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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사연

일곱 살 아들 가슴에 묻은 이광기 눈물로 하늘에 쓴 편지

글 김명희 기자 사진 장승윤 이기욱 기자

입력 2009.12.21 15:02:00

그 고물고물한 손, 하얀 얼굴, 환한 웃음이 눈에 선한데, 따스한 체온이 아직 느껴지는 듯한데….
자식을 잃은 아빠는 흐느끼고 또 흐느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세상 그 어떤 험하고 비루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게 부모 마음. 하지만 이생과 저생을 오가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에 부모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영혼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일곱 살 아들 가슴에 묻은 이광기 눈물로 하늘에 쓴 편지


“너무 차가워. 너무 차가워. 아빠가 따뜻하게 안아줄게. 우리 석규. 너의 따뜻한 체온이 너무 그리워. 왜 이렇게 짧게 살다 가는 거야. 아빠가 해줄 게 많은데 학교도 보내야 하고….”
지난 11월10일 경기도 벽제 화장터. 일곱 살 아들의 유골함을 품에 안은 이광기(40)가 피울음을 토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자식 사랑이라면 가장 큰 슬픔 역시 자식과의 헤어짐일 터. 헤아릴 수 없는 슬픔 앞에서 위로조차 건넬 수 없었다. 그저 함께 울 뿐. 아이의 유골을 화장해 납골당에 안치하기까지 이광기의 아내는 몇 번이나 실신을 거듭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석규 엄마, 정신 차려. 아들 마지막 가는 길인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봐야지.” 그 말에 엄마는 눈물이 다 말라 바스락거리는 몸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섰다.

퇴원하면 꼭 사주겠다고 하던 로봇, 아들 길동무 돼

유골함을 납골당에 안치하기에 앞서 이광기는 다시는 못 볼 아들의 영정 사진을 붙들고, 손으로 아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진 속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다. 아빠는 아들 사진에 떨어진 제 눈물이 아이 눈물인 듯하여 연신 닦고 또 닦아주었다.
“석규야, 아빠… 아빠랑 뽀뽀하는 거 좋아했잖아. 아빠 엄마 결혼기념일(11월1일)이라고 네 보물 창고에서 꼬깃꼬깃 접은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줬잖아 … 목욕탕으로 오라고 하더니 그 작은 고사리 손으로 발 마사지 해주고, 아빠하고 누나 발도 닦아주고 그랬는데….”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미안한 아빠, 이광기가 오열한다. 병치레 한번 하지 않은 생때같은 자식이었다. 남자아이답지 않게 착하고 순해서 키울 때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았다.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것저것 경험하게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틀 안에 갇힌 생활 대신 맘껏 뛰어놀게 하고 싶어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아들은 이제 채 반 평이 되지 않는 조그만 공간에 누워 있다. 이날 이광기의 손에는 파워레인저 엔진포스가 들려져 있었다. 생전 석규가 갖고 싶어 하던 로봇이었다. 아이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병이 다 나으면 꼭 사주겠다”고 약속했던 이 로봇은 석규의 마지막 가는 길, 친구가 됐다. “아빠와 로봇 조립하는 거 좋아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놀아줄걸.”

일곱 살 아들 가슴에 묻은 이광기 눈물로 하늘에 쓴 편지

석규군의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 평소 좋아하던 로봇, 자동차, 빼빼로 과자,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 아이 곁을 지킨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돌아가 지워버리고 싶은 그 일은 지난 11월6일 시작됐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감기증상이 있다며 아이를 돌려보냈다. 이광기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병원에서는 가벼운 감기증상이라는 소견을 보였고, 상황이 악화되면 24시간 안에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복용하면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병원에 다녀온 후 잠시 호전되는 듯하다가 다시 증세가 도졌다.
다음 날인 7일에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이광기 부부는 아이와 함께 다른 병원을 찾아 수액을 맞게 하고 경과를 지켜봤다. 폐렴이나 신종플루 이상징후가 보이지 않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타미플루를 처방받고 증세가 보이기 시작하면 복용하기로 했다.
7일 오후 7시. 갑자기 감기 증세가 심해졌다. 일반 감기약을 투약했지만 아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쏟아냈다. 급히 집 근처 일산병원 응급실로 호송해 피검사 와 폐검사 등을 받았고 당시 병원에서는 폐렴을 의심했다. 신종플루 약식검사를 받았지만 음성이 나왔다. 병원 측은 확실히 음성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입원을 권유, 아이를 격리병실로 옮겼다. 이때 신종플루 확진검사도 받았다. 그러나 갑자기 8일 새벽 3시경 호흡곤란이 찾아오고 산소호흡기를 통해 산소를 공급했다. 그때만 해도 아이는 의식도 있고 대화도 가능했다.
이광기는 ‘연예가 중계’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석규가 정맥주사 맞으면서도, 피를 뽑으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이거 맞아야 낫는다’고 하니까 꿋꿋하게 견딘 우리 석규가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며 흐느꼈다.
“호흡하기 힘들다고 의사 선생님이 등을 많이 두드려주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플 텐데도, 아빠, 나 등 계속 두드려줘, 계속 두드려줘 하더라고요. 그 아픈 와중에도 아빠 하늘에서 번개가 쳐, 번개가 쳐 그러고 … 나는 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악화된 병세, 마지막까지 의연했던 석규

일곱 살 아들 가슴에 묻은 이광기 눈물로 하늘에 쓴 편지

1 이광기가 아이의 유골함을 들고 힘겹게 납골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 유골함을 안치하기에 앞서 기도를 하고 있는 이광기.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호흡곤란이 심해져 대화도 어려울 정도였다. 중환자실로 옮겨 호스를 삽관해 타미플루를 투약했다. 하지만 아이의 작은 심장은 더 이상 병마를 견디지 못했다. 이광기는 “석규에게 1시간 넘게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아기 엄마는 살려달라고 더 해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석규가 얼마나 아플까 라는 생각에 내가 그만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석규를 깨끗이 닦아놓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아빠 나 이제 가니까 아빠도 나를 이제 보내줘, 하늘나라에서 아빠를 지켜줄게’라고 하는 듯한 표정은 정말 천사 같았습니다.”
아이가 세상을 떠난 후 6시간이 지나 이광기 휴대전화로 신종플루 확진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정확한 사인은 신종플루에 의한 폐렴 호흡곤란 증후군. 일부에서는 의료진의 대처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이광기는 측근을 통해 “우리 석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 주신 분들께 피해가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내, 딸 위해 더 이상 울지 않을 것

“이럴 줄 알았으면 필리핀에 그냥 둘걸.”
이광기 가족이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다. 이광기는 지난 2007년부터 아내와 두 아이를 필리핀에 보내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점점 커졌다. 이에 이광기는 지난 5월 ‘이제는 한데 모여 살자’며 가족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2년 넘게 떨어져 지내면서 이광기 부자의 정은 더 두터워졌다.
“우리 석규가 떨어져 지내면서 항상 아빠만 찾았어요. 내가 한국에 들어오라고 했을 때 자기 나름대로 카운트를 하더라고요. 아빠 이제 몇 밤만 자면 아빠 보러 간다. 기다려. 그랬는데….”
빈소와 영결식장을 찾은 많은 동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가슴으로 함께 울었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이광기가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왔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욱 컸다. 이광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기자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먼동’ ‘해돋는 언덕’등 5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무렵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그간 쌓은 경력도 물거품이 됐다. 제대를 하자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방송국 주변을 맴돌았지만 연기에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먹고살기도 빠듯하던 시절, 그는 서울 반포에 실내포장마차를 차렸다. 그래도 인복이 있어 연기할 때 인연을 맺은 친구들, 방송국 관계자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와 ‘고생 많다’며 매상을 올려주었다. 이때 아내도 만났다. 97년 결혼한 부부는 함께 포장마차 전단지를 돌리며 사업을 일으켜 세웠다. 이광기 부부의 한 지인은 “그때 부부가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연지·석규 재롱에 힘든 줄 모르고 일했는데, 이제야 어려움 없이 가족이 오순도순 살게 됐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일곱 살 아들 가슴에 묻은 이광기 눈물로 하늘에 쓴 편지

이광기의 미니홈피에는 2백50만명의 네티즌이 방문, 석규군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광기는 연예계 소문난 모범가장. 지난 6월 가수로 데뷔한 직후 한 인터뷰에서 “내가 열심히 사는 건 모두 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데뷔곡 ‘웃자 웃자’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가족을 위해서 웃자는, 그의 평소 생각이 담긴 노래다.
2005년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은 탤런트 김명국은 석규군의 부음을 듣고 한달음에 빈소에 달려와 조의를 표했다. 이광기와 절친한 선후배 사이인 그는 “우리 영길이가 투병하고 있을 때 광기가 ‘우리말 겨루기’라는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 받은 상금을 치료비에 보태라며 쾌척했다. 그 일뿐 아니라 평소 선후배의 경조사에 발 벗고 나서던 좋은 친구인데 이런 일을 당해 더 애통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두 사람은 빈소에서 한참 동안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요즘 이광기의 귀에는 석규가 즐겨 부르던 ‘댓츠 베리 핫~’이라는 유행어가 맴돈다. 세상을 떠났지만 아빠의 맘속에는 언제나 일곱 살,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 살아 있는 아들. 이광기는 매일 아내와 함께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아가 안부를 살핀다. 석규도 석규지만, 아내와 연지의 맘을 추스르게 하는 것도 가장으로서 그가 해야 할 몫이다. 이광기는 가족과 함께 교회에 나가 마음을 다잡게 하려 애쓴다.
“자식을 잃고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 가족을 위해 울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나마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석규가 내 자식이 아니었구나, 내 자식이 아니라 분명히 하늘에서 나에게 또 다른 삶을 살게 해준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7년 동안 우리 가족에게 많은 기쁨을 준 석규가 이제 천사가 돼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랑과 행복을 주기 위해 떠났습니다. 아이들과 더욱더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드시고….”
목이 메 말을 잇지 못하는 이광기.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그 슬픔 앞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일곱 살 아들 가슴에 묻은 이광기 눈물로 하늘에 쓴 편지


여성동아 2009년 12월 5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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