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는 항상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았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장남 이재용 전무(41)와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의 맏딸 임세령씨(32)가 11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사실은 지난 2월11일 임씨가 이 전무를 상대로 위자료 10억원과 두 아이 양육권, 수천억원의 재산분할(이 전무의 재산은 대부분 삼성그룹 주식으로 1조원 상당. 임씨는 이의 절반을 요구했다) 청구와 함께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알려졌다.
양가 어머니 만남 주선, 서로 한눈에 반해 초스피드로 결혼
지난 98년 결혼한 두 사람은 그동안 잉꼬 커플로 알려졌다. 때문에 파경 소식은 더욱 파장이 컸다.
임씨의 소송 제기에 이 전무 측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 2월12일 이건희 전 회장은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정기검진을 받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들 내외 이혼소송 때문에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미국 출장 중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AT&T 페블비치 프로암대회에서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와 동반 라운딩할 예정이던 이 전무도 급히 일정을 취소했다. 삼성가에서도 임씨의 소송 제기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미리 알았더라도 세간에 알려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자세한 이혼 내막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삼성가와 임세령씨의 친정집을 찾았다. 양가는 직선거리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세간의 뜨거운 관심과는 달리 모두 무척 조용했다.
임씨의 친정집 앞에서 외출에서 돌아오는 친정어머니 박현주씨를 만날 수 있었다. 박씨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여동생이다. 이혼 사유를 묻자 그는 잠시 망설인 끝에 말문을 열었다.
“기자도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 여자 마음을 잘 알 거예요. 오죽하면 아이 낳고 10년 넘게 살던 주부가 이혼을 결심했겠어요. (딸이) 지난 몇 년 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저도 그 일로 수년간 가슴앓이를 했고요.”
임세령씨와 박씨는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동안 마음고생을 한 것일까.
임세령씨는 지난 97년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중 당시 일본에서 MBA를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 유학을 준비 중이던 이재용 전무를 만났다. 평소 재계 불교도 모임인 ‘불이회’에서 친분을 쌓은 이 전무의 어머니 홍라희씨와 임씨의 어머니 박현주씨가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라희씨가 참하고 똑똑한 임세령씨를 일찌감치 며느릿감으로 점찍어뒀다는 소문도 있다.
두 사람은 98년 1월 약혼식을 올렸다. 비록 중매결혼이었지만 이 전무는 친구들에게 임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스물한 살로, 결혼을 하기엔 다소 이른 나이였던 임씨도 이 전무에게 금방 호감을 느꼈으며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한 후에는 요리학원에 다니는 등 신부수업을 열심히 받았다고 한다. 약혼한 지 5개월 후 두 사람은 웨딩마치를 울렸다. 임씨는 결혼 후 학교를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임세령씨 친정어머니 박현주씨는 딸이 고심 끝에 이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혼 원인?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 아니다”
결혼 후 임씨는 99년 이건희 전 회장이 미국에서 암 치료를 받을 때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시부모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2000년 아들, 2004년 딸을 출산했는데 무뚝뚝한 편인 이 전 회장은 손주들을 무척 아꼈다. 이 회장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에버랜드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임씨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도 대외 활동을 삼가고 남편 내조와 육아에만 전념했다. 그가 대외 행사에 모습을 비친 것은 지난 2003년 시어머니 홍라희씨가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을 수상할 때 시상식에 참석한 것을 포함, 손에 꼽을 정도. 이런 이유로 이 부부는 외부에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룬 것으로 비쳤다. 하지만 임씨가 천문학적 액수의 재산분할과 양육권을 요구하며 이혼소송을 제기하자 그간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었으며 이 전무 쪽에 귀책사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일었다. “세간의 소문처럼 이 전무에게 이혼 원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씨는 “그건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말문을 닫았다. 재계에서는 두 사람이 별거한 지 2~3년 됐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박씨는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이 전무 부부 사이에 금이 간 지는 꽤 오래됐으나 별거를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는 것이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임세령씨 친정집. 드나드는 사람 없이 비교적 조용했다.
일부에서는 임씨가 이혼을 선택한 배경에는 국내 최대 그룹의 며느리라는 중압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예인 못지않게 세간의 주목을 받고, 매사 조심해야 하는 삶이 답답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혼을 금기시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혼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임씨가 이혼소송을 내기에 앞서 굉장히 심사숙고했다는 점이다. 박씨는 “딸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임씨는 이혼소송을 제기한 지 일주일 만인 2월18일 서울가정법원의 조정을 통해 이혼에 합의했다. 양육권·재산분할 액수 등 여러 면에서 합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것과는 달리 ‘`속전속결’ 이혼이 이뤄진 것이다. 이 전무와 임씨 측 대리인은 조정에 앞서 따로 만나 위자료·재산분할·양육권에 대해 합의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법원에 이혼 확인을 위한 조정 기일을 열어줄 것을 요청, 법원으로부터 이혼을 확인하는 ‘조정 조서’를 받았다. 조정 조서는 양쪽이 다투는 부분에 대해 원만히 합의가 됐을 때 법원이 발급하는 것으로 판결문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양측이 신속히 합의한 배경에는 법적 분쟁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양가 모두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혼 원인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생활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이 서로에게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98년 결혼 당시 이재용 전무 내외. 중매결혼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많이 아꼈던 것으로 알려져 파경 소식에 안타까움이 크다.
이재용 전무 친권자로 지정, 세부 내용은 공개 안 해
두 아이 친권은 이 전무가 갖기로 했으나 그 외의 구체적인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양가 모두 함구하고 있는 상태. 이 전무가 양육권까지 갖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당분간 임씨가 아이들을 키우다가 일정 나이가 되면 이 전무에게 양육권을 넘기기로 했다는 추측이 힘을 얻고 있다. 임씨 측 법정대리인인 법무법인 남산의 임동진 변호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양육과 양육비, 아이를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조정 서류에 남기지 않고 당사자끼리 별도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산분할 문제는 당초 임씨가 청구한 액수보다 적은 선에서 합의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은 부부가 결혼 후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이 관례인데 이 전무가 결혼 후 취득한 재산은 삼성SDS주식 등 1천2백억원대로 알려져 임씨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수백억원 정도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제 관심을 모으는 것은 이 전무와 임씨의 거취. 해외출장 중인 이 전무는 조만간 귀국, 일상적인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임씨는 당초 아이들과 함께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친정어머니에 의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은 맞지만 프랑스도, 서울 한남동 친정도 아닌, 제 3의 장소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딸이 어디 있는지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임씨는 대상그룹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지분을 19.9%(1백70억원 상당) 보유, 동생 상민씨에 이어 두 번째 최대 주주다. 따라서 그가 일정 기간 수업을 거친 뒤 경영 일선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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