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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부자유친

정만호 정일남 인터뷰

17세 나이 차 ‘붕어빵 부자’

글 임윤정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입력 2009.11.25 09:49:00

얼핏 형제처럼 보이는 정만호·정일남 부자. 겨우 17세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올해 열여섯 살이 된 아들 일남군, 그 나이에 아빠가 된 정만호. 두 사람의 아주 특별한 부자유친.
정만호 정일남 인터뷰

정만호(33)·일남(16) 부자는 붕어빵처럼 닮았다.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부자는 걸음걸이까지 영락없이 닮는다더니, 그 말에 절로 수긍이 간다. ‘애기’라는 정감 어린 호칭으로 아들을 부르는 아빠가 자식 사랑을 쏟아냈다.
“당연히 저를 닮았지만, 탤런트 정일우 분위기가 난다는 소리도 많이 들어요. 저희 일남이 피부가 완전 꽃미남이거든요. 성격은 저의 좋은 면만 닮은 것 같아요. 또래에 비해서 포용력이 넓어요. 배울 점이 있는 친구하고도 잘 어울리고요. 저 닮아서 세상 살아가는 법을 아는 거죠(웃음).” 그가 팔불출 아빠를 자처하면서까지 아들을 감쌌건만, 아들은 냉정하게 한 마디 한다. “화 잘 내는 거 닮은 것 같아요.” 머쓱해진 아빠의 변명. “제가 다혈질이거든요. 근데 뒤끝은 없어요.” 이제야 아들이 맞장구를 친다. “나도!” 힘을 얻은 아빠의 호기어린 마무리. “남자는 남자다워야죠!”
부자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지 않아도 속속들이 닮아간다. 마음의 눈으로 서로를 끊임없이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숨겨둔 아들 공개하고 세상으로 떳떳이 나와
‘뚜르뚜 뜹뜹 뚜르뚜 뚜뚜 따다다’로 시작하는 음악에 맞춰 등장하는 ‘만사마’ 캐릭터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정만호. 그 절정의 순간인 지난 2005년, 중학교 졸업 후 낳은 숨겨둔 아들의 존재를 고백했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뽑힌 그는 개그맨이 되기만 하면 탄탄대로일 줄 알았다. 하지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송이 아닌 대학로 소극장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다.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매달 꼬박꼬박 들어가야 할 돈이 많았지만, 수입은 제로였다. 결국 중국음식점 하면서 벌어놓았던 돈을 전부 써버렸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올라온 자리였기 때문에 숨겨진 가족사를 공개했을 때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다. 총각 행세도 괴로웠다.
“커플 선정 프로그램에 나갈 때 가장 힘들었어요. 개그맨이고, 더욱이 신인이니까 오버액션을 해야 하는데, 나중에 유부남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어떡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말 한마디 못하고 벌벌 떨었어요. 그 심정은 당사자가 돼보지 않고는 몰라요. 이렇게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지 말고 차라리 떳떳하게 밝혀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그래야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고민 끝에 결심하고 긴장 끝에 밝힌 순간, 오히려 사람들은 따뜻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봐줬다. 물론 예상대로 10대 팬들은 줄었다. 대신 20~3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팬이 생겼다. 전화위복의 순간이었다.
일남군은 방송활동으로 바쁜 아빠 얼굴을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TV에 나오는 아빠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가 TV에 처음 나오셨어요. 저희 아빠가 ‘만사마’라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친구 몇 명에게 말했는데, 그들이 중학교 올라가서 얘기해버리는 바람에 전교에 소문이 퍼졌어요. 잘 모르는 형들이 거울로 제 얼굴을 비추고 그랬어요. 속상해서 학교에선 말도 안하다가 3학년이 되면서부터 다시 말하고 다녔어요(웃음).”
가장으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바삐 살다 보니 부자가 함께 외출해본 적이 거의 없다. 바쁘기도 했지만, 아들의 존재가 알려질까 두려웠다. 최근 방송을 빌려 그 한을 풀었다. 한 아침 프로그램을 통해 첫째 일남이와 둘째 일준이, 이렇게 부자 셋이 놀이동산 나들이를 한 것. 그동안 못다 한 추억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너무도 당연한 것을 이제야 비로소 해본다.

어린 나이에도 가장으로서 책임 다해
그는 나이에 비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마흔이 되기도 전에 인생의 산전수전, 쓴맛 단맛을 죄다 경험했다. 늦둥이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의 과잉보호 속에서 컸다.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돌기 일쑤였다. 더욱이 부모님이 지병을 앓고 있어서 가정 형편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는 신문·우유 배달 등을 하며 직접 용돈을 벌었다.
“유년시절의 추억이 없어요. 추억이라고 해야 남의 집에서 일하며 고생한 기억이 전부예요. 월급 받으면 꼬박꼬박 모아서 부모님 갖다드리곤 했어요. 아무리 어린 시절이라도 고생해서 번 돈은 절대 헤프게 못 써요.”
늦둥이 아들로 자라서일까. 그는 일러도 너무 이른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던 시절, 지금의 아내를 만나 아이를 가졌고 책임져야 할 식구가 배로 늘었다. 기저귀 하나, 분유 한 통이라도 더 사기 위해 정신없이 일했다. 오토바이센터 기술자, 공장 노동자에서 중국 음식점 운영까지 가족을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을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남녀 사이엔 사랑하다가도 헤어질 수 있지만 부모 자식 간에는 그럴 수 없잖아요. 지극히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 어린애가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시선 때문에 책임지고 싶어도 책임질 수 없는 경우도 많아요. 물론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이 했던 고생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해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저 손에 쥐어주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인생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만 뒷받침해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개척하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아들에게 통장 하나 만들어줄 생각이다. 통장관리를 직접 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라는 뜻에서다.
아들의 탄생은 고통이기 전에 축복이었다. 하지만 양가 어른들은 주름살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장인어른의 얼굴을 7년 만에 봤다. 그날을 회상하면 지금도 손끝이 떨린다.
“장인어른께서 먼저 말씀하시길 기다렸어요. 제가 얘기를 꺼내봤자 손해니까 머리를 쓴 거죠(웃음). 장인어른 말씀을 한참 들고 있다가 거기에 살을 붙여서 깨끗이 무마시켰죠. 처음 하신 말씀이 ‘평생 열심히 살 각오가 돼 있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제 눈빛을 보고 한번 믿어달라고 말씀드렸죠. 그 후로 다정다감한 사이가 돼서 탄탄대로로 왔죠.”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단란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아내의 내조 덕분이다. 집안일 신경 안 쓰도록 알뜰하게 살림해준 아내는 지금껏 싫은 소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항상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 해준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힘겨워도 참아낼 수 있었다.
정만호는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서 빵점짜리 아빠 같다. 하지만 일남군에겐 1백점을 줘도 부족한 아빠다. 특히 세대차이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어느 아빠보다 자신을 잘 이해해준다.
“집에 오셔서도 이상한 흉내 내면서 웃겨주세요. 게임도 같이 하고, 옷도 같이 입을 수 있고 통하는 부분이 많아요. 안 좋은 점이 있다면 다른 친구들 아빠에 비해 너무 젊어요. 친구 아빠들은 보통 40, 50대잖아요. 학교에서 부모님 나이 같은 거 설문 조사할 때 손 들으라고 하면 30대는 저 혼자예요(웃음).”
아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가 박장대소한다. 정만호는 앞으로의 삶이 더 기대된다. 나중에 아들이 결혼할 나이가 돼서 며느리를 보면 가족끼리 여행도 많이 가고 싶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이 번진다.

정만호 정일남 인터뷰

가수 꿈꾸는 아들, 든든한 조언자 아빠
부자는 최근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을 통해 동반 예능 나들이에 나섰다. 아들의 방송 출연을 두고 부부간에 작은 설전이 있었다. 아내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입장이다. 몇 년 전부터 왜 아내를 공개하지 않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방송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결혼식을 늦추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줬지만, 이번엔 자신의 뜻을 따랐으면 했다. 물론 정만호도 처음엔 어릴 적부터 아들을 연예계에 데뷔시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 가수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앞서 예능의 기본을 익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3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웃찾사’의 ‘뻐꾸기 브라더스’란 코너로 컴백한 정만호. 그에게 있어 방송은 늘 해왔던 일이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처음 방송에 출연하는 일남군으로서는 부담이 클 것이다. 학교 공부와 방송활동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엄마가 가장 염려했던 것도 그 부분이었다.
일남군에게 방송 첫 경험을 묻자 “힘들다”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이에 방송 선배로서 아빠의 따끔한 충고가 날아왔다. “말을 항상 길게 해버릇해야 해. 어떤 질문을 하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하는 거야. 그래야 방송에서도 네 얼굴이 길게 잡혀. 단순히 나왔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한 거야.” 아들은 아빠의 충고를 가슴에 새겼다. 이왕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호되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물론 처음엔 다양한 주문을 하기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할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다보면 자신의 끼를 십분 발휘할 거란 걸, 아빠는 믿는다. 아직까진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다. ‘어 이놈 봐라?’ 할 정도로 생각지도 않았던 멘트를 칠 때가 있을 만큼 센스가 있다. 개그맨 아버지의 피는 못 속인다.
“욕심 같아선 국내 최초 리얼 부자 개그를 해보고 싶어요. 인기를 끌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일남이가 동의해줬을 때의 일이죠. 제 목표는 연기예요. 임현식 선배처럼 감초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겠죠. 일단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배우면서 내공을 쌓고 싶어요.” 자신의 계획을 말하던 아빠, 갑자기 아들을 향해 애정 어린 조언을 던진다. “아빠가 하는 사소한 말 하나하나까지 잘 들으면 좋은 참고가 되는 거야. 남보다 빨리 터득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졌으니까 조금만 노력하면 돼. 하지만 아빠만 믿고 있다가는 도태될 수 있어. 항상 자기 관리는 스스로 해야 해.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거든.”
정만호는 아들을 끈기 있게 좀 더 지켜볼 생각이다. 그에게 어떤 장르가 어울릴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아버지가 백 사람의 선생보다 낫다는 말처럼 부자는 인생의 스승과 제자다.
‘붕어빵’ 촬영에 이어 인터뷰까지 소화하는 빡빡한 일정 때문인지 아빠는 중간 중간 아들에게 피곤하냐고 묻곤 했다. 그 사소한 모습에서, 부성애가 잔잔히 전해졌다. 닮아간다는 건 결국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여성동아 2009년 11월 5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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