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보테로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요?”
지난 8월 중순 방영된 KBS ‘퀴즈 대한민국’에선 보테로의 ‘꽃 3연작’을 보여주며 이 그림의 화가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묻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영웅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에서 나온 이 문제를 일곱 살짜리 아들 녀석이 덜컥 맞혀버렸습니다. 바로 전날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보테로전에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멋진 옷을 차려입고 아이와 함께 우아하게 갤러리를 거닐며 그림 감상하기. 모든 엄마가 한번쯤 꿈꿔봄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미술관에 가본 주부라면 아실 겁니다. 현실에선 쉽지 않다는 걸. 조금 유명한 작가의 전시다 싶으면 작품은커녕 사람들 뒤통수 구경만 하다가 오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사실 아이들은 미술관의 엄숙한 분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는 그림을 보는 것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맘껏 뛰지도, 큰 목소리로 말도 못하게 하니까 재미있을 리가 없겠죠. 심지어 저희 아이들은 그림 속 인물이나 조각상이 나와 설명을 해주는 미술관에 갔다가 무섭다고 기함하며 뛰쳐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페르난도 보테로전은 좀 달랐습니다. 인물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뚱뚱하게 묘사한 보테로의 그림에는 아이들도 쉽게 빠져들더군요.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에 가까운 정열적인 색상도 아이들과 코드가 잘 맞는 듯했습니다.
요즘 만화에 푹 빠진 아이들은 ‘저 정도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는 듯 흥미롭게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투우사를 그린 그림을 보고는 ‘저게 뭐 하는 거냐’고 꼼꼼히 따져 묻기도 했고, 서커스를 그린 그림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라틴 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콜롬비아’라는 나라 이름은 이렇게 아이 머릿속에 각인이 됐습니다. 요즘 한창 ‘예쁜 공주’에 빠져 “사람을 왜 저렇게 못생기게 그렸냐”고 묻는 딸에겐 “예쁘고 못생기고를 떠나서 개성이 중요하다”고 말해줬지만 쉽게 수긍하지 않더군요.
미술관에 가기 전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왕녀 마르가리타’와 보테로가 이를 패러디해서 그린 ‘벨라스케스를 따라서’ 등의 그림을 보여주는 등 예습을 한 것도 전시를 흥미롭게 관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아이는 이제 많고 많은 명화 중 보테로의 그림만은 확실히 기억할 것입니다. 미술관이 더 이상 멀게만 느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림이란 보이는 대로 정직하게 그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새로운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전시회를 다 둘러보고 나서는 막바지 신록이 절정을 이룬 덕수궁을 한 바퀴 돌아 수문장과 사진촬영도 했습니다. 모처럼 뿌듯하고 유쾌한 주말이었습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