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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쑥 키우는 자율 교육법

‘아홉 살 영재’ 재승이 엄마 박은경 공개

글 이설 기자 | 사진 홍중식 기자

입력 2009.04.14 14:45:00

누구나 재능 한 가지를 타고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재능을 최대치로 발휘하는 삶을 사는 이는 드물다. 수학·과학 영재 재승이 엄마 박은경씨는 “부모가 뚜렷한 교육주관을 가져야 아이의 적성과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창의성   쑥 키우는 자율 교육법

재승이에게 공부는 흥미 있는 놀이. 모든 과목에 뛰어나지만 특히 수학 과학을 좋아한다.



Step1 교육 가치관을 분명히 하라
“사진을 이쪽에서 찍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 모형을 소품으로 사용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말하는 품새가 어른 같다. 경기도 성남시 성남정자초등학교 2학년 김재승군(9).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웃는 첫인상은 영락없는 개구쟁이인데 대화를 몇 마디 나누니 동년배 친구처럼 느껴진다. 또박또박한 말투로 일리 있는 의견을 전하는 모습에 기자도, 사진기자도 움찔한다.
“어릴 때 외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할머니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어요. 그래서 그런지 성격이 유난히 어른스럽고 사교적이에요. 농담 삼아 우리 집에는 부부와 재승이, 3남매가 산다고 말하죠(웃음).”
학원에서 수학과학 영재반 아이들을 가르치는 엄마 박은경씨(35)의 말이다.
재승이는 이른바 영재에 속한다. 2008년 성균관대 주최 전국 수학학력경시대회에서 전국 20등 이내 성적으로 동상을, MBC아카데미 주최 제11회 전국 초·중 영어·수학 학력평가에서 대상(수학)과 은상(영어)을 받았다. 모든 과목에 두루 뛰어나지만 특히 수학과 과학에 재능을 보인다.
그러나 재승이는 전형적인 우등생은 아니다. 막 초등학교 1학년을 마쳤지만 호불호가 분명해 원하는 공부를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흥미 없는 분야는 공부하기를 거부하기도 하고 솔직한 질문으로 선생님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박씨는 아이를 학교 교육의 틀에 가두려 하지 않는다.
“저는 재승이가 꼭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길 바라지 않아요. 주관이 분명해 스스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도 문과와 이과로 나눠 적성을 따져 묻곤 해요. 누구에게나 잠재력은 있고, 그 잠재력이 어떤 모습으로 언제 발현할지 모르는데 너무 성급한 거죠.”
팔방미인형 우등생과 한 가지 분야에 뛰어난 영재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공부 잘하는 재능만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성적 욕심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박씨는 모든 것에 뛰어나기보다 재능을 키우는 데 힘을 쏟기로 가치관을 분명히 세웠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아이도 부모도 한결 편안해졌다. 부모는 교육 스트레스를 덜 수 있었고 아이는 하고 싶은 공부만 놀이처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재승이에게 공부는 흥미 있는 놀이. 모든 과목에 뛰어나지만 특히 수학·과학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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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박은경씨는 “재승이가 공부를 잘하기보다 주관이 분명해 스스로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Step2 아이 성격과 적성에 따라 맞춤 지도하라
원해서 하는 공부는 지루하지 않고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책상 맡에 억지로 앉아 허송세월하는 공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일까.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부모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시키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공부를 한다고. 즐겁게 공부하는 게 높은 성적의 비결이라고.
재승이도 예외가 아니다. 공부는 재승이에게 닌텐도 오락만큼 재미있는 놀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다른 학부모의 머릿속엔 답답한 물음표가 생긴다. 어떻게 했기에 아이가 공부를 스스로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박씨는 “아이의 성격에 따라 부모가 흥미를 끄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원에서 수천 명의 아이를 가르치며 깨달은 점이 있어요. 재능과 성격에 따라 효율적인 지도법이 다르다는 것이죠. 재승이는 어리지만 주관이 뚜렷한 성격이에요. 또 반복을 싫어하고 욕심이 많으며 예술계통(영화학)을 전공한 아빠를 닮아 자유로운 기질도 있어요. 그래서 엄마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시키면 금세 싫증내지만, 본인이 원해서 배우는 것은 열성을 다해요. 예전에 억지로 피아노학원을 보냈을 때는 싫어하더니, 친구들이 모두 피아노 치는 것을 보고는 배우고 싶다고 자청하더라고요. 경시대회도 본인이 먼저 나가고 싶다고 손을 들었고요(웃음). 재승이는 본인에게 맞춰주는 지도법이 최선인 것이죠.
그렇다고 자유방임형 교육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건 아니에요. 소극적이거나 우유부단한 성격의 아이를 가만히 두면 발전이 없을 테니까요. 소극적인 성향의 아이는 엄마가 세심하게 공부를 도와줘야 하고, 자유로운 아이는 속도가 늦더라도 가만히 지켜봐주는 게 좋겠죠. 차분한 아이에게는 예습이 도움이 되지만 호기심 많고 반복을 싫어하는 아이에게는 독이 될 테고요.”
아이의 성격에 따라 지도법은 천차만별이지만 모두에게 해당하는 지침도 있다. 학원을 고를 때는 학급당 학생 수와 교수법을 꼼꼼히 살핀 뒤 고르는 게 좋다. 저학년 때는 공부에 대한 흥미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므로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는 학원을 골라야 한다. 숙제를 많이 내주는 학원보다 연극·미술 등으로 수업하는 영어학원이나 실험을 많이 하는 과학학원 등이 좋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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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지도 외에 박씨가 강조하는 부분은 사고력. 스스로 생각을 전개하는 능력을 갖추면 모든 공부를 소화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종합 사고력을 훈련하는 학원은 성실히 참여하도록 아이를 독려한다. 생활 속에서도 질문하고 답하는 습관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도우며 훈련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날, 방에서 책 한 권을 빼들고 온 재승이는 책장을 넘기며 5분에 한 번꼴로 엄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는 아이가 질문하면 바로 답하지 않고 반문을 해요. 본인이 한 번 더 생각하라고 기회를 주는 것이죠. 또 엉뚱한 답을 해도 절대 ‘그건 아니지’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러면 아이가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거든요. 항상 ‘그것도 맞겠다, 그럴 수 있겠네’라고 말한 뒤 다른 답을 유도해요.
하나의 질문으로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돕는 것도 중요해요. 예컨대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죠. ‘엄마, 청소부 아저씨는 왜 야광띠를 했어?’ ‘글쎄, 왜 그럴까?’ ‘보기 좋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밤에 청소하는데 차가 지나가면 어떡하지?’ ‘아, 눈에 잘 띄라고 그런 거구나.’ ‘재승이라면 어떻게 만들 것 같아?’ ‘불빛이 나오는 램프도 달고 신발에 전구도 달 것 같아.’”

Step3 창의성과 사고력이 모든 공부의 기본

박씨는 아이에게 여러 분야의 공부를 시킨다. 배움을 통해서만 본인의 적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재승이는 지금까지 사고력·영어·한자·수영·중국어·스키·과학 등을 두루 섭렵했다. 그중에는 재미를 느껴 꾸준히 해온 것도 있고 흥미를 잃어 도중에 그만둔 것도 있다. 지금은 학원과 학습지를 통해 사고력·과학·수학·영어 등의 과목을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공부는 그러나 하나의 원칙 안에서 이뤄진다. 바로 모든 배움은 창의성과 사고력을 돕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미술과 피아노를 배워요. 재승이도 두 과목의 학원을 다녔죠. 하지만 재승이는 함께 시작한 아이들보다 진도가 훨씬 뒤처졌어요. 친구가 체르니 100번을 칠 때 아이는 아직 바이엘을 쳤죠. 미술도 마찬가지였어요. 학원을 다니는 내내 4가지 물감으로 아무거나 그리도록 하거나 원하는 종이를 붙이도록 했죠.
예술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저는 악기나 그림을 통해 아이의 창의성이 발달하기를 원하고요. 그래서 선생님께 ‘진도는 안 나가도 되니까 아이 호기심을 충족시켜달라’고 꼭 부탁해요. ‘중국’하면 떠오르는 곡을 치고, 책을 읽은 뒤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아이를 가르친 것이죠.”
박씨는 수학도 암기보다 원리 위주로 가르친다. 현재 3학년 과정을 공부하는 재승이는 문제지로 수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대신 생활에서 접하는 수학적 상황에서 자연스레 원리를 깨친다. 박씨는 “수학은 초등학교 3학년 이후 갑자기 단위가 커지고 문제의 문장도 길어진다. 그러면 아이들은 흥미를 잃기 쉽다. 그래서 수학은 다른 과목보다 부담 없고 재미있게 공부하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승이는 3학년 수준의 수학을 공부하면서 구구단을 외웠어요. 보통 1,2학년 과정에서 구구단을 외우는데, 늦은 편이었죠. 구구단을 그렇게 외우기 싫어했는데 3학년 문제를 풀다 보니 스스로 필요성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러나 구구단도 무작정 외우도록 하지는 않았어요. 시간을 충분히 준 뒤 원리를 생각해보라고 하죠.
보통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수학이 어려운 이유는 생활에서 접할 일이 없어서예요. 저는 돈·시계 등을 이용해 평소에 수학적 사고를 하도록 도와요. 예컨대 거스름돈을 받을 때 계산을 시키기도 하고 과자를 줄 때도 2개씩 나눠주며 수 개념을 익히도록 하는 거죠.”
박씨의 교육법은 공부를 의무가 아닌 놀이처럼 여기도록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학습에 대한 아이의 반응을 면밀히 살펴 좋아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돕고 싫어하는 것은 그만두도록 했다. 하지만 학교나 현재 다니는 학원의 과제는 빠짐없이 하도록 했다. 과제는 최소한의 약속이자 규칙적인 공부습관을 돕는 조력자라는 생각에서다.



한국영재교육학회 회장 송인섭 교수(숙명여대 교육심리학과)에게 물었습니다 영재교육에 대한 사실과 거짓말
Q 영재란 어떤 아이를 뜻하나
영재란 특정 분야에서 상위 2~3% 이내의 능력을 보이는 인재를 뜻한다. 영재의 특성으로는 조숙성, 창의성, 집착성 등이 있다. 즉 또래보다 배우는 속도가 빠르고 독창적으로 사고하며 타고난 재능의 분야에서 놀라운 과제 집착력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선행학습과 반복학습으로 평균보다 뛰어난 학습능력을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
Q 영재성이 나타나는 시기는
영재성이 나타나는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유아기에 나타나기도 하고 성인이 된 이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아주 어릴 때는 말하는 속도, 걸음 떼는 시기, 인지 능력 수준 등을 통해 영재성을 가늠할 수 있다. 분야별로는 과학은 초등학교 입학 이전, 인문사회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사유 능력은 중학교 이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또 현상에 대한 깊은 분석과 사고를 통해 탄생하는 문학이나 철학은 성인 이후 영재성이 발견되기도 한다.
Q 영재성은 유전적 요인인가 환경적 요인인가
두 요소의 복합적인 결과로 나타나지만, 유전의 영향이 더 크다. 같은 영재성을 타고나도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없으면 유전적 영재성이 발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영재는 성취적 영재와 창의적·생산적 영재로 나뉜다. 후자는 반드시 똑똑하지 않지만 창의성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
Q 영재성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영재성은 관찰·집필·행동분석 등 3가지 방법으로 판별한다. 아이의 행동 관찰을 통해 특성을 파악한 뒤 전문가와 상의하거나 전문검진을 받으면 영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유아는 관찰법을 사용한다. 부모의 무관심으로 타고난 영재성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으므로, 유아 때부터 아이의 행동 패턴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초·중학교 이상의 아이는 집필법을 사용한다. 지적능력이나 학업성적도 영재성을 판별하는 데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제 집착력과 창의성은 장기적이고 복잡한 과제를 추진하는 방식을 지켜보며 평가해야 정확하다. 그래서 초·중학교 교사와 학부모의 다양한 평가가 중요하다.
Q 의도적으로 영재성을 키워주는 것도 가능한가
의도적인 영재교육은 부작용을 낳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가 불편함을 느끼면 오히려 호기심과 창의성을 저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Q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영재성을 키워줘야 하나
창의성은 자기 나름의 영역을 만드는 활동을 뜻한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질문하고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부모는 아이가 틀리는 것에 관대해야 한다. 또 창의성은 정확한 목표가 없는 활동에서 나온다. 강요된 목표 없이 마음대로 책을 읽게 하고 모양과 맛을 생각해 과자를 만들거나 레고 블록으로 모형을 만들도록 하면 창의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 연극관람과 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 관심분야를 넓히고 분석 능력을 키울 수 있다.
Q 한국에선 영재교육을 일류대학에 가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시험성적 위주의 현행 대학입시는 인재를 찾는 데 적합하지 않다. 최근 미국 유명 대학들은 창의성과 동기 등 성적 이외의 요소로 인재를 발굴한다. 시험 준비에 골몰하는 사교육은 영재의 창의성과 호기심을 저해할 수 있다. 또 영재는 관심 없는 분야에는 무관심해 학교 교육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교과 과정보다 수준에 맞는 내용을 즐겁게 공부하도록 돕는 게 좋다. 미국의 많은 영재는 학교를 가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사회성 발달 등을 고려해 학교교육은 받는 게 좋다고 본다.

여성동아 2009년 4월 5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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