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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빛나는 조연

‘베토벤 바이러스’ 명품 조연 박철민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합니다”

글·최숙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8.12.19 18:12:00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감초 연기로 웃음을 준 박철민. 연기생활 20년 만에 ‘명품 조연’이란 말을 탄생시키며 인기를 얻고 있는 그가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 ‘뜨기’까지 힘겨웠던 지난 세월과 동갑내기 아내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공개했다.
‘베토벤 바이러스’ 명품 조연 박철민

박철민(42)의 대본은 항상 지저분하다. 극중 대사는 몇 마디 안 되지만 연습 도중 자신의 역할에 맞는 말이 떠오를 때마다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를 하기 때문. 그는 자신이 바꾼 대사를 PD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하면 드라마가 더 맛깔나지 않겠느냐?”며 검사를 받는다. 물론 거절당할 때도 많지만 매번 수십 개의 애드리브를 준비하고 무섭도록 치밀하게 캐릭터를 연구한다.
그래서일까. 박철민의 연기는 항상 재밌다. 올초 ‘뉴 하트’에서 흉부외과 의사로 출현해 ‘뒤질랜드’라는 유행어를 만들더니 얼마 전 종영한 ‘베토벤 바이러스’에선 카바레 출신 트럼펫 연주자 배용기 역을 맡아 킁킁거리는 말투와 헛기침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배용기’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어요. 카바레 출신으로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도 클래식이라는 고급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하는 인물을 어떻게 연기할까 고민하다가 킁킁거리는 말투를 집어넣었죠. 성질은 급한데 마음만 앞서고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어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 말을 하는 인물로 설정한 거예요.”
대사 중간에 킁킁거리고 ‘어흠, 어흠’ 하며 헛기침을 하는 것에 대해 답답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재미있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그는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어흠 어흠 배용기 간다”며 흉내내는 이들을 보며 인기를 새삼 실감했다고 한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트럼펫 연주였어요. 촬영에 앞서 두 달 동안 연습을 했는데 ‘삑’소리 내는 것도 어렵더라고요. 제가 원래 음치에 박치거든요. 그래도 티를 내지 않으려고 연주하는 화면에 맞춰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무진장 애를 썼어요. 음악적인 재능은 없지만 트럼펫 선생님이 제 입가의 주름만큼은 명인의 냄새가 난다고 칭찬을 해주셨죠. 전에는 늙어 보인다고 해서 싫어했던 주름이 이 드라마에선 도움이 된 셈이죠.”
박철민은 ‘베토벤 바이러스’에 이어 내년 1월 방영 예정인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에도 캐스팅 됐다. 때문에 한동안은 두 촬영장을 오가며 연기를 했는데 이를 두고 그는 “딴 집 살림을 차리고 바람을 피운 셈”이라고 말했다.
‘돌아온 일지매’는 고우영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그는 옆으로만 걷는 왕횡보 역을 맡아 옆으로 걷는 연습을 맹렬히 하고 있다고 한다. 겹치기 촬영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그는 “캐릭터가 워낙 욕심나서 안 하면 오랫동안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박철민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할까.
“그저 시켜주는 것은 뭐든지 다 합니다(웃음). 그래도 나름의 개똥철학이 있다면 작품이 괜찮은가, 캐릭터에 향기가 있는가, 감독이 작품에 열정이 있는가 등이죠. 물론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도 생각하고요(웃음).”

‘베토벤 바이러스’ 명품 조연 박철민

한때 생활고에 시달리다 장사에 손댔지만 그마저 실패하고 연기가 천직임을 깨달아
지난 88년 노동연극 전문극단 ‘현장’에 입단,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그동안 ‘대한민국 김철식’ ‘화려한 휴가’ ‘불멸의 이순신’ 등 수십편의 연극과 영화,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오랜 무명 시절을 겪어야 했다. 그래도 연기하는 즐거움에 힘든 줄 모르던 그는 결혼을 계기로 생활고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스물여덟 살에 결혼을 했는데 그제야 힘든 걸 알겠더라고요. 아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토록 좋아하던 연기를 그만두고 2년 정도 장사를 했어요. 과일장사, 신발장사, 생선장사 등 안 해본 장사가 거의 없을 정도였죠. 그러다 도매업에 손을 대 그마나 벌어놓은 돈마저 날리고 말았어요. 그때 ‘내 천직은 배우’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데는 아내의 힘이 컸다고 한다. 연극배우 시절 만난 동갑내기 아내는 결혼 전에는 극작가로 활동하다 결혼한 후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책임졌지만 한 번도 불만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아내에게 늘 고마움을 느낀다는 박철민은 현재 열여섯 살, 열 살인 두 딸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드러냈다.
“딸들한테는 바보 같은 아빠, 친구 같은 아빠, 항상 져주는 아빠이고 싶어요. 밤샘 촬영이 있는 날에는 집에도 못 들어가지만 같이 있을 때는 편하게 대해주려고 해요. 일년에 한 번씩은 꼭 아이들과 여행을 가고 결혼기념일에는 아이들과 같이 선물과 케이크를 준비해서 깜짝 파티를 하죠.”
그는 ‘전국 노래자랑’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소박하고 편안한 이웃사촌 같은 배우가 되고 싶은 게 꿈이라고 한다. 세상살이가 힘들 때 ‘아, 그 친구 덕분에 웃었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박철민은 특유의 밝은 웃음을 지었다.
“배우는 참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주연에 대한 욕심도 없습니다. 배우 각자에겐 자기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저만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려고 해요. 연기를 통해 향기를 전하는 꽃이 되고 싶고, 만개를 하는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그저 향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소박하고 편안한 이웃사촌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박철민.

여성동아 2008년 12월 5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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