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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스트 조영남 죽다 살아나도 즐거운 인생

“내가 죽어도 의리 지킬 여친들, 방송에서 나를 우호적으로 말해준 윤여정에 대한 고마운 마음 …”

글 김명희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입력 2010.02.17 11:07:00

가수·화가·작가… 경계 없는 딴짓의 대가 조영남이 최근 건강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조만간 내놓을 이상 시 해설서 준비로 과로를 한 탓에 뇌경색 초기 증세로 입원한 것. 병원에 실려갔냐는 질문에 의사 여친의 손에 이끌려 간 것이라고 쿨하게 답하는 조영남. 그는 여전히 행복 바이러스를 전송 중이다.
재미스트 조영남 죽다 살아나도 즐거운 인생


“요즘 사람들이 날 보면 어디 지팡이를 숨겨두지 않았나, 입이 비뚤어지지 않았나 유심히 살펴요. 하하하.”
조영남(65)이 지난 1월 초 가벼운 뇌경색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상태가 호전된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안부를 묻자 특유의 유머를 곁들여 건재함을 드러냈다. 물론 인터뷰도 흔쾌히 응했다. 인터뷰 장소는 대한민국에서 비싼 집 중 하나로 알려진 그의 서울 청담동 빌라. 그는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 때문에 다소 초췌해 보였다. 평소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시큰둥하던 그의 표정이 “스타일리시해 보인다”는 여친의 찬사에 금세 환해졌다.
“올해가 천재 시인 이상이 태어난 지 1백년 되는 해예요. 그걸 기념하기 위해서 이상의 기일인 4월17일까지 수염을 기르기로 했어요. 자료를 보면 그의 평소 행색이 수염이 덥수룩하고 봉두난발에, 아주 기괴했다고 해요.”

죽은 이상이 산 조영남의 뇌를 고장 내다
사실 그가 병이 난 것도 이상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연말 독감에 걸린데다 그간 준비해오던 이상의 평전을 마무리하느라 밤샘작업을 해 몸에 무리가 왔다는 것.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병명을 확인했다고 한다.
“올해 이상의 기일에 맞춰 평전을 펴낼 생각으로 집필에 매달렸는데, 잠 좀 자려고 하면 ‘그 구절이 이런 뜻인가’라고 새로운 해석이 떠오르는 거예요. 잠들었다 깨어나면 잊어버릴 것 같아 다시 일어나 원고 쓰고 다시 잠자리에 들면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죽은 이상이 산 조영남의 뇌를 고장 낸 거지.”
그가 뇌경색 진단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이 병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조영남처럼 어지럼증·두통을 느끼면 뇌경색일 수 있으므로 꼭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언론 보도도 쏟아졌다. 그런데 조영남은 평생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초기에 병을 발견한 건 어찌 보면 천운이다.
“요즘 친하게 지내는 여친 가운데 의사가 있어서 이러저러한 증상이 있다고 얘기했더니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 친구 손에 이끌려 간 거지, 실려 간 건 절대 아냐.”
일찍 발견한 덕분에 거의 회복이 됐지만 재발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는 요즘 착한 학생처럼 의사 처방을 잘 따르며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다. 젊고 예쁜 여친들은 더 자주 들러 그와 놀아주고 식사도 챙긴다. 인터뷰를 하는 날도 의사 여친을 비롯한 절친한 여자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평소 소식을 하지만 식단에도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식사량이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이어트 식단만큼이나 줄었다. 거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그랜드 피아노 자리에는 미니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재미스트 조영남 죽다 살아나도 즐거운 인생


“요즘 ‘비겁한’ 식당에 많이 다녀요. 채식 전문식당, 사찰 식당…, 운동도 미친 듯이 하고 있어요.”
말은 그렇지만 그냥 “재미있을”정도로만 하는 것이다. 그는 재미있게 사는 걸 신념으로 삼는 재미스트니까.
이런 일이 있을 거라도 예견이라도 한 듯 그는 지난해 자신의 장례식 퍼포먼스를 열었다. 그와 친한 방송인 최유라, 언론인 유인경이 사회를 보고 가수 이문세가 관을 옮겼다. 당시 그는 유서에 ‘나는 원단 이기주의자였다. 타인으로부터 추모받을 인물이 못 된다. 내 시체를 발견하는 사람은 발견 즉시 담요나 이불로 둘둘 말아 곧장 화장터로 가서 태워라. 거기서 남은 유해는 영동대교 위에 가서 뿌려달라. 재산의 4분의 1은 죽을 때 내 옆에 있는 여자가 갖고 나머지 4분의 3은 아들 둘과 딸 한 명이 똑같이 나눠 가져라. 다만 여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는 그것을 취소한다. 내 인생은 한판 놀이였다. 재미있게 잘 놀다 간다’라고 썼다.
“그땐 리허설이고 이번엔 리얼인데…, 나는 덤덤해. 그때와 별로 다른 게 없어. 생과 사의 차이가 뭐야. 나는 지금도 장영희·김점선이 저 세상 사람 같지 않아.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고 하시라도 쳐들어와 ‘화투협회 만들자’, ‘밥 먹자’ 그러면서 말을 걸어올 것 같아.”



재미스트 조영남 죽다 살아나도 즐거운 인생

‘딴짓예찬’전에 선보일 작품 ‘묘비명’과 ‘여친용갱’. 자신의 무덤 묘비명과 그가 죽어도 의리를 지킬 여친들을 소재로 했다.



누구나 똑같은 인생이라는 선물 꾸러미를 받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 다른 운명이 담겨 있다. 조영남은 가수로 출발해 화가로, 작가로 지평을 넓혔다.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가수로는 뛰쳐나갔던 서울대 음대에서 명예졸업장을 받고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섰다. 화가로는 중국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성공리에 개최했고 그림도 꽤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세간에는 그의 입원설이 알려지자 그림값이 더 뛰었다는 웃지 못할 소문도 있다. ‘태극기는 바람에 펄럭인다’, 사랑에 관한 자전적 에세이 ‘어느날 사랑이’ 등 여러 권의 저서도 두루 좋은 평을 얻었다. “세상에 나오면 사람들을 깜짝 놀래킬” 독보적인 이상 시 해설서도 준비 중이다. 인간관계도 좋아 그의 곁에는 늘 사람이 들끓는다. 한강 조망이 좋아서 산 낡은 아파트는 재건축에 재건축을 거듭하더니, 50억원을 호가하는 고급빌라가 됐다. 이만하면 생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든다. 병상에 누워 그가 돌아본 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모든 게 적절했던 거 같아요. 돈을 많이 벌려고 아등바등 산 것도 아니고, 아주 훌륭한 성인처럼 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얕보이지도 않고…. 백남준은 죽기 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건강이 좋아지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뒤에 부인이 떡하니 있는데도 ‘예쁜 아가씨와 손을 꼭 잡고 하루종일 브로드웨이를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는데, 나는 그런 걸 다 해봤으니 내가 백남준보다 한 수 위 아닌가(웃음).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산 과거에 대해선 후회가 없는데 ‘이런 게 늙는 거구나, 선배들도 이렇게 퇴장했구나’란 비감함은 들어요. 왜 몸과 마음이 따로 늙는 건지….”
몸이 아프면 가장 생각나는 게 가족이다. 수십년간 고락을 함께한 매니저 권철호씨와 도우미 주복순 할머니가 그의 가족이다. 어릴 때 입양한 딸과 결혼 12년 만인 87년 이혼한 배우 윤여정과의 사이에 두 아들도 있다. 얼마 전엔 윤여정이 영화 ‘여배우들’, 오락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서 그와의 과거를 잠깐 언급해 화제가 됐다. 윤여정이 그와의 결혼생활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 이를 지켜본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여배우들’이란 영화를 봤는데 멋지더군요. 나는 꿈이 이루어졌어요. 윤여정이 내가 만난 어떤 여자보다 매력적이라고 사람들에게 얘기해왔는데 그게 증명이 된 거잖아. 내 첫 부인이 그렇게 근사한 여자란 걸 알리게 돼 만족해요.”
그는 또 “(윤여정씨가) 나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해서 고마웠다”고도 말했다. 사실 윤여정은 ‘무릎팍도사’에서 그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첫눈에 반하기는 힘든 얼굴이 아니냐’고 말했다. 또 ‘여배우들’에서 ‘내가 그 못생긴 ×한테 차였잖니’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영화 자체가 가상과 실제를 넘나들긴 하지만, 윤여정의 대사에서 자연스레 조영남이 떠오르는 건 사실이다. “어떤 부분이 우호적인가요?”라고 되묻자 그는 “그 정도면 우호적인 거지”라며 씩 웃었다.

노래 부르고 그림도 그렸지만 결론은 사랑

재미스트 조영남 죽다 살아나도 즐거운 인생


조영남은 2월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갤러리에서 ‘딴짓예찬’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연다. 조영남 인생의 대표적인 딴짓인 그림·음악·문학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독립운동가 나철과 시인 이상, 그리고 자신의 묘비명을 담은 작품이다. 나철의 사진 옆에는 ‘단군신화 세우다말다’, 이상의 사진 옆에는 ‘시 쓰다 말다’, 그의 사진 옆에는 ‘노래 부르다말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작가 버나드 쇼의 ‘우쭐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처럼 해학적이면서도 촌철살인의 뜻이 전해진다.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병마용 그림에 여자친구들의 얼굴을 붙인 ‘여친용갱’도 눈길을 끈다. 행복 전도사 최윤희씨를 비롯해 이성미, 이경실, 박미선, 노영심 등 그의 절친 26인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여자친구들이 의리와 사랑을 지켜줄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작품이라고 한다.
“그 친구들에게 작품 취지를 설명했더니 흔쾌히 동의를 해주더라고.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썼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결론은 사랑이야.”
사랑은 조영남에게 인생의 가장 큰 에너지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무한한 사랑이 있는 한 그의 행보는 앞으로도 쭈욱 힘차게 이어질 것이다.

여성동아 2010년 2월 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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