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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쁜 자석’ 출연하는 최주봉·박근형 아들 최규환 박상훈 솔직 토크

글 이설 기자 | 사진 홍중식 기자 || ■헤어&메이크업 Fabien.H

입력 2009.05.21 15:02:00

TV 속에서 아픈 아버지를 보고 어리둥절했다. 아버지 함자를 함부로 부르는 친구들 때문에 속상했다. 배우 아버지를 둔 어린 시절은 그랬다. 아버지와 동료배우가 된 지금은, ‘배우 아버지’가 될 나를 상상한다.
연극 ‘나쁜 자석’ 출연하는 최주봉·박근형  아들 최규환 박상훈 솔직 토크


“상훈이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동문이시잖아, 중앙대 연극영화과. 학번 차이가 좀 나서 친분은 없으실 거야.”
중견 배우 2세가 한 연극무대에 오른다. 최주봉(64)의 둘째 최규환(31)과 박근형(69)의 셋째 박상훈(29)이 그 주인공. 최규환은 영화 ‘미인도’ ‘GP506’과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등에 출연하며 연기경력을 쌓았고, 박상훈은 2004년 남성듀오 ‘멜로브리즈’로 데뷔한 뒤 꾸준히 앨범작업과 공연활동을 해왔다. 이들이 출연하는 연극은 ‘나쁜 자석’. 원석·민호·은철·봉구 등 네 친구의 우정을 그린다. 제목은 우정을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자석에 빗대 지은 것. 최규환은 은철을, 박상훈은 원석을 연기한다.
서울 중구 남산 한옥마을 근처. 훈훈한 기럭지의 두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온다. 최규환은 아버지 최주봉의 얼굴선을 쏙 빼닮은 반면 박상훈의 얼굴에선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스스로 노력해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채워가는 성인들인데 아버지 이야기부터 꺼내는 게 유쾌하지만은 않을 터. “연극 얘기보다 아버지 이야기를 묻는 게 언짢지 않느냐”는 질문에 최규환이 “괜찮다”고 호쾌하게 답한다.
박근형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근엄한 사장님이다. 매서운 눈초리와 깔끔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이 트레이드마크다. 최주봉 하면 옆집 아저씨가 떠오른다. 인사를 건네면 언제 어디서고 환하게 “오냐”하고 웃어줄 것 같다. 연기 색깔이 다른 두 대배우의 2세들은 어떨까.

#배우의 아들로 산다는 것
코흘리개 적이었지만 또렷이 기억한다. 일요일 아침마다 꼬박꼬박 챙겨보던 국민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캐릭터는 만수 아빠였다. 애타게 “만수야”를 외치며 살뜰하게 아이를 돌보던 그 역할은 최주봉이라는 배우 덕분에 더욱 빛을 발했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했어요. ‘아이들이 아버지 이름을 부르면 타이르자. 일정 선을 넘으면 화를 내자’, 이렇게요. 무엇보다 아버지 함자를 함부로 부르는 게 스트레스였어요. 그럴 때면 ‘최주봉씨’라고 정정해줬죠. 하지만 저 또한 그렇게 불리는 지금은 오히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는 게 고마워요.”
배우의 자녀는 회사원이나 의사를 아버지로 둔 아이들과 다르다. 이들에게 극장은 놀이터고 분장도구는 장난감이며 유명 배우는 삼촌이다. 색다른 환경이 알게 모르게 심은 끼. 이것이 핏줄의 직·간접적인 영향이다.
“아버지가 연극을 하셨으니 극장은 어릴 때부터 굉장히 친숙해요. 연극이 끝나고 분장실에 가면 박인환, 윤문식 선생님이 화장을 지우다가 음료수를 주시곤 했죠. 배우들이 무대와 분장실을 오가는 모습도 지켜봤고요. 막연하게 ‘아버지가 하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배우 2세들은 보이지 않는 끼나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그 속에 섞여 예술적 분위기를 자연스레 체득하니까요.”(최)
“아주 어릴 때 어느 날 앨범에서 이상한 사진을 봤어요. 아버지가 다른 여성과 목욕탕에서 찍은 러브신이었죠. 깜짝 놀라서 어머니께 물었는데 시원하게 대답을 못 하세요.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았죠(웃음). TV속 아버지가 사형선고를 받은 뒤 실려 나갔을 때는 ‘저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아닌데’라고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박)

#배우로 일한다는 것
두 사람은 언제 배우를 꿈꿨을까. 적극적이고 호기심 많은 최규환은 꿈이 많았다. 사회 이면을 파헤치는 기자도 하고 싶었고 온갖 드라마 같은 현장에서 분투하는 경찰도 되고 싶었다. 경찰대에서 찍은 사진까지 책상머리에 붙여둘 정도로 열성이었지만, 최종 목표로는 배우를 택한다.
“인생은 극단적인 거잖아요. 평범한 사람도 상황에 따라 도둑질을 하거나 사람을 죽일 수 있죠. 그런 인생의 단면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직업이 경찰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기를 하면 형사는 물론 여러 삶을 경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심 끝에 연극영화과를 가기로 했죠.”
박상훈은 음악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중학교 1학년 때 호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음악가를 꿈꾸다가 방학을 이용해 앨범을 발매한다. 연기는 2년 전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됐다. 이번 연극과 미개봉 영화 ‘귀향’에 출연하면서 외연을 넓히는 중이다.
“아버지께서 음악활동을 심하게 반대하셨어요. 처음에는 호적에서 파버린다고 하실 정도였죠. 지금요? 차에서 제 CD를 들으세요.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해 도움을 주셨고요(웃음). 음악도 연기도 감성이 중요하지만 연기를 하다 보니 더 많이 느끼고 반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은 꼭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연극 ‘나쁜 자석’ 출연하는 최주봉·박근형  아들 최규환 박상훈 솔직 토크

‘배우의 아들’이라 불리다가 배우가 된 두 사람. 그들에게 아버지는 이제 선배 연기자이기도 하다. 같은 길을 걷게 된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눈길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두 사람은 “알게 모르게 교감이 커진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크다”라고 입을 모았다.
“저도 연기생활한 지 10년이 넘다 보니 서로 이해의 폭이 커지는 것 같아요. 아버지와 유일하게 함께 하는 활동이 보신탕을 먹는 건데, 그럴 때면 ‘넌 요즘 뭐 하냐’ ‘어떤 연극이 괜찮냐’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묻곤 하시죠. 잘 모르는 젊은 배우들에 대한 질문도 하시고요. 대본도 제가 뽑아드려요. 인터넷을 못해서 대본 받으러 KBS까지 받으러 가신다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제가 프린트해드리죠(웃음). 아버지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대기만성이에요. ‘조급해하지 마라, 서두르지 마라’는 말씀은 이제 세뇌가 됐죠. 대중에게 빨리 알려지고 큰 역할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아, 대기만성이지’라며 마음을 다잡아요.”(최)
“음악과 연기를 시작하면서 항상 ‘상상력을 키우라’고 말씀하세요. 현재에 갇혀 있지 말고 진보적인 생각을 해야 더 많은 것이 나온다고요. 그런 조언을 따라 사소한 것도 유심히 관찰하며 풍부한 직·간접 경험을 하려고 하죠. 또 약속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한번은 아침에 매 맞는 꿈을 꿨는데,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일어나라’며 죽도로 저를 때리고 계시더군요(웃음).”(박)



#아버지가 된다는 것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성품의 최규환과 은근하고 진중한 성품의 박상훈. 두 배우의 아버지는 어떨까. 이에 최규환은 “보이는 것처럼 자상하지만 엄한 면도 있다”고 답했고, 박상훈은 “보이는 것보다 자상하고 코믹한 분”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도 재미있고 굉장히 가정적이세요. 어머니와 시간 보내려고 노력하시고 손자들도 무척 예뻐하시죠. 시골에서 장남인데도 가업을 잇지 않고 그 시대에 서울로 연기 공부하러 올라오신 것을 보면 저처럼 적극적인 면도 있으신 것 같고요.”(최)
“제가 2남1녀 중 막내라 어려서부터 예뻐하셨어요. 하지만 무뚝뚝하고 은근한 성품이라 표현은 없는 편이세요. 저도 비슷해서 그냥 말없이 정을 느끼고 그러죠. TV에서는 근엄하게 비치지만 집에서는 그냥 아버지세요. 어린 시절 놀러온 제 친구는 여름에 아버지가 속옷에 반바지 입고 TV 보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웃음).”(박)
아버지가 달라 보일 때가 있다. 구멍 난 러닝셔츠를 입은 뒷모습을 볼 때. 갈라진 목소리로 괜한 투정할 때. 사소한 일로 혼자 삐쳤다가 일방적으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 때. 이럴 때 우리는 아버지의 생경한 모습에 흠칫한다. 두 사람에게 이런 때를 물었더니 “손주를 보면서 좋아하실 때”라는 답이 돌아온다.
“자식으로는 형과 제가 있는데 형이 결혼해서 분가를 했어요. 19개월 된 손녀를 그렇게 예뻐하세요. 손녀 앞에서 재롱떨듯 하실 때는 평소 알던 아버지가 맞나 싶어요. 예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칠순 잔치 때 노래하시면서 우는 모습을 봤을 때도 ‘아, 아버지도 누군가의 아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요.”(최)
“화가 많이 나면 무섭게 혼내시는 편인데, 손자 앞에서는 아이처럼 좋아하세요. 그럴 때면 ‘정말 할아버지가 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죠.”(박)
부자지간은 모녀지간보다 불친절하다. 살갑게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모녀와 달리 부자는 서로의 심중을 알아서 헤아리길 바란다. 최규환과 박상훈 부자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얼굴 맞대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보다는 인터뷰를 통해 생각과 고민을 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버지는 바쁘신 와중에도 제 공연은 꼭 보러 오셨어요. 학교 때부터 작은 공연이라도 빼놓는 법이 없으셨죠. 말씀하지 않으셔도 그런 행동에서 깊은 애정을 느낍니다.”(최)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아버지께서 제 음악을 들으시곤 ‘괜히 혼자 호주 유학을 보냈나보다’라고 하셨대요. 음악에서 한 맺힌 감성이 느껴져서 안타깝다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울었습니다.”(박)

여성동아 2009년 5월 5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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