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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안재형·자오즈민 아들 안병훈 US아마골프 우승 뒷얘기

글 정혜연 기자 | 사진 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9.10.23 15:00:00

한국에서 나고 자란 고등학생이 ‘2009 US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십’에서 최연소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주인공은 88올림픽 탁구 스타인 안재형·자오즈민 부부의 아들 안병훈군. 한국오픈 출전을 위해 잠시 귀국한 병훈군과 그를 그림자처럼 지키는 아버지 안재형씨를 만나 우승 뒷얘기를 들었다.
안재형·자오즈민 아들 안병훈 US아마골프 우승 뒷얘기



지난 8월31일,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 서던힐스 골프장에서 열린 제109회 US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이뤄졌다. 스탠퍼드대 소속 벤 마틴을 7타차로 따돌리고 한국의 안병훈군(18)이 승리의 미소를 지은 것. 이날 그는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이자 역대 최연소 우승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경기 내내 병훈군의 곁을 지킨 이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바로 88올림픽 탁구 동메달리스트 안재형(44). 병훈군은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으로 화제를 모으며 89년 결혼한 안재형·자오즈민 부부의 외아들이다. 아들과 나란히 트로피를 들고 취재진의 질문공세에 답을 하는 안재형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는 “우승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챔피언이 돼 얼떨떨하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열흘 뒤 한국을 찾았다. 한국오픈 출전을 위해서였다. 공항에서는 열띤 취재경쟁이 펼쳐졌다. 병훈군은 “이렇게 많은 분이 공항에 나올 줄 몰랐다”며 당황했지만 곧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양용은 선수처럼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싶다”고 침착하게 소감을 밝혔다.
이날은 두 사람 곁에 자오즈민(46)도 함께 서 있었다. 그는 현재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휴대전화 부가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다. 아들이 우승을 할 당시에도 그는 중국에 있었다. 뛸 뜻이 기뻐하며 통화하는 엄마와 달리 병훈군은 담담해했다고 한다. 이유는 경기에서 진 상대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아들이 경기를 치르면서 매우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며 웃음 지었다.
안재형·자오즈민 아들 안병훈 US아마골프 우승 뒷얘기

여섯 살 때 골프 재능 발견, 만사 제치고 뒷바라지
안병훈군은 여섯 살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당시 취미로 골프를 배우던 안재형은 또래보다 다소 뚱뚱한 병훈군을 데리고 나들이 겸 골프장으로 갈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병훈군은 골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하는 걸 보고 옆에서 흉내를 내더라고요. 진짜 골프채는 아이에게 크니까 몸에 맞는 막대를 쥐어줬는데 자세가 나쁘지 않았어요. 제대로 가르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수소문을 해서 골프부가 있는 초등학교에 보냈죠.”
부모가 모두 탁구선수였기에 자식에게도 탁구를 시키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을 듯하다. 안재형은 “사실 그런 생각도 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탁구선수로 성공하기까지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섣불리 권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탁구는 젊을 때 반짝 할 수 있는 운동인 반면 골프는 나이 들어서까지 할 수 있으니 아이에게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고. 자오즈민도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병훈이가 탁구선수에게 중요한 순발력이나 민첩성이 좀 떨어졌어요. 상대적으로 지구력, 튼튼한 하체 등 골프선수에게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죠. 그래서 골프를 시켰는데 요즘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시키고 나니 여러 가지 지원해야 할 게 많아 만만하게 볼 스포츠가 아니라는 걸 실감하고 있거든요(웃음).”

안재형·자오즈민 아들 안병훈 US아마골프 우승 뒷얘기

이 부부는 아들이 타이거 우즈 같은 세계적인 프로 골퍼가 되기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저 골프를 즐기며 평생 동반자 삼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그런 소박한 소망에 비해 병훈군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또래에 비해 체격도 좋았고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기본기도 빠르게 잡혔다.
안재형은 아들이 운동을 하느라 공부에 소홀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고 한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수업에는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키도록 했다. 덕분에 병훈군은 중학교 때까지 늘 중상위권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골프만 하는 아이들에 비해 실력이 뒤처지기 시작했어요. 골프연습장 이용권, 필드비 등 들어가는 돈도 늘어났죠. 상대적으로 미국은 골프장도 많고 이용료가 싸서 훈련하기 좋더라고요. 또 공부를 하면서 골프를 병행하는 아이들도 많았고요. 어차피 ‘큰 물’이 목표라면 일찍 떠나자는 생각에 4년 전 미국으로 갔어요.”
혼자 미국으로 건너간 병훈군은 이듬해 빈혈증세로 쓰러졌다. 당시 대한항공 탁구팀 감독을 맡아 승승장구하던 안재형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자오즈민은 사업 때문에 남편과 아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병훈군은 미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고 한다.
“엄마와 중국어로 대화한 덕분인지 영어도 금방 배우는 것 같았어요. 친구도 잘 사귀고 학교 공부도 금세 따라잡더라고요. 수학은 좋아하고 잘하는 데 비해 미국사 같은 과목은 한국에서 배운 적이 없고 용어도 어려워 좀 버거워했죠. 지금도 읽고 쓰는 건 여전히 어려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병훈군은 골프를 하면서도 학교를 빠진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덕분에 지난 학기에는 학교에서 ‘전 과목 A’라는 놀라운 성적을 받았다. 아버지의 자랑에 곁에 있던 병훈군은 쑥스러운 듯 “어쩌다 운이 좋았을 뿐 이번 학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인 병훈군은 이미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에 스카우트돼 내년 입학을 앞두고 있다. US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날 학교 측에서 축하전화가 왔을 정도로 기대를 받는 예비 신입생이다.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프로선수로 활동할 수 있지만 병훈군은 당분간 주니어 대회에 출전할 생각이라고 한다.
안재형·자오즈민 아들 안병훈 US아마골프 우승 뒷얘기

“남들은 US아마대회에서 우승한 선수가 무엇 때문에 주니어 대회에 출전하느냐고 하지만 아직은 프로에 진출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사실 이번 US아마에서 컷 통과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승을 해서 저 또한 굉장히 놀랐어요.”

골프 외에 영어·중국어 잘하고 성적도 좋은 듬직한 아들
어려서 골프를 시작해 힘든 점은 없냐고 묻자 그는 “별로 힘들지 않다”고 답했다.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골프 자체가 싫었던 적은 없어요. 경기를 앞두고 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픈 욕심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뿐이죠. 엄마와 떨어져 사는 거요? 그립고 보고 싶지만 참기 힘들 정도는 아니에요. 두 분 모두 절 위해 애쓰시고 계시니까 제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86cm에 96kg의 다부진 체격만큼이나 어른스러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사진촬영 전까지 mp3 플레이어를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은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다. 미국으로 간 지 4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TV프로그램과 가수를 좋아한다고. 요즘은 2NE1·카라 등 한국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한다.
현재 병훈군 캐디 역할을 하고 있는 안재형은 아들의 실력이 안정되면 훌륭한 전문가의 손에 아들을 맡기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가족이다 보니 경기를 치를 때 감정이 쉽게 드러나 미안할 때가 많다고.
“제가 곁에서 캐디를 봐주면 24시간 함께 있으니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부분은 있대요. 하지만 약간 실수라도 할라치면 아쉬워하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니까 짜증도 나고 그러나봐요. 전문가의 손에 빨리 맡기고 싶은데 비용도 만만치 않고, 또 섣불리 맡겼다간 잘못될까봐 여러모로 걱정이 많아요.”
병훈군은 미국으로 돌아가면 학교부터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데 경기 때문에 수업에 출석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고. 또 앞으로 골프 스윙도 다듬고 체력훈련도 더 열심히 해서 기본기를 더욱 탄탄하게 갖추고 싶다고 한다.
“타이거 우즈의 카리스마, 필 미켈슨의 쇼트게임을 고루 닮아 그들과의 경기에서도 이기고 싶어요. 저도 양용은 선수처럼 한국인으로서 미국 프로무대에서 우승하는 날이 오리라 믿어요.”

여성동아 2009년 10월 5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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