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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김명희 기자의 알파맘 도전기

어린이 도서관과 친구 된 사연

2009. 03. 13

어린이 도서관과 친구 된 사연

어린이 도서관 유아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태욱·태연이. 태욱이는 도서관에 가면 가장 먼저 공룡책을 집어든다.


기자는 아이들 교육에 관한 한 ‘간 큰 엄마’입니다. 친구들이 “유아 교재를 새로 들여놨다” “일곱 살, 다섯 살 아이가 있는 너희 집 정도면 책값으로 최소한 천만원은 썼어야 할 것”이라고 말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재밌게 노는 게 최고”라는 어른들 말씀을 면죄부 삼아 교육을 등한시했던 거죠.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무심함의 결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이를 봐주는 할머니께서 “태욱 엄마, 태욱이 아무래도 한글 공부를 시켜야 할 것 같아. 옆집에 사는 태욱이 친구 △△이는 동화책 한 권을 혼자 다 읽던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어느 정도 각오했던 일이지만 막상 제 아이가 비교 대상에 오르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옆집 아이가 우리 아이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건 ‘옆집이 우리 집보다 넓은 평수로 이사 갔다’라는 말 이상으로 배가 아프더군요. 게다가 태평한 성격인 큰아이는 “엄마, &&이는 한자를 읽어요”“엄마 @@이는 영어도 잘해요”라며 제 속을 긁더군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먼저 한글 선생님을 집으로 부르고, 교재를 사다가 글씨 공부를 시키며 아이를 들볶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군요. 이미 가르쳐준 글자를 묻고 또 묻는 아이를 쥐어박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 밑에 ‘ㄴ’이 붙으면 무슨 글자냐고 묻자 슬금슬금 제 눈치를 보다가 “악?” 이냐고 되묻는 아이가 문득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과 재밌게 노는 법, 눈이 내리고 꽃이 피는 이치… 이 세상엔 공부보다 중요한, 재밌고 경이로운 일들이 무궁무진한데, 제 욕심 때문에 아이가 너무 일찍 현실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습니다.
한글 공부를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자리한 어린이 도서관을 알게 됐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모니터링한 결과 도서 양도 많은 편이고 이용절차도 간편하다는 평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말 온 가족이 도서관으로 출동했습니다. 외관 공사를 거의 마친 도서관은 보기에도 무척 깔끔했습니다.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한 어린이들을 위해 부모가 책을 읽어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주말마다 아이들과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글자를 짚어가며 읽어주었습니다. 큰아이는 또래 친구들이 혼자 책 읽는 모습을 보며 자극이 됐는지, 한글 공부에 부쩍 욕심을 냈습니다. 책은 집에서도, 서점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집중도 면에선 도서관이 훨씬 뛰어난 것 같습니다. 집은 TV나 장난감 등 방해요소가 너무 많고, 서울시내 서점에선 이렇게 여유롭게 책을 읽을 만한 공간이 드무니까요. 서점에 가면 공룡책, 곤충책 등을 닥치는 대로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책을 꼭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매주 수요일엔 신간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 도서관에서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영화 DVD를 무료로 대여해줍니다. 이 가운데는 영어교육용 DVD도 있고 한국 영화나 외화 등 어른용 DVD도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특히 DVD 때문에 도서관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도서관에 다녀올 때마다 앞서가는 엄마가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밀린 숙제를 한 것처럼 홀가분하기도 하고요. 저희 아이, 한글은 좀 깨쳤냐고요? 거의 모든 글자를 읽고 쉬운 글자를 쓰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재산을 얻은 듯합니다. 올봄에는 시간을 내 아이들과 가까운 도서관에 한번 들러보세요. 분명 ‘이게 웬 횡재?’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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