그의 형은 “나보다 더 좋은 대학 갔네”라며 장난스러운 말로 축하를 해줬다고 한다.
“가족들만큼 기뻐한 분이 계세요. 한빛맹학교에 부임할 때부터 저의 피아노 선생님이 돼준 신현동 선생님이죠. 점자로 된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던 제게 음악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 분이에요.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선생님은 저보다 더 좋아하셨어요(웃음).”

세 살 때 형이 연습하는 피아노 소리 똑같이 따라 쳐
김군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세 살 무렵이었다. 집에서 형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그대로 따라 치자 엄마가 김군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엄마 말로는 그때 제가 친 피아노의 음색이 형과 다르지 않았대요. 이후로 거의 매일 피아노를 쳤는데 그냥 들리는 대로 치는 게 재미있었어요. 형과 놀듯 배웠는데 결국 형은 중간에 그만두고 저 혼자 피아노를 전공하게 됐죠.”
초등학교 때까지 김군은 홀로 피아노를 쳤다. 그에게 피아노를 정식으로 가르쳐줄 만한 선생님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피아노에 대한 열정은 커져 갔지만 그는 제대로 배울 수 없는 현실 속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피아노를 전공한 신현동 교사가 한빛맹학교로 부임한 것. 김군이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때였다.
“그때까지 피아노를 치면서도 어떻게 치는 것이 좋은지, 어떻게 쳐야 아름다운 것인지를 잘 몰랐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오면서 달라졌죠.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셨어요. 무조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어요. 연습을 힘들게 시키셨는데 짜증이 나거나 화난 적이 한 번도 없었죠. 선생님과 참 잘 맞았어요.”
그는 신 교사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에 전혀 투정하지 않고 따랐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드는데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고 신 선생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고. 그는 그런 이유 때문에 신 선생이 자신에게 피아노학과 입시를 준비하는 일반 학생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더 혹독하게 훈련을 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열심히 연습할수록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선생님도 늘 노력할수록 앞으로 좋게 될 거라고 말씀해주셨죠. 그 말은 곧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였어요. 가슴 속에 선생님 말씀을 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발버둥쳤죠.”

시각장애 딛고 서울대 피아노학과 합격! 김상헌군 감동 스토리


피아노를 삶의 전부라고 느끼면서도 진심으로 피아노를 좋아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신 교사가 매우 어려운 곡을 연습하라고 내줬는데 몇 날 며칠을 걸려 연습한 끝에 결국 완주를 해낸 것. 그는 그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제 감정을 모두 쏟아내서 치고 나니 세상의 모든 소리를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겠더라고요. 바람이 부는 소리, 비가 오는 소리 같은 것 말이에요.”
물론 힘든 순간도 있었다. 그는 “경제적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피아노 점자 악보와 유명 피아니스트의 앨범을 구해야 하다 보니 일반적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보다 곱절은 더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그의 부모는 그에게 피아노를 그만둘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더 연습에 매달렸다. 학기 중에는 수업 때문에 피아노를 칠 시간이 부족함에도 평균 두 시간씩은 매일 연습했고, 주말이나 방학 중에는 평균 다섯 시간씩 연습했다. 가장 많이 쳤을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10시간을 쳤다고 한다.
고3이 되자 그는 대학 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서울대로 정했다. 그의 뜻을 사람들에게 말하자 아무도 긍정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불가능할 거라는 전망이 많았어요. 어떤 분은 상처받지 않게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말씀하셨죠.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오기가 생겼어요.”
주변의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꾸준히 연습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1학기 때 다리를 헛디뎌 부러지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던 것. 일분 일초가 아까운 시기에 병원에만 있으려니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2학기에는 신종플루까지 걸려서 정말 고생했어요. 자꾸 안 좋은 일이 생기니까 다들 욕심내지 말라는 소리만 했죠. 실기시험 넉 달 전에 퇴원해서 학교에 갔더니 시험 볼 곡이 나왔더라고요.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선생님한테 곡을 모두 녹음해달라고 한 뒤 미친 듯이 연습했어요.”
실기시험 당일, 그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한다. 드넓은 서울대에서 엄마와 함께 길을 물어물어 음악대학에 도착했을 때 그는 ‘날 살려주세요’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고.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김군은 다행히 실수하지 않고 무사히 실기시험을 마칠 수 있었다.
“시험 때 교수님들이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셔서 불안했어요. 그런데 합격하고 나서 심사위원으로 계셨던 교수님이 ‘좋았다’고 말해주셔서 정말 기뻤어요.”
그가 다니는 한빛맹학교에서도 김군의 합격을 반겼다. 올해로 개교 50주년을 맞아 졸업생 중 첫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기 때문. 장애가 있어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된 김군에게 교장을 비롯한 모든 선생이 축하의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존경하는 음악가 베토벤처럼 장애 뛰어넘고 싶어

시각장애 딛고 서울대 피아노학과 합격! 김상헌군 감동 스토리


김군이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는 그와 같이 장애를 갖고 있던 베토벤이다. 귀가 들리지 않게 됐을 때, 사람들의 비난에도 절망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귀가 들렸던 시절보다 더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그는 베토벤의 일생에 대해 공부하면서 자신도 꼭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끊임없이 했다고 한다.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죠. 전 그래도 귀가 들려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대학에 입학한 뒤 어떤 일을 제일 먼저 하고 싶으냐고 묻자 김군은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고 답했다.
“여태까지는 대학 입시 때문에 수능 공부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이제는 음악공부를 실컷 할 수 있게 됐으니 정말 기뻐요. 도서관에서 음악 서적도 많이 읽고 다양한 사람의 곡들을 들으면서 연습해보려고요.”
그는 이미 음악대학 입학예정자들을 위한 MT에 참여해 친구들을 여럿 사귀었다고 했다. 설레고 두려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MT를 다녀온 뒤 친구를 많이 사귀어 마음이 놓인다고. 다들 순수한 사람인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학 캠퍼스가 적응이 되지 않아 걱정이라고.
“지금까지 총 다섯 번 학교에 가봤는데 너무 넓어서 갈 때마다 헛갈려요. 한빛맹학교처럼 익숙한 곳도 아니고 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으니 빨리 적응해야 해요. 그래도 학교 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게 돼 다행이에요. 음악대학으로 가는 길을 빨리 외우려고요.”
김군을 걱정한 신현동 선생은 특별한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반학생들과 어울리려면 인간관계를 잘 다져야 한다는 것. 아무래도 그를 부담스러워하거나 혹은 나쁘게 대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니 그때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알려줬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어떤 상황에 있든 목표를 가져야 해요. 목표가 없는 삶만큼 불행한 삶은 없어요. 피아노를 치든 공부를 하든 자신에게 열린 기회를 잘 잡아서 목표를 갖고 열심히 노력하세요. 쉬는 시간도 아끼고 잠자는 시간도 아껴서 꾸준히 노력하면 어느새 목표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을 거예요.”

여성동아 2010년 3월 5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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