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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악몽! ‘페놀박피’의 최후

글 이설 기자 | 사진 문형일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9. 09. 12

거울을 보다 보니 자꾸 욕심이 난다. 옅은 주름과 기미도 내 눈엔 도드라져 보인다. 힘겹게 결정한 고가의 시술. 결과는 참담했다. 아기 피부를 꿈꿨건만 얼룩덜룩 붉은 흉터만 선명하다. 얼굴이 변하는 순간 나도, 세상도 변했다. 평범한 인생을 180도 바꿔놓은 페놀박피 부작용 사건의 내막.

기적? 악몽! ‘페놀박피’의 최후

“사진 보이시죠? 이 시술을 받으면 아기 피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군데군데 앉은 기미로 칙칙한 ‘Before 사진’과 잡티 없이 투명하고 깨끗한 ‘After 사진’. 2006년 케이블TV 의료전문 프로그램을 보던 A씨(40)는 귀가 솔깃했다. 평소 피부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지만 최근 부쩍 늘어난 눈 아래 기미가 신경 쓰이던 터.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 원장이 직접 나와 자신이 개발했다는 박피 시술을 설명하자 “나도 한번?” 하는 마음이 들었다.
병원 홈페이지를 검색해 들어가자 원장의 화려한 이력이 화면 가득 펼쳐졌다. 15년간 연구 끝에 기미·흉터를 완벽히 제거하는 ‘심부피부재생술’을 완성했으며, 다른 병원 의사들이 이를 배우고 간다는 설명도 있었다. 홍보 동영상을 클릭하자 동안 피부로 유명한 연예인이 “시술을 할수록 좋아져 몇 번이나 했다”며 미소 지었다. 세월을 비켜가는 연예인들의 비결이 이것이었나. 다급해진 그는 곧장 전화로 예약을 잡았다.
“기미를 치료하는 시술은 많아요. 지금 말씀드린 3가지는 5,6회 정도 받아야 효과가 나타나지만 기미가 완벽히 없어지진 않아요. 반면 원장님이 개발한 심부피부재생술은 단 한 번에 기미를 제거할 수 있어요. 두 달 정도 지나면 홍반도 없어지고요.”
“기미가 고민”이라는 A씨에게 실장은 이렇게 권했다. 비용은 1천2백만원. 눈이 휘둥그레진 그에게 “다른 시술은 5,6번 받아야 하니 총비용은 비슷한 셈”이라고 설득했다. 상담 후 만난 원장도 “간단한 시술이다. 붉은기는 금세 없어진다”고 그를 안심시켰다.

“살아 있으면 따져 묻기라도 할 텐데…”
며칠 뒤 수술대에 오른 A씨. 마음 한구석이 불안으로 흔들렸지만 멋진 피부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눈을 뜨자 뜻밖의 통증이 밀려왔다. 얼굴이 퉁퉁 부어 눈과 입을 움직일 수 없었고 피부는 불에 덴 듯 뜨거웠다. 수술 후는 더 악몽이었다. 녹아내린 피부를 긁어내는 작업이 이어졌다. 헛구역질을 하는 그를 지켜보던 간호원은 “실제로 토하는 사람도 있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1년 동안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며 병원에 매여 살았지만 검붉은 흉터는 여전했다. 그러자 병원은 2차 수술을 권했다. 비용은 2천만원. 어이가 없었지만 따질 여유가 없었다. 희망을 걸었던 2차 수술은 염증과 진물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안겼다. 이유를 물으면 병원은 “시간이 지나면 회복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그는 다시 3차 수술을 받았다.
“대학병원을 가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했어요. ‘국내에서 이 수술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러니 다른 병원에 가면 부작용만 난다.’ 제가 어리석었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다니….”
A씨는 2008년 4월 원장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해 병원이 문을 닫고서야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새로운 담당 의사의 진단은 절망적이었다. “얼굴 60%가 화학적 화상을 입어 치료를 한 뒤 피부이식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받은 수술은 페놀 성분을 이용한 화학 박피. 자랑하던 시술약의 실체는 독성이 있는 페놀 변형 성분이었던 것이다.
A씨 같은 환자는 한두 명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 동호회 회원은 무려 40여 명. 이 중 30~50대 여성 피해자 16명이 병원 의사들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냈다. 6명은 원장에게, 나머지 10명은 부원장과 다른 의사에게 시술을 받았다. 증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후유증은 안면화상. 이 가운데 80% 안면화상으로 3급 장애판정을 받은 환자의 상태가 가장 나쁘다. 화상으로 눈꺼풀이 올라가 눈도 제대로 감기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박피 시술비로 각각 1천2백만원에서 2천만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기적? 악몽! ‘페놀박피’의 최후

‘페놀박피’로 화상을 입은 피해자의 얼굴 사진.


8월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이건태 부장검사)는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부원장 등 의사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시술약의 성분도 모른 채 시술했으며, 피해자들에게 페놀 성분이 들어 있다는 점과 우려되는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얼굴이 망가진 뒤 A씨는 직장은 물론 모든 사회생활을 접고 집과 병원만 오가고 있다. 흉한 얼굴을 보이기 싫어 친한 친구도 만나지 않는다. 함께 소송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다른 피해자들과만 이따금 교류한다. 그는 “위험한 줄 알았으면 안 했을 텐데 일언반구 설명도 해주지 않은 원장이 야속하다. 살아 있으면 왜 그랬느냐고 묻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니 답답하다”며 흐느꼈다.
피해자들의 아픔은 컸지만 이번 사건은 여러모로 경종을 울렸다. 먼저 가장 일반적인 피부미용시술로 통하는 박피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벗겨낸다’는 뜻의 박피는 간편하게 깨끗한 피부를 되찾을 수 있는 시술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피는 방법과 벗겨내는 깊이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며, 환자의 조건에 따라 효과도 달라진다.
박피는 도구에 따라 기계·화학·레이저로, 피부층에 따라 표피층·중층·심층 박피로 나뉜다. 깊이 벗겨낼수록 효과는 좋지만 위험도 높아진다. 페놀박피는 화학물질을 이용한 심층 박피. 영국의 한 피부과 의사가 1백여 년 전 여드름 흉터를 없애기 위해 처음 만들었다. 그후 서양에서 발전을 거듭해 깊은 주름이나 짙은 기미를 없애는 데 주로 쓰였다.

“환자 상태 고려하지 않은 시술이 낳은 비극”
페놀은 아세트산의 일종인 TCA와 함께 화학박피술의 대표 약품으로 통한다. 하지만 독성이 있어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검증된 시술로 통하지만, 피부재생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동양인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심층 화학박피는 시술하는 국내 병원이 드물며, 성형외과에서 흉터치료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테마피부과 임이석 원장은 “페놀 심부박피는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라고 말했다.
“페놀을 이용한 심부박피는 제대로 하면 경과가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부작용이 따릅니다. 개인에 따라 적정 농도가 달라 환자의 조건을 꼼꼼히 따져야 하죠. 표피층이나 중층 박피로 없애기 힘든 주름이나 기미를 치료할 수 있어 여성분들의 관심이 높아요. 이번 사고는 과도하게 페놀박피를 시술해 부작용을 낳은 것 같습니다.”
의사들의 무책임한 영업태도와 우후죽순 쏟아지는 족보 없는 시술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술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안전성이 검증된 시술을 받으라고 말한다. 가벼운 스케일링이나 필링 등 얕은 박피나 상대적으로 안전한 레이저 시술을 이용하길 권했다. 충분한 상담과 정보력을 동원해 부작용 사례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기본. ‘완치’ ‘신기술’이라는 광고는 일단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또 복수의 병원을 통해 시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환자들의 주의다. 이번 사건의 1차 책임은 병원에 있지만 최종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피해자 B씨는 “병원에서 사탕발림을 해도 좀 더 알아봤어야 하는데 너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임 원장의 말이다.
“여성의 예뻐지고자 하는 심리를 이용하는 병원도 나쁘지만, 환자도 과도한 개선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10년 정도 어려 보이는 것도 힘든 일인데, 100% 아기 피부로 만들어달라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에요. 한데 모든 환자가 그렇게 요구하면 병원도 거기 끌려가게 되거든요. 피부미용도 과유불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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