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이하얀(37)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접한 건 지난 2004년, 이혼 후 1년 정도 지났을 때다. 당시 서울 청담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혼 후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딸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고자 열심히 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동안 그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브라운관에서도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대중의 기억 속에 잊히는 듯 했던 이하얀이 얼마 전 놀라운 모습으로 대중 앞에 다시 섰다. 케이블TV 스토리온 ‘다이어트 워3’ 참가자로 나선 것. ‘다이어트 워’는 비만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 참가자들의 치열한 다이어트 과정을 그린 서바이벌 프로그램. 이하얀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유는 다른 출연자들과 같았다. 20kg 가까이 불어난 몸매, 의기소침한 표정에서는 외모만큼 달라진 그의 현재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첫 방송이 나가고 8주 후,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이하얀의 모습에 기자는 또 한 번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과 두 달 만에 과거의 날씬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고, 사춘기 소녀처럼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그의 변신이 더욱 놀라웠던 건 그가 12명의 다이어트 참가자 중 첫 번째 탈락자였기 때문이다. 탈락 후에도 프로그램 규칙상 그는 방송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다이어트를 했고,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무대에도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섰다. 오히려 그는 첫 번째 고배를 마신 덕에 오기로 더욱 열심히 운동에 임했다고 한다.
“일주일 만에 탈락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이틀 동안은 너무 화가 나서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어치웠어요. 구토를 하면서까지 먹는 바람에 탈이 나기도 했어요. 결국 병원을 찾아가 위를 달래는 치료를 받았는데, 폭식으로 몸과 마음만 상하고… 어리석은 제 행동이 후회되더라고요. 이렇게 포기할 게 아니라 반드시 날씬한 몸매로 돌아가자고 결심했죠.”
6년 칩거생활에 마침표 찍게 해준 다이어트
그날 이후 그는 처음 프로그램에 참가할 때보다 더욱 독한 마음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잠자고 밥 먹는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운동에 투자했다고 한다. 특히 달리기를 중점적으로 했다. 이하얀은 “다리 인대 나가는 것쯤은 이젠 무섭지도 않다”며 웃었다.
처음 그가 방송에 출연했을 때 몸무게는 68.2kg. 하지만 이는 방송 출연 전 단식으로 7kg을 감량한 수치다. 아무리 살을 빼기 위한 방송이라지만 그는 자신의 과거 모습을 알고 있는 대중 앞에 차마 75kg의 몸으로 나설 수는 없었다고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다이어트에 매진, 13kg을 감량해 키 174cm에 몸무게 55kg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최종적으로 몸무게를 재던 날, 너무 기뻐서 트레이너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어요. 그동안 운동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고통 뒤에 이렇게 큰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죠. 아무 의욕 없이 살았던 불과 두 달 전을 떠올리면 기적이란 말이 절로 나와요.”
그의 변화된 모습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열두 살인 딸 민이었다. 이하얀은 지난 2003년 탤런트 허준호와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고 있다. ‘다이어트 워3’ 출연을 앞두고 고민하던 그에게 가장 큰 용기를 준 사람 또한 민이다. 평소 그에게 “엄마 살은 부드러운 솜사탕 같아 좋아”라고 했지만 내심 엄마가 새롭게 변하기를 바랐던 것.
“방송 출연을 두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어서 아이한테 물어봤어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조심스럽게 ‘출연하면 좋겠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이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저보다 더 간절하게 제가 변하기를 바라는 눈빛이었거든요.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아이를 위해 변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 앞에서 창피당하는 것이 뭐가 대수냐 싶은 마음이 들었죠. 요즘은 민이도 덩달아 기분이 들떠 있어요. 엄마가 갑자기 날씬해지고 방송 촬영도 하니까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좋아하죠.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 사줘도 된다고 할 정도예요(웃음).”
이하얀은 이혼 후 체중이 20kg이나 불어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의욕 없는 삶을 살았다.
이혼 후 전 재산 사기당하고 시작된 우울증이 비만으로 이어져
이하얀의 체중 증가는 우울증에서 비롯됐다. 이혼 후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자 삶은 더욱 그를 옥죄어왔고, 마음의 병 또한 깊어졌다.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을 때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언니였는데, 이혼하고 얼마 안 됐을 때 투자를 권하더라고요. 민이와 먹고살려고 모은 전 재산을 아무 의심 없이 맡겼다가 하루아침에 날렸어요. 그 돈으로 민이 대학공부까지 시킬 생각이었는데…. 이후 식당에 월급사장으로 들어갔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어요. 우리 사회에서 이혼녀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 새삼 실감했어요.”
얼굴이 알려진 탓에 취업도 쉽지 않았다. 요구르트 배달을 하려 했지만 그를 알아본 대리점 사장은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데 왜 그러냐”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택시운전에도 도전했지만 열흘 만에 스스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야간운행 없이 낮에만 운전하기로 했는데, 회사 내 그와 관련된 소문이 퍼지면서 직원들끼리 수군덕대기 시작했던 것. 이하얀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건강이 안 좋아진 그는 남에게 피해 주는 게 싫어 더욱 깊은 운둔생활에 빠져들었다. 당시 그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먹기’였다고 한다. 하루에 대여섯 끼는 기본이고, 배가 불러도 잠깐 쉬었다가 또 먹을 것을 찾았다고. 그는 “그나마 먹는 것으로 다른 욕구를 마비시킬 수 있었다. 안 그러면 죽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먹는 만큼 몸무게도 늘어났고, 그는 60kg을 넘는 순간 체중계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는 몸무게를 재지 않았다.
“지금은 왜 그랬나 싶지만 당시 아무런 의욕이 없었어요. 딸 챙기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죠. 시장을 보거나 산책을 할 때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했어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던 것 같아요. 우울증은 비만으로 이어졌고, 그러면서 더 우울해지고… 악순환이 반복됐죠.”
“살만 뺀 게 아니라 지난 날의 상념도 함께 날려버렸어요”
그가 힘들어하자 아이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야뇨증을 앓은 것. 그는 “어른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어린아이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싶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아이는 병원을 다니며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이혼 후 불교에 입문한 이하얀은 출가를 계획한 적도 있다. ‘무엇이 부족해서 이렇게 낭떠러지에 매달린 채 살아야 하는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는 “내 인생을 알고 싶었고 가슴이 뻥 뚫릴 만한 깨달음을 얻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제 인생을 알아야 딸에게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물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숨쉬기조차 힘들 때도 많았지만,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요. 또 그런 제 모습이 딸의 미래가 될까봐 두려웠죠. 기도하러 다니면서 조금씩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고, 언젠가 눈감는 날에는 민이에게 후회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도 했어요.”
다이어트에 성공한 그는 시간을 과거로 돌린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큰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또한 살아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혼자 힘들었던 시간이 길기에 지금의 성과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고 한다. 이하얀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참 많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과거 힘들었던 시간은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밑거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몸에 붙어 있는 살만 뺀 것이 아니라 제 안에 있는 많은 상념도 함께 빼버렸어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저처럼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즐겁게 살을 뺄 수 있는 노하우를 전하고 싶어요. 제가 그들에게 작으나마 희망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제는 운동 없이는 못 살 것 같아요(웃음).”
SBS 공채 탤런트 출신인 그는 본업인 연기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기회가 된다면 그동안 억누르고 살았던 연기 열정을 다시금 불사르고 싶다고 한다. 조만간 딸 민이와 화보촬영을 계획 중이다. 그가 ‘다이어트 워3’에 출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오랜 지인, 지영빈 사진작가와 의미 있는 사진을 찍기로 한 것. 그는 “이번 화보촬영이 연기활동을 다시 하는 데 발판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모가 변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고, 다시금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그의 날갯짓이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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