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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해피토크

나이 쉰 - 내 인생의 황금기

입력 2009.01.09 11:26:00

나이 쉰 -        내 인생의 황금기

유수종, 달과 해오라비, 70.3x130.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7


50! 올해 쉰 살이다. 스무 살 철없던 시절엔 쉰이란 말을 들으면 쉰 음식에서 풍겨 나오는 퀴퀴한 냄새가 연상됐는데 정작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뭐 그리 나쁘지 않다. 마흔 살 무렵, “이렇게 수시로 ‘혹’하는데. 불혹의 나이라니!” “세상에, 이젠 어쩔 수 없는 중년이구나. 남들이 더 이상 여자로 봐주지도 않을 나이다”라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체험했기에 반백 년을 맞이한 감회가 그리 비장하거나 서글프지 않다.
 내 주변과 세상을 둘러 봐도 50이란 나이는 편차가 참 심한 연령대다. 대학 졸업하기도 전에 시집가서 벌써 할머니가 된 조숙한 친구도 있고 늦둥이 유치원생 막내딸과 크레파스 그림놀이를 하는 친구도 있다. 20여 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조기 퇴직해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친구도 있고, 남편이 실직한 뒤 생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사원 친구도 있고, 두 번 이혼 후 세 번째 남편감과 열애중인 친구가 있는가하면, 아직도 짝을 찾지 못해 “이러다 묘비명에 미개봉 반납이라고 써야 하는 거 아냐?”라고 묻는 처녀 친구도 있다. 꾸준한 운동과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아 딸과 같은 25사이즈의 청바지를 입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친구와 하얗게 센 머리를 염색하지 않아 멀리서 보면 할머니처럼 보이는 친구가 함께 있으면 동창인데도 모녀 사이로 보일 지경이다.

원로 여성 명사들 가장 행복한 시기로 50대 꼽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해도 확실히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덧 모임에 참석하면 최고령인 경우가 많고 나에 대한 호칭도 유인경씨나 유기자가 아니라 유선생님, 심지어 유여사로까지 격상(?)돼 난감하다. 처음 보는 사람들, 특히 젊은 남성들 앞에서 나이를 밝히면 깜짝 놀라거나(그들에겐 이 나이에도 이렇게 철없이 시시덕거리는 것이 신기한가보다), 대학생이나 신입사원에게 강의를 하면 “우리 엄마와 동갑이시네요”라고 반가워하는 이들이 늘어나 운신하기 힘들다.
몸도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낸다. 과식하거나 체했을 때 약을 먹는 대신에 더 묵직한 음식을 먹어 ‘이식치식’ 치료법을 쓰던 무쇠위장도 이제 반란을 일으키고 지겹던 생리도 슬슬 작별 기미를 보인다. 그런 몸에 아부하기 위해 비타민, 달맞이유 등 건강보조식품을 부지런히 먹고 무리한 약속은 하지 않는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80대까지 살아본 여성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당신의 인생에서 어느 시절이 가장 행복했냐”는 질문에 대부분 50대를 꼽았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만난 박완서·김남조 선생 등 문인이 그랬고 평민당 부총재를 지낸 박영숙씨도 동의했다. 세계적인 여성학자였던 베티 프리던도 50대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강조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나이가 가장 섹시하거나 팔팔한 나이는 아니지만 드디어 남편과 아이를 돌봐야한다는 의무로부터 벗어나고, 직장생활에서도 떠나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50이 넘으면 자신이 못 가진 것에 연연하고 불평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자신의 한계도 인정하게 된다고 했다.

나이 쉰 -        내 인생의 황금기

유수종, 달과 해오라비, 24.4x33.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7


이젠 고령화 사회가 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 50대가 예전의 50대가 아니기도 하다. 자신의 의지와 열정에 따라 얼마든지 나이를 초월한 삶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됐다. 주변에 점점 그런 여성들이 늘어난다. 한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나이에 비해 유난히 젊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여자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 긍정적이란 거야. 무슨 일이든 재미있게, 즐거워하며 하다보면 몸의 세포들도 주인의 그런 열정에 넘어가 젊고 싱싱해지는 것 같아. 내 선배가 얼마 전까지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친구와 동업으로 가게를 열었는데 보톡스 주사 같은 거 맞지 않아도 예뻐지고 젊어졌더라고.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마음인 것 같아.”
오십이 넘은 여성들은 과거엔 대부분 할머니이거나 폐기처분된 상품 취급을 받았지만 이젠 아니다. 프랑스의 교수이자 작가인 아니 에르노는 자전적 소설 ‘단순한 열정’에서 쉰 살에 연하의 러시아 외교관과 사랑에 빠지고 그가 떠난 뒤 다시 아들보다 어린 대학생과 열렬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땐 “교수라는 여자가, 그것도 아들까지 있는 엄마가 주책이다”란 불쾌감도 들었는데 비슷한 나이가 되고 보니 그의 단순한 열정이 부러울 뿐이다. 쉰한 살에 세 번째 남편과 이혼하며 1천억 원이 넘는 위자료를 지불한 마돈나의 능력도 부럽다.
그리고 아무리 타임머신이 현실화된다 해도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혼란스럽기만 했던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가 취직을 할까, 대학원을 갈까, 결혼을 할까 등 고뇌에 빠지기 싫다. 아이 낳고 직장 다니고 남편과 아옹다옹하느라 자신이 몇 살인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숨 가쁘게 살던 30대의 고단한 삶을 반복하기도 싫다. 이제 중년이구나, 더 이상 젊지 않구나, 남들은 다 정상에 올랐는데 난 왜 아직 중턱에서 허덕일까라는 자괴감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던 40대에서 벗어난 것만도 다행이다.

열정 잃지 않고 날마다 새로운 것 배우고 나누기



이젠 정말 나에 대한 사랑을 온몸과 마음으로 실천할 때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어줘야 한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것이 아니라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해서 나를 기쁘게 해줄 나이다. 50대는 아직 체력이 고갈되지 않았고 호기심이나 열정도 여전하고 변장(?)을 하면 그리 늙어보이지도 않는다. 법정 스님도 새 책에서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살아서 죽어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라고 했다. 감각이 죽어가는 것, 열정이 죽어가는 것,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죽어가는 것이 진짜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앞서 수십 년을 살아본 훌륭한 선배들의 육성증언도 있고, 여러 환경 조건도 그렇고 드디어 나는 인생의 최고 황금기를 맞았다. 인디언들은 생일 자체를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지나며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축하한다고 한다. 예전에 비해 주름살은 늘었지만 조금 더 관대해지고, 건강에는 삐걱거리는 신호가 오지만 마음가짐은 한결 여유로워지고, 인터넷 서핑이며 문자 메시지에 이모티콘 넣기며 매일 하나씩 배워가고, 늘 새로운 책에서 뭔가를 하나씩 알아가는 내가 대견하고 기특하다. 인생의 황금기에 나 홀로 희희낙락할 게 아니라 이 기쁨과 즐거움을 주위 사람들과 나눠야겠다. 야호! 난 오십 살이다.

나이 쉰 -        내 인생의 황금기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 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장 여성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인데 성공이나 행복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웃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실수담이나 실패담을 담을 예정이다. 그의 홈페이지 (www.
soodasooda.com)에 가면 그가 쓴 칼럼과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여성동아 2009년 1월 5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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