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대에 진학하려면 반드시 외고나 민사고, 과학고 같은 특목고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할까. 노스웨스턴대 1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한 유하림씨(20)를 보면 답은 ‘꼭 그렇지는 않다’다. 유씨는 일반고를 나와 사교육과 유학원의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좁은 명문대 입학 관문을 통과했다. 관정 이종환 장학재단에서 장학금도 받았다. 하림씨의 경험은 자기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은 덕분에 대학 진학 후 오히려 더 우수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대목에서 더욱 관심을 끈다.
해마다 미국의 대학과 대학원을 조사해 순위를 매겨 발표하는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에 따르면 노스웨스턴대는 2천5백여 개에 달하는 미국의 4년제 대학 가운데 12위로 꼽히는 최상위권 대학. 하림씨는 현재 첫 3학기를 끝냈는데 (노스웨스턴대는 1년 3학기제) 앞의 두 학기 내내 상위 10% 우수학생에게 주는 ‘딘스리스트’를 받았다고 한다. 마지막 봄학기에는 다섯 과목 중 한 과목에 B 플러스를 받아 아쉽게 우등상을 놓쳤다.
미국 드라마 대사와 원서 통째로 암기
“일반고(단국대사범대부속고)에 진학했는데 1학년 때 도덕시험에서 59점을 받았어요. 전교 등수는 중학교 때보다 낮은 50등으로 떨어졌고요.”
미국 대학에서 거침없이 우등생의 길을 달리고 있지만 자신만의 공부법을 아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첫 번째 시련은 외고 입학시험 탈락이었다. 입시학원을 다니지 않았지만 영어에 자신이 있었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기에 탈락의 충격이 컸다. 설상가상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고 전교 1,2등을 다투던 세 살 위 누나는 원하던 의대 진학에 실패해 가족 모두에게 시련이 닥친 듯했다.
그럼에도 미국 유학을 결심한 것은 영어에 자신이 있어서였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미국 대학에 대한 동경도 생겼다. 초등학교 때는 키즈 클럽 학원에서 원어민 선생들과 영어로 놀면서, 중학교 때부터는 학원에 다니는 대신 오디오북과 미국 드라마를 통해서 영어에 대한 감각과 공부법을 익혀나갔다.
“중학교 다닐 때는 미국 틴에이저들이 쓴 에세이집인 ‘치킨수프’라는 원서를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어 다 외워버렸어요. 영어책에 나오는 문장을 통째로 외우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영어로 나오더라고요. 문법 공부는 따로 배운 적이 없어요.”
뉴욕을 배경으로 만든 미국 드라마를 얼마나 열심히 봤던지 대학에서 만난 미국인 학생들이 그에게 ‘뉴저지 출신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오디오북도 얼마나 많이 반복해서 들었는지 나중에는 “영어가 귀에 쏙쏙 들어오게 읽을 줄 아는 성우와 그렇지 못한 성우”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오디오북을 많이 들었던 것이 영어 단어의 정확한 뉘앙스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됐어요. 단어의 뜻만 외우면 미묘한 차이와 쓰임새를 잘 알기 어려워요. 영어는 문장을 통째로 듣고 외우는 게 제일인 것 같아요.”
하림씨는 영어를 무의식 상태에서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잠자리에 들 때 오디오북을 틀어놓았으며 잠에서 깨는 순간에도 영어가 들리도록 했다고 한다. 이렇게 중학교 때부터 영어의 기본을 잘 다져놓았기 때문에 고2 때 미국 대학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는 단어 외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단어를 많이 알수록 독해속도가 2,3배 빨라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특히 미국수능시험인 SAT의 크리티컬 리딩 섹션에서는 미국 대학생들이 읽는 수준의 지문이 무작위로 나옵니다.”
‘Barron’s how to prepare for the SAT 1’ ‘Word Smart’ ‘Super Voca’ 등 시중의 어려운 단어집을 구해서 ‘하루 500단어 외우기’식의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세워놓고 매달렸다.
“무턱대고 외우기보다 한 번 외운 후 20분 후에 다시 외우고, 한 시간·세 시간 간격으로 반복해주면 머릿속에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다고 해서 그 방법을 썼어요. 단어를 써놓은 종이를 작게 잘라 방 곳곳에 늘어놓고 눈에 띌 때마다 자꾸 반복하기도 했고요.”
든든한 조력자인 부모님과 함께한 유하림군. 특히 아버지 유영신씨는 유학관련 정보를 직접 수집하며 아들을 도왔다.
그의 영어 단어 외우기 방법은 ‘눈사람 이론’이라고 했다. 눈을 뭉쳐 굴리면 처음에는 조그맣지만 나중에는 한 번만 굴려도 금세 커지는 것처럼, 단어 외우기도 매일 꾸준히 3개월쯤 하다보면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한 결과, 두 번의 SAT에서 처음에는 2000점을 받았고 고3 5월에 본 두 번째 시험에서는 2220점을 받았다. 덕분에 여름방학 이후로는 미국 대학 입학사정에서 중요시하는 과외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투리 시간 활용해 내신관리, 유학정보는 인터넷에서 수집
하림씨는 과외활동에도 영어 실력을 긴요하게 활용했다. 아버지 유영신씨(56)는 고교 1학년 때 외고 낙방과 성적 문제로 방황하는 아들에게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해보라고 권했다. 보통 고교생 봉사는 청소 정도지만 하림씨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아버지가 직접 학교 성적표를 떼어가서 “우리 아들은 영어 가르칠 실력이 된다”고 설득한 덕분이었다.
아버지 유씨는 아들의 유학준비를 곁에서 도우면서 유학전문가 수준이 됐다. 그는 아들이 미국 대학에 가기로 결심하자 유학과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아들의 입시준비를 도왔다. 그동안 유씨가 유학에 관해 찾은 정보를 모은 블로그(blog.naver.com/y5304923)에는 유학 관련 글이 3천 개가 넘는다. 하림씨도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jamesyhr)에 효율적인 공부방법을 찾아 여러 가지를 시도한 기록을 그때 그때 남기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영어문서 번역도 많이 했다. A4 1장당 번역 가격을 1천원으로 인터넷에 올리면 가격이 워낙 싸서 의뢰가 쏟아졌다고 한다. 영어공부도 하고 용돈도 벌고 상식도 늘리는 1석3조의 아르바이트였다. 환경운동연합 국제부에서도 번역 자원봉사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고3 때는 유엔환경계획(UNEP)이 주최하는 2007 툰자(세계청소년 환경회의)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제1회 청소년 리더(Youth Leader)로 선발되기도 했다.
SAT성적, 과외활동과 더불어 미국 대학 사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고등학교 내신성적(GPA)이다. 하림씨는 수업시간 앞뒤로 쉬는 시간을 활용해 예습 복습을 하는 식으로 내신관리를 했다.
“항상 오전 7시반에 등교해 아무도 없이 조용할 때 그날 배울 과목 교과서를 보며 지난번 수업내용을 복습했어요. 한 시간에 나가는 내용이 10장이 안 되니까 7개 과목을 다 해도 20분이면 충분해요. 쉬는 시간 10분 중 1~2분만 할애하면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할 수 있었고요.”
입학원서도 혼자 힘으로 해결했다. UNEP에서 활동한 경험을 주제로 먼저 한국어로 에세이를 써서 국어 선생님한테 한 번 보여드린 뒤 영어로 번역해서 영어 선생님께 검토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대학준비 사이트에서 만난 미국 친구에게 첨삭을 받아 제출했다.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수학과 경제학 이론 만들고 싶어”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위한 경제학 알고리듬을 만들어 중소기업들이 경제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순수 수학을 먼저 공부한 뒤 이를 바탕으로 경제이론을 세우고 싶어요.”
하림씨는 경제학과 1학년을 다니면서 뚜렷한 장래 목표를 세우게 됐다고 한다. 존 내시처럼 경제발전에 비전을 제시하는 수학을 공부하는 게 그의 희망이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수학에 흥미가 없던 하림씨는 고교 1학년 때 수학 과목 담임선생님을 만나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담임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매일 노트 20장에 수학문제를 풀어서 1주일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았어요. 틀려도 지우지 않고 답이 나올 때까지 풀다가 마침내 답을 맞히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죠. 수학문제 푸는 데는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라는 선생님 말씀을 대학 가서 알게 됐습니다.”
이때 기본을 다진 덕분에 대학에 진학해 수학 과목에서 1등을 하고 20점 만점인 퀴즈에서 교수로부터 “네 답안지는 30점짜리”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운동을 한 것이 체력 싸움이기도 한 대학 공부에 도움이 됐다고도 덧붙였다. 유도 3단인 그는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왕기춘 선수와 시합해 함께 수상한 경력도 있다.
“혼자서 유학을 준비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유학 자체가 꿈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을 가는 것이죠. 자기 꿈을 분명히 세우고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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