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45)·이지연(28) 부부가 3년째 둥지를 튼 경기도 남양주의 보금자리. 초인종 소리를 듣고 현관까지 마중 나온 아들 현이가 객을 맞는다. 구슬 같은 눈을 또르르 굴리며 낯선 이를 살피던 현이에게 인사를 건네자, 수줍은 듯 웃으며 엄마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얼른 숨는다. 그런 아들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엄마아빠. 그 순간 ‘행복하냐?’고 묻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말을 들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세 식구, 아니 정확히 말해 엄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올 채비를 하고 있는 딸까지 네 식구가 살을 부비며 살고 있는 복층아파트. 화목한 가정에 걸맞게 너른 창으로 햇살이 함박 쏟아져 들어와 집 안에는 온기가 돌았다. 특히 이곳은 김승환이 인테리어를 전부 하다시피 했기에 더욱 특별하다. 최근에는 안방에 딸린 드레스룸을 터서 자그만 서재를 만들었다. 책장은 벽에 칸칸이 선반을 짜 올렸는데, 1, 2층은 아이가 쉽게 꺼내 볼 수 있도록 키 높이에 맞게 디자인했다. 그리고 아직 신혼의 여운이 남아 있는 부부답게 결혼사진을 걸어둘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아내와 아이들 위해 집 안 곳곳 손본 자상한 가장
“아이가 책을 읽을 나이도 됐고, 둘째도 곧 태어나니까 겸사겸사 만든 거죠. 책장 만든다고 했을 때 아내는 별 기대 안 하는 눈치였어요. 다 완성한 다음 짠~ 하고 보여줬더니 입을 다물지 못하더라고요.”
두툼한 쿠션으로 만든 거실 테이블도 특이하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거기에 얽힌 사연도 들려줬다. “원래는 대리석 테이블이에요. 그 모서리에 아이가 머리를 부딪쳐 다친 적이 있어요.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처음에는 두꺼운 담요를 씌워 테이프로 칭칭 감아놨는데, 손님 올 때마다 뜯어야 하니까 얼마나 귀찮겠어요. 그래서 동대문에서 원단 끊어다가 제가 만든 거예요. 이것도 처음엔 반신반의하더니 완성된 걸 보여주니까….” 아내가 뒷말을 잇는다. “역시!(웃음) 남편은 집안일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챙겨요. 가족에게 필요한 것이 뭘까 궁리를 많이 하나 봐요. 듬직해요.”
연애시절 만났던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남편은 달라졌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법도 없다. 오직 집밖에 모르는 가정적인 남자가 됐다. 도리어 밖에 좀 나가라고 떠밀 정도다.
“결혼 전엔 집이란 밖에서 떠돌다 갈 곳이 없을 때 들어오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밖에 나가면 자꾸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져요. 귀소본능이 생겼나 봐요(웃음). 술 한잔하더라도 집에서 먹는 게 좋지 밖에선 싫더라고요.”
대장암·나이 차·처가 반대… 수차례 고비 넘기고 결혼
2007년 두 사람의 결혼은 많은 화제를 모았다. 열일곱 살 나이 차이도 그렇거니와 김승환이 대장암을 극복한 직후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는 2005년 친구의 권유로 장세척을 받으러 병원을 찾았다가 대장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이후 연기활동을 중단하고 대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큰 수술과 3개월 동안의 항암치료를 거쳐 식이요법과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이러한 지난한 투병 끝에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 처음에는 심신을 추스르기에도 바빴던 터라 연애는 생각지도 못했다. 꽁꽁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린 건 이지연씨다. 상처받을까 두려워 소심하게 대하기 일쑤였던 마흔 두살 남자를 스무 다섯살 여자는 대범하게 감싸 안았다.
얼마 전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에 출연한 두 사람은 그러한 연애시절 이야기를 털어놨다. 방송 이후 김승환은 ‘나쁜 남자’라는 불명예를 얻었고, 이지연은 ‘쿨한 여자’의 대명사가 됐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랬다. “결혼 전 남편이 큰 빚이 있다고 했는데, 어느 날 은행에서 날아온 우편물을 보니 거짓말이었다”는 아내의 말에 “혹여 돈 씀씀이가 헤플까봐 그랬다”고 해명한 것이 화근이 됐던 것이다. “인터넷 댓글 거의 다가 저에 대한 안티더라고요. 아내가 ‘주부 입장에선 그럴 수 있지만 젊은 여성은 다를 수 있다’고 위로해 주긴 했어요(웃음). 사실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여자도 많잖아요. 아마 지연이도 그랬던 것 같아요. 당시 지연이는 서울 논현동에, 저는 남양주에 살았는데, 만나고 싶으면 오라고 했어요. 거기서 여기까지 왔다 갔다 했던 거죠.”
김승환이 아내를 위해 직접 와인바처럼 꾸민 주방.
“남편의 진심을 아니까 확실히 밀고 나간 거죠. 어떤 여자가 자기 싫어하는 남자한테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사실 제가 원래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거든요. 누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 밖에도 잘 안 나가는데, 얼굴 한 번 보겠다고 거의 매일 직장 끝나면 지하철 타고 남양주까지 왔어요. 사랑의 콩깍지가 씌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근데 무한정 잘해줬으면 결혼 안 했을 수도 있어요. 저를 좋아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오기 같은 게 발동했던 것 같아요.”
김승환이 한 발짝 달아나면 이지연은 두 발짝 따라붙었다. 2년여의 연애기간은 그 거리를 좁혀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는 사이 서로의 마음은 점점 가까워졌고, 나이 차 만큼이나 멀어 보였던 결혼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하나의 숙제가 남아 있었다. 이지연의 부모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그의 부모는 처음엔 열일곱 살이나 많은 남자와의 결혼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완강히 반대했다. 하지만 딸의 마음이 확고한 걸 확인하고선 일단 한번 만나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아무 말 없이 술 한 잔 들이켠 장인의 첫마디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네!”였다. 그렇게 술잔이 몇 번 오가면서 장인의 마음도 점차 누그러졌다. 지금은 그를 아들처럼 살갑게 대해준다. 경남 진해에 있는 처가에 내려갈 때마다 그의 건강을 생각해서 영양식이나 보양식도 자주 챙겨준다. 더욱이 유기농 채소나 과일, 고기 등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서 택배로 보내주곤 한다. 그가 보란 듯이 베란다에 수북이 쌓여 있는 박스를 가리키며 흐뭇하게 웃는다.
김승환은 결혼하고 180도 달라졌다. 연애시절 아내에게 받았던 사랑을 차근차근 갚아나가는 중이다. 아내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남편의 자상함에 놀라면서도 내심 기분 좋다.
“연애할 때 잘했던 남자가 결혼하고 나서 못하면 섭섭하잖아요. 그것 때문에 싸우는 부부도 많고요. 저희는 그럴 일이 전혀 없어요. 남편은 기념일도 잊지 않고 챙겨줘요. 제가 다른 일에 정신 팔려 있는 사이 슬며시 다가와 목걸이를 걸어주기도 하고, 밖에 나갔다 예쁜 액세서리를 발견하면 깜짝 선물로 주기도 해요. 보통 남편들 그런 거 잘 못하잖아요.”
이번엔 남편의 칭찬이 이어진다. “아내가 음식을 정말 잘해요. 나이가 어리니까 기대도 안 했거든요.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해달라고 한 음식이 갈비찜, 장조림이었어요. 열심히 배우게 하려고 일부러 어려운 걸 부탁한 거죠. 그런데 저희 어머니보다 더 맛있게 해요. 조미료나 감미료도 천연으로만 쓰는데,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깊은 맛을 내요.”
부부 사이에서 칭찬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단 한마디의 칭찬은 지친 어깨에 힘을 주고, 우울한 얼굴에 기쁨을 주며, 자신 없는 마음에 용기를 준다. 지금처럼 칭찬 릴레이가 이어진다면 결혼 생활 내내 행복이 깃들지 않을까.
건강 관리 잘해 아이들 결혼하는 모습까지 보고 싶어
김승환·이지연 부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아들 현이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던 늦깎이 아빠는 마치 아들의 우렁찬 첫 울음소리에 장단을 맞추듯 펑펑 울었다. 그 탄생의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당시 그는 연극 ‘켄터베리이야기’ 공연 중이었다. 병원에서 아내가 진통하는 모습을 보고 공연을 하러 갔다가 끝나고 다시 왔는데, 그때까지도 진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오전에 비로소 아기가 태어났다.
“수고했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줬어요. 처음부터 자연분만을 고집한 건 저였어요. 그게 산모와 아기 모두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했죠. 제왕절개를 할 경우 한 달 이상 누워 있어야 하고, 아기 역시 면역력 하나를 잃고 나온대요. 그런데 막상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니까 달라졌어요. 도중에 제가 제왕절개하자고 했는데도, 수건을 달래서 입에 꽉 물고 참아내더라고요. 그 오랜 진통을 견뎌준 아내가 정말 대견했어요.”
부부가 바라던 대로 둘째는 딸이다. 태어나면 은성이라는 이름을 선물할까 생각 중이다. 출산예정일은 12월 중순인데, 현이가 12월7일 생이니 어쩌면 두 아이의 생일이 같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딱 두 살 터울이 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최근 KBS ‘지석진 최원정의 여유만만’에 출연한 김승환은 미래의 며느리와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적지 않은 나이가 마음에 걸렸던 탓일까. 생방송 도중 갑자기 울컥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애잔하면서도 뜨거운 부성애에 많은 시청자들이 감동했다.
“저는 60년대, 아내는 80년대, 아이들은 2000년대 태어난 거잖아요. 저는 벌써 마흔다섯인데, 현이는 이제 두 살이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죠.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울컥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일도 많이 하려고 해요. 최근에 드라마를 하려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못 하게 됐어요. 몸 관리 더 잘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아이들 시집장가 가는 모습까지 꼭 보고 싶어요.”
가족만큼 힘이 되는 존재는 없다. 세상에서 유일한 ‘나의 편’이기 때문이다. 남편을 위해, 아내를 위해, 그리고 자식을 위해 기꺼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김승환·이지연 부부. 생김새는 다르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가족이다. 서로에게 맞춰가는 사이 부부는 자연스레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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