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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선덕여왕’ 웃음폭탄 류담

글 임윤정 기자 | 사진 지호영 기자

입력 2009.09.23 11:28:00

주연만큼 빛나는 조연이 있다. ‘선덕여왕’의 류담이 그렇다. 죽방(이문식)에게 머리를 얻어맞고도 금세 헤헤거리며 따라붙는 바보스러울 만치 순수한 낭도 고도. 그는 이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극에 감칠맛을 더해 시청자에게 보는 맛을 안겨주고 있다. 어느덧 경력 7년 차에 접어든 개그맨이지만, 연기자로선 이제 막 출발선을 통과한 류담. 장거리 달리기에서 필요한 건 지치지 않고 내달릴 뚝심이다.
‘선덕여왕’ 웃음폭탄 류담


류담(30)을 만나기 위해 서울 여의도에 있는 그의 소속사를 찾았다. ‘개그콘서트’ 리허설이 늦어지는 바람에 그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주인 없는 집에 객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무대의상이 빽빽이 걸려 있는 옷걸이 주변으로 급하게 벗어놓은 옷가지가 너부러져 있다. 개그와 연기를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사무실 구석구석을 거의 훑어봤을 즈음 그가 촬영을 위해 기른 머리를 질끈 묶어 올린 채 나타났다. 방송에서의 코믹한 모습을 훌훌 털어내고 의외의 진지함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지만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호탕하게 웃어젖힐 때마다 고도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잘한다’는 칭찬에 힘이 나는 요즘
‘선덕여왕’에서 잔머리 좋은 ‘홀쭉이’ 죽방과 힘이 센 ‘뚱뚱이’ 고도가 만들어내는 코믹연기는 극 전체에 흐르는 긴장감을 한층 편안하게 풀어준다. 한 드라마에서 생니까지 뽑는 연기 투혼을 펼쳤던 이문식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배우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야무지게 소화하고 있는 류담이다. 표정연기도 일품이다. 억울해 죽겠다는 듯 실룩거리는 입, 겁을 잔뜩 집어먹고 동그랗게 뜨는 눈,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는 얼굴 등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 개그맨이 연기자로 데뷔할 경우 카메오 역할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는 그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만큼 그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극 속에 녹아들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선덕여왕’ 웃음폭탄 류담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문제였어요. 개그맨이기 때문에 연기자와 잘 섞여들지 못하면 어쩌지, 튀면 어쩌지 걱정이 많았어요. 더욱이 이문식 선배님과 잘 맞춰갈 수 있을까, 누가 되지는 않을까 부담도 컸고요.”
류담은 연기로 잔뼈가 굵은 배우 이문식을 스승으로 삼고 많은 걸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고 있다. “센 연기를 약하게 하는 건 쉽지만, 약한 연기를 세게 하는 건 어렵다. 항상 센 연기를 할 수 있는 연기력을 키워라!”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연기자로서의 근성을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스승과 제자는 시간이 날 때마다 머리를 맞대고 애드리브를 짠다. 드라마 속에서 죽방과 고도가 살 궁리를 하기 위해 속닥거리는 것처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까요?’ 서로 주거니받거니 각 상황에 맞는 즉흥 연기를 연구한다. 그러한 노력 때문일까. 애드리브가 가미된 코믹연기는 시청자들의 배꼽을 쥐고 흔든다.
“드라마 초반에 진흙탕 위를 뛰어가는 장면이 있었어요. 한참 촬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문식 선배님이 넘어지자는 거예요. ‘네가 넘어지면 내가 엎어져 넘어지고, 내가 다시 가려고 하면 네가 다시 날 잡아!’ 원래는 대본에 없던 건데, 즉석에서 만든 장면이죠. 촬영이 끝났는데 온몸이 진흙으로 범벅이 됐어요. 마땅히 씻을 데도 없어서 무작정 근처 음식점으로 들어갔어요. 완전 거지꼴에 옆에는 칼까지 차고 있으니 주인아저씨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양해를 구하고 수돗가에서 대충 씻었던 기억이 나요. 이 밖에도 힘들었던 일이 엄청 많아요. 감독님도 초반에 가장 고생한 팀은 용화향도라고 하시더라고요.”
비록 드라마에서이긴 하지만 몇 차례 전쟁을 치르고 나니 함께한 연기자 사이에 전우애가 생겼다. 여자인 이요원마저 같은 얘길 했다. 다 같이 하는 촬영도 참 많았다. 발에 끈을 묶어 같이 걷는다거나, 방패로 막으며 대형을 만든다거나, 칼을 들고 발 맞춰 뛰어간다거나, 옆에서 가쁜 숨소리를 듣고, 진한 땀 냄새를 맡으며 서로 챙기고 위로하다 보니 저절로 친밀감이 생겼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촬영장에서 만나면 전쟁신 얘기를 해요. 처음 만나면 서로 간에 벽이 있잖아요. 그걸 허물 수 있는 게 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거든요. 어느 한 사람이 그때 얘기를 꺼내면 다들 할 말이 한 마디씩은 있거든요. 대화가 되니까 서로 빨리 친해진 것 같아요.”
선배 연기자나 스태프가 그를 ‘개그맨’이 아닌 ‘연기자’ 류담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있다. 용화향도 가운데 시열(문지윤)이 죽는 장면이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의 죽음이지만 함께 고생한 친구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날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잘 울었다. 한참 울다가 앞을 보니 이요원이 배꼽을 쥐고 웃고 있었다. 민망함에 콧물이 거꾸로 올라와서 사레가 걸렸다. 끝나고 이문식을 비롯한 선배 연기자들이 “개그맨이 어떻게 연기자보다 잘 우냐?”며 칭찬을 쏟아냈다.
“과분하게도 잘한다 잘한다 해주시는데, 아마 처음치고는 잘한다는 뜻인 것 같아요. 더욱이 나쁜 소리 안 듣는 이유는 이문식 선배님이 옆에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묻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분한테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첫 드라마인데 선배님 만났고, 캐릭터 좋고, 시청률 잘 나오니까 운 진짜 좋은 것 같다’고. 선배님이 딱 한마디 하세요. ‘네가 잘해서 그런 거야.’ 하하하하~, ‘내가 잘해서 그런 거구나’. 하하하하~.”

‘선덕여왕’ 웃음폭탄 류담

운명처럼 개그맨 길 들어섰지만 오랜 시간 조연에 머물러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98년 서울예술대학 연극영화과를 들어가 그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그러나 주위에선 개그동아리인 ‘개그클럽’ 오디션을 보라며 자꾸 개그 쪽으로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개그에는 관심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MBC 개그콘테스트에 응시하기도 했지만 최종에서 떨어지자 미련 없이 군대에 갔다. 제대를 두 달 남겨두고 진로를 고민했다. 결심을 굳힌 건 역시 배우였다. 그러나 그에게 운명의 손짓을 보낸 건 이번에도 개그였다. 제대하자마자 개그맨 백재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미화 20주년 기념 콘서트 오디션을 보라는 내용이었다. 콘서트를 끝내고 난 뒤에도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또 김미화에게서 KBS 개그콘테스트에 원서를 넣어보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별생각 없이 원서를 넣었는데, 떡하니 붙었다. ‘이걸 어떡해야 되나. 팔자인가 보다.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개그맨 생활을 시작했다. 욕심이 없으니 더 잘됐다. 동기 중에 제일 먼저 ‘개그콘서트’ 코너로 올라갔고, 그 뒤로 한 번도 쉬지 않고 코너를 맡았다. 개그맨을 하라는 운명의 계시였다.
‘선덕여왕’ 웃음폭탄 류담

“주로 남을 받쳐주는 역할을 많이 맡았어요. 저도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 가운데 가장 기가 막히게 받쳐준 게 수근이 형과 함께 한 ‘고음불가’였어요. 5년 이상 한 번도 쉬지 않고 ‘개그콘서트’를 했는데도 사람들이 잘 몰랐어요. ‘어디서 본 것 같다’ 이 정도였죠. ‘고음불가’ 하면서 조금씩 알아봐줬죠. 사실 그때도 잘 몰랐어요. ‘이수근 왼쪽에 있는 사람, 오른쪽에 있는 사람’으로 불렸지 다들 제 이름은 몰랐어요. 그러다 ‘달인’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졌죠.”
개그맨으로서는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었다. 군대 제대하고 바로 개그맨이 됐으며, 동기들 가운데 가장 먼저 ‘개그콘서트’에 나왔고, 쉬지 않고 인기 코너를 맡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굴곡도 있었다. 2005년 그의 아버지가 폐암선고를 받은 것이다. 한 달에 병원비만 1천만원이 넘었기 때문에 이를 충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별의별 행사를 다 뛰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얼굴에 분칠하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사람들을 즐겁게 해줘야 했다. 개그맨을 직업으로 가진 이의 비애였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웃음을 뽑아내는 데 한계를 느꼈다. PD에게 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은행 융자를 받았다. 석 달 정도 쉬면서 아버지 병간호에 전념했다. 병세가 호전돼서 다시 ‘개그콘서트’에 돌아왔는데, 운 좋게도 ‘고음불가’를 하게 됐다. 아버지도 많이 기뻐했지만 지난해, 끝내 세상을 떠났다.
“원래는 1년 3개월 사신다고 하셨는데, 3년 넘게 버티셨죠. 돌아가시기 전에 저 때문에 오래 살았다고 말씀하셨어요. ‘선덕여왕’은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원래 다른 사람이 하기로 돼 있던 역할인데, 제가 하게 된 거니까요. 시청률도 잘 나오고요. 많이 도와주시는 같아요. 그래서 부끄럽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개그맨과 연기, 그 어느 한 곳에 무게중심을 두진 않는다. 다만 그의 본업은 개그맨이기 때문에 항상 가야 할 곳은 ‘개그콘서트’라고 생각한다. 개그콘서트가 있었기에 ‘선덕여왕’도 할 수 있었다. 주어진 길을 가다 보면 인생은 다른 길을 터준다.
그에겐 결혼을 생각하는 여자친구가 있다. 두 사람은 3년째 열애 중이다. 후배가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며 그를 술자리로 불렀다. 몸살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더욱이 다음 날 일찍 촬영이 잡혀 있었지만 인연이 되려 했는지 나가게 됐다. 소개팅 자린지 몰랐던 여자친구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더욱이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막 돌아온 터라 그가 개그맨인지, 그가 출연한다는 ‘고음불가’가 뭔지조차 몰랐다.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받지 못한 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바래다주는 길에 잠깐 잠이 든 여자친구의 모습을 봤는데, 그 순간 왠지 모르게 한 번 더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 차에서 내릴 때 전화기를 빼앗아 자신의 번호를 얼른 찍어버렸다. 집에 잘 들어갔냐는 문자에도 묵묵부답이었다. 남자의 오기가 발동했고, 마침내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다.

‘선덕여왕’ 웃음폭탄 류담

“결혼을 결심한 건 세 번째 만났을 때예요. 당시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는데,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더라고요. 얼굴만 예쁜 줄 알았는데, 마음까지 예쁘구나 생각했죠. 저는 저희 아버지 같은 남편이 되고 싶어요. 눈을 감으시기 전에 ‘평생 당신만을 사랑했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남기고 가셨어요. 아버진 집과 회사, 두 곳에만 전념하셨어요. 30년 살면서 외박 한 번 하신 적 없을 정도로 가정적인 분이셨죠.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저도 그런 남편이 되고 싶어요.”
결혼식은 ‘선덕여왕’이 끝나는 내년쯤으로 잡고 있다. 지금은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 그의 단점 중 하나가 두 가지 이상을 잘 못한다는 거다. 그가 말하는 또 하나의 단점은 많은 먹는다는 거? ‘뚱뚱이’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드라마 초반에 고된 촬영으로 살이 많이 빠졌었는데, 방송국 국장이 그를 보고 살 빼면 안 된다며 이것저것 사서 먹였다. 이문식 역시 그와 같은 캐릭터는 없다며 드라마 끝나더라도 살은 빼지 말라며 엄포를 놓고 있다.



3년 사귄 여자친구와 내년쯤 결혼 계획
“그래도 조금 빼야 할 것 같아요. 몸이 힘들어요. 이틀 전에 도망가는 장면을 찍느라 새벽 1시부터 6시까지 뛰어서 발이 퉁퉁 부었어요. 갇혀 있던 죽방·고도·소화가 탈출하는 장면이었는데, 이문식 선배님과 어떻게 빠져나갈지 온갖 상상을 다 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나가냐면…, 제가 그냥 문을 부셔요(웃음). 감독님 말씀은 죽방과 고도는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된다는 거죠. 대본 나오기 전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얘기를 많이 나눠요. 그중 하나가 죽방이 뭔가 큰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가 미실을 보고 겁내는 이유를 아무도 몰라요. 분명히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미실의 전남편이었을 거라고 농담도 해요(웃음). 고도는 초능력을 갖고 있어요. 아직 한 번도 보여준 적은 없는데, 조만간 나올 것 같아요. 무술감독님도 저는 무술 배울 필요가 없대요(웃음).”
연기에 있어서 롤 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1초도 생각지 않고 서슴없이 ‘“이문식”이라고 답했다. 만나기 전부터 그의 영화와 드라마는 거의 다 봤을 만큼 오랜 팬이었다.
“흔히 재미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연기에 관해서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진지하세요. 지금도 신인처럼 현장을 뛰어다니시죠. 연기자인데도 개그맨 이상의 감을 가지셨고요.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를 하세요. 진정한 희극배우죠. 이문식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즐거워지잖아요. 앞으로 선배님과 같이 연기할 기회는 별로 없을 것 같아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많이 배울 생각이에요.”
‘선덕여왕’은 내년 초 막을 내릴 것이다. 그때까지 고도로서의 소임을 다할 것이다. 드라마 섭외도 하나 들어왔는데, 조율이 잘되면 참여할 생각이다. 물론 개그맨으로서도 마찬가지다. 9월에 ‘개그콘서트’ 10주년이 된다. 녹화에 나와달라고 이문식을 조르고 있는 중인데, 그럴 때마다 못 들은 척 딴 곳만 쳐다본다고. 드라마와 개그뿐만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영화·연극·뮤지컬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하지만 크게 욕심 부릴 생각은 없다. 욕심을 조금 낸다면 연말 시상식에서 이문식과 커플상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거다.
사람들이 그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서 좀 있으면 웃기겠지, 재미있겠지 기대할 수 있는 희극배우가 되고 싶다는 류담. 이제 막 출발선을 통과했다. 그는 앞으로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그에겐 결승점을 향해 꾸준히 내달릴 지구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동아 2009년 9월 5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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