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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가족

아빠 사업 실패, 엄마 암 투병… 시련 딛고 독학으로 대학 진학~

글 안소희‘자유기고가’ | 사진 조영철 기자

입력 2009.02.18 14:26:00

박지원양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해 올해 순천대학교 원예·식물의학부에 입학했다. 지원양 가족은 자신들에게 닥친 시련을 통해 서로의 소중함과 어떤 일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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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혼자 하루를 계획하고 실천하고 또 꿈을 키워나가는 모습은 엄마인 제가 봐도 놀라워요. 정말 사는 것처럼 산다고 할까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대견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일찍 철이 든 것 같아 안쓰러워요.”
박지원양(15)의 엄마 차씨(40)의 말이다. 불과 몇 해 전까지도 지원양 가족은 아주 평범한 가족이었다. 자식 욕심이 유난히 많았던 부부는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아빠 박씨(43)는 자동차 영업사업을 해 주변의 부러움을 살 만큼 경제적인 성공도 맛보았다. 아이들은 풍족한 환경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생활했고 남들처럼 사교육에도 정성을 들였다.
지원양 가족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은 엄마 차씨가 유방암 판정을 받은 2004년부터. 다섯 아이의 엄마가 투병생활을 시작하자 그 빈자리가 너무나 컸다. 설상가상으로 아빠의 사업이 거짓말처럼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갑자기 닥친 시련에 박씨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고 한다.
“아내나 저나 그전까지는 큰 굴곡 없이 살았어요.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시련이 닥치니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졌어요. 그만큼 철이 없던 거죠. 그때는 정말 못난 생각도 많이 했어요. 저 혼자 몸이면 더 ‘막 나갔’을 거예요. 가족들 얼굴을 떠올리니까 버틸 힘이 생기더라고요.”
그늘진 곳 없이 밝기만 하던 지원양도 그때 이야기를 꺼내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가족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엄마의 힘겨운 항암치료가 마무리될 즈음 가족은 경남 진주에서 외가가 있는 전남 여수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외할머니의 좁은 시골집에서 일곱 식구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그러나 외할머니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을 하는데다 엄마 차씨 역시 항암치료 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지원이가 중학교 반배치 고사를 보고 온 날, 중학교에 입학하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어요. 주변 사람들은‘아이를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저희 부부를 비난하기도 했죠. 그러나 저는 딸을 믿었어요. 지원이가 가는 길이 다른 사람들이 걷는 평범한 길은 아니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지원양은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자칫 ‘선택’이 아닌 ‘포기’로 여기는 시선들 또한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웠을 터. 하지만 지원양의 대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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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양의 아버지는 딸이 선택한 길이 평범한 길은 아니지만 꼭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학교에 다니려면 학비 외에도 들어가는 돈이 많을 텐데, 저희 집안 형편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어요. 혼자 공부하면 집안일 돕기도 훨씬 쉽고요. 일찍 사회생활을 하면 집안에도 도움이 되고 저한테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제가 내린 결정을 엄마 아빠가 믿어주셨고요. 많은 분이 걱정을 했지만 오히려 보란 듯이 성공해서 그런 시선들을 이겨내겠다는 생각이 자극도 됐어요.”
아픈 엄마 대신 집안 돌보려고 독학 선택한 딸, 해낼 것이라고 믿어준 부모
다행히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무선지역아동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이 큰 도움이 됐다. 지원양은 아동센터를 학교처럼 여기고 매일 ‘출근하다시피’했다. 아침에 동생들을 챙겨 학교에 보낸 후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무선지역아동센터에 도착하면 9시. 그때부터 스스로 짠 시간표의 1교시 수업을 시작했다. 인터넷 강의를 듣기도 하고 참고서를 파고들기도 했다. 가장 막막했던 영어는 중학교 영어책을 무작정 외웠다. 테이프로 듣고 따라하고 받아 적기를 반복하자 어느 순간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저녁시간에는 동생들도 아동센터로 와 함께 공부하고 밤 9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지원양은 그렇게 해서 2007년 8월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영어와 수학은 만점. 기대이상의 좋은 성적이었다. 곧바로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고등과정은 중등과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웠다. 국·영·수를 제외한 다른 과목은 독학에 한계가 느껴졌다. 다른 아이들은 소풍이다, 수련회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만들 시간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힘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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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과 이웃 선배, 친구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다른 친구들처럼 수학여행은 못 갔지만 공부방에서 틈틈이 공연도 보러 가고 문화체험도 했어요. 또 동생들과 복닥거리다 보면 사실 외로울 시간도 없었죠.”
지원양은 1년여 준비 끝에 지난해 8월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검정고시 수험장에서 시험감독관이 어린 지원양에게‘시험 보러 온 거 맞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고 한다. 검정고시 성적이 우수해 전남도지사 장학생으로 선발된 지원양이 시상식장에 나갔을 때도 그의 부모는 덩치 큰 어른들에 파묻힌 딸을 한참 동안 찾아야 했다고. 지원양은 지난해 2학기 수시모집 특별전형으로 순천대 원예·식물의학부에 지원했다. 집에서 통학이 가능한 국립대학교가 목표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집에 왔더니 순천대에서 편지가 와 있더라고요. 봉투를 뜯는데 손이 덜덜 떨렸어요. ‘합격’이라는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그동안의 힘들었던 기억이 한순간에 사라질 만큼 기뻤어요.”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걱정이 앞섰다. 아빠 박씨가 경제적 실패를 추스르고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일곱 식구 생활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 도움을 자처한 독지가들도 있었지만 지원양은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고 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틈틈이 쌓은 토플 실력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청소년 취업사업에 지원해서 ‘15세 미만인 자의 취직 인허증’을 발급받아 지난해 11월부터 번역 일을 하고 있다. 매월 50만원씩을 모아 등록금과 학비를 해결할 계획이다. 지원양 부모는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꿈을 키워가는 딸의 모습이 그 어떤‘성공’보다도 대견하다고 말한다.
“저희 가족이 ‘큰 시련을 겪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요. 아마도 보통 사람들처럼 아이들 사교육비에 허덕이면서 아등바등 살았을 것 같아요.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대신 가족의 소중함과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새내기 대학생 지원양은 요즘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다름 아닌 로스쿨 진학. 그래서 짬짬이 두툼한 ‘민법 강의’를 읽고 있다고 한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친구들은 중학교에, 자신은 대학교에 다니게 되면 으쓱할 것 같다며 웃을 때는 앳된 소녀의 모습 그대로지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더없이 당당해 보였다.

여성동아 2009년 2월 5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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