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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하버드대 졸업한 미스코리아 금나나 멈추지 않는 도전

“치열하게 사는 것도 20대가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닐까요”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지호영 기자, 김영사 제공

입력 2009.02.18 16:49:00

의대에 재학 중이던 2002년 미스코리아 진이 됐다. 그로부터 2년 뒤 하버드대와 MIT대에 동시에 합격했다. 지난해 성적우수상을 받으며 하버드대를 졸업했고, 컬럼비아대학원에 합격했다. 화려한 성공 속에는 악몽 같은 날도 있었다. ‘엄친아’ 금나나 이야기다.
하버드대 졸업한 미스코리아 금나나 멈추지 않는 도전

외모와 능력이 뛰어나 나와 비교되는 대상을 ‘엄친아’라고 부른다. 기자와 동갑내기인 금나나(26)를 만났을 때 기자는 “이 세상엔 왜 이렇게 엄친아가 많은 거야!”라고 한탄했다. 그는 미스코리아 출신 하버드대 졸업생이다. 공부면 공부, 미모면 미모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그를 대다수 사람은 부러워한다.
“음친아요? 제게도 음친아가 있어요. 영어 잘하는 친구, 에세이를 뚝딱 써내는 친구가 제게는 음친아예요. 누구나 남보다 잘하는 분야가 한 가지 이상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른 사람에게 음친아가 되듯이 다른 사람도 제게 음친아가 될 수 있는 거죠.”
‘엄친아’를 ‘음친아’라고 발음하는 경상도 아가씨, 살찌는 것을 경계하고 매일 아침 테니스 치는 재미에 빠진 여대생, 엄마와 사우나 가는 게 즐거운 딸. 이 평범함 속에서 금나나는 미스코리아 출신 하버드대 졸업생이라는 비범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버드대 졸업한 미스코리아 금나나 멈추지 않는 도전

스트레스로 폭식증 도져 힘든 시간 보내
그는 “하버드대에 입학한 건 운명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경북대 의대에 재학 중이던 그는 지난 2002년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됐고, 이듬해 파나마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했다. 그곳에서 다양한 경력과 학력을 지닌 각국의 미인을 본 그는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휴학했고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4개월 동안 억척같이 SAT·토플을 공부해 하버드대와 MIT대에 동시 합격,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그렇게 ‘프리메드’(예비의대생을 부르는 말. 미국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 의과대학원에 진학한다) 생활이 시작됐다.
“얼마간은 구름 위를 걷는 듯했어요. 더 이상 이루지 못할 꿈은 없을 것 같았죠. 하지만 그 자신감은 오래 가지 못했어요. 친구들은 노트북 컴퓨터를 펼쳐 교수님이 쏟아내는 말씀을 타이핑하고 이해하고 질문을 던지는데, 제 노트에는 몇 개의 단어가 듬성듬성 적혀 있을 뿐이었거든요. 제대로 된 문장을 쓰기 전에 다른 문장이 이어지니 들은 말도 까먹고…. 멍하게 앉아 있기 일쑤였어요.”
하버드대 졸업한 미스코리아 금나나 멈추지 않는 도전

지난해 6월 열린 하버드대 졸업식. 금나나(두번째 줄 가운데)가 환하게 웃고 있다.


“천재들의 세상에 홀로 팽개쳐진 기분”이었던 그의 입에는 “플리즈”라는 말이 떠날 새가 없었다. 룸메이트건 조교건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이건 염치불구하고 도움을 청했고 강의노트를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빌렸다는 표현보다 구걸했다는 표현이 들어맞죠(웃음). 교수님에게 ‘하나도 모르겠어요. 저를 위해 시간을 내주세요’ 하고 매달렸고요. 너무 쉬운 걸 묻는 게 아닐까, 이런 질문을 하면 날 깔보지 않을까 하는 자존심 따위는 버렸어요. ‘친구들처럼 토론에 참가하고 싶은데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같은 고민을 늘어놓으면 교수님은 다음 수업시간에 할 질문을 이메일로 보내주셨어요. ‘이거 정말 알아야 하나요?’ 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면 ‘아싸! 이 문제는 시험에 나오는구나’ 하고 체크해뒀죠.”
그는 늘 가슴에 책을 부둥켜안고 불을 켜둔 채로 잠들었다고 한다. 하루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시험기간에는 2시간도 채 못 잤는데, 레드불(카페인 함유량이 많은 드링크. 학생들이 잠을 쫓기 위해 마신다)을 너무 많이 마셔 피오줌을 싸기도 했다. 그런 노력으로 그는 상위 성적 10% 안에 들어 ‘디튜어’상을 받았고, 장학금을 받았다.

하버드대 졸업한 미스코리아 금나나 멈추지 않는 도전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폭식증이 생겼다. 그는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스크림을 두 통째 허겁지겁 먹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말릴 틈도 없이 초콜릿 바를 두 개 더 먹었고, 어느 틈에 사발면을 먹겠다며 물을 끓였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 시달렸던 폭식증이 도진 거죠. 초조해지거나 불안해지면 끊임없이 먹어야 했어요. 초콜릿 탐닉증은 도가 지나쳤는데, 스트레스가 한계에 다다른 날이면 보스턴에 있는 한 호텔의 초콜릿 뷔페에 가서 머리가 핑핑 돌 때까지 먹었어요. 느글거리는 속 때문에 고생하고 얼굴에 빨간 여드름이 솟아도 멈출 수 없었어요. 어쩌면 제가 집착한 건 초콜릿이 아니라 초콜릿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잠깐의 위안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버드대 졸업한 미스코리아 금나나 멈추지 않는 도전

미스코리아에 당선됐을 때 52kg이던 그의 몸무게는 60kg을 넘어섰다. 아름다움을 잃는 데 대한 걱정은 없었냐고 묻자 그는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몸매를 관리하기가 어려웠다. 더 이상 미스코리아라는 과거에 머물면서 살 순 없지 않느냐. 마음 한구석에 2002년도의 추억을 간직할 뿐이다”고 대답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는 버려야죠. 한때 제 인생의 측정은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를 확인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여드름 나고 살이 찌고 얼굴은 푸석해진 상태에서 체중계를 재면 우울해져요. 그래서 저는 눈동자의 빛깔로 하루하루를 체크했어요. 눈빛이 살아 있으면 오늘은 건강하구나, 눈빛이 슬퍼 보이면 오늘은 아프구나 했죠.”

26개 대학원 모두 불합격 후 귀국 고민하기도
가족이 그립진 않았을까. 그는 “가급적 부모님께 힘들다, 외롭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험을 망치거나 가족이 보고 싶을 때면 지하철 안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고.
“외롭다기보다 허전했던 것 같아요. 하버드대에 한국인 학생들이 없었다면 아마 못 견뎠을 거예요. 예전에는 거의 인식하지 않았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그곳에서 확실하게 느끼게 됐어요.”
하버드대 졸업한 미스코리아 금나나 멈추지 않는 도전

시험에 쫓기고 폭식증에 시달렸지만 하버드대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줬다. 그는 컬럼비아 영양대학원에 입학할 예정이다.


강할 것만 같았던 그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학기 중에 26개 의과대학원에 지원서를 내면서 지원동기와 목표를 묻는 각 대학의 에세이를 72개나 써야 했던 것. 그는 “종이 위에 쓰인 각 대학의 에세이 질문을 읽노라면 글자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징그러운 벌레처럼 느껴졌다. 그것들이 손가락을 타고 얼굴로 올라와 목을 조이고, 눈을 파먹고, 얼굴 위의 모든 구멍에 기어들어가 뇌세포를 하나씩 터뜨리며 갉아먹는 소리가 들렸다”고 회상했다. 입술을 손으로 뜯어 너덜너덜해졌고 피가 줄줄 새나왔다. 그런 노력에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다섯 개 대학원에서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그중 세 개 대학원에서 불합격됐다. 두 개 대학원에서는 합격대기자였지만 기다리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그 사이로 꿈, 영혼이 쉭쉭 소리내며 흘러나오는 기분이었어요. 모든 게 귀찮았어요. 가족들이 ‘실패하더라도 너는 자랑스러운 딸이다’ ‘기다렸다가 다시 도전하면 된다’고 위로했지만 들리지 않았죠. 그때 처음으로 의사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고생은 몸고생으로 이어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치신경이 죽었고, 치통을 참지 못하던 어느 날 학교 식당에서 쓰러진 것이다.
“그런 고통은 처음이었어요. 살면서 감기 몇 번 걸린 게 전부일 만큼 건강체질이거든요. 모든 치아가 흔들렸고, 진통제는 듣지 않았고, 에세이를 쓰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중간시험 성적결과도 좋지 않았죠. 인생의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어요. 젊은이가 무슨 인생을 논하냐고 꾸짖는 사람이 있겠지만 한국에서 의사가 될 수 있는 상황을 포기하고 간 것이기에 상실감이 컸어요. 처음엔 하늘을 원망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더라고요. ‘이런 아픔도 모르고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려 했구나’ 하면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깨달았죠.”
졸업이 2개월 정도 남았을 때 그는 휴학을 결심했다. D학점을 우려한 도피였다.

하버드대 졸업한 미스코리아 금나나 멈추지 않는 도전




“공항까지 갔다가 돌아왔어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 난 실패자야. 하지만 이 실패를 통해 얻는 게 있을 거야’ 하고 저 자신을 다독였죠. 순탄하게 사는 게 좋지만 순탄한 게 정도(正道)는 아닌 것 같아요. 치열하게 사는 것도 20대가 누릴 수 있는 하나의 특권 아닐까요.”
하버드대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컬럼비아 영양대학원에서 온 이메일이었다. 의과대학원에 보냈던 지원서가 같은 대학 소속인 영양대학원으로 전달된 것. “보건 관련 종사자들이 재교육을 받기 위해 다닐 만큼 의학과 관련된 진로가 마련돼 있다. 지원하라”는 글을 읽은 뒤 거짓말처럼 치통이 사라졌다고. 그는 지원서를 냈고 합격을 통보받았다.
“저는 지금의 선택을 ‘플랜B’라고 불러요.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26년 동안 꿈꾼 미래를 포기할 순 없잖아요. 돌아가거나 속도를 늦추더라도 방향만 잃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캠퍼스 커플 돼 알콩달콩 연애하는 꿈 꿔
그는 지난해 6월 성적우수상 ‘쿰라우데’를 받으며 졸업했다. 하버드대에서 얻고 잃은 건 무엇일까.
“예전에는 도전의식이 경쟁심, 질투심에서 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그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노력의 산물인 것 같아요. 지금도 하버드대 졸업생, 미스코리아 같은 타이틀을 보며 ‘내가 그만한 자격이 되는가’ 되묻고 반성해요.”
아쉬운 점은 아르바이트와 동아리 활동을 못했다는 것. 그는 기숙사, 도서관, 강의실, 체육관만 오갔을 뿐 캠퍼스를 돌아다닌 적이 없다고 한다. 보스턴에 온 지 몇 달이 지나도록 시내 구경을 못했고, 버스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조차 몰랐다고.
캠퍼스 커플이 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운동을 함께할 친구, 밥 먹을 친구, 놀 친구, 숙제를 할 친구는 있었지만 그들과 교제하진 않았다고. 그는 자신에게 관심이 보이는 남학생이 생기면 “한국에 약혼자가 있다. 졸업하면 결혼할 거다”라고 거짓말했다고 한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성격상, 남자에게 빠지면 공부는 뒷전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학생의 장점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 줄 안다는 거예요. 연애를 공부의 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연애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 커플이 많더라고요. 대학원에 가서는 마음을 열 거예요(웃음). 언젠가 ‘세포가 통하는 사람이 이상형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제가 지닌 나약함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격려하는 남자면 좋겠어요.”
그는 앞으로 비만·예방의학 등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플랜A에서 플랜B로 바뀌었듯이 배우는 게 많고 시야가 넓어지면 마음이 변할 수 있기에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긴 어려워요. 지금 상황에 충실하고 싶어요. 수없이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할 테지만 ‘그래, 한번 해보자고’ 하며 그 상황을 즐길 거예요.”
그는 최근 자신의 하버드대 생활을 담아 ‘나나의 네버엔딩스토리’를 펴냈다. 올여름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인 그는 마지막으로 “하버드대에서의 전쟁은 끝났다. 이제 다음 전쟁터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갈 때다. 이길 수 없는 시련은 없다고 확신하기에 두렵지 않다”며 활짝 웃었다.

여성동아 2009년 2월 5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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