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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이다도시와의 유쾌한 수다

삶을 가꿀 줄 아는 여자

글 김명희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02. 18

자녀교육·음식·살림법… 이다도시는 어떤 주제에도 자신의 생각을 막힘없이 풀어놓는다. 이는 그가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자신에게 충실한 것에서 시작된다는 그의 말은, 어려운 시대를 사는 한국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다도시와의 유쾌한 수다

글로벌 시대라고 하지만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건 에펠탑과 개선문, 그리고 몇 개의 명품 브랜드 정도다.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프랑스 사람은? 아마 이다도시(40)가 아닐까 싶다. 지난 93년 결혼과 동시에 귀화했으니 한국 사람이 된 지 벌써 16년째다. 그 사이 프랑스와 한국의 피가 반반씩 흐르는 유진(12) 태진(5) 두 아들을 선물로 받았다.
지난 몇 년간 그는 한국에 프랑스 문화를, 프랑스에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각각의 나라에서 서로를 알리는 책도 펴냈다. 두 나라에 진정한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프랑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프랑스에 가서는 한국 편을 들게 된다. 신문이나 방송에 한국에 대해 잘못 나간 기사가 있으면 전화해서 항의한다”며 웃었다.

‘프랑스 사람이 와인도 몰라?’ 라는 시선 두려워 와인 공부 시작
이다도시와의 유쾌한 수다


이다도시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틈틈이 한국 요리를 익혀 이젠 수준급 경지에 올랐고 꽃꽂이에 취미를 붙여 지난 2006년에는 플로리스트 과정을 이수했다. 요즘에는 와인 공부에 푹 빠져 있다. 사실 와인은 프랑스인에게는 생활의 일부분이다. 그도 사춘기 때부터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와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한국에 살면서부터.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을 즐겨 마시지만 모두 전문가는 아니에요. 파리 시내에서 포도 품종이나 와인 산지를 말해보라고 하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20% 정도에 불과할 거예요. 한국에 살면서 와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프랑스 사람이 그것도 몰라’라는 시선으로 바라볼 것 같아 공부를 시작했죠.”
이다도시와의 유쾌한 수다


사실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2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예계 소문난 주당인 가수 이승철과 블라인드 테이스팅(와인 상표를 가리고 시음하는 것)을 통해 비싼 와인을 골라내는 대결을 펼친 것. 이다도시는 다행히 대결에서 이겼다. 그는 지난 2005년 와인의 명산지인 프랑스 보르도에서 2개월 동안 소믈리에 과정을 공부했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와인 세미나에 참석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식견을 쌓았다고 한다.
그는 와인은 한번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만나는 사람의 성향 따라, 모임의 성격과 음식, 장소에 따라 꼭 알맞은 와인을 선택해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숙성돼가는 와인은, 사람의 인생과도 비슷해 더욱 매력적이라고 한다.
이다도시는 “한국에서 와인은 고급문화라고 인식돼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음료수처럼 편하게 와인을 마신다”는 것. 그는 최근 한국 사람들이 와인과 좀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와인 입문서 ‘봉주르 와인’을 펴냈다.
“프랑스 사람도 그랑크뤼 클라세(프랑스 고급 와인을 가리키는 말)를 매일 마실 수 없어요. 그래서 와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와인, 싫어하는 와인, 좋아하지만 마실 수 없는 와인’으로 나뉜다는 얘기도 있어요(웃음). 한국에서 와인이 더 이상 고급문화가 아닌, 삼겹살·전 같은 소박한 음식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술이 되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한국과 프랑스 문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각별히 신경 써



요즘 그는 방송활동을 많이 줄였다. 책을 쓰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두 아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서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아이들을 보며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같이 접할 수 있어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힘든 점도 두 배로 많다고 한다.
“언어·문화 모두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니에요. 노력해서 습득하는 거죠. 어느 한 나라에서 반쪽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문화를 두 배로 공부해야 합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예요.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아이들이 불어만 하거나, 한국어만 하게 돼요. 어릴 때 동시에 양쪽 언어를 가르쳤지만 프랑스 학교에 다니고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갑자기 불어 쪽으로 기울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제가 아이들한테 국어를 직접 가르쳤어요. 그런데 이 어색한 발음 때문에 한계가 생겨 국어 과외를 받게 했죠.”
그는 언어 문제로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게임’을 개발했다고 한다. 식탁 위에 병을 놓고 태극기와 프랑스기를 번갈아 꽂아놓는 것이다. 규칙은 태극기가 꽂힌 날은 국어만, 프랑스기가 꽂힌 날은 불어만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침마다 부엌으로 달려가 오늘은 어떤 국기가 꽂혔는지 확인해요.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도 왜 자신이 두 언어를 모두 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있어요. 얼마 전 태진이가 태권도 수업을 받았는데 같이 수업을 받는 아이들 중에 한국어를 하는 어린이가 자기밖에 없었대요. 선생님이 자기한테 이것저것 부탁하니까 태진이가 무척 으쓱해하더라고요.”
이다도시와의 유쾌한 수다

그의 아이들도 언젠가는 한국과 프랑스 두 문화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이다도시는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똑똑하게 양쪽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현실감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아이들을 너무 감싸면서 키우고 싶지 않아요. 아이들도 어려움이 뭔지 알아야 합니다. 저는 시장에 갈 때 유진이에게 계산기를 쥐어주고 ‘오늘은 우리가 얼마 한도 내에서 물건을 사야 하고, 이건 며칠 동안 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려서부터 그런 걸 알아야 어려움이 닥쳤을 때 아이들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 낮은 행복지수… 요즘 우리나라 국민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경제위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 우리나라 사람만 유독 불행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프랑스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꽤 높은 편이예요.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낮은 건 압력이 많은 사회기 때문인 거 같아요. TV 드라마나 광고를 보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이야기 같아요. 대궐 같은 집, 행복한 대가족… 진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잖아요. 서민은 그런 걸 볼 때마다 우울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어요. 요즘 프랑스도 경제위기로 서민 생활이 어려워졌어요. 수입이 최저생계비 밑으로 떨어져 몇 유로로 하루를 사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빨라요. 한국 사람도 눈을 낮추고 욕심을 버리고 지금 자신의 모습을 조금 더 사랑하면 좋겠어요.”
10년 후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묻자 이다도시는 “우리 아이들이 스물둘, 열다섯 살이 돼 있겠네요”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행복할 것이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를 좀 더 가까이 잇는 일을 하고 싶어요. 사실 한국과 프랑스는 다른 부분이 많아요. 예를 들어 요구르트를 봐도 한국에서는 배변 기능에 포인트를 맞추는데 프랑스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그렇게 광고를 하면 아마 다들 놀라서 뒤로 넘어갈 거예요. 그런 걸 공부하는 게 굉장히 재밌어요. 연기도 하고 싶고요.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그려보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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