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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

닌텐도 성공의 비밀‘수평사고’ 교육법

연세대 한준상 교수에게 배우는

글 이영래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03. 13

전통적인 화투 공장에서 세계적 게임기업으로 거듭난 닌텐도의 성공신화 배경에는 ‘요코이 군페이’라는 한 천재가 있다. 그가 닌텐도 성공신화의 비밀이라고 밝힌 ‘수평사고’는 훈련으로 개발된다는 것이 교육학계의 정설이다. 연세대 한준상 교수가 제안하는 수평사고 교육법 & 창의적 천재 만들기.

닌텐도 성공의 비밀‘수평사고’ 교육법

연세대 교육학과 한준상 교수는 이미 90년대 초부터 수평사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미국의 GE, 씨티뱅크 같은 세계 초일류 기업도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피해가진 못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불안은 곧 세계 경제 불황으로 이어졌고, 이에 더해 엔고 한파까지 맞은 일본 기업들의 사정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의 간판 기업들조차 대부분 적자를 냈고, 세계를 평정했다는 도요타자동차조차 인원 감축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도 닌텐도는 지난해 5% 성장, 순익 8조원을 기록했다.

닌텐도의 정신, 요코이 군페이 “내 아이디어의 원천은 수평사고”

지난 2월4일, 이명박 대통령이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요즘 초등학생들이 닌텐도 게임기를 많이 가지고 있던데, 우리도 닌텐도 같은 것을 개발할 수 없느냐?”고 발언한 배경에는 닌텐도 같은 기업을 가진 일본에 대한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이 대통령의 발언 후, 우리 사회에선 불황에 강한 기업 ‘닌텐도를 배우자’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닌텐도는 사실 ‘플레이 스테이션’으로 널리 알려진 소니나 ‘엑스 박스’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비교할 때 게임기의 기술력, 소프트웨어와 캐릭터의 정교함 등에 있어 한 수 아래다. 그러나 게임기 시장의 진정한 패자가 닌텐도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별한 기술력도 없이 세계 게임기 시장을 석권한 닌텐도의 성공신화 비결은 무엇일까?
오늘날 닌텐도를 만드는 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우고, 닌텐도의 아이덴티티 자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은 단연 요코이 군페이(橫井軍平)다. 도시샤(同志社)공대의 성적 불량 졸업생 요코이 군페이는 대학 졸업 후 취직자리를 찾지 못하다 고향의 작은 회사였던 닌텐도에 공장 설비보수 점검역으로 입사한다. 근무시간에 장난감을 만들어 가지고 노는 등 부지런하고 영민한 인재하고는 거리가 멀던 그는 어느 날 사장의 운전기사로 불려간다.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의 운전기사가 아파 출근을 하지 못하자 일일 운전기사로 발탁된 것. 이날 차를 몰던 요코이는 사장에게 의외의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출장 길에 기차 안에서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노는 샐러리맨들을 봤는데 전자계산기처럼 액정이 있는 게임기를 개발하면 어떨까요?”
당시 빚더미에 휘청거리던 화투 회사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는 이 아이디어에 반해, 친하게 지내던 계산기 회사 샤프의 간부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당시 전자계산기 시장 주도권을 두고 카시오와 벌인 전쟁에서 참패해 분루를 삼키고 있던 샤프는 재고로 남아도는 액정을 이 작은 게임회사에 넘겨주기로 결정하고, 닌텐도는 80년 드디어 액정화면 게임기 ‘게임&워치’를 만들어냈다.
사실 대단한 발명품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전자계산기가 이미 널리 보급된 시절, 한물 간 소형 액정을 붙였고, 게임 캐릭터도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가격이 비싸 소비자가 안살까봐 게임을 하지 않을 때는 시계로도 활용할 수 있게 시계 기능을 첨가한 것이 다였다.
그러나 이 제품은 오일쇼크로 일본경제 전체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도 일본에서만 1천287만 개나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하며 세계 휴대용 게임기의 역사를 열었다. 빚더미에 깔려 허덕이던 닌텐도가 돈방석에 올라 오늘날의 기반을 쌓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이후에도 닌텐도 히트 상품의 중심에는 항상 요코이가 있었다. 97년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사망하긴 했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세계 게임산업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런 요코이가 자신의 창의성, 아이디어의 원천이라고 밝힌 것이 ‘낡은 기술의 수평사고’ 이론이다. 그는 “기술자는 최첨단의 기술을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필요나 요구에서 벗어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첨단기술을 채용하면 양산도 어렵고, 제품의 가격도 올라가며 사람들에게 낯설게 여겨질 뿐이다. 낡은 기술을 수평사고로 엮어내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제껏 가능하지 않던 최첨단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수직적 사고라고 한다면, 수평사고란 누구나 다 아는 흔한 기술을 누구나 다 아는 분야에 적용,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응용력이다. 쉽게 말하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세계를 보고, 이해하고, 엮어내는 창의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닌텐도 성공의 비밀‘수평사고’ 교육법

수평사고 이론은 교육법 이론에서 시작
사실 수평사고(lateral thinking)의 개념은 그가 처음으로 제창한 것은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에드워드 드 보노가 30년 전 처음 이 개념을 제안한 이후, 이 말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릴 정도로 일반적인 용어가 됐다. 수직적 사고가 기존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고라면, 수평적 사고는 이미 형성된 인식 패턴을 깨뜨리고 새로운 인식과 개념을 끄집어내 변화를 찾는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수직사고가 정답 사고를 의미한다면, 수평사고는 확산적인 사고, 창의적인 사고를 의미해요. 기존 우리 교육이 가지고 있던 암기식·주입식 교육을 받으면 자연스레 정답 사고를 하게 돼요. 수평사고란 건 정답이 없는, 아니 정답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창의적으로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사고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으로 항상 지적되는 게 뭡니까? 창의성의 고갈이죠. 수평사고에 대한 훈련이 교육과정 중에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연세대 교육학과 한준상 교수는 일찍이 90년대 초부터 드 보노의 책을 번역 소개하는 등 수평사고 이론을 교육학에 접목시켜온 인물. 그러나 당시만 해도 창의성 개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어 수평사고 교육법이 소개될 기회가 적었다고 한다.
“수직적 사고든 수평적 사고든 다 훈련을 통해서 개발이 가능해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 몇 명을 선발해 영재교육을 실시하면 우리나라에도 천재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교수나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 대부분의 IQ가 115에서 120 사이입니다. 뇌손상을 입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사람이 그 정도의 IQ를 지니고 태어납니다. 천재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명제는 이런 관점에서 유효해요. 특히 우리나라에 창의적 천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수평사고, 창의성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수평사고는 어떻게 개발되고 훈련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사고의 ‘통찰적’ 전환이다. 얼른 무슨 뜻인지 감이 오지 않는 표현이지만 쉽게 이야기하면 ‘시간을 가지고 여유롭게 생각하는 버릇’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코미디언들이 우리를 웃기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직적 사고로 봐선 그들이 대단한 지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이진 않지요? 그러나 사실은 아주 놀라운 통찰적 사유를 보여주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어요. 다른 시각에 의해 사물의 본질이 드러나는, 이른바 스테레오타입 사고가 깨져나가는 반전인데, 이것은 사물의 본질을 시간을 두고 오래 통찰했을 때만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보자. 각각 크기가 다른 직사각형 2개를 주고 배열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수평으로 배열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직사각형을 주고 그 옆에 배치하라고 하면 그들은 그 옆이나, 아래에 놓는다. 두뇌에서 더 이상의 화학작용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세 개의 각기 다른 크기의 직사각형을 주고 배열하라고 하면, 그들은 전혀 엉뚱한 조합과 배치로 사각형을 나열한다. 충분한 정보가 주어질 때까지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버릇, 그것이 바로 통찰적 사고다. 코미디에서 활용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령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안상태 기자를 떠올려보자. ‘5층에서 시작한 불이 10층까지 번져오르고 있습니다’라는 팩트가 먼저 주어진다.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있을 때, 잠시 뜸을 들인 후 안 기자가 멘트를 잇는다.
“난 어제 11층에 이사를 했고, 가구며 가전제품이며 다 새로 들였을 뿐이고….”
다시 상황 2가 이어진다. 불이 나 옥상으로 대피한 주민들, 그리고 인명구조용 10인승 헬리콥터가 온다. 안상태 기자의 “난 11번째로 줄을 섰고, 내 발바닥은 점점 뜨거워질 뿐이고…”라는 멘트에 다시 한 번 폭소가 터진다.



통찰적 사유 개발하기 위해선 여유 가져야
5층에서 시작한 불이 10층까지 번지고 있다는 상황은 얼핏 11층에 어제 이사온 안 기자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시간차를 두고, 그 상황은 결국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다가온다. 시간의 흐름이나 다른 상황 속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연결돼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물의 연관관계를 꿰뚫어보는 것이 바로 통찰적 사고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개발하기 위해선 여유롭게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맹점은 정보를 수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보를 수용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냥 정보를 주고, 외우라고 강제하죠. 아이들을 산과 들, 강에 데려가 마음대로 생각하고 분석하게 내버려둬 보세요. 어린아이들이 나뭇잎 하나, 꽃 하나를 붙잡고 아주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어요. 뭘 가르쳐주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시각으로 그 꽃을 지금 받아들이고 있는 거죠. 그 아이들이 시간을 가지고 그 꽃을 들여다보며 무엇을 깨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사고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런데, 꽃 그림 몇 개 그려놓고 이 꽃 이름은 뭐뭐 하는 식으로 가르치고 나면 꽃은 그냥 나팔꽃, 백합, 튤립일 뿐입니다.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은 차단되는 거죠.”

닌텐도 성공의 비밀‘수평사고’ 교육법

한준상 교수는 아이디어는 결국 ‘시간’이라고 말한다. 남들보다 오래, 더 깊이 생각하는 버릇. 사물을 단순하게 보고 규정짓고 넘어가지 않도록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 창의성의 요체라고.
“단순화해봅시다. 눈이 있죠? 겨울에 하늘에서 내리는 눈. 그 눈은 무슨 색깔입니까? 하얀색이요? 그래요, 우리한테는 하얀색, 흰색일 뿐이죠. 그런데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들은 그 눈 색깔을 수십 가지로 구분해요. 오늘은 눈색깔이 이러니까 사냥을 가야겠구나, 내일은 이사를 가야겠구나 하고. 긴 관찰에 따라 사물은 이렇게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겁니다.”
둘째, 정답식 사고를 버려야 한다. 모든 사유는 논리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수평적 사고에는 수직적 사고와는 전혀 다른 체계의 논리성이 있다. 이른바 ‘논리의 과정이 모두 논리적일 수는 없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인데,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죽는다. 나는 사람이다. 고로 나는 죽는다.

이 논리체계에 허점은 없다. 이것이 수직적 사고다. 그러나 ‘사람은 죽는다’는 전제에 의문을 가졌을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다 죽는다고 누가 확인을 했을까? 나는 불사신이 아닐까? 세상에는 신선이나 요정처럼 안 죽는 존재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반지의 제왕’을 빚어낸 상상력의 세계다. 또한 이런 사고에도 앞서 언급했듯 분명 명확한 논리가 있다. 다만 수직사고처럼 직접적으로 이어져 바로 드러나는 논리체계가 없을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도 잘 나오지 않아요. 왜냐? 바로 이런 상상력을 어렸을 때부터 막아놨기 때문입니다. 어른의 상상력과 아이들의 상상력은 다른 것인데, 그런 인식 자체가 없어요. 가령 어린아이들이 오징어를 가지고 로켓포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하는 걸 굳이 바로잡으려고 하면 안 돼요. 어른들의 상상력은 실용성, 논리성을 반드시 수반해야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그 자유로운 상상력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어른들이 이해해야 해요.”
셋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새로운 시도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바라봐요.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에 대해 최소한의 점수도 안주고, 인정도 안 해줘요. 오로지 최종적인 결과만을 보고 판단하죠. 과정이 중요하고, 실패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길러주는 게 중요합니다. ‘한번 해봐라’라고 이야기해야지, ‘정신차려, 이 친구야!’ 하는 상황 속에서 닌텐도 같은 창의적인 제품이 나올 수가 없어요.”
대학입시를 정점으로 하는 한국의 입시교육 상황상 창의성 교육이 요원한 일이라고 그는 안타까워한다. 결과만 부각된다면,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인가? 또 어느 학부형이 자녀에게 새로운 교육법을 시도할 것인가?’라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는 것.
“그간 특별활동이라든지 과외활동 등으로 창의성 교육이 일부 도입되기는 했어요. 수평사고 훈련법 등의 기법도 도입됐지만 별 효과가 없어요. 왜냐, 정규 교육과정 중 수직사고만이 강제되면 수평사고는 자연히 고사되거든요.”
그는 교육은 인내이며, 결론만을 조급하게 갈망해서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꼭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가지기 위해서 어릴 때 외국도 나가보고, 또 산과 들에서 마음껏 뛰어놀아도 보고, 모든 교육은 결국 직간접 경험을 넓혀가는 과정에 초점을 둬야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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