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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성공한 CEO

참존화장품 김광석 회장 멈추지 않는 도전

‘청개구리 박사’

글 오진영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11. 24

차별화 전략과 철저한 서비스 정신으로 경쟁이 치열한 화장품 업계에서 성공 신화를 일군 참존화장품 김광석 회장. 창립 25주년을 앞두고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그가 남다른 인생 스토리와 신념을 들려줬다.

참존화장품 김광석 회장 멈추지 않는 도전

참존의 브랜드 캐릭터인 청개구리는 남들과 다른 것을 추구하는 김광석 회장의 경영철학을 의미한다.



참존에서 나오는 모든 화장품 케이스에는 회사 창립자인 김광석 회장(70)의 얼굴과 서명이 인쇄돼 있다. 이른바 품질보증서다. 김 회장이 맑고 투명한 피부를 가진 유명 모델의 얼굴이 아니라 여성 화장품 이미지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얼굴을 넣겠다고 제안했을 때 회사 간부들은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일입니다. 1년이 지나도 케이스가 안 나오기에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제 얼굴을 넣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뜻은 잘 알겠지만 그래도 넣으라고 했습니다. 세계 일류를 향해 끊임없이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겠다는 소비자와의 약속을 명품 보증서를 통해 다짐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참존화장품을 세우기 전 김 회장은 성균관대 약대 졸업 후 지금은 없어진 서울 을지로 스카라극장 옆 골목에서 약국을 운영했다. 처음엔 장사가 안 돼 빚만 쌓였다. 고향마을 유지의 맏딸이던 아내가 좁디좁은 약국 뒤 살림방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30년 안에 그 눈물을 환희의 눈물로 바꿔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남들이 하지 않은 나만의 특별한 무엇인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궁리 끝에 피부병을 고치는 조제약을 만들기 시작했죠.”
이후 그는 피부과 전문서적에 매달리고 화공약품 시약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 사이 그가 운영하는 피보약국(피부를 보호한다는 뜻)은 피부병 잘 고치는 약국으로 입소문이 퍼졌다. 당시 하루 매출액이 집 한 채 값에 이른 적도 있다. 그렇게 10년 남짓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79년 뜻밖의 위기를 맞았다. 그가 조제한 약을 전국 60여 개 약국에서 가져다 팔았는데 이것이 무허가 제약인 탓에 범죄자가 된 것이다. 그는 7개월 동안 전국의 절을 전전하며 도망을 다니다 결국 자수하고 재판을 받았다. 그때 선고받은 벌금이 8억3천여 만원. 평생 약국을 해서는 갚기 힘든 액수였다. 벌금의 족쇄를 벗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84년 45세에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다.
“좋은 품질로 승부를 걸겠다고 했을 때 모두 다 안 된다고 만류했습니다. 화장품은 품질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는 약국을 운영할 때 효과를 본 샘플 전략으로 밀고 나갔다. 품질에 자신이 있었기에 샘플로 소비자에게 직접 효과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샘플만 써봐도 알아요”라는 참존의 캐치프레이즈는 이렇게 탄생했다. 공장 임대료, 전기세를 몇 달씩 밀리면서 오로지 소비자에게 심판을 받겠다는 각오로 엄청난 양의 샘플을 뿌렸다. 그리고 마침내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외상은 안 되고 현금을 달라”고 배짱을 부려봤더니 “아무래도 좋으니 물건만 달라”는 주문이 줄을 이었다. 이름 없는 화장품 회사 참존이 85년 출시한 참존 마사지크림(지금의 콘트롤크림)은 그렇게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히트상품으로 떠올랐고 10년 만에 참존을 메이저급 회사로 끌어올렸다.
“87년 미국 시장에 진출해 연간 1백만 달러 매출을 올린 것도, 92년부터 일본 시장을 개척해 현재 일본 최대 홈쇼핑 회사에서 우리 제품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소비자로부터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하나로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명품 품질, 감동 서비스로 고객 사랑에 보답할 것”

참존이 굴지의 화장품 회사로 성장하고 참존모터스를 세워 자동차 수입 딜러 사업을 병행하게 된 지금도 김 회장은 강원도 원주공장에서 열리는 고객 대상 세미나에 참석한다. 20여 년 동안 12만 명의 소비자가 이 세미나에 다녀갔다.
“고객들이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대기하고 있다가 한 분 한 분 반갑게 맞고 공장 견학도 제가 직접 시켜드립니다. 피부 연구 노하우를 한 시간 동안 강의하고 점심을 대접하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고객을 맞는 일은 제가 직접 할 것입니다.”
유명인 모델을 앞세워 더 빨리 효과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김 회장은 오랜 시간 투자하고 진득하게 기다려야 하는 고객 세미나를 홍보전략으로 택했다. 세미나에 한 번 참석한 사람은 영원한 참존 마니아가 되기 때문이다. 연간 60회 이상의 고객 세미나를 일일이 챙기는 이유는 무엇보다 고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내년에는 서울 대치동에 짓고 있는 신사옥이 완공됩니다. 아들 셋 중 큰 아들과 둘째가 운영하는 참존모터스가 1층 약 1000㎡ 전시장에 들어서게 됩니다. 우리 회사가 이렇게 성장한 건 소비자들의 사랑 덕분이니 철저한 서비스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0을 넘긴 지금, 누가 자신에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김 회장은 ‘메아리와 같다’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고객 대상 세미나나 샘플 전략이나 모두 우리가 고객이라는 산을 향해 외친 함성과 같았습니다. 함성 소리가 크면 클수록 메아리도 크게 돌아오는 것처럼 고객의 신뢰와 사랑도 그렇게 돌아왔습니다.”
김 회장은 고객의 인정과 신뢰라는 메아리가 꼭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며 앞으로도 참존은 명품의 품질과 감동적인 서비스라는 함성을 큰 소리로 외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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