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이하드’를 보면 ‘You can think what you want’라는 대사가 나와요. 직역하면 ‘너는 생각할 수 있다. 네가 원하는 것을’ 정도가 되겠죠. 하지만 진짜 의미는 ‘착각은 자유’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이 말을 영어로 해보라고 한다면 대부분 ‘착각(illusion)’이나 ‘자유(freedom)’ 같은 단어를 떠올릴 거예요. 단어 암기식 영어공부의 한계 때문이죠.”
몇 몇 스포츠신문과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서 영어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우보현씨(45)는 독학으로 원어민 못지않은 영어 실력을 쌓은 입지전적 인물. 그는 학교에서 10년 이상 교육을 받아도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현실에 대해 “영어공부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제대로 공부하면 어학연수나 조기유학을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영어를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어릴 때부터 낯선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영어를 익히는 것보다 우리나라에서 먼저 영어의 기본 실력을 쌓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지리산 근교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우씨는 20대 초반 트럭 운전사로 일하면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가난한 집안환경 때문에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서 일하면서 실업계 야간고를 졸업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영어라도 공부해야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고, 그 말을 따라 영어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트럭 운전사 주제에 무슨 영어공부냐’라는 주위 사람들의 핀잔 속에도 꿋꿋하게 중1 영어단어 모음집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호텔에 물건을 배달하러 갔어요. 물건을 빨리 내려놓고 가야 하는데 주변에 외국인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어요. ‘여기에 물건을 두고 가도 되냐’고, ‘영어’로 말이죠. 외국인이 제 말을 알아듣고 ‘Thank you(고마워)’라고 말했는데 그때 처음 제가 영어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웃음).”
대학도 안 나온 트럭 운전사가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했다는 소문은 금세 그가 일하는 가게로 퍼졌다고. 그 일로 힘을 얻은 우씨는 그때부터 더욱 영어공부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일을 쉬는 날이면 탑골공원·이태원·덕수궁 등 외국인이 몰리는 곳으로 찾아갔어요. 혼자 공부한 표현을 꼭 써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자꾸 한계에 부딪히더라고요. 그럴 때는 종이에 써달라고 부탁해 집에 돌아와 사전을 찾아가면서 공부했죠.”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영어문장 메모하며 다양한 관용 표현 줄줄 외워
그의 영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 홈스테이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외국인 여행객이 많이 묵는 여관 앞에 서성대다 만난 한 영국인과 6개월간 함께 살면서 그는 영어 문법책이 알려주지 않는 ‘진짜’ 영어를 터득했다고 한다.
우보현씨는 다양한 관용 표현을 수시로 메모해 외우며 영어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영어 책을 보면 대부분 ‘만나서 반갑습니다’부터 시작해 ‘너의 직업은 뭐니’, ‘우리 가족은 몇 명이다’ 같은 내용으로 이어지잖아요. 그런데 일상 회화에서는 이런 말을 쓸 일이 거의 없죠. 만약 이런 대화를 한다고 해도 30분 정도면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지고요. 영국인 친구와 함께 살 때 그가 제게 처음으로 한 말은 ‘잘 잤니’도 아닌 ‘이는 닦았니’였어요(웃음).”
이 경험을 계기로 우씨는 영어회화를 잘하기 위해선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문장을 많이 익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방 곳곳에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되는 영어문장을 써서 붙였다고. 그 광경을 본 친구가 ‘무당집’ 같다며 놀랐을 정도였다고 한다.
“문법책도 봤지만 제가 외운 문장은 주로 영자신문에 나오는 실제 쓰는 영어 표현이었어요. 또 외국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영화 속 재밌는 관용어구도 무조건 적어놓고 외웠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난생 처음 치른 토플 시험에서 상상도 못할 고득점을 받았다. 그 덕분에 국비 유학을 떠나게 됐고,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언어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연세대·경희대·울산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그는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생생히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학생들이 단어에만 집착한다는 것. 우씨는 기자에게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라는 표현을 영작해보라고 했다. 기자의 머릿속에는 ‘한다’와 ‘사람’이란 영단어만 빙빙 떠돌아다녔다.
“이 질문의 답은 ‘I’m not a quitter’예요. 우리말로 직역하면 ‘나는 끝내지 않는 사람이야’, 즉 ‘나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야’란 얘기죠. 그런데 단어만 외워서는 절대 이런 표현을 쓸 수가 없어요. 제 외국 친구들은 한국 사람이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그 다음엔 그렇게 많은 단어를 아는데도 영어를 잘 못한다는 데 또 한 번 놀라죠. 미국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관용적인 표현을 모르면 아무리 단어를 많이 외워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어요.”
그는 특히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는 영화를 반복적으로 보면서 안 들리는 단어나 잘 모르는 문장을 공부하고, 영어 대본을 받아 다양한 관용 표현을 외우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음도 정확히 익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단 모르는 발음을 반복해서 듣고 들리는 대로 큰 소리로 따라하는 게 좋아요. 우리나라는 일본식 영어의 잘못된 발음과 딱딱한 영국식 발음을 혼재해 쓰는 경우가 많은데 부드러운 미국식 발음으로 고쳐나가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어젯밤’의 바른 발음은 ‘라스트 나이트’가 아니라 ‘라아스 나잇’이에요.”
그는 “지금도 늘 손에 펜과 종이를 쥐고 좋은 표현이 있으면 적어서 암기한다”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조금은 너덜거리는 낡은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영어 문장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아이가 기본적인 영어 단어와 문법을 익힌 뒤엔 자주 쓰이는 문장들을 묶어서 자신만의 영어 메모장을 만들게 하세요. 적어두고 수시로 보는 거죠. ‘영어’를 ‘공부’가 아닌 ‘습관’으로 여기면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영어를 잘할 수 있습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